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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 5월 9일 무진 2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행 대사간 이헌국 등이 상이 자책하며 경연을 열고 성지를 안정할 것을 아뢰다

행 대사간(行大司諫) 이헌국(李憲國), 행 대사헌 김찬(金瓚), 집의 권협(權悏), 장령 정희번(鄭姬藩)·이유중(李有中), 지평 박동현(朴東賢)·이경기(李慶禥), 헌납 이정신(李廷臣), 정언 황붕(黃鵬)·윤방(尹昉) 등이 아뢰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국운이 극도로 비색하여 왜구가 쳐들어옴에 각 고을이 모두 소문만 듣고도 무너지는 판국입니다.

백만 생령(生靈)들의 희망은 오직 전하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는데 수당지계(垂堂之戒)013) 를 생각하지 않고 경솔히 파천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행궁(行宮)의 참담함과 형색의 처량함은 저 천보(天寶) 연간에 있었던 안녹산(安祿山)의 난리 때보다도 심합니다.

대가(大駕)가 파천한 지 겨우 3일만에 적병이 이미 경성에 들어와 조종조(祖宗朝)의 세업(世業)이 하루아침에 모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는 다 조정에 가득한 신하들이 전하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죄이니 몸을 만 조각으로 끊더라도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으나 천추 만세 뒤에 전하께서는 무슨 낯으로 구원(九原)에 계신 선왕들을 뵙겠습니까. 이미 지나간 일은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성상(聖上)께서 뜻을 인정하시어 인심을 얻는 것이 상책입니다. 성상의 뜻이 이미 정해졌고 인심이 이미 수습되면 아무리 위급한 처지에 있더라도 모두 구제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인심은 모두 전하의 한몸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가가 한번 떠남에 도성이 온통 비었으며 다시 송도(松都)를 떠남에 송도마저 텅텅 비었던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통렬하게 자책(自責)하시고 결연하게 마음을 고치시어 비록 혼란한 중이지만 자주 경연(經筵)에 나아가시어 날마다 묻고 들으심으로써 한마음의 진망(眞妄)과 천고의 시비에 대한 논란(論難)이 간책(簡策)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어찌 성지(聖志)가 안정하지 않고 인심이 화합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전후 좌우에 함께 있는 자는 모두 부녀자와 내시뿐일 것이니 듣는 말이라고는 모두 슬프고 괴로운 말일 것이요, 아뢰는 말이라고는 모두 일시적인 계책일 것이어서 근심 걱정 외에 다른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찌 전하의 심화(心火)가 가라앉을 날이 있겠으며 무너진 국운이 다시 회복될 시기가 있겠습니까.

아아, 당당한 서울을 죽음으로써 지켰어야 하는데 마치 헌신짝처럼 버린 소인배의 죄악이 이미 가득 찼는데도 그를 보호하기에 급급했으며, 묘당(廟堂)의 대신들은 오직 안일을 일삼아 형적(形迹)을 피할 뿐 다시 충의(忠義)를 발휘하여 떨쳐 일어날 생각은 아예 갖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기필코 지키겠다는 전하의 확고한 뜻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들이 가슴을 치며 통탄해 마지 않는 까닭입니다. 성명께서는 유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箚字)를 보니 충의를 알겠다.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천지 사이에 설 면목이 없다. 다만 한번 죽지 못한 것이 한이다. 다시 통렬히 자책하는 바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88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

  • [註 013]
    수당지계(垂堂之戒) : 위험에 놓여 있음을 경계한 말.

○行大司諫李憲國, 行大司憲金瓚, 執義權悏, 掌令鄭姬藩李有中, 持平朴東賢李慶禥, 獻納李廷臣, 正言黃鵬尹昉等: "伏以國運極否, 卉服充斥, 列邑皆望風瓦解。 百萬生靈之望, 只在殿下擧措之如何, 而不念垂堂之戒, 輕動去邠之計。 行宮之慘怛, 景色之悲涼, 有甚天寶奉天之日。 鑾輿播越, 纔過三日, 而賊兵已入京城矣, 我祖宗經營之業, 一朝盡爲灰燼。 此皆盈庭臣子, 不能回天之罪, 雖斬萬段, 少不足惜, 而殿下千秋萬歲之後, 亦將何顔, 見先王於九原哉? 已往之事, 噬臍無及。 而今日之策, 莫如定聖志而得人心。 聖志旣定, 人心旣收, 則雖在危急, 蔑不濟矣。 一國人心, 皆屬殿下之一身。 故龍馭一駕, 都城盡空, 再駕松都, 松都亦虛。 伏願殿下, 痛自刻責, 惕然改圖, 雖在搶攘之中, 頻御經筵, 日咨吁咈, 而一心之眞妄, 千古之是非, 暸然於論難簡策之中。 則豈有聖志不定, 人心難合之憂哉? 不然, 左右前後之所與居者, 只是婦寺而已, 則所聞者, 皆悲苦之語, 所告者, 皆姑息之計, 向憂懼, 無復他念。 殿下之心火, 寧有銷弭之日, 覆隍之運, 豈有重恢之期乎? 嗚呼! 堂堂京國, 義在效死, 棄之如弊屣, 孤雛小竪, 罪惡已盈, 護之如不及, 至於廟堂籌畫, 惟以偸靡爲事, 形跡是避, 無復忠義激勸, 振發進取之意。 何莫非殿下守志未固之致也。 此臣等之所以叩心搥胸, 而不知止者也。 伏願聖明留神焉。" 答曰: "省箚具見忠義。 國事至此, 無顔面自立於天地間? 只欠一死爾。 當更加痛責。"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88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