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좌랑 김찬을 보내 조식의 영전에 치제하는 제문
상이 예조 좌랑 김찬(金瓚)을 보내어 고 종친부 전첨 조식의 영전(靈前)에 치제(致祭)하였는데, 제문은 다음과 같았다.
"산천의 정기(正氣)와 우주의 정영(精英)을 받아 자질이 수려하고 부성(賦性)이 순명(純明)하였다. 난초 밭에서 난초가 나듯이 시예(詩禮)의 가문에 학자가 나는 것으로 문예(文藝)를 익힘에 무리 가운데서 뛰어났다. 일찍이 대의(大義)를 깨닫고 깊은 이치를 널리 탐구하여 큰 뜻을 세워 공자와 안자(顔子)에 이르기를 기약하였다. 하늘이 사문(斯文)에 화를 내리어 선비들이 인도하는 바를 잃어 참되고 질박(質朴)한 사람을 헐뜯으며 시대에 아첨하였지만, 공은 더욱 뜻을 굳게 지켜 지조를 변치 않았고, 문사(文詞)는 여사(餘事)로 여기고 도(道)는 이미 경지에 이르렀으나 항상 부족하게 여겼으므로 깊은 조예(造詣)가 있었다.
그러나 명예를 싫어하여 아름다운 옥을 품은 채 산림(山林)에 은거하면서 밤낮으로 분전(墳典)을 강마(講磨)하였으니, 학문은 높은 산처럼 우뚝하고 바다처럼 깊고 넓었으며 의표(儀標)는 서릿발같이 깨끗하고 덕성(德性)은 난초처럼 향기로왔으며, 마음은 유리병과 가을달같아 티없이 맑고 행동은 상서로운 별과 구름같아 사람들의 덕이 되었다. 초야에 있다 하여 어찌 세상을 잊으리오. 척신(戚臣)들보다도 깊이 근심하였으니, 아, 이런 마음은 바로 군민(君民)을 요순(堯舜)의 군민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선왕(先王)005) 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도신(盜臣)이 권세를 잡고, 백이(伯夷)를 탐욕스럽다 하고, 도척(盜跖)을 청렴하다 하여 사(邪)로써 정(正)을 공격하니 삼정(三精)006) 이 흐려지고 인기(人紀)도 복망(覆亡)되었다.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를 따를까를 깊이 생각하였는데 하늘이 성충(聖衷)을 도우시어 어진 사람을 부르기로 마음 정하여 선마(宣麻)007) 가 구중 궁궐에서 내리고 초청하는 예물이 도로에 왕래하니 공은 분려(奮厲)하여 나라를 위해 몸바치기를 결심하였다. 바르고 엄숙한 직언(直言)을 의연한 기세로 말하였으니 그 누가 봉황이 한번 울자 이 많은 사람들의 다문 입이 열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아첨하는 간사한 무리들은 뼛속까지 선뜩함을 느끼고 자리나 지키던 관료들은 식은 땀을 흘렸다. 위엄은 종사를 안정시키고 충성은 조정을 격동(激動)시키자 사람들은 공에게 위태롭다고 하였으나 공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왕 말년에 매우 두려워하시어 간사한 무리를 내치고 어진 사람 찾기를 생각하시어 맨 먼저 공을 기용(起用)하여 역마를 자주 보내자 백의(白衣)로 등대(登對)하여 선(善)을 쌓을 것으로 진언(進言)하였다. 메아리가 울리듯이 서로 답응(答應)하였고 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서로 기뻐하였다. 공이 전에 살던 곳을 그리워하여 돌아가기를 재촉하니 백구(白駒)를 이 곳에 있으라고 잡아두기 어려웠다.008) 내가 보위를 이음에 미쳐서는 공의 명성을 사모하여 선왕의 뜻에 따라 여러번 사신을 보냈으나 공은 나를 멀리하고 오지 않으니 나의 정성이 부족함이 부끄러웠다. 충성을 쏟아 올린 상소에 말이 곧고 식견이 넓었으니 아침 저녁 병풍 대신에 이 글을 대하였다. 공이 와서 나의 팔다리가 되기를 바랬더니 어찌 한번 병에 걸려 소미(少微)009) 의 부름을 받게 될 줄 알았겠는가. 누구를 의지하여 내를 건너고 누구에게서 다시 높은 덕을 우러러보겠는가. 소자(小子)는 누구를 의지하고 백성은 누구에게 기대겠는가. 생각이 이에 미치니 나의 마음이 아프다.
옛적의 은둔(隱遁)한 사람들은 대대로 밝은 빛이 있었으니 허유(許由)와 무광(務光)이 명성을 세워 당우(唐虞)가 번창하였고 노중련(魯仲連)이 진(秦)나라에 항거하고 엄광(嚴光)은 한(漢)나라를 도왔다. 이들은 비록 하나의 절개를 갖었었지만 난(亂)을 평정하였는데 하물며 아름다운 덕이 금옥처럼 정고(貞固)한 데이겠는가. 몸은 시골에 묻혀있지만 세상의 경중이 되었고 빛은 한 시대를 밝히고 공은 백대(百代)를 보존시켰으니, 아무리 영광된 증직을 내린다 하더라도 어찌 그 예에 극진하다고 하겠는가. 옛날 선왕께서 함께 세상을 다스리지 못한 것을 한하셨으니 나는 이 말씀을 음미하면서 마음에 부끄러움을 갖었었는데 이제 공의 모습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이 한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남쪽 땅을 바라봄에 그리운 생각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깊다. 하늘이 어진이를 세상에 남겨주지 않아 대로(大老)가 이어 죽으니 나라가 빈 듯하여 모범이 될 사람이 없다. 사신을 보내어 사제(賜祭)하니 마음이 아프다. 정령(精靈)이 있다면 나의 정성을 흠향하기를."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39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註 005]선왕(先王) : 명종(明宗).
- [註 006]
삼정(三精) : 일·월·성.- [註 007]
선마(宣麻) : 대신의 임명을 알리는 조서.- [註 008]
백구(白駒)를 이 곳에 있으라고 잡아두기 어려웠다. : 어진 사람을 붙들지 못함을 말함. 어진 사람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그가 타고 온 말이 밭의 곡식을 뜯어 먹었다고 핑계를 대고는 고삐를 잡아매어 가지 못하도록 한 것을 노래한 시에서 나온 말. 《시경(詩經)》 소아(小雅) 기부지십(祈父之什) 백구(白駒).- [註 009]
소미(少微) : 처사(處士)의 별.河嶽正氣, 宇宙精英, 凝資秀朗, 賦質純明。 蘭畦茁芽, 詩禮之庭, 習文隷藝, 超群發硎。 早見大義, 旁搜蘊奧, 嘐嘐敢顔, 是造是期。 天椓斯文, 士失所導, 雕眞毁朴, 媚于時好。 益堅所志, 公不渝操, 餘事宏詞, 望道慥慥。 爰有所詣, 遂厭聲華, 握瑜懷瑾, 高栖(炯)〔烟〕 霞。 昕夕典墳, 益事講磨, 卓乎山峻, 淵盈河涵。 淸標霜潔, 馨德蘭薰, 氷壺秋月, 景星慶雲。 遠豈忘世, 憂深戚臣, 嗚呼此心, 堯舜君民。 先王初載, 盜臣秉柄, 夷貪跖廉, 以邪改正。 三精幾瞀, 人紀將覆, 仰念深思, 誰因誰極。 天祐聖衷, 銳意徵賢, 宣麻九重, 玉帛翩翩。 公斯奮厲, 爲國身損, 讜言風發, 義正辭嚴。 孰謂鳴鳳, 發此衆鉗, 奸諛寒骨, 具僚汗顔。 威鎭宗社, 忠激朝端, 人謂公危, 公不小慄。 及玆季年, 聖念深惕, 黜回屛奸, 思賢訪德。 首起我公, 馳驛頻繁, 白衣登對, 集善(効)〔勸〕 君。 答應如響, 魚水相欣, 公思舊居, 式遄其歸。 白駒難縶, 興言在玆, 逮予嗣服, 夙欽公聲。 遹追先志, 屢煩于旌, 公乎邈邈, 愧我菲誠。 瀝忠獻章, 言危識宏, 朝晡對越, 以代扆屛。 庶幾公來, 作我股肱, 詎意一疾, 小微告徵。 濟川誰倚, 高山何仰, 小子疇依, 生民誰望。 言念及此, 予心惻愴, 思昔隱遁, 代有烈光。 由務樹聲, 唐虞其昌, 魯連抗秦, 嚴光扶漢。 縱云一節, 尙或弭亂, 況乎美德, 金玉其貞。 栖身數畝, 爲世重輕, 光燭一代, 功存百世。 榮贈雖加, 豈盡其禮, 伊昔先王, 恨不同時。 予味斯言, 心懷忸怩, 音容永隔, 此恨何量? 眷彼南服, 山高水長, 天不憖遺, 大老繼零。 國以空虛, 奈無典刑, 聊伻泂酌, 予懷之傷。 精靈不昧, (韻)〔歆〕 我馨香。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39면
- 【분류】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註 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