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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4권, 선조 26년 1월 7일 임술 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대제학 윤근수가 사직을 청하다

대제학 윤근수가 아뢰기를,

"신이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자질(資質)로 외람되게 양조(兩朝)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미직(美職)과 청반(淸班)을 두루 다 거치고 마침내 숭반(崇班)에 올랐으니, 이미 분수에 지나쳤으므로 귀신의 책망이 뒤따라서 3∼4년간에 자식 넷이 죽었습니다. 정을 쏟던 자식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고 심신(心神)이 혼미하고 어지러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건망증이 심하니 몸은 비록 살아 있으나 목숨을 거의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국가에 개백(開闢) 이래 없었던 병화(兵禍)가 있어 황급하게 어가를 호종하면서 병(病)을 참고 반열을 따랐는데, 지금 문형(文衡)을 담당하는 임명이 신에게 미치니 명령을 듣고 두려워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문형의 직임은 그 선임이 가장 중대하므로 조종조에서부터 반드시 문장을 수식하는데 뛰어나고 명망이 당대에 의지할 만한 자를 가려서 임명하였고, 신과 같이 재능이 없는데도 외람되이 차지한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명기(名器)를 욕되게 하는 것이 실로 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니 무슨 마음으로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신이 선조(先朝)에 외람되게 사가 독서(賜暇讀書)하는 반열에 참여하기는 하였으나 재주는 남에게 미치지 못하였고 또 스스로도 힘쓰지 않아 시(詩)에는 서툰 말과 세련되지 못한 것이 많고 표문(表文)이나 전문(箋文)의 경우는 본래 능하지 못한데, 이것은 당시의 동류(同流)로 모르는 이가 없으니 신이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마음에 병이 걸려 정신이 혼미하고 어지러운 것이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으며 구학(舊學)은 모두 잊어버려 멍청하기가 흙덩이나 나무토막과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라 명나라의 문서가 잇따라 이르는데 즉시 회답해야 하는 것은 문형을 맡은 자가 전적으로 책임집니다. 그런데 신과 같이 허술하며 사리에 어둡고 어긋나는 자가 어떻게 좌우로 수응(酬應)하면서 지체됨이 없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이 사사로운 걱정이 아니고 실로 국가의 체통에 관계되니, 성자(聖慈)께서는 신의 성심을 굽어살피시고 빨리 성명(成命)을 거두시어 적당한 사람을 임명하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합하니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9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壬戌/大提學尹根壽啓曰: "臣以庸謬無狀, 濫蒙兩朝殊遇, 美職淸班, 歷遍殆盡, 遂躋崇班, 分劑旣過, 鬼責隨至, 三四年來, (懷)〔孩〕 抱中物, 化爲糞壤者, 前後凡四, 情鍾所在, 肝肺寸鑿, 心神昏錯, 撫事輒忘, 形骸雖存, 已覺奄奄如蜍志。 不幸國家有開闢所無之兵禍, 扈駕蒼黃, 力疾班行。 今者柄文之除, 乃及於臣, 聞命震悸, 不知所處。 文衡之任, 其選最重, 自祖宗朝, 必擇長於斧藻, 望仗一世者授之, 未有如臣之匪才而冒據者, 貽辱名器, 實自臣始, 何心能安? 臣在先朝, 雖猥預賜暇之列, 而才不及人, 又不自力, 詩多拙語艱澁, 表箋則素所不解, 此則一時流輩, 無不知之, 非臣之飾說也。 加以憂患嬰心, 精神瞀亂, 如上所云, 舊學盡忘, 塊然土木。 又事非平時, 上國文書, 絲絡而至, 登時回答, 專責典文。 如臣之空踈昏謬, 其何能左酬右應而無滯乎? 念非私憂, 實係國體, 伏望聖慈, 曲察微懇, 亟收成命, 以授其人。" 上曰: "可合, 勿辭。" 再辭, 不允。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9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