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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34권, 선조 26년 1월 7일 임술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윤근수가 동 참장·장 도사를 만나 평양 왜적의 동태를 상의하고 보고하다

예조 판서 윤근수가 아뢰었다.

"동 참장(佟參將)청심당(淸心堂)에 있는데 신이 오늘 나아가 보니 참장장 도사(張都司)와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참장이 ‘부장(副將) 이여백(李如栢)이 4일에 정주(定州) 동쪽에 먼저 도착하여 김자귀(金子貴)로 하여금 왜적들에게 큰소리로 「심 유격(沈遊擊)이 여기 왔다. 」고 외치게 하자,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즉시 왜자(倭子) 23명으로 하여금 나아가 맞이하게 하였다. 유시(酉時)에 진중(陣中)에 도착하자 이여백이 15명은 목을 베고 3명은 사로잡았으며 5명은 도망하였는데, 날이 이미 어두워 비록 도망한 방향은 모르나 복병(伏兵)이 돌아가는 길을 차단했을 테니 틀림없이 평양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로잡은 왜노 중 한 명은 장대선(張大膳)이며 한 명은 소장(小將)이었는데 장대선의 말로는 「5일에 많은 왜적이 일시에 나와 심 유격을 영접하려 했다. 」 하였는데, 만약 그의 말과 같다면 5일에 틀림없이 큰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니 오늘밤에 응당 통보가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왜노가 틀림없이 많은 군사가 이른 것을 염탐하여 알고서 성을 지키며 나오지 않은 것이다. 또 이 제독이 처음에는 안정(安定)에서 주둔하며 군사를 쉬게 하려고 했는데 4일에 일어난 일이 저와 같았으므로 조금도 늦출 수가 없어 추측건대 이미 곧바로 진격하였을 것이다. 만약 왜적이 성(城)을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다면 며칠 휴식하고 전투하는 것이 가하다. 그리고 듣건대, 평양의 왜적은 그 수효가 많지 않고 5∼6천 명뿐인데 모두 날래고 용감한 자로 선발되었으며, 성중에는 염장(鹽醬)이 없어 김자귀가 작은 칼 등의 물건을 가지고 염장과 교환하려고 하였지만 얻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또 들으니 관백(關白) 평수길(平秀吉)이 대마도(對馬島)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그의 동생과 아들이 모두 죽어 형세가 매우 고단(孤單)하다고 한다. 또 이 제독이 숙녕(肅寧)에 도착하여 밀운군(密雲軍) 유신(劉信)이란 자가 인가(人家)를 침해하여 어린 아이를 짓눌러 죽인 일을 듣고 곧 유신을 참(斬)하여 효수(梟首)하였다고 하였다. 또 화포(火炮)·군기(軍器) 등의 물품을 빨리 운송(運送)하도록 하고, 평양을 수복하는 것은 여러 날 걸리지 않을 것이니 평양을 곧 회복하면 며칠간 군사를 휴식하게 하였다가 서울로 전진하려 하는데, 다만 봄의 얼음이 점점 얇아져서 많은 군사가 대동강을 건너기가 어려울 듯하니 강을 건너는 모든 도구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황해 일로(一路)의 꼴과 양식은 공급할 수 있겠는가?’ 하므로, 신이 ‘황해의 대로(大路)에는 적이 늘 왕래한다. 꼴과 양식은 근처에 비축되어 있으며 곁에 잇닿은 주군(州郡)에도 거의 모두 비축되어 임시(臨時)하여 공급하는데 대비하였다.’ 하였더니, 참장이 기뻐하면서 ‘그렇다면 좋다.’ 하고, 또 ‘송 경략(宋經略)이 6일 요동(遼東)을 출발하였으니 날짜를 계산하면 내일이면 봉황성(鳳凰城)에 당도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9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禮曹判書尹根壽啓曰: "佟叅將淸心堂, 臣今日進見, 則參將與張都司同坐。 叅將曰: ‘李副將 如栢, 初四日, 先到定州東邊, 令金子貴曰: 「沈遊擊到此。」 行長卽令子二十三名出迎。 酉時, 來到陣中, 李如栢斬十五級, 擒三名, 五則逃脫, 日已昏黑, 雖不知去向, 然伏兵斷絶歸路, 必不得到平壤, 生擒三, 一則張大膳, 一則小將。 大膳言: 「初五日, 衆齊出, 迎接沈遊擊」 云, 若如其言, 則初五日必大戰, 今夜當有報來, 否則倭奴必詗知大兵之至, 而守城不出矣。 且李提督, 初欲屯於 休兵, 而初四日作事如彼, 不可小緩, 想已直進。 若守城不出, 則亦可休息數日而戰。 且聞平壤, 其數不多, 只五六千, 而皆選鋒驍勇, 城中無鹽醬。 金子貴將小刀等物, 要換鹽醬, 而無從覓得云。 且聞關伯平秀吉來駐對馬島, 其弟其子皆死, 勢甚孤單。 且李提督肅寧, 聞密雲軍劉信者, 侵擾人家, 壓殺小兒, 便將劉信斬梟。 且令火炮、軍器等物, 星火運送, 剋復平壤, 不在多日, 平壤卽復, 則休兵數日, 前進王京, 只恐春氷漸薄, 大軍難過大同江, 過涉具亦可預備。 黃海一路芻糧, 可以接濟乎?’ 臣答以: ‘黃海大路, 賊常往來, 芻糧儲於近處, 而迤傍州郡, 略皆儲峙, 以備臨時接濟之用矣。’ 叅將欣然曰: ‘然則好矣。’ 又曰: ‘宋經略, 初六日, 發遼東, 以日計之, 則明日當到鳳鳳城。’ 云。"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9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