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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20권, 선조 19년 12월 2일 임술 1번째기사 1586년 명 만력(萬曆) 14년

승지·주서·한림에 글제를 내리고 옥하관에 불을 낸 일로 상주할 것을 정원에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내가 문견 사건(聞見事件)을 보니 사신 일행이 시시(柴市)006) 를 지나갔다고 했다. 내가 감동이 되어 글제를 명한다. 모든 승지와 주서(注書)·한림(翰林)은 마땅히 칠언(七言) 근체시(近體詩) 각 2수(首) 씩을 지어 올리라. 글제는 과시시(過柴市)로 하고 운(韻)과 제한은 각자의 뜻대로 하라. 또 이 글제를 옥당(玉堂)에 보내 그들도 지어 바치게 하라. 그리고 예부(禮部)의 제본(題本)을 보니 ‘해국(該國)의 배신(陪臣)·통사(通事) 등이 일을 태만히 하여 불을 내었지만, 생각건대 원방 사람이므로 응당 그 잘못을 조사하는 일을 면해 준다.’ 하였으니, 이는 징치하려 하였으나 그럴 수 없었다는 뜻이다. 상국(上國)의 2백 년이나 된 관사(館舍)를 하방(下邦) 사신이 검속하지 않아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었으니, 어찌 이것이 사소한 사건인가. 사신들의 삼가지 않은 것은 누구의 허물인가. 예부에 이자(移咨)한들 한 조각 휴지로 돌아갈 듯하니 중국 조정이 어떻게 이를 알겠는가. 내 생각에는 상주(上奏)하여 사죄(謝罪)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으니,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대신이 의논드리기를,

"상교(上敎)가 참으로 합당하니, 진사사(陳謝使)를 보내도록 명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29면
  • 【분류】
    외교-명(明)

  • [註 006]
    시시(柴市) : 중국 북평(北平)의 북쪽에 위치한 거리로 이곳은 특히 송(宋)나라 시대의 재상인 문천상(文天祥)이 순국(殉國)한 것으로 유명하며 조선 사행이 흔히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들렀다. 이곳은 명(明)나라 초에 들어와 문승상사(文丞相祠)를 건립했기 때문에 더욱 명소(名所)가 되었다.

○壬戌/傳于政院曰: "予見聞見事件, 一行歷柴市云。 予感而命題。 諸承旨ㆍ注書ㆍ翰林, 宜作七言近體詩, 各二首以進。 題則過柴市, 韻與限則各隨意。 且此題, 送于玉堂, 亦使製進。 且見禮部題本, 則有曰: ‘該國陪臣通事人等, 踈怠失火, 念係遠人, 應免査究。’ 云。 是欲治而不得之意也。 上國二百年館舍, 以下邦使臣, 不自愼檢, 一朝焚燬, 詎是細事? 使臣之不謹, 誰之過也? 移咨禮部, 恐歸一幅休紙, 朝廷何由知之? 予意上奏謝罪爲穩, 議啓。" 大臣議: "上敎允當, 命遣陳謝使。"


  • 【태백산사고본】 10책 20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29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