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좌상 김귀영을 힐책한 전교를 보고 박절하다고 비판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하교를 보고는 깜짝 놀라 서로 돌아보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일찍이 성명(聖明)의 세상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좌상 김귀영은 사림(士林)들에게 다른 뜻이 없으니 그들에게 죄줄 수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았기 때문에 구해(救解)에 역점을 두고 성명께서 한 번 깨우치기를 바랐던 것으로 그가 한 말이 비록 명쾌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의 주된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있었습니다. 다만 성상께서 지닌 뜻이 그와는 달랐기 때문에 그의 말이 도리어 귀에 거슬리는 결과가 되었고 그리하여 아첨하고 비위나 맞추는 태도로 보였던 것입니다. 요즘 천위(天威)가 바야흐로 진동하여 사류(士類)들이 외롭고 위태로와 조석(朝夕)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인데, 귀영이 만약 아첨하고 비위나 맞추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주상의 뜻을 승순(承順)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외롭고 위태로운 상황의 사류들에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려 하였겠습니까. 상께서 그의 정실(情實)은 헤아리지 않으시고 뜻밖의 박절한 하교를 내리시어 용납할 곳이 없게 만드셨습니다. 대신이라면 평소 의중(倚重)하는 처지인데 말 한마디가 뜻에 거슬렸다 하여 그렇게까지 꾸짖으신다면 성덕(聖德)에 훼손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나라 일도 장차 이로 인하여 어렵게 될 것입니다. 상께서 위노(威怒)를 조금 진정하시고 평일에 차분히 살펴 생각하신다면 아마 마음이 풀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삼사(三司)는 공론(公論)이 있는 곳으로 국가에서 원기(元氣)라고 믿고 있는 관아로서 어느 권간(權奸)이 국사를 담당하여 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니, 삼사에서 한 논의가 사전 모의 없이 똑같았다면 그것이 공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혼의 상소 중 허다한 말들이 그 주된 뜻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원한을 끼고 있다느니, 혹은 부회(附會)를 한다느니, 혹은 떼 지어 참소하여 기중(奇中)을 꾀한다느니, 또 혹은 교묘하게 기관(機關)을 만들고 있다느니 하여 듣는 이를 어지럽고 의혹되게 만듦으로써 언자(言者)에게 죄를 가하려 하고 있고, 조정 전체를 사(邪)로 지목하여 공국(空國)의 화가 곧 일어나게 생겼으니, 한마디 말이 나라를 망친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이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어찌 참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허심(虛心)으로 사리를 살피시어 시비의 근원을 깊이 찾으신다면 그보다 다행이 없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 계사(啓辭)를 보니 그야말로 동쪽을 지적했는데 서쪽을 대답한 것이라 하겠다. 어제 내가 이이(李珥)의 현사(賢邪)에 대하여 물었을 때 좌상은 말하기를 ‘신은 지혜롭지 못하다[不知].’ 운운하였고, 끝에 가서는 ‘사람을 알아보면 그는 철인(哲人)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문식(文飾)하였다. 그것이 그의 마음이라는 것을 길 가는 사람도 다 알 터인데 내가 모른다고 한다는 말인가. 시비(是非)를 구별하는 마음은 사람의 양지(良知)로서 그것은 천성(天性)이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임금이 물었을 때 대신된 몸으로 그냥 ‘부지(不知)’라고만 대답한다는 말인가. 서글픈 일이다. 임금이 재상을 둔 목적이 어찌 ‘부지’라는 두 글자만 가지고 한평생 상업(相業)에 종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던가. ‘부지’라는 그 두어 마디면 그것으로 높은 기풍, 굳센 절의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부지’라는 말을 가지고 어떻게 천하의 인심을 심복시키겠는가.
자고로 임금이 신하의 현사(賢邪)에 대하여 물었을 때 대신이 모른다고 대답하였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럴 바에야 임금 혼자서 총명(聰明)을 자임(自任)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재상을 등용하겠는가. 대신을 의중(倚重)하는 것이 참으로 임금의 본심이다. 그러나 의중하는 이유는 그가 조정에서의 현과 사를 구별할 수 있고 국가의 시와 비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제 임금 앞에 입대(入對)하여 말한 것이 첫 번째도 부지, 두 번째도 부지였다. 아아, 암주(暗主)로서 ‘부지’의 재상을 만난다면 이는 마치 소경이 다른 소경의 시력을 빌리는 것과 같아서 천하의 위태로움을 바로잡아보려고 하다가 결국은 서로 미끄러지고 넘어져 구제할 길 없이 죽고 말 것이다.
내가 과매(寡昧)한 자질로 지대한 기업을 지키면서 상신(相臣)의 그름도 국사(國事)가 잘못되어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함용(含容)이라는 작은 절도에 구구하여 후세의 신하된 자를 깨우칠 수 있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 사람의 대신을 위하여 조종(祖宗)의 종사(宗社)를 잊은 격이 되는 것이니 경중(輕重)의 권도를 잃은 일이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조종을 저버리는 일은 차마 할 수 없다. 이러한 말을 어찌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부득이하여 하는 말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9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政院啓曰: "臣等伏覩下敎, 相顧驚惶, 罔知攸措。 曾謂聖明之世, 有是事乎? 左相金貴榮, 心知士林無他, 不可加之以罪, 故力爲救解, 以冀聖明之一悟, 其爲辭雖不明快, 而主意則可見。 只以聖意之所存異於是, 故其言反爲逆耳之歸, 而視爲依阿苟容也。 近者天威方震, 士類孤危, 莫保朝夕, 貴榮如以依阿苟容爲心, 則承順上旨之不暇, 乃欲依阿苟容於孤危之士類乎? 自上不諒其實, 遽下迫切之敎, 使無所容。 大臣平昔所倚重, 而一言忤之, 嚴譴至此, 不但有虧於聖德, 國事將自此而去矣。 自上少霽威怒, 平日省念, 則其庶幾釋然矣。 且三司公論所在, 國家所恃, 以爲元氣也, 自非權奸當國指嗾爲之, 而論議之發, 不謀而同, 則謂之非公論可乎? 成渾疏中詐多說話, 非但主意偏係, 或以爲挾怨, 或以爲附會, 或以爲朋讒奇中, 或以爲巧設機關, 眩亂熒惑, 至欲加罪言者, 擧朝廷目之以邪, 空國之禍, 不日而起, 一言喪邦, 正謂此也。 不亦慘乎? 伏願殿下, 虛心察理, 深究是非之原, 不勝幸甚。" 答曰: "觀此啓辭, 可謂指東答西也。 昨日予問李珥之賢邪, 左相乃曰: ‘臣不知。’ 云云, 終乃引: ‘知人則哲之。’ 言以文之。 此其心, 路人所知, 其謂予不知耶? 夫是非之心, 人之良知, 出於天性, 自有所不容已者。 而人主問之, 身爲大臣, 乃以不知對之。 嗟乎! 人主之置相, 豈但以不知二字, 使其爲平生相業而止哉? 而其可以不知數語, 自足以爲高風勁節耶? 不知之說, 其何以服天下之人心? 自古未聞人主問其臣之賢邪於大臣, 而大臣以不知對之者也。 苟如此人主自任聰明足矣, 將焉用彼相哉? 夫倚重大臣, 固人主本心。 而所以倚重者, 以其辨朝廷之賢也邪也, 以其決國家之是也非也。 今乃入對君前, 一則曰不知, 二則曰不知。 噫! 以暗主而遇不知之相, 是猶以瞽借盲之視, 欲正天下之危, 將見相率而顚躋, 莫之救以死也。 夫以寡昧之資, 守丕丕之基, 不知相臣之非, 國事之去, 而區區於含容之小節, 而不能一爲發言以驚後世之爲人臣者, 則是爲一大臣而忘祖宗之宗社也, 不幾於失輕重之權者耶? 誠不忍不言, 而負祖宗也。 予之此言, 豈予之所願。 不得已也。"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9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