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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권, 선조 6년 8월 17일 갑자 1번째기사 1573년 명 만력(萬曆) 1년

삼공 등이 향약을 의논하다

삼공(三公)·대신(大臣)이 향약(鄕約)을 의논하였다. 영상(領相) 권철(權轍)의 의논에 대략,

"지금 항간에 본디 향도(鄕徒)의 약속이 있어 과실을 서로 바로잡고 예속(禮俗)으로 서로 사귀고 환난(患難)을 서로 돌보는 일들도 선유(先儒)의 향약이 끼친 뜻에 근본한 것입니다. 이제 신유가 증감한 절목(節目)에 따라 아름다운 뜻을 펼쳐 행하여 차차로 선도하면 인심이 맑아지고 세도(世道)가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좌상(左相) 박순(朴淳)의 의논에 대략,

"여씨 향약(呂氏鄕約)을 보건대, 본디 풍교(風敎)를 돕는 아름다운 뜻이고 주자(朱子)가 또 그것을 취하여 증감하여 그 규모 절목이 평실(平實)하고 간편합니다. 인정으로 쉽게 행할 것을 깊이 참작하여 만들었으므로 본디 구애되어 행하기 어려운 폐단이 없으니, 들어서 시행해야 할 따름입니다. 더구나 이제 교화가 밝지 않고 풍속이 아주 무너져서 인륜의 이변이 보고 듣기에 놀라우니, 어찌 무너져 가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바로잡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간원이 아뢴 까닭입니다. 또 우리 나라의 풍속은 안으로 서울부터 밖으로 촌마을까지 다 동린(洞隣)의 계(契)와 향도(香徒)106) 의 회(會)가 있어 사사로이 약조를 세워서 서로 단속하려 하나, 각각 자기 뜻에 따랐기 때문에 엉성하여 질서가 없어서 기강을 세우기 위하여 의지할 만하지 못하고 또 그 약속이 조정에서 나오지 않고 사사로이 만든 것이므로 강한 자가 깔보고 악한 자가 무너뜨려도 끝내 바로잡지 못하니, 마을의 부로(父老)가 늘 한탄을 품으나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선현이 이미 정한 규약을 거행하라는 명령이 한번 내려진다면 백성이 장차 순종하기에 겨를이 없을 것이니, 참으로 인심이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교도하는 것인데, 어찌 풍속을 놀랍게 하고 환난을 초래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해조를 시켜 빨리 선포하여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해야 합니다."

하고, 우상(右相) 노수신(盧守愼)의 의논에,

"주자가 증손(增損)한 향약을 보건대 그 뜻이 깊은 데에 감탄되나 다 일용(日用) 평상(平常)에서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바야흐로 풍속이 쇠퇴하여 몰락하여 없어지려 하니 위에서 반드시 매우 상심하고 염려하여 바로잡을 방도를 생각하실 것인데, 어찌 이것을 참으로 오활하여 쓸 만하지 않다고 여기시겠습니까. 다만 봉행하는 자가 마땅한 사람이 아니어서 부질없이 보탬은 없고 방해만 있게 될세라 염려하실 것입니다. 신도 본디 성려가 깊으시다는 것을 압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지금 열읍(列邑)에 혹 이 약조를 대략 본떠서 각각 향도(鄕徒)를 둔 데가 있으니 이에 따라 중외(中外)에 이 글을 널리 펴서 의거하여 시행하되 반드시 그 절차대로 죄다 따르지 않아도 되게 한다면, 반드시 세상을 놀라게 하고 환난을 초래할 염려는 없고 장차 인륜을 도탑게 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보람이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고, 영부사(領府事) 홍섬(洪暹)의 의논에 대략,

"인심을 맑게 하고 풍속을 도탑게 하여 화리(化理)107) 를 도와 이룩하게 하는 것으로는 여씨 향약만한 것이 없는데, 더구나 증감하고 절충하는 것이 주자의 손을 거친 것이겠습니까. 이제 더러운 풍속을 크게 변화시키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것을 시행해야 합니다. 다만 일찍이 왕년에 이 약조가 시행되었을 때를 보니, 경외의 항간과 촌락에서는 모여서 강독하고 말뿐이 아니라 따르고 어기는 데에 따라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조처가 있어야 하므로 출척(黜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질로 처단하였는데, 사세가 절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 투박한 풍속에 익숙하여 스스로 편하게 여기고 착한 일을 하는 것에 강제되려고 하지 않는 자는 그 싫어하고 성내는 마음을 막기 어렵거니와, 말을 만들어 새롭고 괴이한 것이라고 지목하여 반드시 저지하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지(聖志)를 굳게 지키실는지는 우신(愚臣)이 미리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풍속이 이룩되기 전에 혹 곧 폐지한다면 임금이 정치를 삼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일을 일으킬 때에는 그 처음을 잘 꾀해야 하거니와 이제 성충(聖衷)에서 재결하셔야 하겠습니다."

하고, 판부사(判府事) 이탁(李鐸)의 의논에,

"여씨 향약은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는 데에 절실한데 그 규계(規戒)하고 권면(勸勉)하는 방법은 다 일용의 당연한 윤리이고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니, 행할 수만 있다면 인심을 돌리어 옛 정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 행하지 못할세라 걱정될 뿐입니다. 신이 보건대 주회암(朱晦菴)장경부(張敬夫)108) 에게 답한 글에 ‘향약의 글은 마침 집에 장본(藏本)이 있고 또 유행(流行)시키고 싶으나, 실은 또한 거기에 이른 대로 행하기 어려울까 염려된다. 독자(讀者)가 보고서 선배가 사람들에게 착한 풍속을 가르친 방법을 인하여 스스로 닦는 절목(節目)을 알게 하는 것도 조금 보탬이 될 것이다.’ 하였으니, 여기에서도 옛사람의 뜻을 대략 알겠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 책을 많이 박아서 중외에 널리 나누어 주되 서울에서는 동몽학(童夢學)에, 외방에서는 향교(鄕校)에서 촌마을의 학장(學長)까지 많은 수에게 나누어 주어 배우는 자가 글을 읽는 여가에 이 책을 버려두지 않고 때때로 보게 하도록 하신다면, 사람들이 다 스스로 닦는 도리를 알아서 백성의 풍속도 혹 이에 따라 변하여 갈 것이라 여겨집니다. 언관(言官)이 아뢴 것은 실로 공론에서 나온 것인데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서 찬반을 말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생각을 아뢰었을 뿐입니다. 참작하여 채택하는 것은 오직 성단(聖斷)에 달려 있으니 위에서 재결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68면
  • 【분류】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출판-서책(書冊)

  • [註 106]
    향도(香徒) : 상여꾼.
  • [註 107]
    화리(化理) : 교화하여 다스림.
  • [註 108]
    장경부(張敬夫) : 장식(張栻)의 자(字).

○甲子/三公大臣鄕約議。 領相權轍議大略: "今之閭巷之間, 素有鄕徙之約束, 而過失相規, 禮俗相交, 患難相恤等事, 亦本於先儒鄕約之餘意也。 今謹遵先儒增損節目, 展行美意而循循善誘, 則人心可淑, 世道可回矣。" 左相朴淳議略: "伏見《呂氏鄕約》, 固是補助風敎美意, 而朱子又取而增損之。 其規模節目, 平實簡便, 深酌人情之所易行者而爲之, 本無拘礙難行之弊。 但當擧而施之而已。 矧今敎化不明, 風俗極敗, 彝倫之變, 見聞駭愕, 豈可坐視淪溺而不救乎? 此諫院之所以有啓也。 且我國之俗, 內自都下, 外曁鄕曲, 皆有洞隣之契, 香徒之會, 私立約條, 欲相檢攝, 而第以各從己意, 粗率無章, 不足爲綱紀而藉賴。 又其約束不出於 朝廷, 而私自造立, 故强者侮之, 惡者壞之, 終不能糾正。 閭巷父老, 恒懷嘆惋, 而無如之何也。 今若擧行先賢旣定之規, 命令一下, 則民將從順之不暇, 誠以因人心之所欲爲而敎導之也。 寧有駭俗挑患之事乎? 宜令該曹, 速爲宣布, 以化民成俗。" 右相盧守愼議: "伏見《朱子增損鄕約》, 嘆其旨意深遠, 而皆不外於日用平常之間。 方今風俗斁敗, 將淪胥以亡, 自上必痛傷憂懼, 思有以救之。 豈有以此爲眞迂闊而不可用? 特恐奉行者非其人, 徙使無益而有害耳。 臣固知聖慮極爲淵遠, 臣之愚意, 今列邑或有略倣此約, 各有鄕徒者。 若因是而廣布此書于中外, 依而行之, 不須盡遵其儀, 必無駭世挑患之虞, 將有厚倫成俗之效矣。" 領府事洪暹議略: "淑人心ㆍ厚風俗, 助成化理者, 莫如《呂氏鄕約》, 況增損折衷, 曾經子朱子之手者乎? 今欲丕變汚俗, 則行之無可疑者。 但曾見昔年此約之行, 京外閭巷村閻之間, 不惟聚會謹讀而已。 隨其從違, 當有勸善懲惡之施, 斥黜末已, 鞭撻斷之, 事勢自至者也。 彼習於偸薄自便, 不肯强於爲善者, 難保其無厭惡慍懟之心矣。 興言造語, 指爲新異, 必欲沮止。 當此之時, 聖志之堅執與否, 非愚臣之所能預度, 俗未成而或旋停廢, 則似非王者難愼之政。 作事當謀其始, 今宜裁自聖衷。" 判府事李鐸議云: "《呂氏鄕約》, 切於化民成俗, 其所以規戒勸勉者, 皆是日用當然之倫理, 而初非高遠難行之事, 苟能行之, 則可以回人心而復古治矣。 但患人不能行耳。 臣伏見朱晦菴張敬夫之書曰: ‘鄕約之書, 偶家有藏本。 且欲流行, 其實恐亦難行, 如所諭也。 然使讀者見之, 因前輩所以敎人善俗者, 而知自修之目, 亦庶乎其少補耳。’ 云。 於此亦略見古人之意矣。 臣意以爲, 命印此冊, 多有件數, 廣頒中外, 京則童蒙學, 外則鄕校至於村巷學長, 多數頒給, 使學者讀書之暇, 亦不可廢此冊。 時加覽閱, 則人皆知自修之道, 民風俗習亦, 或因此而向變矣。 言官所啓, 實出公論, 臣何敢異同於其間? 只陳愚抱而已, 參酌採擇, 唯在聖斷。 伏惟上裁。"


  • 【태백산사고본】 4책 7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68면
  • 【분류】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