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수가 중국군의 출병 상황을 보고하다
예조 판서 윤근수와 공조 판서 한응인이 아뢰었다.
"신들이 어제 강을 건너 낙 참장을 만나러 가다가 길에서 갈 유격(葛遊擊)123) 이 이미 압록강을 건너 동안(東岸)에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대로 의순관에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있자 갈 장군이 관에 도착하여 사 총병(査總兵)124) 과 자리를 같이하였으므로 신들이 들어가 예를 행하고, 인해서 군병이 나오는 시기를 물으니, 갈(葛)이 입을 떼려 하면 사(査)가 눈짓으로 여러 차례 중지시키곤 하였습니다. 신들이 갈이 혼자 있을 때를 기다렸다 상세히 물으면 반드시 그 요점을 알 수 있으리라 여기고서는 오늘 아침 일찍 갈이 묵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 만나서 좌우를 물리치기를 청하자, 갈이 신들을 끌고 청(廳)의 한쪽으로 갔습니다.
신들이 은밀하게 사기(師期)를 묻자 ‘관내(關內)·계진(薊鎭)·선대(宣大) 등 지방의 군사와 남병(南兵) 1만, 도합 7만과 광녕(廣寧)·요동(遼東) 등지의 군사 6만을 합쳐 모두 13만이 올 것이다. 나는 선봉인데 선봉은 모두 7천이며 뒤이어 속속 나오게 될 것이다. 장수 중 용맹과 지략이 있는 자가 대략 3∼4명인데 모두 양 총병(楊總兵)125) 을 뒤따라 올 것이다. 조 총병(祖總兵)126) 도 올 것인데 지금 가정(家丁)을 조발하는 중이다. 일시는 양야(楊爺)가 분부할 것이다. 먼 곳에 있는 선대 등의 군사도 오게 되는데 만일 전쟁을 하기 전에 말이 새어 왜적이 도망친다면 송야(宋爺)가 반드시 나를 허물할 것이니 천만 신중히 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가 감히 말할 수는 없으나 대략 다음달 초순에 광녕에서 출발하여 탕참(湯站)에 도착, 머물러 주둔하면 송 시랑(宋侍郞)을 기다릴 것이다. 시랑은 요동에 주둔하거나 아니며 봉황성(鳳凰城) 근처에 와서 지휘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다시 군사를 진발시킬 시기를 묻자 ‘다음달 보름이 될 것이다.’ 하였고 ‘성지(聖旨)에는 곧바로 왕경(王京)127) 으로 밀고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금년에 왜적이 도망쳐 돌아간다면 명년에 반드시 다시 쳐들어 올 것이니 한 명의 군사도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했습니다.
신들이 다시 ‘13만 명이 오게 되면 우리 나라에서 군량을 판출할 수 없을까 염려된다.’고 하자, 갈이 ‘군량은 압록강의 서쪽까지는 수레로 운반해 오고 동쪽에서부터는 말로 운반해 갈 것이므로 그대 나라의 전량(錢糧)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했습니다. 또 묻기를 ‘심 유격의 강화하고 조공을 받아들이자는 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만일 이 말대로 된다면 우리의 통민함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니, 갈은 ‘나는 조정의 뜻은 알지 못하지만 양 총병 이하 장관(將官)들은 모두 「대병(大兵)이 평양에 진주하였을 적에 적도가 손을 싸매고 애걸복걸하면서 다시 한마디도 말이 없으면 그대로 두겠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물어볼 것도 없이 모두 죽이겠다. 」고 하였다. 그러니 어찌 그대 나라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어제 의순관에서 낙 참장(駱參將)을 가서 만났는데 양 총병의 공문을 내보이면서 ‘나에게 의주로 가서 주둔하라고 하였는데 성안에 방(房)이 작아 침식이 불편하다. 26일에는 압록강을 건너가 화포(火砲)를 쏘아보고서 즉시 돌아왔다가 대병이 도착한 다음 일제히 나아갈 것이다. 우선 30명을 안정(安定)에 보내어 화포를 가르쳐 익히게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4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註 123]갈 유격(葛遊擊) : 이름은 봉하(逢夏)임.
- [註 124]
사 총병(査總兵) : 이름은 대수(大受)임.- [註 125]
○庚辰/禮曹判書尹根壽, 工曹判書韓應寅啓曰: "臣等昨日過江見駱叅將, 路聞葛遊擊已到東岸, 臣等仍待於義順館。 未幾葛將抵館, 與査總兵同坐。 臣等入見行禮, 因問師期, 葛欲言, 而査目止之者數次。 臣等, 意謂, 若竢葛獨在細問, 則必得其要領, 今早往見葛於所館, 請屛左右, 則葛拉臣等到廳一邊。 臣等密問師期, 則曰: ‘關內薊鎭、宣大等處兵及南兵一萬幷七萬, 廣寧、遼東等地兵六萬合十三萬當來。 我是先鋒, 先鋒凡七千, 陸續出來。 將官驍勇有智略者, 約三十四員, 皆跟楊總兵而來。 祖總兵亦來, 方調家丁。 日期則楊爺分付。 遠處宣大等兵亦來, 若先機透漏, 倭賊遁去, 則宋爺必咎我, 千萬愼重。’ 云云。 ‘我不敢說, 大約來月初, 當自廣寧起程到湯站留駐, 以待宋侍郞。 侍郞或駐遼東, 或來鳳凰城近處指授。’ 云。 臣等更問進兵之期, 則 ‘當在來月望時’, 聖旨以爲直殺到王京, 今年若遁還, 則明年必再侵, 當使片甲不還。 臣等更告: ‘十三萬若來, 則我國軍糧, 恐不能辦。’ 葛言: ‘軍餉, 則鴨江以西車運, 以東馬運, 不費爾國錢糧。’ 又問: ‘沈遊擊議和納貢之說, 未知如何? 萬一或如此說, 小邦之痛悶可言?’ 葛曰: ‘我未知朝廷之意, 然楊總兵以下將官, 皆謂大兵進臨平壤, 賊若束手乞哀, 更無一言則已, 不然, 當盡殺無疑。 豈有令爾國不遂所願之理乎?’ 昨自義順館, 往見駱叅將, 則出示楊總兵公文曰: ‘令我進駐義州, 但城中房子小, 寢食不便。 卄六, 當渡江, 試放火砲, 便卽回來, 以待大兵之至, 一齊進去。 先送三十, 到安定訓習。’ 云。"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4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註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