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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2권, 선조 25년 11월 3일 기미 3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비변사가 경성 회복을 위해 군대의 전진 배치 등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라도 군사는 먼저 해서(海西)의 적을 무찌르고 평양으로 진군하라는 일은 이미 하서(下書)하였습니다. 지금 들으니 강화(江華) 여러 포구는 깊은 겨울이 되면 비록 얼음은 얼지 않으나 살얼음이 겹겹이 쌓여 조수(潮水)를 따라 오르내려 좌우가 모두 얼음이므로 가운데 물길을 열더라도 배가 다니기 어렵다고 합니다. 1만 명에 가까운 군사가 또다시 강화로 들어갔다가 다시 건너오지 못하면 쓸모없게 되는 것이 또 최원(崔遠)의 경우와 같이 될 것입니다.

권율(權慄)로 하여금 경성(京城)으로 곧장 향하게 하고, 또 최원·김천일(金千鎰)·우성전(禹性傳) 등으로 하여금 여러 의병을 통솔하고 권율과 합세하여 혹은 성원(聲援)하고 혹은 기각(掎角)의 형세158) 를 이루어 일시에 함께 진격하게 하면 거의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강화는 형세상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야 하는데 그때 가서 지체하면 혹시 기회를 놓치게 될까 염려되니 부득이 미리 육지에 나와 진용을 결성하고 병기(兵機)를 다같이 논의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고언백(高彦伯)·홍계남(洪季男)이 없으면 경성의 인심의 의지할 데가 없고 먼저 올라 돌격하여 제군(諸軍)의 선봉이 될 만한 자는 반드시 이들입니다.

별도로 선전관(宣傳官)을 보내어 표신(標信)을 지니고 권율의 군중에 가서 이런 곡절로 비밀히 제장(諸將)에게 통첩하여 동서가 서로 응하여 정한 날짜에 거사하게 하고 또 기밀을 누설하지 말게 해야 합니다. 또 사(司)의 낭청(郞廳) 한 사람을 함께 보내 군중을 일을 맞대고 의논하게 하면서 겸하여 군정(軍情)을 살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62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

  • [註 158]
    기각(掎角)의 형세 : 군사를 둘로 나누어 적을 견제하는 것. 마치 사슴을 잡을 때 한 사람은 사슴의 발을 붙잡고 한 사람은 그 뿔을 잡는 형세로 적을 견제한다는 데서 생긴 말.

○備邊司啓曰: "全羅道兵, 先勦海西之賊, 進向平壤事, 已爲下書矣。 今聞江華諸浦, 若至深冬, 雖不合氷, 氷澌鱗積, 隨潮上下, 左右皆氷, 中開水道, 難以行舟云。 滿萬之兵, 復入江華, 不復濟師, 則其爲無用, 又一崔遠。 令權慄直向京城, 又令崔遠金千鎰禹性傳等, 統率諸義兵, 與合勢, 或爲聲援, 或爲掎角, 一時齊進, 則庶可濟事。 而江華形勢, 登舟出陸, 臨時遲滯, 慮或失期, 不得已前期出陸結陣, 通議兵機。 然若無高彦伯洪季男, 則京城人心, 難以係屬, 而先登突擊, 爲諸軍倡者, 必賴此等人。 別遣宣傳官, 持標信往軍中, 將此曲折, 密通諸將處, 東西相應, 刻日擧事, 且毋令透漏機關。 又遣司郞廳一人同往, 面議軍事, 兼察軍情, 何如?"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62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