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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34권, 명종 22년 6월 12일 을미 2번째기사 1567년 명 가정(嘉靖) 46년

환궁할 때 교방 가요를 봉축한 곳에서 연을 멈추다

상이 환궁할 때 유생·노인·기녀들이 각기 길가에 채붕(綵棚)을 설치하여 놓고 가요(歌謠)를 바쳤는데, 교방 가요(敎坊歌謠)를 봉축(奉軸)한 곳에 이르러 얼마동안 연(輦)을 멈추고 계시니 지평 이우직, 정언 정탁이 연 앞에서 아뢰기를,

"이런 것이 비록 예사이기는 하지만 연을 너무 오래 멈추시면 일국의 신민들이 매우 미안하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기예가 많아서 형세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온 나라가 우러러 보는 자리여서 미안할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낸 후여서 옥체가 수고로우신데 더위를 무릅쓰고 연을 멈추시니 더욱 미안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정재(呈才)가 이미 끝났으니 이제 곧 거둥하겠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상중에 있으면서 애모하느라 편치 않고 애통해 하다가 심지어 병까지 생겼다. 지금 비록 예를 마쳤다 하지만 추모하는 정성으로 필시 성상의 마음이 아플 터인데 한번 희기(戲技)를 보자 모르는 사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사람의 마음 가지기 어려운 것이 반수(盤水)를 받드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모든 언동(言動)의 잘못은 책임이 간관(諫官)에게 있는데도 연앞에 둘러 모시고서 그 놀이를 열심히 구경했다. 비록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여 서로 바라보면서 실색(失色)하였지만 또한 즉시 간쟁(諫諍)하여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그랬다가 파할 임시해서 부드러운 말로 겨우 그 책임을 메웠으니 옛날 버드나무를 꺾어 간쟁한 일이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간쟁한 사람들과는 동등하게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결붕하는 처음에 간하여 중지시키지 못하고 환가하는 날에야 잘못을 고치려 했으니 어찌 임금을 계도하는 도리이겠는가.

사신은 논한다. 상을 마치고, 부묘하는 예를 마친 것은 가위 온 나라의 큰 경사라 하겠다. 백성들이 떠받드는 마음으로 상이 슬퍼하는 가운데서 병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으니 누구인들 성덕(聖德)을 칭찬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겠는가. 가요를 하는 것도 정문으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다만 시송(詩頌)을 현가(絃歌)에 올린 일은 있었으나 다른 이상한 기예가 있어 이목(耳目)을 즐겁게 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니, 채붕을 맺는 것은 이 무슨 허식이란 말인가. 금수(錦繡)·능사(綾紗)로 문장(門墻)을 꾸미고, 주기(珠璣)·금옥(金玉)으로 기둥을 얽어매고, 이상한 화초(花草)와 금수(禽獸)가 달리는 형상을 그려서 이상한 것을 다투어 올려서 추태를 다 갖추었으니, 어찌 예악과 문물의 나라에 이런 괴뢰(傀儡)와 창우(倡優)의 놀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비록 노인과 기녀들의 가요로 강구곡(康衢曲)은 있을지라도 연기의 모습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더구나 공문(孔門)의 학도로서 바야흐로 예의를 배우면서 그런 일을 진정(進呈)했단 말인가. 그것을 준비할 때에 별도로 도청을 설치하고 과조(科條)를 세워 관인(館人)을 지휘해 방방곡곡을 횡행하면서 공후(公侯)와 갑제(甲第)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모조리 찾아내 온 나라의 아름다움을 다하여 임금에게 보이기 위해서 수개월의 역사를 하루의 놀이에 이바지하였으니 그 소란과 훈련이 얼마나 번거로웠겠는가? 아, 태학은 수선(首善)하는 곳으로 인재를 양성하여 후일에 쓰기 위한 것이요 장차 자기가 배운 바를 가지고 임금을 도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무상(無狀)한 일을 하여 임금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 하니 이것이 어찌 유자의 죄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구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과감히 개혁하지 못한 잘못이다. 한번 크게 잘 다스려 보려는 임금의 큰뜻을 분발하여 백년의 묵은 폐습을 씻어 일대의 이목을 새롭게 하려면 이런 일들은 하루 안에 다 제거해야 할 것인데, 아, 애석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3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5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정론-간쟁(諫諍) / 역사-사학(史學) / 예술-음악(音樂)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上還宮時, 儒生、老人、妓女等各備結綵棚於路傍, 以奉歌謠。 至敎坊歌謠奉軸處, 駐輦移時。 持平李友直、正言鄭琢啓于輦前曰: "雖是例事, 而駐輦太久, 一國臣民至爲未安, 敢啓。" 答曰: "多般呈技, 勢自然也。" 再啓曰: "一國瞻仰之地, 非但未安, 行祭後玉體勞動, 冒暑駐輦, 尤爲未安。" 答曰: "呈才已畢, 今將擧動矣。"

【史臣曰: "亮陰之中, 哀慕不寧, 轉輾摧痛, 至於成疾。 今雖禮畢, 追慕之誠, 必疚聖懷, 而一見戲技, 不覺至此。 人心之難持, 甚於盤水之難奉。 豈不深可畏哉? 一言一動之失, 責在諫官, 而環侍輦前, 熟視其戲雖未能自安相顧失色, 而亦不卽進諍救正其失, 至於臨罷之時, 敢發軟熟之語, 僅塞其責。 其視古人折柳之諫、牽裾之諍, 不可同年而語矣。 然不能諫止於結棚之初, 而欲矯其枉於還駕之日, 亦豈納約之道乎?"】

【史臣曰: "亮陰喪畢, 祔廟禮成, 可謂一國之大慶也。 以臣民咸戴之心, 庶幾無疾病於哀疚之中, 孰不嗟嘆聖德而頌美之乎? 歌謠之作, 亦情文之不已者也。 然古之時, 只有詩頌被之絃歌, 而未聞有他奇技以耀耳目, 則綵棚之結, 是何等虛文也? 錦繡綾紗, 繪飾門墻, 珠璣金玉, 點綴楹桶, 剪綵花草之妖, 驚走禽獸之狀, 爭呈奇怪, 備諸醜態, 豈謂禮樂文物之邦而有此傀儡倡優之戲耶? 雖以老人妓女之謠, 自有康衢之曲, 不須伎倆之態。 況孔門之徒方學禮義, 而亦以此進呈乎? 當其辦集也, 別作都廳, 嚴立科條, 指揮館人, 橫行坊曲, 公侯甲第之藏, 無不窮搜, 務盡一國之美, 庶逞重瞳之玩, 經營數月之役, 以供一日之戲, 其騷擾之弊、鞭撻之煩, 又無所紀極矣。 嗚呼! 大學, 首善之地也。 儲養人才, 待用他日者, 將以行己所學, 引君當道, 而先爲無狀之事, 以娛其心, 是豈儒者之罪哉? 因循舊轍不能勇革者之過也。 使大有爲之君, 奮大有爲之志, 則足以洗百年之弊習, 新一代之耳目, 如此之類, 將不日而盡除矣。 嗚呼, 惜哉!"】


  • 【태백산사고본】 21책 34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5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정론-간쟁(諫諍) / 역사-사학(史學) / 예술-음악(音樂)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