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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34권, 선조 26년 1월 14일 기사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이원익 등이 명군 장수가 생포한 왜적 장수를 심문한 내용을 보고한 장계

도순찰사(都巡察使) 이원익(李元翼), 공조 판서 한응인(韓應寅), 한성부 판윤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기를,

"1월 11일 아침에 명나라 장수가 전일 생포한 적의 중군(中軍)이라 일컫는 사람을 불러다 묻기를 ‘왜적의 정예군은 어느 곳에 있으며 함경도에 있는 적의 수효는 얼마나 되는가?’ 하니, 왜인이 대답하기를, ‘정예군은 전부 이 성에 있으며 함경도의 적은 당초에 약 1만여 명이었으나 많이 살상당하여 지금은 1만 명이 못될 것이다.’ 하였으며, 명나라 장수가 ‘내가 15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곧장 경성을 향하여 가고 이 뒤에 또 10만의 군마(軍馬)가 잇따라 오는데 그들이 우리를 당할 수 있겠는가.’ 하니, 왜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노야(老爺)의 위세와 명성이 진동하니 경성과 함경도의 적이 그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모두 도망할 것이다. 어찌 이와 같이 많은 군사를 지나치게 동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제독은 왜인을 거느리고 먼저 경성에 가서 전투에 임할 계책을 시행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나라 장수가 타던 말이 철환(鐵丸)에 맞았으므로 신들로 하여금 준마 한 필을 구하도록 하여 타고서 경성으로 향하려고 하였는데, 널리 군중에 찾아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말이 없자, 명나라 장수가 ‘국왕에게 이문(移文)하여 한 필을 빌려가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명나라 장수가 제물(祭物)을 갖추도록 하고 전진(戰陣)에서 죽은 장사(將士)들을 보통문(普通門) 밖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는데 소리내어 통곡하며 슬픔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하니 제장(諸將) 이하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또 기자묘(箕子廟)에 제사를 지내려고 하여 제물을 미리 갖추도록 하였는데 평양의 촌민(村民)들이 6∼7섬의 떡을 만들어 명나라 군사를 위로하면서 대접하였습니다. 그러자 명나라 장수가 대동문(大同門)에 나아가 부로들을 초치(招致)하여 눈물을 머금고 위로하며 사례하기를 ‘우리 군사가 그대들을 구원하여 살리려다 죽거나 부상당한 자가 3천여 명이나 되는데 성을 공격할 때에 그들은 보았는가?’ 하니, 백성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축수(祝手)하였습니다. 명나라 장수가 ‘우리가 분명히 곧장 경성으로 향하여 왜노들을 모두 죽일 것이니 그대들은 안심하고 정착하라.’ 하였습니다.

당일 오후에 명나라 장수가 신들을 불러 ‘왜노가 가까운 길을 따라 도망하였는데, 황해도의 장병관(將兵官)은 어찌하여 군기(軍機)를 어기고 그르쳤는가? 군대는 신속함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다. 나는 급히 경성으로 향하려고 한다. 앞으로 쓸 식량과 말먹이는 얼마나 준비하였는가? 그리고 우리 군사 중에 죽거나 다친 자가 모두 3천여 명이나 되니 빨리 그대 나라의 날랜 군사 3천 명을 뽑아내어 우리의 투구와 갑옷을 착용하게 해서 따로 한 부대를 만들도록 하라.’ 하고, 신 이원익에게 ‘그대가 먼저 가서 단속하라.’ 하였습니다. 제독이 또 백패(白牌)를 내어 거느린 군사 15만 명을 전진시킬 뜻을 일로와 경성의 여러 곳에 전달하여 알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장수 중에 철환에 다친 사람을 다시 물으니,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이 남병(南兵)을 거느리고 밀덕(密德) 모란봉(牧丹峯)의 토굴(土窟)을 공격할 적에 그의 군사가 힘껏 싸워 죽거나 다친 자가 매우 많았는데 유격도 철환을 맞았으며 천총(千總) 1원(員)은 마침내 죽는 데 이르렀고, 낙 참장(駱參將)도 먼저 올라가 성에 들어갔다가 몹시 심하게 부상을 당했지만 극력 싸움을 독려하였기 때문에 관하(管下)에서 적의 수급(首級)을 벤 것이 거의 수백(數百)에 이르렀습니다. 명나라 군사로 다친 자는 연달아 안정(安定)으로 돌아가게 해서 각별히 구료(救療)하여 되돌려 보낼 일을 여러 고을에 이문(移文)하고 천총과 파총 등에게는 조정에서 부의(賻儀)로 주는 물품이 있어야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독의 말이 철환을 맞았다고 하는데 군중에서 구하면 얻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도 기필코 국왕에게 알리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타는 말이 좋다는 것을 명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이 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都巡察使李元翼, 工曹判書韓應寅, 漢城府判尹李德馨馳啓曰: "正月十一日朝, 天將招前日生擒賊中軍稱名人, 而問之曰: ‘倭賊精兵, 在何處? 咸鏡道賊數幾許?’ 倭人對曰: ‘精兵都在此城, 咸鏡道之賊當初約一萬餘兵, 多被殺傷, 今不滿萬矣。’ 天將曰: "我率十五萬衆, 直向京城, 此後又有十萬軍馬繼來, 渠能當我乎?’ 倭人扣頭曰: ‘老爺威聲震動, 京城及咸鏡之賊聞之, 則必盡遁矣。 何必過動兵馬, 如是之多乎?’ 提督欲率倭人, 前往京城, 臨戰行計云。 天將所騎馬中鐵丸, 令臣等覓駿馬一匹, 騎向京城, 而廣搜軍中, 未有稱意之馬, 天將曰: ‘欲移文國王, 借得一匹。’ 云。 朝食後, 天將令備奠物, 出祭陣亡將士於普通門外, 擧聲慟哭, 悲不自勝, 諸將以下, 莫不流涕。 又欲祭箕子廟, 使之預備奠物, 平壤村民作餠六七石, 犒餉天兵。 天將出大同門, 招父老, 含淚慰謝曰: ‘我兵爲救活爾等, 死傷幾三千餘名, 攻城時, 爾們得見乎?’ 百姓等扣頭祝手。 天將曰: ‘我明明直向京城, 殺盡倭奴, 爾們安心奠居。’ 當日午後, 天將招臣等謂曰: ‘倭奴從抄路遁去, 黃海將兵官, 何以違誤軍機。 兵貴神速。 我欲急向京城。 前頭糧芻, 備得幾許? 我兵死傷, 幷計三千餘名, 速令抄發爾國精兵三千, 着我盔甲, 使之別爲一隊。’ 謂臣元翼曰: ‘爾可先往檢擧。’ 提督又出白牌, 以領兵十五萬前進之意, 傳諭一路及京城諸處矣。 諸將中傷鐵丸者更問, 則遊擊吳惟忠, 領南兵, 進攻密德牧丹峯土窟, 其軍力戰, 死傷尤多, 遊擊亦中鐵丸, 千總一員則竟至殞命, 駱叅將亦先登入城, 跌傷頗重, 而極力督戰, 故管下斬級, 幾至數百。 天兵搶傷者, 陸續下歸 , 各別救療送還事, 移文列邑, 至於千把總等, 朝廷似當有賻贈之物。" 上曰: "提督之馬, 逢鐵丸云, 求之軍中, 似可得也。 而必使告于國王云, 予所騎馬, 天朝人皆知其好, 無乃欲得此馬耶?"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