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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28권, 선조 25년 7월 30일 정해 3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이성중이 중국군의 도착 상황과 인원, 및 출정 일정을 아뢰다

호조 판서 이성중(李誠中)이 아뢰었다.

"소신이 명을 받고 홍수언(洪秀彦)과 함께 구련성(九連城)에 나아가 ‘전일 사 유격(史遊擊)은 불행히 전사하였으나 조 총병(祖總兵)이 성을 넘어 들어가 적병을 마구 죽였고 노야(老爺)가 또 강가에 주둔하여 성원하였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군신(君臣)들은 믿고서 두려워하지 않았고, 흉적(凶賊)은 성을 나와 서쪽에서 말을 먹이지 못하였다. 요사이 흉적이 대군(大軍)을 거두어 돌아간 것을 탐지한 듯 연일 성에서 나와 무기를 휘두르며 시위하고 있다. 이때에 다시 4∼5천 명의 정예병을 보내어 합심하여 전멸시키지 않고 적의 세력이 극성하도록 두면 그 해독이 진실로 우리 나라에만 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전일 조 총병이 강가로 돌아갈 적에 장수와 군마(軍馬)가 모두 돌아갔으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니, 대답하기를 ‘돌아오도록 한 것이 아니라 군사를 바꾼 것이다. 1천 명의 군사는 의주에 주둔하여 국왕을 방호(防護)하고 5백 명은 구련성에 주둔하고 있으며, 또 마두산(馬頭山)강연대(江沿臺)에 각각 5백 명의 군사가 머물러 있고 남쪽의 군사인 포수(砲手) 5백 명도 이미 도착하였다. 도합 3천 5백 명이 그대 나라를 위하여 변경에 주둔하면서 대기하고 탕참(湯站)·봉황성(鳳凰城)·장전(長奠) 등지에도 3천 명의 군사가 머물러 있다. 지금은 장맛비가 자주 내리고 도로가 질척거리니 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불순(不順)한데 어떻게 군사를 움직이겠는가. 시원한 가을이 된 뒤에 진창이 모두 말라야만 비로소 크게 군사를 충동시켜 전진, 섬멸할 수 있다. 지금은 행군할 수가 없다. 만일 대군이 의주 및 그대 나라의 지방에 머물러 있으면서 길이 마르기를 기다린다면 그대 나라의 양식이 넉넉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 나라는 지금 우선 양식을 아껴서 대군의 용도(用度)를 준비하라.’ 하였습니다.

또 고하기를 ‘군사를 출동시켜 구원하라는 것은 이미 분명한 명이 있다. 지금은 진창이 말라가고 양식이 대략 준비되어 4∼5천명 병마의 식량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다. 겸하여 또 이곳의 대장(大將)이 흩어져 도망친 수만 명의 군사를 수합하였고, 전라·경상도 등에 있는 수만 명의 의병도 경성(京城)에 와서 적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때에 속히 정예병을 출동시켜 협동하여 섬멸할 일이 하루가 시급하다. 만일 가을이 깊어지기를 기다린다면 때를 놓쳐 미치지 못할 듯하니, 노야는 신속히 군사를 뽑아 보내주기 바란다.’ 하니, 답하기를 ‘군사를 출동시켜 구원하는 일은 이미 분명한 명이 있다. 우리 조정은 안팎의 구별이 없는데 어찌 처음과 끝의 다름이 있겠는가. 그대 나라의 절도사가 안정(安定)에 주재(駐在)하고 있다 하니, 작은 적군이 있거든 우선 막아 섬멸하도록 하고 큰 적군이 있다 할지라도 청천강(淸川江)과 대정강(大定江)의 두 강을 어떻게 날아서 건너겠는가. 지금은 천시와 지리가 이와 같으니 결코 행군할 수가 없다. 파발아(擺撥兒)를 많이 정하여 일로(一路)에 흩어놓아서 절도사가 주둔한 곳에까지 도달하게 하였다가 긴급하다는 소식이 오면 비가 오거나 길이 질더라도 즉시 달려가서 구원할 것이다. 그대 나라는 모름지기 군량과 말먹이를 많이 쌓아놓고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또 고하기를 ‘노야가 우리를 위함이 이처럼 친절하고 자세하니 이제 당연히 돌아가서 국왕에게 보고해야겠다. 그런데 장수는 누구이며 군사의 숫자는 얼마인가?’ 하니, 답하기를 ‘내가 그대 나라를 위하여 마음과 힘을 다하고 있다. 나에게 상사(上司)에 보고한 수본(手本)이 있는데 그대는 보아라.’ 하고는, 곧 수본을 내어 보였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답해준 말과 틀리지 않았는데 군사의 숫자는 실로 6천 명이었으며, 의주에 주둔하는 장수는 유격 장기공(張奇功)이고 구련성에 주둔하는 장수는 동양정(佟養正)이었습니다.

또 고하기를 ‘조 총병이 오랫동안 우리 나라에 주둔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과 흉적의 실정을 다 알고 있으므로 우리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조 총병이 대장되기를 바란다.’ 하니, 답하기를 ‘그대 나라도 노력하라. 전일 행군한 일에 대한 공과 죄가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서서히 상세하게 헤아려서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22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

    ○戶曹判書李誠中啓曰: "小臣承命, 與洪秀彦九連城告曰: ‘頃日史遊擊雖不幸陣亡, 祖總兵跑城廝殺, 老爺又駐江上爲聲援, 小國君臣恃以無恐, 兇賊不能出城西牧。 近日來, 兇賊似是探聽大軍捲還, 連日出城耀兵。 不於此時, 更發精銳四五千, 協心勦滅, 使賊勢鴟張, 則其爲毒害, 誠恐不足於小邦。 前日祖總兵回來江上, 將官軍馬盡數回來, 不審其由。’ 答曰: ‘非取回也, 乃換兵也。 一千兵留駐義州, 防護國王, 五百, 留駐九連城, 又於馬頭山 江沿臺, 各留五百單, 南兵砲手五百亦已來到。 合三千五百, 爲爾國留駐待邊, 湯站鳳凰城長奠等處, 亦留三千軍。 今則霖雨頻數, 道路泥濘, 天時地利不順, 何以行兵? 秋涼後水淖盡乾, 方可大發軍, 前進勦滅。 今則不可行軍。 若大軍留在義州及爾國地方, 待路乾則爾國糧料不敷。 爾國今且省了糧料, 留備大軍之用。’ 又告曰: ‘發兵救援, 已有明旨。 今則水淖向乾, 糧料略備, 足以支四五千兵馬之食。 兼且此處大將, 收合散亡數萬, 全羅慶尙等道義兵數萬, 亦來壓京城, 此時速發精銳, 協同殲滅, 一日爲急。 若待秋深, 恐後時無及, 願老爺快賜抄發。’ 答曰: ‘發兵救援, 已有明旨。 我天朝無有內外之別, 寧有終始之異乎? 爾國節度使駐在安定云, 如有小賊, 且令截殺, 如其大賊, 淸川 大定兩江, 豈能飛渡? 今則天時地利如此, 決不可行軍。 多定擺撥兒, 布在一路, 達于節度使留駐處, 如有緊急聲息來到, 雖天雨路泥, 卽當馳救。 爾國須多積糧草以待。’ 又告曰: ‘老爺爲小邦, 如此丁寧, 今當報國王。 第未知將官誰某, 軍數幾何敢稟。’ 答曰: ‘我爲爾國, 盡心力以爲之。 我有報上司手本, 爾可見也。’ 乃出示手本。 大槪與答辭不異, 而兵數則實六千, 留駐義州將官則張遊擊奇功, 其駐九連城者, 則佟養正也。 又告曰: ‘祖總兵久駐小邦, 備諳小邦形便, 兇賊情狀, 小國之人, 皆願得祖總兵爲大將。’ 答曰: ‘爾國努力爲之。’ 云。 前日行軍之事, 功罪未定, 徐當詳量爲之。"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22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