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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권, 선조 7년 7월 21일 계사 3번째기사 1574년 명 만력(萬曆) 2년

전라 감사 박민헌이 전주 부윤 고경허, 남원 부사 정엄 등 포상 인물을 보고하다

전라 감사 박민헌(朴民獻)이 서장을 올렸다.

"수령들이 관사(官舍)108) 에 마음을 다하여 바야흐로 백성들이 혜택을 입고 있는데도 조금이라도 법망에 저촉되면 그 즉시 파직되어 돌아가게 됩니다. 비록 백성들이 붙잡고 호소하지만 또한 어찌할 수 없으니 자못 선왕(先王)들의 의현(議賢)하고 의능(議能)하는 뜻이 아닙니다. 신이 본도(本道)의 수령 중에 행정의 공효가 월등하게 나타난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개록(開錄)하겠습니다. 포숭(褒崇)하는 법이 진실로 경중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신의 구구한 마음에는 이조로 하여금 모두를 적록(籍錄)109) 하도록 하되, 만일에 응당 파직해야 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잉임을 계청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전주 부윤(全州府尹) 고경허(高景虛)는 너그러우면서도 절제가 있어 은혜와 위엄이 겸비된 사람입니다. 그는 도임(到任)한 다음부터 그전의 폐단을 개혁하고 제거하였기에 한 지경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남원 부사(南原府使) 정엄(鄭淹)은 따뜻하게 민중들을 돌보고 자상하게 행정을 하되, 문서를 처리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모두를 친히 살펴 집행하고 민원을 막는 폐단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매우 좋게 여겼습니다. 광주 목사(光州牧使) 임훈(林薰)은 공렴(公廉)하고 결백(潔白)하므로 백성들이 빙호(氷壺)110) 라고 지목하면서 오직 오래 유임하지 않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담양 부사(潭陽府使) 이중호(李仲虎)는 백성을 편안히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여 옛날 순리(循吏)111) 의 기풍이 있고, 영광 군수(靈光郡守) 민정명(閔定命)은 과단성이 있고 분명하게 살피며, 일에 당해서는 지체없이 해결하므로 본래 영광은 다스리기 어렵다는 고을이지만 부임한 지 오래지 않아 즉시 정돈되었습니다.

여산 군수(礪山郡守) 심연(沈鍊)은 천성이 매우 부지런하여 무릇 백성을 편안하게 할 일들을 극력 조치하면서 오직 원통해 하거나 답답해 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했습니다. 구례 현감(求禮縣監) 송정순(宋廷筍)은 순박 정직하고 청렴 개결하여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일을 당하면 분발하여 권력 있는 사람이라도 피하지 않았으며, 옥사 결단과 송사 방지를 모두 지체없이 했습니다. 남평 현령(南平縣令) 이징(李徵)은 행정을 공평하게 하므로 온 도(道) 안에서 모두 칭찬하고 있으며 폐단 제거하는 일을 미처 다하지 못할 듯이 했습니다. 용안 현감(龍安縣監) 김천감(金天鑑)은 초야(草野)에서 나와 수령이 되었지만 백성 다스리는 일이 또한 매우 익숙하여 적절하고 명백하게 하였으며 백성을 자식처럼 애호했습니다.

이 밖에 백성들이 잘 다스린다고 호소해 온 목민관들은 영암 군수(靈巖郡守) 심암(沈巖), 만경 현령(萬頃縣令) 조영규(趙英珪), 강진 현감(康津縣監) 변기(邊璣), 동복 현감(同福縣監) 신응원(申應元) 등입니다.

비록 백성들이 정소(呈訴)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으나 공정하고 위신이 있다고 칭찬받는 사람은 진도 군수(珍島郡守) 김집(金緝)이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봉공(奉公)하는 사람은 무장 현감(茂長縣監) 김행(金行)입니다. 이조에 계하(啓下)하소서. 그리고 또 재주를 지니고 예능(藝能)을 가졌으면서도 암혈(巖穴)112) 에 숨어 있는 선비를 추천하겠습니다.

나주에 사는 진사 김응기(金應期)는 순후(淳厚)하고 침의(沈毅)113) 한 사람으로 효우(孝友)한 성품은 천성으로 타고난 것이어서 어버이를 섬기되 지극히 조심성 있게 했습니다. 일찍이 여묘를 살았는데 죽만 먹으면서 3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상기(喪期)를 마쳤습니다. 평소의 행신이 온 가문에 나타나서 그런 소문이 원근에 퍼지게 되자, 향천(鄕薦)으로 참봉을 제수했었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50이 넘어 장차 초목과 함께 썩어 버리게 되었으니, 어찌 성명(聖明)한 시대에 유주(遺珠)114) 의 한탄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안(務安)에 사는 유학(幼學) 정개청(鄭介淸)은 사람됨이 치밀하고 분명하여 독실한 뜻으로 학문을 하고 있습니다. 가세가 지극히 청빈(淸貧)하지만 일찍이 한 걸음도 망령되이 행하지 않고 조금도 누구에게 간청(干請)한 적이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어버이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받들고, 문생(門生)들과 날마다 도의를 강론하여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많고, 항시 예경(禮經) 공부에 공력을 들이고 역학(易學)에 있어서도 발명(發明)한 바가 많이 있습니다. 김응기정개청은 심상한 인물이 아니고 특히 백집사(百執事)에 합당한 사람들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5책 8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0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윤리(倫理)

  • [註 108]
    관사(官舍) : 고을의 행정.
  • [註 109]
    적록(籍錄) : 장부에 기록함.
  • [註 110]
    빙호(氷壺) : 청렴하고 청백함.
  • [註 111]
    순리(循吏) : 관사를 잘 처리하고 법칙을 잘 지키는 관리.
  • [註 112]
    암혈(巖穴) : 산중.
  • [註 113]
    침의(沈毅) : 침착하고 굳셈.
  • [註 114]
    유주(遺珠) : 어진이를 등용하지 못함.

全羅監司朴民獻書狀云:

守令之盡心官事, 民方被澤, 一觸法綱, 旋卽罷歸, 民雖攀號, 亦無可奈何, 雖非先王議賢議能之意也。 臣於本道守令, 政效著聞者, 開錄如左。 褒崇之典, 固有輕重, 臣區區之心, 悉令吏曹籍錄, 如有應罷之事, 啓請仍任。 全州府尹高景虛, 寬而有制, 恩威兼著, 到任之後, 革除前弊, 一境晏然; 南原府使鄭淹, 慈祥恤民, 爲政詳悉, 文簿之間, 非親執不爲, 無壅遏之弊, 民甚便之; 光州牧使林薰, 公廉潔白, 民目之以氷壺, 惟恐其不久留也; 潭陽府使李仲虎, 盡心民事, 有古循吏之風; 靈光郡守閔定命, 剛果明察, 遇事迎刃而解, 靈光素稱難治, 到任未久, 卽就整頓; 礪山郡守沈鍊, 天性甚勤, 凡於安民之事, 極力措置, 惟恐有冤悶; 求禮縣監宋廷筍, 朴直淸介, 疾惡如讎, 遇事奮發, 不避權力, 決獄蔽訟, 皆不留滯; 南平縣令李徵, 爲政公平, 一道皆稱, 祛弊之事, 如恐不及; 龍安縣監金天鑑, 起於草野, 爲守令, 而治民之事, 亦甚閑熟, 剴切明白, 愛民如子。 其他爲民訴以善治者, 靈巖郡守沈巖萬頃縣令趙英珪康津縣監邊璣同福縣監申應元, 民雖不及呈訴, 而稱爲公正有威者。 珍島郡守金緝, 一心奉公者, 茂長縣監金行。 啓下吏曹。 又薦懷才抱藝, 隱於巖穴之士: "羅州居進士金應期, 淳厚沈毅, 孝友之性, 出於天性, 事親至謹, 嘗廬墓啜粥, 三年泣血, 終喪素行, 著於一家, 聲聞達於遠邇, 以鄕薦拜參奉不起, 年逾五十, 將與草木同腐, 豈不爲聖世遺珠之嘆? 務安幼學鄭介淸, 爲人詳明, 篤志爲學, 家至淸貧, 未嘗一步妄行, 一毫干人, 居家奉親至孝, 與門徒日講道義, 及人者甚多, 常做功於禮經, 多有發明於《易》學。 金應期鄭介淸, 非尋常只合於百執事。" 云。


  • 【태백산사고본】 5책 8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0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