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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28권, 선조 25년 7월 1일 무오 11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윤근수가 중국 차관 황응양에게 일본의 침략이 정명가도에 있음을 설명하다

윤근수가 아뢰기를,

"신이 유격(遊擊) 등 세 관원을 가서 만나보고 ‘오늘은 이미 저물었고 또 자문도 미처 정서하지 못하였으므로 전하께서 내일 서로 만났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당연히 내일 아침에 국왕을 뵙고 즉시 발행(發行)하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대인은 꼭 평양으로 가겠는가?’고 물으니, 응양이 ‘처음엔 가짜 왜인이라고 여겼었는데, 지금 그들의 편지를 보니 곧 진짜 왜인이다. 내가 무엇하러 평양을 가겠는가. 당연히 바로 돌아가서 석야(石爺)의 뜻으로 진무(鎭撫)에게 말하여 즉시 병마를 출발시키도록 하겠다.’ 하였습니다. 신이 ‘대인의 이번 걸음에는 반드시 병부(兵部)의 문이(文移)053) 가 있을 터이니 보여달라.’ 하니, 응양이 ‘우리들이 이곳에 온 것은 수로(水路)·육로(陸路) 및 그대 나라의 병마를 보기 위함이다.’ 하였는데, 이는 가탁(假托)하는 말이었습니다. 이어 적을 막는 병기들을 가리키면서 ‘반드시 절강(浙江)의 낭선(筤筅)·당파(鏜鈀)·화포(火砲) 등의 군대가 온 다음이라야 이 적을 칠 수가 있다.’ 하고, 또 중국에 보내는 자문의 조어(措語)를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곧 의심을 깨끗이 풀었다는 뜻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삿갓과 도롱이를 찾아 주라."

하였다. 이때에 중국은 우리 나라가 일찍이 왜(倭)와 통신(通信)한 일이 있었음을 들었고, 또 절강 사람이 조선이 왜에게 당나귀를 바쳤다는 등의 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왜가 사가지고 간 것임을 알지 못하고 조공(朝貢) 받은 것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가 태도를 바꾸어 왜를 도울 것이라고 의심하던 중, 관백(關白) 평수길(平秀吉)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침공하였다는 말을 잇달아 듣고는 병부 상서 석성(石星)이 우리 나라의 사신에게 묻기를,

"그대 나라는 곧 천하의 강한 군사가 있는 곳인데, 어찌하여 열흘 안에 왕경(王京)이 갑자기 함락되었는가?"

하면서, 더욱 깊이 의심하였다. 이에 의사(義士) 세 사람을 【곧 서일관·황응양·하시 등 세 사람이다. 】 모집하여 본국의 사정을 와서 살폈고, 또 그림 그리는 사람과 임오년054) 중국 사신 황홍헌(黃弘憲)두목(頭目)055) 한 사람을 대동하여 와서 국왕의 진가(眞假)를 시험하고 살폈는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이 뜻을 전혀 몰랐다. 대동강변의 왜적이 보낸 편지를 보여주자, 응양 등이 보고는 짐짓 말하기를,

"이는 왜의 편지가 아니라, 거짓으로 만든 것이다."

하였다. 근수가 말하기를,

"이는 진실로 왜의 종이이며 편지에 쓴 말도 왜의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거짓으로 만들겠습니까."

하니, 응양이 말하기를,

"또 이와 비슷한 편지가 있는가?"

하였다. 이에 다시 한 통의 편지를 내어 보였는데, 이는 곧 이항복(李恒福)이 경성에서 가지고 온 것이었다. 항복이 도승지(都承旨)로 정원(政院)에 있을 때 왜적이 영남에 있으면서 편지를 보냈었다. 항복은, 중국이 우리 나라와 일본이 통신한 일을 반드시 들었을 것이므로 왜와 통모(通謀)하였다고 의심한다면, 본국의 심사(心事)를 똑똑히 밝힐 길이 없을 것이고 요동에 들어가고 싶어도 반드시 허락을 얻지 못할 것이며, 또 혹시 의외의 걱정이 있을까도 염려하였다. 그래서 항복이 가지고 왔던 것인데, 대체로 길을 빌어 중국을 침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응양이 보고는 말하기를,

"과연 왜의 편지이다."

하고, 드디어 소매에 넣고 가니, 과연 얼음이 녹듯 의심이 깨끗이 풀리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1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註 053]
    문이(文移) :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보내는 공문서.
  • [註 054]
    임오년 : 1582 선조 15년.
  • [註 055]
    두목(頭目) : 중국 사신(使臣)을 따라 무역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에 오던 북경(北京)의 상인(商人).

尹根壽啓曰: "臣往見游擊等三官, 告以: ‘今日已晩, 且咨文未及淨寫, 殿下欲於明日相會。’ 答曰: ‘然則當於明早, 拜國王, 便卽發行。’ 臣問: ‘大人當往平壤乎?’ 應陽曰: ‘初以爲假子, 今見其書, 便眞子。 我何爲往平壤? 當卽回還, 以石爺之意, 言於鎭撫, 卽發兵馬。’ 臣問曰: ‘大人此行, 必有兵部文移, 願見之。’ 應陽曰: ‘我等來此, 爲見水路、陸路及爾國兵馬。’ 云, 此亦假托之辭也。 因敎以禦敵器械曰: ‘必浙江之筤筅、鏜鈀、火炮等軍出來, 然後此賊方可擊。’ 云云。 又敎以送天朝咨文之措語。 乃是渙釋之意也。" 傳曰: "雨籠、簑衣覓給。" 蓋是時, 天朝聞我國嘗有與通信之事, 且因浙江人誤聞朝鮮貢驢等語, 不知其爲之買去, 而詐言其受貢也。 方疑我國之折而爲, 及聞關白平秀吉大起兵侵攻朝鮮, 以爲我國之嚮導。 繼聞都城陷沒之言, 兵部尙書石星問我國使臣曰: "爾國乃天下强兵處, 何以旬日之內, 王京遽陷乎?" 疑怪益深。 募義士三人, 【乃徐、黃、夏三人也。】 來視本國事情, 且帶畫史及壬午年天使黃弘憲頭目一人, 試察國王眞假。 我國則全不知此意也。 以大同江倭賊所投書示之, 應陽等見而佯言曰: "此非書, 乃假作也。" 根壽曰: "此實紙, 而書辭亦語也。 何故假爲?" 應陽曰: "又有類此書者乎?" 復出一紙示之, 乃李恒福自京城持來者也。 恒福以都承旨, 在政院時, 倭賊在嶺南送書。 恒福慮天朝必聞我國與日本通信事, 疑其與通謀, 則本國心事, 無路暴白, 雖欲入, 必不見許, 且或有意外之患。 故恒福取之以來, 蓋亦假道犯中國之語也。 應陽見之, 乃曰: "果書也。" 遂袖之以去, 果爲渙然永釋。


  • 【태백산사고본】 14책 28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1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