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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 5월 6일 을축 4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황해 감사 조인득 등을 인견하고 군량 이송, 황해도의 인심 등을 논의하다

상이 황해 감사 조인득(趙仁得), 동부승지 이괵(李𥕏), 가주서 박정현(朴鼎賢), 검열 김선여(金善餘)·김의원(金義元), 대사간 이헌국(李憲國), 대사헌 김찬(金瓚), 부제학 홍인상(洪麟祥) 등의 청대(請對)를 받아 인견하였다. 인득이 아뢰기를,

"소신의 생각에는, 대가(大駕)가 이미 경성을 떠났으니 평양에 머물러 계시는 것이 당연하나 지금 행차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인심이 뒤숭숭할 뿐 아니라 백관(百官)과 군마(軍馬)들이 굶주려 뒤쳐져 있습니다. 경성 이하는 왜놈들이 길을 자세히 알고 있지만 서로(西路)는 어찌 그렇게 빨리 올 수 있겠습니까. 평양은 성곽이 험고하니 지킬 만합니다. 대가가 평양에 도착하거든 궁속들과 하인들을 단속하여 추호도 범하는 것이 없게 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그 은택을 입도록 하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어제 저녁에 신의 후방을 지키던 병사 1백여 명 중에서 절반을 제하고 나머지는 신할(申硈) 등에게로 보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정승이 인솔할 것이니 경은 중화(中和)로 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괵(𥕏)이 아뢰기를,

"만약 인득(仁得)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이미 와해되었을 것입니다. 외인(外人)은 병조 판서가 다스리고 별감(別監) 무리는 승전 내관(承傳內官)이 다스리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화(中和)에 이르거든 효유하는 것이 좋겠다. 범하는 자가 있거든 내외를 막론하고 다스리라."

하였다. 상이 또 인득에게 이르기를,

"경이 이 도(道)를 힘써 다스린다면 중흥(中興)의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또 이르기를,

"평양은 양식이 떨어질 걱정은 없는가?"

하였다. 인득이 아뢰기를,

"이 도에도 군량(軍糧)이 있어 이미 운송하였습니다."

하고, 헌국이 아뢰기를,

"황해도는 인심이 견고하지 못하니 대신 한 사람을 남겨 두어 감사와 함께 진압하게 하소서. 인득은 순찰사(巡察使)를 겸할 수 있습니다."

하고, 찬(瓚)이 아뢰기를,

"임진강(臨津江)이 매우 가까우니 반드시 공어(拱禦)해야 됩니다."

하고, 인상(麟祥)은 아뢰기를,

"대신 최흥원(崔興源)윤두수가 다 이곳 감사(監司)를 지내면서 백성의 신임을 얻었으니 진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에게 물어서 조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7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

○上引見黃海監司趙仁得。 同副承旨李𥕏, 假注書朴鼎賢, 檢閱金善餘金義元, 大司諫李憲國, 大司憲金瓚, 副提學洪麟祥等, 請對俱入侍。 仁得曰: "小臣之意以爲, 大駕旣離京城, 則當留駐平壤, 而今則行色甚疾, 人心搖動, 百官及軍馬, 皆飢困落後。 京城以下, 則固詳知道路矣, 如西路, 則安能速進乎? 平壤城郭險固, 可以守城。 大駕到平壤後, 則令宮屬及下人, 秋毫勿犯, 使民蒙澤, 則幸矣。 昨夕, 臣之捍後兵百餘人, 除其半, 送于申硈等處矣。" 上曰: "政丞宜率, 卿至中和可也。" 𥕏曰: "若無仁得, 此地瓦解。 外人則兵判治之, 如別監輩, 則使承傳內官治之。" 上曰: "到中和曉論可也。 有犯, 則勿論內外, 治之。" 上謂仁得曰: "卿勉之于此道, 則中興功業, 亦可立矣。" 上曰: "平壤無絶糧之憂乎?" 仁得曰: "此道, 亦有軍糧, 已爲運送矣。" 憲國曰: "黃海道, 人心不固, 留大臣一人, 與監司留鎭, 仁得亦可兼巡察使矣。" 曰: "臨津迫近, 必有拱禦可也。" 麟祥曰: "大臣崔興源尹斗壽, 皆經此道監司, 而有遺愛, 可以鎭定。" 上曰: "問于大臣, 處之。"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7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