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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3권, 선조 22년 7월 4일 기유 1번째기사 1589년 명 만력(萬曆) 17년

고려 왕씨의 주사자에 대하여 의논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왕씨(王氏)의 주사자(主祀者)에 대해 대신에게 문의하여 낱낱이 서계(書啓)하라."

하였다. 영상(領相)이 의논드리기를,

"대수(代數)가 가깝고 자손이 많은 자로 정하여 차례로 의망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고, 좌상은 의논드리기를,

"왕여(王礪)가 만약 효은 태자(孝隱太子)의 종손(宗孫)이면 의당 높게 의망(擬望)해야 하고 왕희걸(王希傑) 역시 당시에 명망이 있었던 사람이므로 그 자손을 의당 높게 의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해조(該曹)가 참작할 일입니다."

하고, 우상은 의논드리기를,

"신 등은 그 시말(始末)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왕여가 비록 종손이라 하더라도 만약 향손(鄕孫)이면 높게 의망할 수 없고, 왕휘(王煇)가 만약 명성이 있었다면 높게 의망하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고, 판부사(判府事) 김모(金某)는 의논드리기를,

"이는 해조(該曹)가 참작할 일이지만, 만약 부득이한 경우라면 그중에 명성이 있는 사람으로 정해야 합니다."

하였다. 답하기를,

"영상의 말이 옳다. 여조(麗祖)의 향사(享祀)가 중간에 끊겨 비류(非類)에게 향사된지 지금까지 49년이니, 이는 큰 변괴이다. 왕훈(王勳) 등이 억울함을 호소하여 다시 바로잡았기 때문에 여조의 향사가 이제 다시 이어져 흥복(興復)의 공로를 이루게 되었으니, 그 조상의 기뻐함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 5명 중에 3명은 없고 왕훈(王勳)이 수위(首位)인 데다가 자손까지 많으니 그가 가장 적합하나 나이가 늙었고, 왕휘(王煇)는 그 자손이 미약하다. 5명 중에 누가 의거(義擧)에 앞장섰던가? 이를 알고 싶으니, 예조에 이르라."

하니, 예조가 회계하기를,

"상언(上言)하여 앞장선 사람을 알 길이 없습니다. 왕훈(王勳) 등을 불러 자세히 캐물은 뒤에 서계(書啓)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어 비망기를 내려 전교하기를,

"누가 합당한가를 다시 대신들에게 문의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3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58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가족-가족(家族) /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己酉/傳于政院曰: "王氏主祀, 問大臣, 一一書啓。" 領相議: "代數之近而子孫之多者爲之, 次第擬望爲當。" 左相議: "王礪若是孝隱宗孫, 則當爲高擬, 而王希傑是一時有名望者, 其子孫亦當高擬。 然只在該曹斟酌中。" 右相議: "臣等不知首末。 但王礪雖曰宗孫, 而若果是鄕孫, 則不可高擬, 王煒若有名稱, 則高擬無妨。" 判府事議: "此事在該曹斟酌, 如不得已, 則其中有名稱者爲當。" 答曰: "領相之言是矣。 麗祖之祀中絶, 享于非類, 于今四十九年, 此大變也。 王勳等訴冤, 釐正麗祖之祀, 至是而復續有興復之功, 其祖之喜願必矣。 當就此五人中三乏, 爲王勳是爲首而其子多, 此人最合而年老, 王煒其子微。 大槪五人中, 某人首倡擧義乎? 欲知之, 言于禮曹。" 禮曹回啓曰: "上言首倡之人, 無由得知。 招王勳等, 盤問書啓云云。" 以備忘記傳曰:

誰爲合當事, 更問于大臣。


  • 【태백산사고본】 12책 23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58면
  • 【분류】
    사법-재판(裁判) / 가족-가족(家族) /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