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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9권, 선조 18년 2월 20일 신유 1번째기사 1585년 명 만력(萬曆) 13년

석강에 《강목》을 강하고 김우옹이 인재 등용, 호남의 기근을 아뢰며 사직을 청하다

석강(夕講)에서 《강목(綱目)》 애제기(哀帝紀)의 ‘이심(李尋)001) 이 여알(女謁)과 사신(邪臣)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하였다.’ 한 부분에 이르러 김우옹이 아뢰기를,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사특한 말은 단절시켜 듣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여알의 간청을 총명한 임금의 경우에는 쉽게 단절할 수 있지만, 만약 공론을 빙자하여 사특한 방법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는 아무리 총명한 임금이라도 간혹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속임을 당하기 쉬운 것이니, 이것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하였다. 또 ‘마땅히 양(陽)을 높이고 음(陰)을 눌러야 한다.’ 한 데에 이르러, 아뢰기를,

"군자는 양의 무리이고 소인은 음의 무리인데, 양을 높이고 음을 누르는 것은 천도(天道)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막고 선을 드높여 하늘의 아름다운 명(命)을 따른다.’ 한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국가가 편안히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만약 선악을 잘 분변하지 못하고 오직 포옹하기 만을 힘써 일체를 모두 거두어 함께 기르려 한다면, 목전에서는 무사한 것 같지만 뒷날의 무궁한 환난을 길러내어 그 화(禍)가 매우 클 것입니다."

하였다. 또 ‘근본이 강하면 정신(精神)으로 복종시킬 수 있다.’ 한 부분에 이르러, 아뢰기를,

"인재(人才)는 국가의 원기(元氣)입니다. 조정에 어진 인재가 많이 모여 있으면, 그 정신이 절로 사방을 풍동(風動)시켜 오랑캐가 스스로 복종해 오고 역란(逆亂)도 저절로 그칠 것입니다. 예컨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모반(謀叛)하면서 급암(汲黯)의 강직함을 꺼려한 것002) 과 같은 경우입니다. 나라의 강약은 오직 인재의 성쇠에 달려 있으니,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또 가양(賈讓)이 황하(黃河)를 다스리는 계책을 말한 부분에 이르러, 아뢰기를,

"가양이 하수를 다스리는 데 대해 말한 것이 참으로 옳습니다. 예컨대 ‘물을 잘 다스리는 자는 그 물을 터서 잘 흐르게 인도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자는 백성들의 기를 드높여 소신을 말하게 한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제일 가는 방법입니다. 대저 물의 흐름이 막히면 반드시 많은 사람이 상하게 되고 정론(正論)이 억눌리면 인심이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언로(言路)를 활짝 열어 청의(淸議)가 항상 시행되게 해야 합니다. 가장 옳지 못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기를 꺼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강을 마친 뒤에 나아가 아뢰기를,

"상께서 ‘존심 양성(存心養性)’003) 이란 네 글자를 써서 옥당(玉堂)에 내리고 신들로 하여금 글을 지어 바치게 하셨는데, 이는 매우 훌륭한 뜻이십니다. 그러나 신들은 본래 학식이 없으니, 어떻게 그 의의를 발휘하여 상의 뜻을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는 본래 두 가지 일이 아닙니다. 양성(養性)하는 방법은 마음을 보존하는 데 있고 존심(存心)하는 요점은 경(敬)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경을 지키는 방법은 선유(先儒)들의 의논에 자세한데,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 가장 잘 밝혀 놓았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항상 이 잠(箴)을 좌우(座右)에 두고 유념하신다면 이것이 곧 존심 양성하는 요법이 될 것입니다."

하고, 또,

"신이 호남(湖南)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서 보니, 본도의 기황(飢荒)이 대개는 비슷했습니다만, 우도(右道)의 바닷가 7∼8 고을이 더욱 심했습니다. 겨울 사이에 이미 백성 가운데 굶어 죽은 사람들이 있으니, 봄이 되면 반드시 사정이 매우 급해질 것입니다. 관에는 저축된 곡식이 없어 진구(賑求)할 계책을 마련할 수 없으니, 매우 염려됩니다. 대저 하삼도(下三道)004) 는 바로 국가의 근본인데, 민력은 이미 고갈되었고 징발 또한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가에서는 바야흐로 북방(北方)을 근심하여 근본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이 어찌 실책이 아니겠습니까. 모름지기 항상 근본을 염두에 두셔야 될 것입니다."

하였다. 대사헌(大司憲) 정탁(鄭琢)이 아뢰기를,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덕여(權德輿)는 병이 심해 일을 보지 못할 정도인데도 감히 병이 있음을 고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니, 우옹이 아뢰기를,

"신이 직접 만나보았는데 중풍(中風)으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여 장차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나 죄를 얻어 쫓겨났기 때문에 감히 병이 있음을 아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임금이 한때 우연한 일로 내보낸 것인데 어찌 그리 마음에 두는가. 이처럼 병이 중하다면 체직하라."

하니, 우옹이 또 아뢰기를,

"소신은 매우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고 본래 학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글을 읽어 달리 배운 바는 없으되 오직 임금을 섬김에는 아버지를 섬기듯 해야 한다는 것만을 알 뿐입니다. 무릇 가슴에 품은 것이 있는데도 군부에게 다 아뢰지 않으면 큰 죄악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므로 전일 망령된 소견을 상께 아뢰어 시휘(時諱)를 저촉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죄책을 받아야 할 텐데 죄를 주지 않고 도리어 수용(收用)하시어 외람되이 경연의 자리에까지 참여하게 하였으니 성주(聖主)의 천지 부모와 같은 은혜가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소신의 분수에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병이 깊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요, 학술이 소루하고 몽매한데다 또 병 때문에 독서를 폐지한 것이 둘입니다. 더욱이 종적(蹤跡)이 고단하여 사세(事勢)가 불편한데도 고루하고 막힌 견해를 바꾸지 못하고 묵묵히 참아가며 구차하게 용납되기 위해 시세와 함께 저앙(低昻)하는 것은 또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의리가 아닙니다. 당초 소장을 올렸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두 번 세 번 소장을 올리고 떠나려고 했었습니다. 그뒤 다시 생각을 고쳐 경연에 입시하여 천안(天顔)을 뵈옵고 직접 저의 실정을 아뢰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지체하여 왔던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답하지 않자, 이에 물러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1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註 001]
    이심(李尋) : 전한(前漢) 평릉(平陵) 사람으로 자(字)는 자장(子張). 《상서(尙書)》를 배웠는데 특히 홍범(洪範)의 재이(災異)에 달통하였다. 관직이 기도위(騎都尉)에 이르렀는데 외척을 억제해야 되고 도덕이 있는 선비를 선발해야 된다는 것을 극론하였다. 후에 하하량(河賀良) 등의 옥사에 연루되어 돈황(敦煌)으로 유배되었다. 《전한서(前漢書)》 권75.
  • [註 002]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모반(謀叛)하면서 급암(汲黯)의 강직함을 꺼려한 것 : 조정에 훌륭한 인물이 있으면 역적도 두려워한다는 뜻. 한 무제(漢武帝) 때 회남왕 유안이 모반을 꾀하면서 중앙 조정의 인물을 논할 때 "한나라 조정에서는 유독 급암(汲黯)만이 직간(直諫)을 좋아하고 절개를 지켜 의리에 죽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릇된 방법으로 유혹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 [註 003]
    ‘존심 양성(存心養性)’ :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한다는 말. 《맹자(孟子)》 진심장 상(盡心章上)에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하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 된다"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
  • [註 004]
    하삼도(下三道) : 충청·전라·경상도 .

○辛酉/夕講。 《綱目》 《哀帝紀》, 李尋曰: "毋聽女謁邪臣。" 金宇顒啓曰: "曲經邪言, 斷而勿聽, 最善。 然女謁干請之事, 在明主, 易爲斷絶, 若假托公論, 因邪徑而入者, 雖明主, 或未致察, 易爲所欺, 最可愼也。" 宜務崇陽抑陰云云, 啓曰: "君子爲陽類, 小人爲陰類, 崇陽抑陰, 乃天道也。 故曰 ‘遏惡揚善, 順天休命。’ 如此然後, 國家治安。 若不能分辨善惡, 唯務涵容, 一切欲俱收竝畜, 則目前雖似無事, 養成他日無窮之患, 其禍甚大也。" 本强則精神折衝, 云云, 啓曰: "人才者, 國家之元氣也。 朝廷之上, 賢材多聚, 則其精神自然風動四方, 戎狄自服, 逆亂自止。 如淮南謀叛, 而憚直之類。 國之强弱, 只在人才之盛衰, 其可忽哉!" 賈讓言治河策, 啓曰: "言治河事固善。 如云: ‘善爲川者, 決之使道, 善爲民者, 宣之使言。’ 此最爲有國之法。 夫水勢湮塞, 則傷人必多, 正論鬱抑, 則人心不平。 爲國者, 必開廣言路, 使淸議常行。 最不可使人人憚言也。" 講畢, 進啓曰: "御書存心養性四字, 下于玉堂, 令臣等製辭以進, 此甚盛意也。 臣等本無學識, 豈能發揮其義, 以贊聖志? 但此本非二事。 養性之道, 在存其心, 存心之要, 不過曰敬而已。 持敬之方, 先儒論之詳矣, 而朱子 《敬齋箴》, 最爲明備。 願殿下常置此箴於座隅, 而留心焉, 乃存養之要法也。" 又曰: "臣奉使湖南, 竊見本道飢荒大槪同然。 右道沿海七八邑尤甚。 冬間百姓已有餓莩, 至春必至大急。 官無儲粟, 賑救之策, 無由措備, 極可念也。 大抵下三道乃根本也, 民力已竭, 而調發未已。 國家方以北方爲憂, 而根本之意不暇顧也, 豈非失策? 須常留念根本爲當也。" 大司憲鄭琢啓曰: "光州牧使權德輿病甚, 不能治事, 而不敢告病。" 宇顒啓曰: "臣親見之, 中風不能運身, 將至死地, 而以罪譴出, 故不敢告病矣。" 上曰: "人君, 一時偶然出送, 亦何介意? 如此病重, 則其遞之。" 宇顒又曰: "小臣至愚無知, 本無學識。 但自少讀書, 他無所學, 只知事君如事父。 凡有所懷, 而不自盡於君父, 則爲大罪惡, 故前日狂妄之見, 上澈冕旒, 觸冒時諱。 當伏罪譴, 而不爲加罪, 反加收用。 至忝經幄, 聖主天地父母之恩隆極矣。 而在小臣分上, 有不敢承當者二焉。 疾病深痼, 力不任事一也。 學術疎昧, 又以病故廢書二也。 加以蹤跡孤危, 事勢不便, 固滯之見, 不能變易, 而隱默苟容, 與時低昻, 又非人臣事君之義也。 當初陳章, 旣不蒙允, 欲再三陳疏而去。 旣又思之, 欲入侍筵中, 瞻望天光, 面陳下情, 故遲留至今耳。" 上不答乃退。


  • 【태백산사고본】 10책 19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1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