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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0권, 선조 25년 9월 19일 병자 1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임진강에서 초토사 이정암이 왜적과 싸워 공을 세우자 비변사가 상을 청하다

이보다 앞서 임진(臨津)이 무너지자 8월 22일에 초토사(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이 의병 5백여 명으로 텅빈 연안성(延安城)에 들어가 웅거하고 있으면서 흩어진 사람들을 부르고 군량을 모으며 병기를 수선하여 대대적인 거사를 도모하고 있었다. 28일에는 해주강음(江陰)의 왜적 약 3천여 명이 성 아래로 진격해 와서 사면을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주야로 막아 지키는데 병기가 갖추어지지 않아 적군이 혹 성을 타고 오르면 성안의 군사들은 목석(木石)을 던졌다. 적군의 사상자는 그 숫자를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고 우리 군인은 31명이 사망했다. 9월 2일에 적이 포위를 풀고 떠나갔다. 정암이 수급 18급(級)을 베고 소와 말 90여 필과 군량 1백 30여 석을 빼앗았음을 보고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정암의 훈련되지 않은 외로운 군대로 힘을 다해 한 성을 지켜 적의 예봉을 막고 한 고을의 성지(城池)를 끝까지 보전하였으니 그 공이 큽니다. 물정(物情)이 모두들 칭송하니 중상(重賞)을 내려 격려하소서. 또 순찰사(巡察使)를 겸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이어 가자(加資)할 것을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46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특수군(特殊軍)

○丙子/先是, 臨津失守, 八月二十二日, 招討使李廷馣, 以義兵五百餘名, 入據延安空城, 招集散亡, 積穀繕兵, 以圖大擧。 二十八日, 海州江陰之賊約三千餘, 進逼城下, 四面攻圍。 晝夜拒守, 器械未備, 賊或登城, 城中將士, 以木石投之。 賊死者不記其數, 我軍死者三十一人。 九月初二日, 賊解圍去。 廷馣斬首一十八級, 奪牛馬九十餘匹, 軍糧一百三十餘石以聞。 備邊司啓曰: "李廷馣, 以不敎孤軍, 力守一城, 能捍賊鋒, 卒全一邑城池, 其功大矣。 物情莫不稱嘆, 請爲重賞, 以爲激勵。 且令兼巡察使。" 上從之。 仍命加資。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46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특수군(特殊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