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27권, 선조 25년 6월 21일 기유 2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삼남의 감사가 수원에 진을 치고 조정의 지휘를 청하다
경상도 관찰사 김수(金睟), 전라도 관찰사 이광(李洸),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尹先覺) 등이 치계하였다.
"신들이 기병·보병과 6만여 인을 거느리고 이달 3일에 수원(水原)에 진을 쳤는데 양천(陽川) 북포(北浦)를 경유하여 군사를 건너려고 합니다. 앞뒤 양쪽에서 들이치는 계책을 조정에서 급속히 지휘해 주소서." 【수 등이 올 적에 행군(行軍)함에 규율이 없어 앞뒤가 서로 호응하지 못하였다. 선봉(先鋒) 백광언(白光彦)·이지시(李之詩) 등은 땔나무 하고 물긷는 왜적 10여 급(級)을 참하고서 더욱 왜적을 경시(輕視)하여 교만한 기색이 있었다. 수는 이미 누차 패전하여 수하에 군사도 없어 형세가 고단하고 기운이 꺾이었으며, 광은 본시 용렬하고 겁이 많아 계책을 세워 대응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조정에 명령을 청하여 진퇴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02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