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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6권, 선조 25년 5월 3일 임술 9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경성이 함락되자 도검찰사 이양원 등이 도망하다

적이 경성을 함락시키니 도검찰사(都檢察使) 이양원, 도원수 김명원, 부원수 신각(申恪)이 모두 달아났다.

이에 앞서 적들이 충주(忠州)에 도착하여 정예병을 아군처럼 꾸며 경성(京城)으로 잠입시켰다. 왕의 파천이 이미 결정되었음을 염탐한 뒤에 드디어 두 갈래로 나눠 진격하였으니, 일군(一軍)은 양지(陽智)·용인(龍仁)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오고 나머지 일군은 여주(驪州)·이천(利川)을 거쳐 용진(龍津)으로 들어왔다. 적의 기병(騎兵) 두어 명이 한강 남쪽 언덕에 도착하여 장난삼아 헤엄쳐 건너는 시늉을 하자 우리의 장수들은 얼굴빛을 잃고 부하들을 시켜 말에 안장을 얹도록 명하니 군사들이 다 붕괴하였다. 이양원 등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고, 김명원·신각 등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하였으므로 경성이 텅 비게 되었다. 적이 흥인문(興仁門) 밖에 이르러서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시설이 모두 철거된 것을 보고 의심쩍어 선뜻 들어오지 못하다가 먼저 십수 명의 군사를 뽑아 입성시킨 뒤 수십 번을 탐지하고 종루(鍾樓)에까지 이르러 군병 한 사람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 입성하였는데, 발들이 죄다 부르터서 걸음을 겨우 옮기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이때 궁궐은 모두 불탔으므로 왜적 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宗廟)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경동(驚動)하여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었다. 그래서 수가(秀家)는 할 수 없이 남별궁(南別宮)으로 옮겼다. 이것은 한 고조(漢高祖)의 영혼이 왕망(王莾)에게 위엄을 보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6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풍속-풍속(風俗)

○賊陷京城, 都檢察使李陽元, 都元帥金命元, 副元帥申恪, 皆走。 先是, 賊至忠州, 潛遣銳卒, 扮作我軍貌樣, 入京城。 偵知西幸已決, 遂分道進兵, 一軍由陽智龍仁, 趨漢江, 一軍由驪州利川, 趨龍津。 賊數騎至漢江南岸, 戲作浮渡之狀, 諸將色變, 命左右鞍其馬, 衆遂潰。 李陽元等棄城走, 金命元申恪等各自逃散, 京城遂空。 賊到興仁門外, 見開門撤備, 疑不敢入, 先遣兵數十人, 入城探視數十番, 至鍾樓, 明知其無一箇軍兵, 然後乃入, 其足盡繭, 十寸僅步云矣。 時, 宮闕盡爲焚燒, 大將平秀家, 率其衆, 入處宗廟, 每夜有神兵擊之, 賊輒驚駭, 以劍相擊殺, 多有喪明者, 亦多死者。 秀家不得已, 移屯南別宮。 此殆與 高廟之靈, 示威於王莾無異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6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