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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7권, 선조 16년 6월 20일 경오 5번째기사 1583년 명 만력(萬曆) 11년

병조 판서 이이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분당을 만들지 말라며 대신들에게 내린 전교

비망기(備忘記)로 대신(大臣)에게 전교하였다.

"근래 병조 판서 이이의 언어(言語) 문제 때문에 대간이 서로 격동하여 쟁변(爭辨)을 되풀이하다가 급기야 옥당(玉堂)이 차자를 올려 이이를 오국 소인(誤國小人)에 비유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언어 문제로서만 우연하게 발단된 것이 아니다. 그 전부터 이이는 신진(新進)의 선비들이 시속에 따라 당부(黨附)하는 꼴을 싫어하여 그들을 재억(裁抑)하기 위한 진론(陳論)을 누차에 걸쳐 해왔는데, 이 때문에 시론(時論)에 미움을 받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그의 실수가 있게 되자 이때를 놓칠세라 드디어 틈을 타 기필코 핵거(劾去)하려고 한 것이다. 다른 공경(公卿)·대부(大夫)들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도 오지 않았던 자들이 많았지만 그들을 임금을 업신여겼다고 논한 경우는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왜 대간의 말이 유독 이이에 대해서만 그렇게 직절(直截)한가.

그가 말[馬]을 바치게 한 일을 사전에 아뢰지 않았던 것도 허다한 사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때맞추어 아뢰지 못했던 것뿐이지 어찌 멋대로 권세를 부리기 위하여 한 짓이었겠는가. 대체로 권세를 멋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신하로서는 극죄(極罪)의 명칭이므로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임금이란 상대가 비록 소민(小民)이라도 사실 이상의 죄명을 그의 몸에 가벼이 가할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재상이겠는가. 이왕 권세를 멋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겼다고 말했으면 왜 그의 죄를 분명히 밝혀 유사(有司)로 하여금 왕법(王法)을 적용하게 하여 만세토록 신하된 자를 경계하지 않고, 마치 을사년026) 의 간신(奸臣) 무리들이 상대를 반역(叛逆)으로 지목하고서도 죄로는 기껏 파체(罷遞)나 주장했던 것처럼 고작 파직을 청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이이로서는 심복(心服)이 되지 않아 부끄러움을 안고 주저하면서 누차 사직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는 과정에서 과연 자기 변명에 관계되는 말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 역시 어찌 언관(言官)에 대하여 분한 마음을 갖고 기극(忌克)하기 위해서였겠는가. 대간에게 소중한 것은 공론(公論)을 담당하는 것뿐이니, 자기의 사사로움을 달성하기 위하여 배빈(排擯)과 경함(傾陷)을 일삼는다면 그것이 어디 대간으로서 할 일인가. 경들이 만약 이이를 일러 나라를 그르친 소인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죄를 분명히 밝혀 그를 물리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를 공격하는 자가 소인인 것이다. 임금이 소인을 등용하고서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이치가 어디에 있는가. 오늘이야말로 숙특(淑慝)을 가려낼 수 있는 때가 아니겠는가. 경들로서는 확실히 가려내지 않고 어물어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정이 각기 유파끼리 분당(分黨)되어 나라 일이 날로 글러가고 있는데도 대신들이 그것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나라 일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392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026]
    을사년 : 1545 명종 즉위년.

○備忘記, 傳于大臣曰:

近因兵曹判書李珥言語間事, 臺諫相激, 爭辨反覆, 纏澆至於玉堂上箚, 比於誤國小人, 此非發於偶然言語間事也。 蓋自前裁抑新進之士, 惡其趨時黨附, 累爲陳論, 由是見怍於時論者久矣。 遂因所失, 乘時俟釁, 必欲劾去而後已也。 凡公卿大夫, 承召不來者多, 未聞以慢君論之者。 是何臺諫之言, 獨能直截於也? 其納馬不稟, 亦不過許多事務間, 趁未取稟耳, 是豈擅權而然哉? 夫專擅慢上, 人臣極罪, 名之不可不明。 人君之於小民, 尙且不可以情外罪名輕加於其身, 況宰相耶? 旣曰擅權慢上, 則何不明正其罪, 請令有司, 照以王法, 以戒萬世爲人臣者, 而乃敢請以罷職, 有如乙巳奸臣輩目之以叛逆, 而罪之以罷遞者之爲耶? 此所以不心服, 抱羞蹜踖, 累辭不已。 而措辭之際, 果有涉於辨, 亦豈有忌克念心於言官哉? 所貴乎臺諫, 身任公論爾, 陰濟己私, 以爲排擯傾陷之計, 則烏在其臺諫之道也? 卿等如以爲誤國小人云, 當明辨斥退。 不然, 攻之者小人也。 安有人君用小人, 而可以爲國之理乎? 分別淑慝, 其不在於今日乎? 卿等不宜含糊不辨。 大抵朝廷朋比分黨, 國事日去, 而大臣不能分辨, 則將置國事於何地耶?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392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