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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2권, 선조 21년 7월 6일 정사 3번째기사 1588년 명 만력(萬曆) 16년

이조가 강상의 변괴가 일어난 평양을 격하시키는 일을 그만두도록 청하니 다시 상고하도록 하다

이조가 아뢰기를,

"전교하신 것에 대하여 아뢰겠습니다. 평양(平壤)은 중국과 접경(接境)하여 있는데, 풍류(風流)와 명승이 소수(蘇州)나 항주(抗州)에 짝할 만하여 천하에 알려진 지 오래이며, 더욱이 기자(箕子)의 구주 유풍(九疇遺風)이 남아 있어 전후(前後)의 중국 사신이 흠앙 탄복하고 모든 편장(篇章)에 전파되어 온 세상에 전하였으니, 중국 사람들이 평양을 마음 속에 그리며 한번 구경하고자 하는 일이 어찌 평범하겠습니까.

지금 만약 전례에 의거하여 격하시켰다가 조만간 중국 사신이 나와서 그 격하 이유를 알게 된다면, 우리 나라의 윤리가 패상(敗傷)한 실상을 중국에 알게 하는 것이니 이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부관(府官) 및 감사(監司)를 파직시켜 법의 시행이 엄중한 편이니, 그대로 두어 후일의 미관(美觀)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강상(綱常)의 변괴로 자식이 그 아비를 시해하여 구주(九疇)가 폐지되고 인륜이 타락됨으로써 오래 된 나라의 큰 도시가 금수(禽獸)의 구역으로 변하여 팔조(八條)의 유풍이 멀어졌는데, 어찌 풍류와 명승을 따질 나위가 있겠는가. 일찍이 반적(叛賊)의 야기로 말미암아 그 성(城)을 강등시켜 수치스럽게 하는 것은 인심을 격려하기 위한 일이다. 오늘 격하시켰다가 내일 중국 사신이 나오면 이전대로 복구시키는 일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만약 계수관(界首官)078) 이라 하여 격하시키기 어렵다고 한다면 혹 그럴 듯한 말이겠지만, 그저 풍류 명승을 내세워서 그대로 두어 미관의 자료로 삼자고 한다면 나는 천하에 그러한 사리가 없다고 본다. 아무튼 이전 계수관이 이같은 변괴를 만났을 때 처리하던 전례를 다시 상고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54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

  • [註 078]
    계수관(界首官) : 서울에서 각도(刻道)에 이르는 연변(沿邊) 도계(道界)에 위치한 고을. 관찰사(觀察使)가 본도(本道)에 부임할 적에는 여기에 해당하는 고을의 수령이 으레 마중을 나온다. 《속대전(續大典)》 예전(禮典) 제사(祭祀).

○吏曹啓曰: "傳敎云云。 平壤一區, 境接中華, 風流勝迹, 侔擬〔杭〕 , 天下聞名久矣, 況有箕子八疇之遺風, 前後皇華, 欽仰嘆服, 播諸篇章, 傳之四海, 令華人遐想追慕, 思欲一見, 豈偶然哉? 今若依例降號, 而早晩天使出來, 問知其降號之由, 則是以小邦傷敗彝倫之狀, 使聞於上國, 非細故也。 旣罷府官, 且及監司, 施法非不重矣, 今姑仍舊, 不墜後日之觀美, 何如?" 傳曰: "變起綱常, 子弑其父, 箕疇不敍, 彝倫攸斁, 舊邦大都, 今變爲禽獸之區, 八條之風遠矣, 安問風流勝槪。 曾有叛賊, 缺其城以恥之, 所以勵人心也。 今日降號, 明日華使出來, 其何有難於復其舊也? 倘曰界首之官, 難於降號云爾, 則猶或可矣, 徒以風流勝槪, 爲之言曰: ‘請姑仍舊, 以爲觀美之資。’ 云, 則予恐天下事理不如是。 其更考前昔界首官, 遇如此之變, 曾所以處之之例。"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54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