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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권, 선조 7년 10월 19일 경신 1번째기사 1574년 명 만력(萬曆) 2년

조강에 가공에 대해 토론하고, 사서 오경의 구결과 언해를 논의하다

조강이 있었다. 진강이 끝나자 상이 이르기를,

"그 가공에 관한 일을 마땅히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하니, 유희춘이 아뢰기를,

"해조가 해가게 될 것입니다."

하고, 영상 권철이 가공에 관한 폐단을 진계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도 역시 당초에 가공을 시행하고 싶은 뜻이 없었다. 다만 이미 가공을 하고 보니 합당한 계책을 마련할 수 있을 듯 싶다."

하였다. 남응운(南應雲)이 또한 가공에 관한 폐단을 진달했다. 맨 나중에 유희춘이 아뢰기를,

"황극의 도리를 ‘치우침도 없고 기울어짐도 없도록 하여 왕자의 도리를 준행한다.’는 말들로 본다면, 대저 중(中)을 세움을 귀중하게 여긴 것입니다. 순(舜)은 묻기를 좋아하고 보통 말로 살피기 좋아했으며 남의 악은 덮어주고 선은 들춰냈으며 두 가지 의견이 있을 때는 그 중 적당한 의견을 택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어 갔었습니다. 대정(大政)과 소사(小事)를 막론하고 모두 과불급(過不及)이 없게 해야 하고 중에 벗어나 폐단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병을 치료하려고 약을 쓸 적에 약이 혹 조금이라도 잘못 되었으면 마땅히 즉시 고쳐야 하고 그대로 있다가 병이 무거워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이 말은 당금의 일에 있어서는 가리키는 데가 있는 것인가?"

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에는 지금의 가공에 관한 법이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당초에 건의를 한 사람은 단지 지리한 폐단을 제거하고자 하여 간편한 법을 만든 것인데 어찌 뒷날에 폐단이 이 지경에 이를 줄을 알았겠습니까. 바야흐로 지금 백사(百司)의 관원들이 가공(家供)하기가 어려운 형세여서 늦게 사진(仕進)했다가 일찍 파하므로 국가일이 허술해지고 있으니 이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도 꼭 하려는 뜻은 없으나 다만 이미 가공을 하고 있기 때문은 우선은 해조로 하여금 합당하게 마련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게 한 것이다."

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아무리 합당하게 마련한다 하더라도 단지 국고 저축이 모자라는 폐단만을 구원할 수 있을 뿐이고 늦게 사진했다가 일찍 파하는 병폐는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늦게 사진했다가 일찍 파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방지되겠는가?"

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인정이나 사리로 헤아려 볼 때 결코 금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이 지난번에 성상의 명을 받고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의 구결(口訣)과 언해(諺解)를 상정(詳定)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진실로 신은 힘이 적고 책임이 무거워 잘 만들기 어려울 듯 싶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혹 할 것 없다고 하는데, 만일 부득이 해야 한다면 모름지기 이황(李滉)의 해설을 근거로 삼고 널리 모든 유신 및 유생들의 말도 물어보아야 거의 되어질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요사이 우상이 할 것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남들은 아무리 좋게 여기지 않더라도 나는 좋게 여긴다. 또, 사서와 오경을 반드시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다린 다음에 올려온다면 내가 보기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니, 한 가지 글이 이루어질 적마다 고치는대로 올려라."

하였다. 유희춘이 또 아뢰기를,

"이황이 교정한 《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사서·오경의 구결·언해에 관한 설명을 모두 가져다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참 좋은 일이다. 무릇 저서(著書)한 사람들이 어찌 숨겨 두려고 하였겠는가. 그 뜻은 진실로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경은 교서관 제조(校書館提調)인 문신(文臣)이니, 전자(篆字)를 써서 검자(檢字)를 하는가? 《대전(大典)》에 있는 법이다."

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모든 문신들이 매달 25일에는 승정원(承政院)에 나아가 전자를 써서 과차(科次)151) 를 하지만 교서관은 전자를 쓰는 사례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대전》에 실려 있는 말은 단지 교서관 관원만을 들어 말한 것인가?"

하였다. 유희춘이 아뢰기를,

"교서관 관원은 인문(印文)과 도서(圖書)를 맡기 때문에 그런 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부질없이 옛일을 말해본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8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31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재정-국용(國用) / 출판-서책(書冊) / 어문학-어학(語學)

  • [註 151]
    과차(科次) : 등급을 정함.

○庚申/有朝講。 訖, 上曰: "此家供事, 當如何而可?" 希春曰: "有該曹在。" 領相權轍進啓家供之弊。 上曰: "予亦初無欲行家供之意。 但旣爲家供, 恐有磨鍊得宜之計爾。" 南應雲亦陳家供之弊。 最後, 希春曰: "皇極之道, 似無偏無陂, 遵王之義等語觀之, 大抵以建中爲貴。 好問, 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凡大政小事, 皆要無過不及, 不可過中而生弊。 譬之治病用藥, 藥或小誤, 當卽改之, 不可因循, 而致病重也。" 上曰: "卿之此言, 於當今之事, 有指向歟?" 希春曰: "臣以爲: ‘今之家供之法, 正如是也。’ 當初建議之人, 只欲除支離之弊, 而爲簡易之規, 豈知後日之弊至此乎? 方今百司之員, 勢難於家供, 晩仕而早罷, 國事虛疎, 此不可不慮也。 上曰: "予無必爲之意。 但旣爲家供, 故試令該曹, 求可以磨鍊得宜耳。" 希春曰: "雖磨鍊得宜, 只可以救國儲虧縮之弊, 而未免晩仕早罷之患也。" 上曰: "晩仕早罷, 不知, 何以防禁之歟?" 希春曰: "揆之人情物理, 決不能禁。 臣頃蒙上命, 詳定四書五經口訣諺解, 固知臣力小任重, 難以善成, 人或以爲不必爲。 若不得已爲之, 則須以李滉說爲依據, 而廣問諸儒臣儒生之說, 乃庶幾爾。" 上曰: "近日, 右相以爲不當爲。 然人雖不好, 予則好之。 又四書五經, 必待盡成, 然後上則予覽之不易。 莫若一書之成, 隨改進上可也。" 希春又曰: "李滉校正《朱子大全》《語類》及四書五經口訣諺解之說, 竝乞取來參考。" 上曰: "固可也。 凡著書者, 豈欲閟藏其志? 固欲示人也。" 上又曰: "卿爲校書館提調, 文臣篆字檢字乎? 於大典有之。" 希春曰: "諸文臣每於月二十五日, 詣承政院, 寫篆字科次, 而校書館無寫篆字之事。" 上曰: "然則大典所載也, 只擧校書館員而言也。" 希春曰: "校書館員, 主於印文圖書, 故有此法耳。" 上曰: "予謾言故事耳。"


  • 【태백산사고본】 5책 8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314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재정-국용(國用) / 출판-서책(書冊) / 어문학-어학(語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