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강에서 《근사록》을 강하고 기대승·윤근수 등이 역사를 공부하는 법을 논하다
상이 문정전 석강에 나아갔다. 《근사록(近思錄)》 제2권을 진강하였다. 기대승이 나아가 아뢰기를,
"지난번 장필무(張弼武)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삼국지연의(三國志衍義)》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천문(天文)·지리(地理)에 관한 책은 이전에는 숨겨졌다가 나중에 드러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사기(史記)의 경우는 본래 실전되어서 뒤에 억측(臆測)하기 어려운 것인데 부연(敷衍)하고 증익(增益)하여 매우 괴상하고 허탄하였습니다. 신이 뒤에 그 책을 보니 단연코 이는 무뢰(無賴)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고담(古談)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박(雜駁)하여 무익할 뿐 아니라 크게 의리를 해칩니다. 위에서 우연히 한번 보셨으나 매우 미안스럽습니다. 그중의 내용을 들어 말씀드린다면 동승(董承)의 의대(衣帶) 속의 조서(詔書)라든가 적벽(赤壁) 싸움에서 이긴 것 등은 각각 괴상하고 허탄한 일과 근거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입니다. 위에서 혹시 이 책의 근본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감히 아룁니다. 이 책은 《초한연의(楚漢衍義)》 등과 같은 책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종류가 하나뿐이 아닌데 모두가 의리를 심히 해치는 것들입니다. 시문(詩文)·사화(詞華)도 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더구나 《전등신화(剪燈新話)》나 《태평광기(太平廣記)》와 같은 사람의 심지(心志)를 오도하는 책들이겠습니까. 위에서 무망(誣罔)함을 아시고 경계하시면 학문의 공부에 절실(切實)할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정사(正史)는 치란(治亂)·존망(存亡)에 관한 것이 모두 실려 있어서, 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갓 문자만을 보고 사적(事迹)을 보지 않는다면 역시 해가 있습니다. 경서(經書)는 심오하여 이해가 어렵고, 사기(史記)는 사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경서는 싫어하고 사기를 좋아함은 온 세상이 모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유사(儒士)가 잡박(雜博)하기는 쉽고 정미(精微)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전등신화》는 놀라우리만큼 저속(低俗)하고 외설적(猥褻的)인 책인데도 교서관이 재료를 사사로이 지급하여 각판(刻板)하기까지 하였으니, 식자(識者)들은 모두 이를 마음 아파합니다. 그 판본(板本)을 제거하려고도 하였으나 그대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일반 여염 사이에서는 다투어 서로 인쇄하여 보고 있으며 그 내용에는 남녀의 음행(淫行)과 상도(常道)에 벗어나는 괴상하고 신기한 말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삼국지연의》는 괴상하고 탄망(誕妄)함이 이와 같은데도 인출(印出)하기까지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어찌 무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문자를 보면 모두가 평범한 이야기이고 괴벽(怪僻)한 것뿐입니다. 옛사람들은 ‘첫째는 도덕(道德)이라.’ 하였고, 또 ‘첫째는 대통(大統)이라.’ 하였습니다. 동자(董子)도 ‘육경(六經)의 과목(科目)에 들어 있지 않는 것은 모두 폐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자(王者)가 백성을 인도함에 있어 마땅히 바르지 않은 책은 금해야 합니다. 이는 그 해가 소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옛 임금 중에 가끔 사화(詞華)를 좋아하고, 염려(艶麗)를 숭상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영명(英明)한 군주가 천분(天分)이 매우 높으면 후세에 유전(流傳)하는 시편(詩篇)이 있는데, 저 수 양제(隋煬帝)·진 후주(陳後主) 같은 이는 지나치게 유의(留意)하다가 마침내는 망국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하였으니, 인주(人主)가 사화에 전념한다는 것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가(詩家) 가운데에는 옛사람의 성정(性情)을 읊은 글이 있기는 하나, 역시 과장 잡란(誇張雜亂)한 말이 있으니 위에서도 아셔야 할 일입니다. 우리 유자(儒者)의 학문 가운데에는 정(程) 주(朱)의 논의가 매우 옳은데, 근래 중원으로부터 유포되는 책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설문청(薛文淸)의 《독서론(讀書論)》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현재 이를 인출(印出)하고 있으나, 그의 의논도 역시 흠이 없지 않으니 배우는 자는 참고해 보는 자료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근래 배우는 자가 정주의 글은 심상히 여기고 새로 나온 책을 보기 좋아 하니 이 또한 해가 많습니다. 위에서는 아셔야 할 일입니다."
하였다. 윤근수(尹根壽)가 아뢰기를,
"《독서론》은 곧 설문청의 저서로서 그 사람이 천순(天順)012) 연간에 입각(入閣)하였는데 거취(去就)가 매우 바르고 진정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의논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하나 그 서책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주 외에 더욱 밝힐 논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서장도(四書章圖)》를 문청(文淸)은 파쇄(破碎)하다 하여 더욱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의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논한 태극(太極)은 또한 기(氣)를 우선하였으므로 문청도 노씨(老氏)의 학설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사서장도》를 지금 비록 인출하였으나 이러한 뜻은 마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근래 인출한 것으로는 또 《황명통기(皇明通紀)》가 있습니다. 무릇 역사를 저술하는 자는 반드시 한 나라의 종시(終始)를 보고 작성하여야 정사(正史)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한때의 견문(見聞)을 가지고 만들었으니 취사(取捨)한 의논이 어찌 바를 수 있겠습니까. 그 의논을 보면 바르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우리 나라가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여 한집같이 보고 있으니 집에서 조용히 보는 것은 괜찮겠으나 당대의 역사 기록을 백관에게 반포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하니, 기대승이 아뢰기를,
"정복심(程復心)의 《사서장도》는 당판(唐板) 1권이 있는데 지금의 이른바 《사서장도》와는 내용이 다릅니다. 이는 틀림없이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증익(增益)한 것입니다.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는 정복심이 만든 것입니다. 이황(李滉)이 이를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중도(中圖)와 하도(下圖)는 온당치 않은 곳이 있으므로 다시 고쳐 만들었고, 《서명심학도(西銘心學圖)》도 역시 복심이 만든 것인데 이황(李滉)이 전적으로 이에 의해 만들었습니다. 이황이 그 책을 얻어가지고 계달하여 인출(印出)해 반포하려다가 태극(太極)을 논한 곳에 근본이 크게 잘못된 곳이 있어서 배우는 자를 오도(誤導)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습니다. 위에서 먼저 이 뜻을 아시면 후일 반드시 짐작이 있으실 것입니다. 《황명통기》에는 좋은 말이 많이 있으나, 일대(一代)의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인출해 반포까지 하는 것은 미안할 듯 싶습니다. 역사로 본다면 그에 대한 취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니 크게 해로울 것이 없으나 그 시비와 거취(去就) 문제에 있어서는 잘못된 곳이 많기도 합니다. 그 책의 저자인 진건(陳建)의 사람됨을 알지 못하겠으나 대개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을 모두 하늘에 돌려서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은 그 도를 쓸 데가 없게 만들었으며, 태종(太宗)의 혁명과 모든 승패의 자취를 전부 하늘로 돌리었으니, 이도 바르지 못한 일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1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사상-유학(儒學) / 역사-사학(史學)
- [註 012]천순(天順) : 명나라 영종의 연호.
○壬辰/上御夕講于文政殿, 進講《近思錄》第二卷。 奇大升進啓曰: "頃日張弼武引見時傳敎內, 張飛一聲, 走萬軍之語, 未見正史, 聞在三國志衍義云。 此書出來未久, 小臣未見之, 而或因朋輩間聞之, 則甚多妄誕。 如天文地理之書, 則或有前隱而後著, 史記則初失其傳, 後難臆度, 而敷衍增益, 極其怪誕。 臣後見其冊, 定是無賴者裒集雜言, 如成古談。 非但雜駁無益, 甚害義理, 自上偶爾一見, 甚爲未安。 就其中而言之, 如董承衣帶中詔及赤壁之戰勝處, 各以怪誕之事, 衍成無稽之言。 自上幸恐不知其冊根本, 故敢啓。 非但此書如楚、漢衍義等書, 如此類不一, 無非害理之甚者也。 詩文詞華, 尙且不關, 況《剪燈新話》、《大平廣記》等書, 皆足以誤人心志者乎? 自上知其誣而戒之, 則可以切實於學問之功也。" 又啓曰: "正史, 則治亂存亡俱載, 不可不見也。 然若徒觀文字, 而不觀事迹, 則亦有害也。 經書則深奧難解, 《史記》則事迹不明, 人之厭經而喜史, 擧世皆然。 故自古儒士, 雜博則易, 精微則難矣。 《剪燈新話》, 鄙褻可愕之甚者。 校書館私給材料, 至於刻板, 有識之人莫不痛心。 或欲去其板本, 而因循至今, 閭巷之間, 爭相印見, 其間男女會淫、神怪不經之說, 亦多有之矣。 《三國志衍義》, 則怪誕如是, 而至於印出, 其時之人, 豈不無識? 觀其文字, 亦皆常談, 只見怪僻而已。 古人曰一道德, 又曰一大統, 董子亦謂諸不在六經之科者, 請皆絶之云。 王者導民, 當禁不正之書, 此其爲害, 與小人無異也。 古之人君, 間有嗜詞華, 而崇艶麗, 故英明之主, 天分甚高, 則後世或有流傳之升, 而如隋 煬帝、陳後主者, 偏着留意, 終致亡國。 人主之專意詞華, 言之亦可愧也。 詩家中, 或有古人吟詠性情之文, 而亦有浮誇雜亂之言, 自上亦可知之也。 吾儒學問中, 程、朱之論甚是, 而近來自中原流布之書不一, 《薛文淸讀書錄》, 亦其一也。 今方印出, 議論亦不能無疪。 學者以爲考見之資可也。 近來學者, 以程、朱之書爲尋常, 而喜見新出之書, 此亦多害。 自上亦可知之也。" 尹根壽 啓曰: "《讀書錄》, 乃薛文淸所著, 其人於天順年間入閣, 出處甚正, 眞從事學問之人也。 其於議論間, 不知何如, 而其書則不爲偶然也。 然程、朱之外, 有何益明之論哉? 《四書章圖》, 文淸以爲破碎, 尤令學者生疑, 而所論太極, 亦以氣爲先, 故文淸亦以爲老氏之說。 《四書章圖》, 今雖印出, 而此意當可知也。 近來印出者, 又有《皇明通紀》。 凡作史者, 必見一國終始而成之, 乃爲正史。 而此則因一時聞見而爲之, 取舍議論, 烏得正乎? 見其議論, 亦多不正之處, 我國至誠事大, 視如一家, 若在家僭見則可也。 當代史記, 至於頒布百官, 極爲未安。" 大升曰: "程復心 《四書章圖》, 有唐板一卷, 與今所謂《四書章圖》有異, 必因此而增益也。 《心統性情圖》, 程復心所作也。 李滉倣此爲之, 而中圖下圖, 則有未安處, 故改之。 《西銘心學圖》亦復心所作, 滉專依此而爲之也。 李滉得其冊, 欲啓達印布, 而其論太極處, 根本大誤, 恐誤學者, 竟不果也。 自上先知此意, 則後日必有斟酌矣。 《皇明通紀》, 多有好語, 一代之事, 人無不知, 至於印頒, 則似乎未安, 而以史見之, 取舍在我, 則亦非大害也。 然其是非去就之間, 或多謬誤之處, 陳建之爲人, 不可知也, 而大槪成敗利鈍, 皆歸之天, 而禮樂刑政, 無所用其道。 至以太宗之革除, 與凡勝敗之迹, 幷歸之天。 此亦不正也。"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1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사상-유학(儒學)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