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제학 노수신이 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다
직제학 노수신(盧守愼)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해도(海島)017) 에 구금된 지 20년 만에 외람되게도 명종 대왕의 특명을 받아 가까운 곳으로 옮겼고, 주상 전하께서 왕위를 이으신 처음에 석방하고 벼슬을 회복하는 명이 같은 날에 내리고 가까운 자리에 두시고자 거듭 명을 내려 부르시니, 신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에 달려와 사은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경연에서 모시게 되니 신하된 분수로서는 너무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효성을 다하려는 사정이 급박하여 정사(呈辭)하고 휴가를 받아 황송하게 생각하면서 남쪽으로 돌아가 부모를 만나 뵈니 뜻밖의 은혜로 기쁨이 넘쳐 울음으로 변하였습니다. 곧 죽음을 무릅쓰고 진정(陳情)하려던 차에 신은 재촉하여 길을 떠나라는 성지를 받들었습니다. 신은 명을 듣고 즉시 떠났는데 서울에 와서 불차(不次)로 올려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항상 진심을 나타내는 글을 써서 정사하려고 생각하다가 그만두곤 한 지 50여 일이 되었습니다. 시골 소식이 아득하고 헛소문과 실지가 반반씩이어서 객지의 차가운 방에서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삼가 생각하니, 남다른 은혜에 연연하여 머뭇거릴 때에도 마음이 격동하고 땀이 났으니 부모의 상을 만난다면 그 아픔이 어떻겠습니까. 아, 신의 아비는 금년 73세인데 파리하게 늙어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눈까지 어두우며, 신의 어미는 금년 72세인데 근심과 노고로 병이 들어 숨이 가쁘고 귀가 먹었습니다. 신이 귀양살이 중에는 어찌할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현달하고 영화로와도 여러 달 봉양을 못하였으니 신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의 부모가 상주(尙州)에 조금 논밭이 있으므로 그곳에 가서 4년간 생활하고 있는데 생계가 보잘것없어 겨우 자급할 뿐입니다. 신의 남동생 하나와 누이동생 하나가 서울에 있는데, 그들은 아이들이 방안에 가득하여 살아가기도 경황이 없으며, 신만이 홀로 자녀가 없고 산업(産業)이 없어 전심으로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음식 봉양을 하고 약시중을 할 수 있으니 신은 실로 마지막 봉양할 몸입니다. 더구나 신은 20여 년 만에 부모를 뵈었으니 지난날 모시지 못했던 슬픔이 더욱 간절하고, 부모도 20여 년 만에 신을 만났으니 사실 날이 많지 않은 두려움이 더욱 다급합니다. 신은 정말 멀리 나다닐 몸이 아닙니다. 형편이 이렇고 사정이 이러하니 신은 정말 괴로운데 신의 번민은 또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전부터 몸이 쇠약한 데다가 장려독(瘴厲毒)이 쌓였고 두려움과 근심 걱정으로 온 몸이 병들어 시력도 흐려졌으며 왼쪽은 눈물만 나고, 잘 들리지 않은 귀도 한쪽은 먹었으며, 해묵은 기침과 현기증에다 요즈음 심복(心腹)의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몸을 앞뒤에서 부축하며 풍설을 무릅쓰고 와서 대궐에 가 숙배할 때 목숨은 겨우 붙어 있었고 입시하고 문을 나설 때는 쓰러질듯 겨우 걸었으며, 강설(講說)을 드리고 하문을 받드는 것도 겨우 소리를 이어가며 근근이 넘어갔을 뿐으로 이는 상께서 이미 환히 아시는 일이거늘 어찌 오래도록 제자리 아닌 곳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금년에 나이가 54세이므로 병을 참고 힘써 배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형편이 이미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 신이 나아가면 조정에 누를 끼치고 어버이의 봉양만 폐해지며, 물러가면 개인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라의 효정(孝政)이 더욱 드러날 것이니 신의 득실(得失)이 여기에서 보입니다. 신이 삼가 《대전(大典)》을 살펴보니 ‘70세 이상의 어버이가 있는 경우 한 아들은 돌아가 봉양한다.’ 하였으니, 이는 곧 사람에게 효도를 가르친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는 신의 충정을 살펴 신의 직명을 풀어주심으로써 다시 태어난 신자(臣子)로 하여금 장차 죽을 부모를 편히 봉양하고 함께 황천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면 마치 신선이 될 것 같습니다. 신이 남은 목숨을 가지고 명주(明主)를 위하여 잠깐 한 마디 하지 않고 갑자기 죽는다면 그저 불충을 가중시키고 불효를 크게 할 것입니다. 다만 죽었다 살아남은 끝에 입은 상처가 심한 데다 사정이 절박하여 말이 조리가 없으니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 상소를 보니 어버이께 효도하는 마음이 지극하고 극진하다. 그러나 지금 해직한다면 내가 어진 선비를 얻으려는 뜻을 잃게 될 것이니, 해직하지 않더라도 자주 가서 어버이를 뵈면 될 것이다."
하고, 전교하기를,
"휴가 다녀올 말[馬]을 주는 것이 좋겠고, 노친(老親)에게는 그 도의 감사에게 먹을 것을 제급(題給)해 주도록 하유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9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017]해도(海島) : 진도(珍島)를 말함.
○己丑/直提學盧守愼上疏曰:
伏以, 臣自拘海島, 垂二十年, 謬蒙明宗大王特命以近壤。 伏遇主上殿下繼照之初, 釋囚復官, 命下同日, 旋備邇列, 重以嚴囚, 臣不勝恇駭, 奔馳謝恩, 踧踖侍筵, 犬馬之分已逾, 烏鳥之私遽迫, 呈辭受暇, 竦戴南歸, 得與父母相見。 橫寵溢歡, 翻成傷泣, 方欲冒死陳情, 尋承有旨, 催臣上道。 臣聞命輒行者, 至京得報, 陞授不次, 益以震惕, 置身無地。 每思瀝血書辭, 將發復己者, 遠五十日餘矣。 鄕音杳杳, 虛實亦半, 旅宿寒齋, 終夜不寢。 竊自念, 貪戀殊渥, 遲廻之際, 心動汗出, 脫終天有慟, 將何所於歸? 嗚呼! 臣父今年七十有三, 纖羸至老, 坐痺目眚; 臣母今年七十有二, 憂勞成疾, 急喘全聵。 臣在謫中, 知其無可奈何而已。 今(叩)〔叨〕 顯榮, 顧失數月之養, 臣不知所出。 臣父母以尙州薄有田園, 就食四載, 生事草創, 僅能自給。 臣止有一弟一妹, 在都下, 兒息盈室, 救死不(瞻)〔贍〕 。 獨臣無子女, 無産業, 庶專心左右之、菽水之、藥餌之, 臣實爲終養之身。 況臣二紀而得父母, 則往日無及之悲愈切, 父母二紀而得臣, 則來日無多之懼益急, 臣實非遠遊之身, 勢如是、情如是, 臣實憫焉。 臣之所悶, 又不止是。 臣以蒲柳早衰, 瘴癘積毒, 悸惴思慮, 內戕外敗, 翳視左淚, 重聽偏膿, 宿患嗽眩, 暴告心腹, 前後扶曳, 蒙犯風雪, 赴闕肅拜, 幾殊復。 且入侍出門, 僵而行, 其所以開講說、承顧問者, 亦纔續聲氣, 粗拾緖餘而已。 此聖鑑所已洞照, 豈容久竊匪其據乎? 臣今年五十有四, 亟欲力疾强學, 蓋已無足言者。 嗚呼! 臣進則有累公朝, 而親養徒廢; 退則得伸有計, 而孝治彌彰, 臣之得失, 於玆見矣。 臣謹按《大典》, 有七十以上親者, 一子歸養, 正所以敎人孝也。 伏願, 殿下察臣衷懇, 解臣職名, 許令再生臣子, 便養將死父母, 遂與同歸九泉, 賀猶羽化也。 卽臣不以殘命, 爲明主瞥然一言, 便宿昔而死, 適以重不忠, 而大不孝。 顧魚肉之餘, 摧廢已甚, 計遍情危, 言語無倫, 罪當萬殞, 罪當萬殞。" 答曰: "觀此上疏, 孝親之心, 至矣盡矣。 然今若解職, 則予得賢士之意失矣。 雖不解職, 頻往往覲親, 可也。"
傳曰: "給由馬可也, 老親處, 食物題給事, 其道監司處, 下諭可也。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9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