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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0권, 선조 25년 9월 1일 무오 6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예조가 칙사는 의순관에 머물게 하자고 아뢰다

예조가 아뢰었다.

"이번 칙사를 용만관(龍灣館) 【성중(城中)에 있다. 】 머물게 할 것인가, 혹은 의순관(義順館) 【성외(城外)에 있다. 】 머물게 할 것인가를 하문(下問)하셨습니다. 평소에 칙사의 영접은 근정전(勤政殿)에서 하고 상·하마연(上下馬宴)은 태평관(太平館)에서 베풀어왔는데, 이번에 용만관에서 칙사를 영접하신다면 의순관은 당연히 태평관과 동일하게 됩니다. 따라서 칙사는 의순관에 머물게 해야 할 것이고 하마연(下馬宴)도 묵고 있는 관(館)에서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른 장관(將官)들이 의순관에 가득히 머물고 있어 칙사가 편히 쉴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용만관에서 칙사를 영접한 다음 그대로 그 관에 묵게 하고 연향(宴享)도 그 곳에서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38면
  • 【분류】
    외교-명(明)

○禮曹啓曰: "今次勑使留龍灣館, 【在城中。】義順館 【在城外】 事, 下問矣。 平時迎勑, 則行於勤政殿, 上下馬宴, 則行於太平館, 今者迎勑於龍灣館, 則義順館當視同太平館。 勑使館於義順, 下馬宴行於所館之處。 而今者他將官, 遍滿義順, 勅使更無安歇之處。 故迎勑於龍灣館, 仍留其館而宴享, 亦行於其處矣。"


  • 【태백산사고본】 15책 3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38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