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하고 이이 등이 학문의 요체, 성혼의 등용, 김효원의 재발령을 아뢰다
사정전(思政殿)에서 소대하였다. 이이가 이미 파주(坡州)에서 돌아와서 입시(入侍)하여 학문을 논하다가 아뢰기를,
"옛날에는 학문이란 이름이 없었습니다. 일상(日常)하는 이륜(彝倫)의 도리는 모두 사람들이 당연히 해야 할 바이므로 따로 명목(名目)을 붙이지 않았고 군자(君子)들이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할 것만을 행했을 뿐이었는데, 후세에는 도학이 밝지 못하여 이륜의 도리가 폐지되어 당연히 행해야 할 바를 학문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학문이란 이름이 생겨난 뒤엔 도리어 세상 사람들의 지목(指目)을 받아 취모 멱자(吹毛覓疵)115) 하여 혹 위학(僞學)이라고 지목하여, 선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숨기고 눈치를 보며 학문하는 사람이란 이름을 피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후세의 큰 근심거리입니다. 군주는 모름지기 학문을 주장하여 세속으로 하여금 학문하는 사람은 비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문이 어찌 다른 것이겠습니까. 다만 일상 생활 속에서 옳은 것만을 찾아서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였다. 이날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 상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오늘 날씨가 차다. 그러나 나는 넓은 집의 따뜻한 담요 위에 앉았으니 어찌 견디지 못하리요마는 저 변방에서 밤새도록 경비를 하는 수졸(戍卒)들은 어찌 견딜 수가 있겠는가."
하니, 이이가 아뢰기를,
"상의 말씀이 이와 같으니 생민의 복입니다. 수졸들만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염의 백성들도 얼어 죽는 자가 많으니 진념(軫念)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이에게 이르기를,
"소분(掃墳)116) 할 때 성혼(成渾)을 만나보았는가? 그의 병은 어떠하며, 끝내 벼슬할 수 없던가?"
하였다. 승지 이헌국(李憲國)이 아뢰기를,
"성혼은 벼슬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어서 벼슬할 수 없을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읍재(邑宰)도 할 수 없느냐?"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읍재의 수고로움이 경관(京官)보다 심하니 병자(病者)가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래도 학도(學徒)를 교수(敎授)할 수는 있지 않겠느냐?"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그것도 병 때문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가하게 있으면서 교수하게 하면 좋겠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진실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병 때문에 할 수 없으니, 한스럽습니다."
하고, 이이가 이어 아뢰기를,
"신이 전에 김효원(金孝元)의 일을 아뢴 말 중에 저의 의사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 곳이 있어 상의 비답(批答)에 미안한 곳이 많게 하였으므로 지금까지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김효원이 병이 있는 줄을 모르고 변읍(邊邑)에 제수(除授)한 것이다. 그런데 부제학의 계사(啓辭)는 나의 뜻을 깨닫지 못한 듯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지, 부제학을 사심이 있다고 한 것은 아니다."
하였는데, 상의 말씀이 매우 온화하여 이해하심이 있는 듯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신이 성지(聖旨)를 모르는 것이 아닌데, 성감(聖監)이 이와 같으시니, 이는 반드시 계사에 신의 의사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 곳이 있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김효원(金孝元)의 읍(邑)을 개수(改授)할 것이니 그리 알라."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그리하신다면 공사(公私)가 모두 온편하게 될 것입니다. 전일 상비(上批)에 미안한 것이 있었다는 것은 바로 ‘신하가 녹(祿)을 먹으면 죽음을 바친다.’는 말씀을 이름입니다. 이런 말은 신하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지만 임금의 입장에서는 이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군주는 신하의 재주와 힘을 헤아려서 감당할 만한 직책을 주어야 하고 신하는 죽음을 무릅쓰고 신하의 도리를 행하여 어느 때나 한결같은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 많은 녹과 깊은 은혜는 진실로 신하의 정(情)을 묶어 두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신하는 분수와 의리로써 중함을 삼아야지, 만약 은혜와 녹만을 사모하여 충성을 바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은혜와 녹을 받지 못했다는 핑계로 직분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수와 의리를 중히 여기는 자들은 군주가 나를 대우함이 후하냐 박하냐를 따지지 않고 모두 절개를 지켜 의리에 죽는 것입니다. 은혜와 녹만을 중히 여기는 자들은 그 마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헌국(李憲國)이 아뢰기를,
"군주가 어찌 은혜와 녹으로써 신하를 대우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구경(九經)117) 의 뜻에도 ‘충신 중록(忠信重祿)’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구경의 뜻에 진실로 충신 중록을 말하였으나, 충신(忠信)을 녹보다 먼저 말하였으니, 충신이 중함이 되고 녹이 경함이 되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의 소견이 천박(淺薄)하기 때문에 말에 실수가 많았다."
하였다. 저작(著作) 홍적(洪迪)이 아뢰기를,
"신은 은혜와 녹에 대한 말씀에서 실수한 점을 찾아보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나의 말이 실수였다. 부제학의 말이 옳다."
하고, 이어 이이에게 이르기를,
"내가 지난 역사를 보건대, 시대가 점점 변하여 하(夏)가 당(唐)·우(虞)만 못하고 상(商)이 하만 못하며 주(周)가 상만 못하였으니, 금세(今世)에 삼대(三代)의 정치를 회복하기란 진실로 어렵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세도(世道)가 점점 강하(降下)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옛 도를 행한다면 어찌 복고(復古)하지 못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우제(虞帝)118) 는 미칠 수 없지만, 삼대는 결단코 회복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대개 당·우 시대에는 무위이화(無爲而化)하였기 때문에 후세에서 미칠 수 없지만, 삼대의 정치라면 진실로 그 도를 행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회복할 수 있는데 다만 행하지 않아서일뿐이라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3천 년 동안 삼대의 도를 행하고서 성공하지 못한 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어떤 이유로 삼대의 도를 회복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하였다. 며칠 뒤에 김효원(金孝元)을 삼척 부사(三陟府使)로 개수(改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9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3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註 115]취모 멱자(吹毛覓疵) : 억지로 남의 허물을 찾아냄.
- [註 116]
소분(掃墳) : 조상의 무덤에 제사지냄.- [註 117]
구경(九經) :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도. 곧 수신(修身)·존현(尊賢)·친친(親親)·경대신(敬大臣)·체군신(體群臣)·자서민(子庶民)·내백공(來百工)·유원인(柔遠人)·제후(懷諸侯)이다. 《중용(中庸)》 12장.- [註 118]
우제(虞帝) : 순(舜)을 가리킴.○己丑/召對于思政殿。 李珥自坡州, 已還入侍, 因論學問。 珥曰: "古者無學問之名, 日用彝倫之道, 皆人所當爲, 別無標的之名目。 君子只行其所當爲者而已。 後世道學不明, 彝倫之行, 廢而不擧。 於是以行其所當爲者, 名之以學問。 學問之名旣立, 反爲世人所指目。 吹毛覓疵, 或指爲僞善, 使爲善者, 諱秘遷就, 以避學問之名。 此後世之大患, 人君須主張學問, 使流浴不得謗議可也。 學問豈有他異哉? 只是日用間, 求其是處行之而已矣。" 是日寒甚, 上謂侍臣曰: "今日寒矣。 予則在廣廈細氈之上, 豈有不堪者乎? 念彼塞上戌卒, 徹夜擊柝, 何以堪居乎? 珥曰: "上敎如此, 生靈之福也。 不但戌卒, 閭里之民, 亦多有凍死者。 願垂軫念焉。" 上謂珥曰: "掃墳時, 見成渾乎? 其病何如? 終不能仕乎?" 承旨李憲國曰: "成渾非不欲仕者, 病不能仕耳。’ 上曰: "不能爲邑宰乎?" 珥曰: "邑宰之勞, 甚於京官, 非病人所堪也。" 上曰: "頗能敎授學徒乎?" 珥曰: "亦以病不能也。" 上曰: "閒居敎授, 則好矣。" 珥曰: "固是好事, 而病未能焉, 可恨。" 珥因啓曰: "臣前啓金孝元之事, 辭不達意, 以致上批, 多有未安者, 至今惶恐不已。" 上曰: "予未知金孝元有病, 而授以邊邑。 副提學啓辭, 似未曉予意, 故有所云云。 非以副提學爲有私也。" 天語甚溫, 似若意解者。 珥曰: "臣非不知聖旨, 而聖鑑如此, 必是辭不達意也。" 上曰: "當改孝元之邑, 其知之。" 珥曰: "然則公私更便矣。" 前日上批有未安者, 謂人臣食祿, 則當效死云。 是人臣自言, 則可矣, 在上則不當發此言也。 人君則當量臣子才力, 擇授可堪之職, 人臣則當死生, 以之夷險一節矣。 且重祿深恩, 固所以結臣子之情也。 然人臣當以分義爲重, 若只慕恩祿, 而効忠, 則他人亦必諉以恩祿矣。 是故以分義爲重者, 不計人君待我之厚薄, 皆能仗節死義矣。 以恩祿爲重者, 其心不可信也。 李憲國曰: "人君豈可不以恩祿待臣乎? 九經之義, 亦曰忠信重祿。" 珥曰: "九經之義, 固曰忠信重祿。 以忠信先於祿, 則忠信爲重, 而祿爲輕也。" 上曰: "予所見淺, 故言多有失耳。" 著作洪迪曰: "恩祿之敎, 則臣未見其有失也。" 上曰: "不然。 予言失矣。 副提學之言是也。" 因謂珥曰: "予觀往史, 時代漸變, 夏不及唐、虞, 商不及夏, 周不及商矣。 今代固難復三代之治也。 珥曰: "世道固漸降矣。 雖然, 若行古道, 則豈無復古之理乎? 程子有言曰: "虞帝不可及已, 三代則決可復也。 蓋唐、虞之時, 無爲而化, 後世不能及也。 若三代之治, 則苟行其道, 必可復也。 只是不爲耳。 三千年來, 爲之而不成者, 不可見矣。 何由知其不可復乎?" 後數日, 改授金孝元 三陟府使。
- 【태백산사고본】 6책 9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3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과학-천기(天氣)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註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