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강목》을 강하고 황정욱이 중국의 상황과 학제 등을 아뢰다
상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갔다. 주자(朱子)의 《통감강목》 중 ‘여름 4월 그믐’에서부터 ‘의릉(義陵)021) 에 장사지내다.’ 한 데까지 진강하였다. 황정욱(黃廷彧)이【성품이 강퍅하고 도량이 좁아 명망이 드러나지 않았다. 재물을 얻는 일을 당하면 구차한 것도 잊어버렸고 집에서의 행실도 말할 만한 것이 없었다. 요행히 정시(庭試)에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정옥(頂玉)022) 의 영예를 얻기도 하였으며 중국에 사신으로 가 칙서(勅書)를 받들고 와서는 아경(亞卿)의 은총을 입었다. 조정에 벼슬한 이래 칭송할 만한 덕이 하나 없고, 기록할 만한 공도 하나 없으면서 여러 차례나 높은 품계에 초탁(超擢)되었으니 모두 외람되게 지나친 은혜를 받은 것이다. 】 아뢰기를,
"소신은 지난해 부경(赴京)했을 때 《회전(會典)》023) 이 가을 경에 완료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사은사(謝恩使)의 서장을 보면, 예부 상서(禮部尙書)가 ‘겨울쯤에는 완료될 것이다.’ 하였다니 이는 전에 신이 부경해서 들은 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신이 부경했을 때 차관(差官)에게 싸서 보내 주겠다는 명을 받았는데, 신의 뜻에는 차관을 감생(監生)으로 보낸다 할지라도 중국 사신처럼 대접해야 하니 그 폐단이 반드시 작지 않을 것이라 여겨 그때에 즉시 우리 나라 사신 편에 부쳐달라고 진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차관을 특별히 보내준다면 은혜와 믿음이 더욱 뚜렷할 것 같아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회전》만 명백해진다면 차관(差官)이 오든 안 오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대저 지금 칙서를 특별히 내려 숨김없이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은 다 그대의 아름다운 덕택인데 아직 내가 보답을 못했다."
하였다. 황정욱이 일어나 절하면서 사례하기를,
"이는 실로 성상의 성효의 소치인 것이니, 신이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묻기를,
"중국의 제도 가운데 우리 나라와 다른 것이 있는가?"
하니, 아뢰기를,
"학제(學制)가 달랐습니다. 우리 나라는 유생(儒生)들을 모두 반궁(泮宮)에 모이게 하여 학업을 닦게 하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아서 단지 약간의 유생들만이 학궁(學宮)에 거처하고 있으나 그들도 진유(眞儒)는 아니었습니다. 신이 삼가 주자(朱子)가 향교(鄕校)에 대해 논한 글024) 을 보고 비로소 천하의 유생들을 모두 서울에 모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제도가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공사(貢士)가 왕래할 때는 모두 역말을 주고 예의(禮儀)와 공대가 환하게 갖추어져 있어 유생을 대접함이 융성함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유관(儒冠)을 중국과 같게 할 수가 있겠는가?"
하니, 답하기를,
"관을 만드는 물건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것과 같게 만드는 것은 형세상 어려울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이 우리 나라를 대접하는 것이 유구(琉球)에 비교하여 어떠하던가?"
하니, 답하기를,
"예부의 관원이 신들을 대접할 때는 오직 위의를 잃을까 걱정하면서도 유구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 때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하고, 백유양(白惟讓)이 아뢰기를,
"외국기(外國記)를 보면 우리 나라가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황정욱에게 이르기를,
"경이 허 각로(許閣老)를 보았는가?"
하니, 아뢰기를,
"조회하는 반열(班列)에 있는 것을 멀리서 보았는데, 용모와 위의가 노쇠하여 지난날의 풍채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하였다. 【허국(許國)·위시량(魏時亮)은 일찍이 중국 사신으로 우리 나라에 온 일이 있기 때문에 물은 것으로 대개 그들의 어짊을 사모한 것이다. 】 상이 이르기를,
"내가 듣건대 허국은 논박당했고 위시량도 찬출되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어짊으로도 조정에서 편안히 있지 못하니 중국의 일도 가히 알 만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1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외교-명(明) / 외교-유구(琉球) / 인물(人物)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21]의릉(義陵) : 한 애제(漢哀帝)의 능.
- [註 022]
정옥(頂玉) : 높은 관직.- [註 023]
《회전(會典)》 : 《대명회전(大明會典)》.- [註 024]
주자(朱子)가 향교(鄕校)에 대해 논한 글 : 주자의 학교공거사의(學校貢擧私議)를 가리킴.○上御宣政殿, 進講朱子 《通鑑綱目》, 自夏四月晦, 至葬義陵。 黃廷彧 【性愎量挾, 名望未著。 臨得忘苟, 家行無稱。 幸魁庭試, 旣忝頂玉之榮, 及奉天勑乂, 叨亞卿之寵。 立朝以來, 無一德可稱, 無一績可紀, 而屢超崇班, 皆濫恩也。】 啓曰: "小臣上年赴京師時, 聞《會典》秋間完了, 今見謝恩使書狀, 則禮部尙書言冬間當爲完了云, 與臣赴京時所聞, 不甚相遠矣。 臣赴京時承差官齎送之命, 臣意妄以爲差官雖以監生送, 待如天使, 其弊必爲不貲矣, 其時卽欲陳達順付之意。 更思之, 差官將送, 則恩信似爲尤著, 故不敢焉。" 上曰: "《會典》明白, 則差官之來不來, 何關乎? 大抵今者聖勑特下, 暴白無隱者, 惟乃之休, 迨予未報。" 廷彧起拜辭謝曰: "此實聖上誠孝之格, 臣何功焉?" 上曰: "中原制度, 與我國有異者乎?" 對曰: "學制異矣。 我國則使儒生皆聚於泮宮, 以之講學修業, 而中國則不然, 只使若干儒生居學, 而亦非眞儒也。 臣竊見朱子議鄕校書, 始知天下之儒, 不可皆聚於國, 故其制如是矣。 但貢生往來, 皆給乘馬, 禮儀供億, 煥然俱備, 可見待儒之盛也。" 上曰: "我國儒冠, 可使與中國同歟?" 對曰: "制冠之物, 彼此殊宜, 比而同之, 勢似難矣。" 上曰: "中國之待我國, 視琉球如何?" 對曰: "禮部之官, 待臣等之時, 猶恐失儀, 宴琉球時, 則不往矣。" 白惟讓曰: "見《外國記》, 我國居首矣。" 上語黃廷彧曰: "卿見許閣老乎?" 對曰: "於朝班望見, 則容儀衰老, 殊非昔日之風采也。" 【許國、魏時亮, 曾以華使來此, 故問之。 蓋慕其賢也。】 上曰: "予聞許國被駁, 魏時亮亦見黜云。 如二人之賢, 不得安於朝廷之上, 中原之事, 亦可知矣。"
-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1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외교-명(明) / 외교-유구(琉球) / 인물(人物)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