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 24권, 선조 23년 1월 1일 갑진 1번째기사
1590년 명 만력(萬曆) 18년
정여립의 옥사를 마치고 공신들을 포장하라는 전교
전교하였다.
"이번 역적의 변고001) 는 종전에 없던 일인데 그 거사(擧事)가 두어 달 밖에 안 남았었으니, 만약 박충간(朴忠侃) 등이 협모(協謀)하여 체포하고 의에 의거하여 토적(討賊)하지 않았던들 종묘 사직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것이 신하된 자의 직분이라고는 하지만 진실로 평범하게 포상할 수는 없다. 그 충성을 포상하고 그 공을 보상하는 식전(式典)을 거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조종조의 전례에 의해 원훈(元勳) 박충간·이축(李軸)·한응인(韓應寅)·민인백(閔仁伯)·이수(李綏)·강응기(姜應棋)는 우선 공신으로 삼으라. 대신들과 상의하여 공이 있는 사람을 참작하여 녹훈(錄勳)하되 대신 이하 추관(推官)도 아울러 녹훈할 것으로 의정부에 내리라."
- 【태백산사고본】 12책 2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72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註 001]이번 역적의 변고 : 선조 22년(1589)에 적발된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말함. 재령 군수(載寧郡守)로 있던 박충간은 모반을 알린 공으로 평난 일등 공신에 형조 참판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