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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0일 무신 4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조도사 홍세공이 뒤에 온 중국 군대의 기율이 엄하지 않다고 보고하다

조도사(調度使) 홍세공(洪世恭)이 치계하였다.

"광녕 유격(廣寧遊擊) 왕수관과 원임 참장(原任參將) 곽몽징 등은 병사 5백 6명, 말 7백 79필을 거느리고 이달 17일에 강을 건너왔고,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은 군사 1천 3백 19명, 말 1천 5백 29필을 거느리고 어제 계속하여 도착하였습니다. 전일의 대 참장(戴參將) 등은 호령이 엄중하고 분명하여 군사들이 소란을 피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었는데, 뒤에 온 장수들은 기율(紀律)이 엄중하지 않고 또 군마로 하여금 민가에 마구 뛰어들게 하니 백성들이 놀라 흩어져 성안이 온통 비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02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

○調度使洪世恭馳啓曰: "廣寧遊擊王守官原任參將郭夢徵等, 領兵五百六名, 馬七百七十九匹, 本月十七日越江, 副摠兵祖承訓, 領軍一千三百十九名, 馬一千五百二十九匹, 昨日繼到。 前日參將等, 號令嚴明, 軍無擾害矣。 後來之將, 紀律不嚴, 且令軍馬, 攔入民家, 人民駭散, 城中一空。"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502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