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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5권, 선조 24년 10월 24일 병진 1번째기사 1591년 명 만력(萬曆) 19년

일본이 명을 정벌하기 위해 길을 내달라고 요구한 일로 주청사 한응인 등을 명나라에 보내다

주청사(奏請使) 한응인(韓應寅), 서장관 신경진(辛慶晉), 질정관 오억령(吳億齡) 등이 출발하였다. 이보다 먼저 일본국 사신 현소(玄蘇) 등이 와서 ‘명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조선에서 길을 인도해 달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상이 조정 신하들과 의논하여 성절사(聖節使) 김응남(金應南)이 갈 적에 왜적이 중국을 침범할 뜻을 갖고 있음을 예부(禮部)에 이자(移咨)하였는데, 다만 표류한 사람이 와서 전하는 말을 증거로 삼았다고 했고 통신사(通信使)가 왕래하였다는 말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노(倭奴)들이 중국을 침범하겠다는 말을 유구(琉球)에도 퍼뜨리고 또 ‘조선도 이미 굴복하여 3백 인이 항복해 왔는데 지금 배를 만들어 그들을 향도(嚮導)로 삼을 것이다.’ 하였다. 유구에서 그 말을 중국에 보고한 까닭에 중국의 병부(兵部)가 요동(遼東)을 시켜 우리 나라에 이자하여 그 사실 여부를 물어 왔으므로 이번에 따로 주청사를 보내어 그간의 곡절을 해명하려는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5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1면
  • 【분류】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외교-유구(琉球)

○丙辰/奏請使韓應寅, 書狀官辛慶晋, 質正官吳億齡等發行。 先是日本國使臣玄蘇等之來也, 言: "欲犯大明, 使我國指路。" 上議于廷臣, 聖節使金應南之去也, 以倭賊欲犯上國之意, 移咨于禮部, 只據漂流人來傳之言爲證, 而通信使往來之言, 初不及之也。 倭奴等以犯上國之言, 亦布於琉球, 且言: "朝鮮亦已屈伏, 三百人來降, 方造船爲嚮道。" 云云。 琉球以其言聞于上國, 故兵部使遼東移咨于我國, 問其然否, 以此別遣陳奏使, 暴白其曲折也。


  • 【태백산사고본】 12책 25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1면
  • 【분류】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외교-유구(琉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