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인이 부친 이언적이 찬한 진수 팔규(進修八規)를 올리다
고(故) 찬성(贊成) 이언적(李彦迪) 【중종조의 명신인데 인종이 더욱 후대하였다. 효우와 학행이 한때 표준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간(權奸)들의 모함을 입어 강계(江界)로 귀양가 죽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슬퍼하였다.】 의 아들 이전인(李全仁) 【이언적 첩의 아들이다. 그 어미는 기생이었는데 이언적에게서 이미 전인을 임신하고는 조윤손(曺閏孫)의 첩이 되었다. 그런 때문에 전인은 오랫동안 조씨로 행세하였다. 조윤손이 죽자, 그 어미는 비로소 이언적의 아들임을 말하였다. 그러자 전인은 조윤손의 재산을 다 팽개치고 이언적을 강계로 찾아가서 드디어 부자의 관계가 되어서 정성껏 봉양하고, 또 조윤손은 양육의 은혜가 있다 하여 심상(心喪)으로 보답했다 한다.】 이 이언적이 찬한 진수팔규(進修八規)를 바치고 이어 상소를 올리기를,
"신은 들으니 ‘천기(天氣)는 아래로 만물을 화육(化育)하여 그 공이 빛나고 땅은 낮은 데 처하여 그 기운이 위로 올라간다.’ 합니다. 대개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높고 낮음이 현격하나 기운이 위아래로 서로 교접한 뒤에야 능히 화육의 공을 이루어 만물이 육성하게 됩니다. 옛적의 성왕(聖王)은 천덕(天德)을 몸받고 천심(天心)에 순응하여 비록 숭고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항상 백성을 구휼할 뜻을 가지되 오히려 아랫사람의 의사가 막혀 전달되지 못하고 은택이 베풀어지지 않는 바가 있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런 때문에 비근한 말도 반드시 살피고 하찮은 사람의 의견도 반드시 채택하여 능히 천하의 사정을 통해서 끝내 오변(於變)167) 의 치세를 이룩하였던 것입니다. 신은 미천한 신분으로 외람되이 소회를 진술하여 성총을 번거롭게 하여 감히 분수에 넘친 죄를 지었으니 참망(僭妄)한 주벌(誅罰)을 도피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군신지의(君臣之義)는 실로 부자지친(父子之親)과 같은 것입니다. 충효지심(忠孝之心)은 다같이 하늘에서 얻어 당초 흠결이 없기 때문에 옛날 충의지사(忠義之士)의 우국 충정은 비록 초야에 처해 있는 몸이라 하더라도 유악(帷幄)에 있는 처지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강개한 심정에 더러 눈물을 거두지 못한 경우까지 있었는데, 무엇을 하기 위한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성 측달(至誠惻怛)한 마음이 천성(天性)의 진실에서 발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의 진언하는 바도 역시 간절한 지성에서 나온 것이니, 성상께서는 이 정상을 어여삐 여기시고 다소 용서하여 살펴주소서.
삼가 듣건대, 전하께서는 상성(上聖)의 자질로 열성(列聖)의 계통을 이으시어, 소의 한식(宵衣旰食)168) 하시면서 정신을 가다듬어 치세를 도모하여 청백(淸白)을 포장하고 유일(遺逸)을 거용하며, 빈궁한 백성을 진휼하고 외로운 사람을 애긍히 여기시며, 재이(災異)의 견책을 만나면 수성(修省)의 도리를 다하시며, 매번 간절한 전지(傳旨)를 내리어 충직(忠直)한 말을 들으려 하시며,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아끼시는 뜻이 이르지 않은 데가 없으므로 전국의 백성들은 성은을 입어 기뻐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치 효력이 있은 지 이미 오래라서 유풍(儒風)이 다시 떨쳐 초야에는 버려진 현자(賢者)가 없고 아름다운 말이 묻혀 있지 않습니다. 자취를 감추고 은둔하여 도덕을 닦는 선비들은 모두 충모(忠謨)를 바쳐 성정(聖政)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신은 비록 어리석고 미천하나 역시 타고난 떳떳한 천성을 가지고 다행히 성대(聖代)에 살고 있는데, 어찌 홀로 헌근(獻芹)169) 의 미세한 정성이 없겠습니까. 다만 학술이 거칠고 견문이 고루하여 끝내 소회를 한번 진언하여 성상의 들으심을 새롭게 한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의 아비인 언적(彦迪)이 찬한 진수팔규(進修八規)는 아마도 성공(聖功)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있을 것 같기에 지금 죽음을 무릅쓰고 바치니, 전하께서는 채택해 주소서.
신의 아비가 평생 동안 가진 애군 충국(愛君忠國)의 생각은 험난한 역경에 처해서도 간단이 있는 때가 없었습니다. 중종(中宗)의 지우를 만나 마음을 기울여 섬기되 아는 것이면 무엇이든 말하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일강(一綱) 십목(十目)으로 된 상소를 올리니, 중종께서 칭찬하기를 ‘언론의 강정(剛正)은 비록 옛적의 진덕수(眞德秀)170) 라 하더라도 이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하고, 곧 세 벌을 전사(傳寫)하여 동궁(東宮)과 외조(外朝)에 보이게 하고, 글을 내려 아름다움을 포장하는 등 대우가 극진하고 은총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신의 아비는 그 은혜를 조금도 보답하지 못하고 갑자기 정호(鼎湖)171) 의 애통을 당하여 한없이 호곡(號哭)하고 항상 망극지통(罔極之痛)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시자, 신의 아비는 맨 먼저 강석(講席)에 참여하여 성상의 자질이 영명하고 성상의 목소리가 명랑하심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기쁨에 넘쳐 눈물이 턱을 적시었습니다. 충정(忠貞)의 절의를 바치고 보익(輔翼)의 도리를 다하려고 생각하였는데, 불행하게도 나이 80이 된 병든 모친이 멀리 남애(南涯) 【경주(慶州).】 에 있었습니다. 이에 병오년 봄에 신의 아비는 휴가를 받아 귀성하였는데, 곧 끊어질 듯한 목숨이 조석을 보전하지 못할 것 같으므로 절박한 정리에 차마 멀리 떠날 수가 없어서, 진정(陳情)의 소장을 올리고 그대로 머물러서 봉양하기를 빌었었지만 세 번이나 따뜻한 위로의 전지만을 받고 끝내 윤허는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해 가을에 모친의 병이 조금 낫자 장차 대궐에 들어가서 사은하려고 하였었는데, 물의(物議)가 있어 파직을 당하였고, 이듬해 가을에는 재차 은견(恩譴)을 받아 서쪽 변방으로 귀양갔습니다. 궁한 변방에서 백발은 성성했지만 성상에 대한 일편 단심은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바른 말을 구하는 전지를 만나고 자신을 죄책하는 교서를 볼 적마다, 신의 아비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성명(聖明)이 이와 같으니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인데 죄를 짓고 먼 지방에 유배된 몸이지만 포부를 개진하여 한번 군부(君父)에게 알릴 수 없겠는가.’ 하고, 이에 진덕 수업(進德修業)의 뜻을 취하여 부연해서 팔조목(八條目)을 만든 다음 그를 이름하여 진수팔규(進修八規)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따로 설정한 한 조목이 있는데 그것은 신의 아비가 성상께서 원자를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추후로 듣고는 또 다시 국본(國本)을 교양하는 데 대한 조목을 찬하여 뒤에 붙인 것입니다. 정하게 써서 장차 올리려 하였는데 천문(天門)이 막혀 전달할 길이 없었으므로 【이언적이 이 팔규(八規)를 찬하여 현도(縣道)를 따라 올리려 하였는데, 홍섬(洪暹)이 이 때 감사로 있으면서 중지시켰으므로 결국 올리지 못하였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그만 죽어버리고 그 글만이 남아 있는데 말은 간단하나 뜻은 원대하고 사연은 적실한데 이치가 갖추어졌으니, 제왕의 마음을 보존하고 정치를 하는 요령도 여기에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정무를 보시는 여가에 열람하시어 깊이 완미하고 체험하여 살피신다면 날로 덕을 새롭게 닦는 공부에 반드시 조금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 옛 신하의 보국하기 위한 뜻은 거의 죽게 된 지경에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임종시에 집안 일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오직 말하기를 ‘나는 세 조정에 걸쳐 받은 후은(厚恩)과 총악(寵渥)이 산 같은데 그에 대한 보답이 전연 없었으니, 먼 변방에 버려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성상의 인자와 용서를 힘입어 7년 동안 변방 거친 땅에서 천수(天壽)를 길이 보존하게 되었으니, 헤아릴 수 없는 그 성은은 분골 쇄신하더라도 갚기 어렵다. 다만 생각건대, 이 찬한 진수팔규가 성학(聖學)에 도움이 있을 것이니, 만일 잘 올려져서 혹 채택이 된다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겠다. 옛사람도 죽음에 임하여 유표(遺表)를 남긴 일이 있었으니 곧 이런 뜻에서다.’ 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운명하였습니다. 신은 밤낮으로 슬피 울며 천리길에서 관을 붙들고 눈 속에서 잠을 자곤 하였습니다. 본디 편고질(偏枯疾)에 걸려 촌보(寸步)도 걷기가 어려워서 멀리 바닷가에 엎드려 있었으매, 천로(天路)가 아득하여 아뢸 길이 없었으므로 미처 진수팔규를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위로는 명주(明主)께서 바른말 듣기를 갈망하시는 성의를 저버리고 아래로는 망부(亡父)가 죽음에 임하여 임금을 돕는 뜻을 저버려, 저승에 있는 혼령으로 하여금 영원히 무궁한 한을 품게 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항시 북신(北辰)을 바라보며 한없는 애통을 품어 왔습니다.
삼가 듣건대, 성덕이 날로 증진하여 넓은 도량이 하늘과 같아 형정(刑政)이 혹 잘못될까 두려워하고 환과(鰥寡)의 무고함을 불쌍히 여기시며, 죄를 사면하여 모두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고 잘못을 씻어주어 지나간 일을 용서하시므로 은택이 두루 흡족하고 화기가 멀리 넘쳐 귀신과 사람이 다 기뻐하고 온 나라가 다함께 경하한다고 합니다. 성명 성시(聖明盛時)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우므로 신은 병든 몸을 이끌고 관도(官途)를 기어서 신의 아비가 찬한 이 글을 엄한 주벌을 피하지 않고 바쳐 성상께서 열람하시기를 바라오니, 전하께서는 애긍히 여기시어 살피어 주소서."
하였다. 진수팔규에,
"신이 삼가 상고하건대, 공자는 《역(易)》을 찬(贊)할 때 건괘(乾卦)의 구삼(九三)에서 학문하는 방법을 설명하기를 ‘군자가 덕(德)을 진취하고 업(業)을 닦는 것은, 충신(忠臣)이 덕을 진취하는 것이고 언사(言辭)를 수성(修省)하여 자신의 성의(誠意)를 세움이 업을 지키는 것이다.’ 하였으니, 대개 덕은 도(道)를 마음에 얻은 것이고 업은 공(功)이 일에 나타난 것입니다. 《대학(大學)》의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은 덕이고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는 업입니다. 군자는 학문에 뜻을 두어 밤낮으로 근면하여 간단할 때가 없기 때문에 덕의 진취됨이 날로 더욱 높고 업의 닦임이 날로 더욱 광활합니다. 민첩하지 못한 신은 또 진덕 수업의 뜻을 취하여 부연해서 팔규(八規)를 만들어 성학(聖學)의 도움이 되게 하니, 한가한 시간에 잠깐 열람하여 깊이 음미하고 힘써 행한다면 제왕의 마음을 보존하고 정치를 하는 요령과 하늘을 잇고 표준을 세우는 방법이 여기에 갖춰져 있는 것으로 신은 간절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 첫째는 도리를 밝히는 일입니다.
신은 듣건대, 도(道)라는 것은 날마다 쓰는 사물에서의 마땅히 행할 이치이니 모두 성(性)의 덕으로 마음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도가 있지 않은 물(物)이 없고 있지 않은 때가 없으니, 이른바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날마다 쓰는 것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으로 말하면, 군신(君臣)이 된 자에게는 군신의 이치가 있고 부자(父子)가 된 자에게는 부자의 이치가 있고 부부(夫婦)가 되고 장유(長幼)가 되고 붕우(朋友)가 됨에서부터 출입하고 기거하고 사물을 응접하는 데에 이르기까지도 각각 이치가 없지 않습니다. 대개 사람은 천부의 성을 품부받고 만물이 다 내몸에 갖추어져 있으니, 그 이치를 밝히고 그 성품을 다한다면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천지에 참여하여 만물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제왕의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요령이라든가 고금의 치란 흥망에 대한 변수라든가, 인재(人材)·도술(道術)·사정(邪正)·시비(是非)의 구분이라든가 천명(天命)·인심(人心)·거취(去就)·이합(離合)의 기미와 같은 것에는 모두 지극히 나타나고 지극히 은미한 이치가 있어, 그것이 다 경훈(經訓)과 사책(史策) 속에 갖추어져 있는데, 진실로 강명(講明)하지 않아 현혹되는 바가 있다면 또한 어떻게 큰 도를 밝히고 취사(取舍)를 정하여 백성에게 중도를 세우겠습니까. 이런 때문에 제왕의 학문은 이치를 궁구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니, 이치를 궁구하면 천하의 사물에 대하여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을 모두 알아 사소한 의심도 없어 선한 것은 따르고 악한 것은 버려서 털끝만한 하자도 없이 일관(一貫)의 묘(妙)에 통달하여 모든 일을 제어하고 모든 정무를 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이치를 궁구하는 요령은 반드시 글을 읽는 데 있고 글을 읽는 방법은 또 순서에 따라 정밀하게 하는 데 있으며, 정밀하게 하는 근본은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란 물건은 지극히 허령(虛靈)하고 헤아릴 수 없이 신묘하여 항시 한 몸의 주인이 되고 모든 일의 강령을 제어하므로 잠시라도 굳게 간직하지 않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한 번만 자각하지 않고 멋대로 내달려 형체 밖에서 물욕을 따르게 한다면, 한몸에는 주인이 없고 모든 일에는 강령이 없어 무엇을 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무엇을 들어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떻게 능히 성현의 교훈을 연구하고 의리의 귀추를 강구하며 윤리를 살피고 물리를 구명해서 그 극치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말한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게 없고 방종한 마음을 구하는 것뿐이다.’ 한 것은 바로 이걸 말한 것입니다.
참으로 능히 공경하고 두려워함으로써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여 종일 의젓한 태도를 해서 마치 명경 지수(明鏡止水)처럼 되어 물욕에 침란(侵亂)을 당하지 않게 하고, 이 마음으로 글을 읽고 이 마음으로 이치를 관찰하면 어디에나 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이 마음으로 일을 응하고 이 마음으로 물건을 접하면 어디나 온당하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경(居敬)이란 성학(聖學)의 시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날마다 현덕(賢德)의 선비를 친근히 하고 도의(道義)의 근원을 강마하되 반드시 경(敬)으로써 주(主)를 삼으소서. 경(敬)이란 주일 무적(主一無適)172) 을 말한 것이므로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오고 성인의 사리를 연구하고 본성을 다하는 공도 여기에 있는 것이니, 성상께서는 유념하소서.
그 둘째는 큰 근본을 세우는 일입니다.
신은 상고하건대, 선유(先儒)인 주희(朱熹)는 임금의 마음으로 천하의 큰 근본을 삼았습니다. 그의 말에 ‘천하의 일이 천변 만화하여 그 단서가 무궁하지만 하나도 임금의 마음에 근본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천하의 일이 바르지 않은 게 없고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천하의 일이 사특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는 자연의 이치인 것입니다.
대개 임금은 만민 위에 자리하여 모든 정사를 다스리니, 그 마음이 크게 공명하고 지극히 정대하여 마치 해가 중천에 떠서 만물을 비추듯 편벽되이 가리운 바가 없은 연후에야 호령을 발하거나 어진이를 임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 모두 이치에 합하고 조정이 그로써 바르게 되어 백관·만민이 모두 올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마음이 일호라도 사사(私邪)의 가리움이 있고 보존한 바와 발한 바에 조금만 차실이 있으면 근본이 바르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조정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바르게 하여 만민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건대, 표물(表物)이 단정하여야 그림자가 곧고 근원이 흐리면 유파가 더러운 것과 같으니, 그 이치는 반드시 그러한 것입니다. 옛적의 성제(聖帝)와 명왕(明王)이 전수(傳授)할 때 자상히 경계함에 있어서 일찍이 심법(心法)으로 우선을 삼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대저 마음의 본체는 광대(廣大)하고 허명(虛明)하여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으니, 그 마음을 잘 기른다면 천지와 같이 크고 일월과 같이 밝아서 큰 것은 가히 만물을 표용하여 천지 사이의 만백성과 모든 물건이 다 그 혜택을 입을 것이고, 밝은 것은 족히 만물을 비추어 사물 사이의 시비·사정이 모두 형체를 숨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기강(紀綱)이 그로 말미암아 서고 풍화(風化)가 그로 말미암아 행해져서 천하 국가가 그로 인하여 다스려질 것이니, 마음의 덕이 참으로 성대한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간직하여 밝은 정치를 이룩한 자는 바로 요순(堯舜)과 삼왕(三王)173) 으로 이 때문에 성군이 되었고, 이 마음을 잃어버려 망국의 화를 부른 자는 바로 걸주(桀紂)·유려(幽厲)174) 로서 이 때문에 광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보존하고 잃어버리는 계기는 바로 한 생각의 경건함과 방사한 사이에서 결정되는 데 치란이 여기에서 판명나는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개 임금의 마음이 허명(虛明)하고 공정(公正)하여 잡됨없이 순일(純一)하면 외물이 능히 미혹하지 못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공략자가 매우 많아서 혹은 아첨으로 혹은 간위(姦僞)로 혹은 기기(奇技)로 혹은 사설(邪說)로 혹은 기욕(嗜欲)으로 집중 공략하여 각각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고자 할 터인데, 임금이 조금 경계심을 게을리하다가 어느 하나라도 받아준다면 난망(亂亡)이 밀어닥칠 것입니다. 무릇 이상 몇 가지는 모두 마음을 미혹시키는 독약이니, 미연에 방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만물의 원리를 고요히 관찰하시어 항상 조심하는 생각을 간직하고 외유(外誘)의 엄폐를 통렬히 끊어 한 마음의 덕을 온전하게 하소서. 이렇게 하여 정치에 실시한다면 그 공효의 묘리가 미세한 것에서 드러난 것에 이르기까지 또는 안에서 밖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광명하고 통철하여 조그마한 하자도 없을 것이며 만사가 그 법칙을 따르고 만물이 그 안정된 처소를 얻어 당우(唐虞)의 훌륭한 치세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순(舜)이 우(禹)에게 고하기를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참으로 그 중도를 잡으리라.’ 하였고, 송(宋) 태조(太祖)는 ‘겹겹이 닫힌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 정말 나의 마음과 같으니, 조금만 사곡(邪曲)이 있으면 남들이 다 볼것이다.’ 하였습니다. 천고 성인의 심법(心法)의 요령이 단연코 여기에 있으니, 성상께서는 유의하소서.
신이 근년에 구언(求言)하는 전지를 삼가 보건대, 맨 첫머리에 ‘임금의 마음은 정치를 내는 근원인데 마음에 부정한 바가 있지나 않은가.’라고 하시고, 또 ‘성의가 믿음을 주지 못하여서 경각심을 일으킬 만한 직언을 밀봉해 올리는 사람이 없음을 깊이 탄식한다.’ 하였습니다. 아아, 전하의 말씀이 여기에까지 미치셨으니, 종사(宗社)와 신민(臣民)의 복입니다.
요순·삼왕의 정치는 모두 한 마음에 근본하여 모든 교화가 행해졌습니다. 한(漢)·당(唐) 이후로는 명군(明君)·현신(賢臣)이 치도(治道)를 강구하되 오로지 법도(法度)·형정(刑政)의 세세한 일에만 주력하고 본원의 소재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때문에 비록 한 세대의 소강(少康)은 이룰 수 있었으나 끝내 옛날의 치세는 회복할 수 없었으니, 매우 탄식할 만한 일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는 예사(睿思)가 고원(高遠)하여 만화(萬化)의 근원을 밝게 보시고 바로잡을 바를 생각하시니, 이는 근고에 듣지 못한 바입니다. 성명(聖明)이 이와 같음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기회인데,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고 백성에게 은택을 주려는 뜻을 가진 자가 성대한 전하의 마음을 돕는 말을 어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 병오년에 휴가를 받아 병모(病母)에게 귀성할 때 마음을 바루어야 한다는 말을 대략 대궐에 진달하고, 또 학문을 강구하고 이치를 밝히며 어진이를 친근히 하고 간사한 사람을 멀리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루는 요령으로 삼았었으나, 병모에의 귀성에 급박하여 총총히 조정을 떠나서 그 말을 끝마치지 못하였었는데, 전하께서는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다시 구구한 마음을 진달하여 성명에게 기대하는 바 더욱 크니, 전하께서는 살펴 생각하소서.
그 세째는 천덕(天德)을 몸받는 일입니다.
《역(易)》에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는 그를 본받아 스스로 꾸준히 힘써 쉬지 않는다.’ 하고, 또 ‘군자는 밤낮으로 근면하고 조심하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더라도 탈이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대개 하늘의 덕은 강건하여 쉬지 않을 따름이니, 군자는 그를 본받아 진덕 수업(進德修業)에 힘써 날마다 근면하고 조금도 태만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밤낮으로 근면하고 조심한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임금은 해가 뜨면 조회를 보고 조회에서 물러나와 노침(路寢)175) 에서 정사를 들었습니다. 모든 정무를 보시고 여가가 나서 한가할 때면 성현의 교훈을 강습하고 치란의 자취를 찾아보아서 그 중 착한 것은 본받고 악한 것은 경계하며, 강독(講讀)이 이미 끝나고 아직 사물을 접하지 아니하여 심체(心體)가 고요할 때에 더욱 맑게 다스릴 힘을 내어 남들이 보지도 듣지도 않는 곳에서 조심하였습니다. 또 무슨 생각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서 잘 함양하여 반드시 이 마음으로 하여금 치우침없이 허명(虛明)하고 공정(公正)해서 모든 변화를 수응할 수 있는 주인이 되게 하고, 사려가 발할 때에 가서는 또 성찰하는 공부를 다하여 그 이(理)·욕(欲)의 기틀을 살펴서 그것이 과연 천리라면 경건함으로써 확장하여 조금도 막히는 데가 없게 하고 그것이 과연 인욕(人欲)이라면 경건함으로써 극복하여 조금도 응체됨이 있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무릇 이와 같이 한다면 잠시도 간단됨이 없고 한 생각도 차질이 없어서 큰 근본이 이로 해서 서고 통달한 도리가 이로 해서 행해져서 천덕(天德)을 통달하고 중화(中和)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천덕이란 전일하여 이랬다저랬다 않으면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것이니, 합해 말하면 바로 성(誠)입니다. 동정(動靜)이 어김 없고 표리(表裏)가 정직하여 시종 한결같은 연후에야 천덕을 거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밖으로는 조심스런 말을 하면서 안으로는 태만기가 있으며, 겉으로는 선한 사람을 공경하는 태도를 지으면서 속으로는 어진이를 친근히 하는 마음이 없으며, 넓은 뜰에 모인 대중 앞에서는 몸을 경건히 가지면서 깊은 궁중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에는 마음을 방사하게 쓰며, 경연(經筵)에서 강론할 적에는 마음이 안존하고 남이 안 보는 구석진 곳에서는 뜻이 해이하다면, 이는 성(誠)이 아닙니다. 잠시 경외(敬畏)하다가 태만이 계속되고 얼마간 검약하다가 바로 사치가 잇따르며, 근태(勤怠)가 정상적이 아니거나 폭한(曝寒)이 일정하지 않거나 하다면, 이와 같은 것도 다 성이 아닙니다. 《중용(中庸)》에 ‘「하늘의 명(命)이 심원(深遠)하여 그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하늘의 하늘된 소이를 말한 것이요, 「아아, 뚜렷이 나타나지 아니한가, 문왕(文王)의 덕(德)의 순일(純一)함이여.」라고 한 것은 문왕의 문왕된 소이를 말한 것이니, 순일함이란 역시 그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저 문왕의 덕은 순일하여 잡된 것이 없기 때문에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 하늘에 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천덕(天德)을 가져야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으니 그 요령은 다만 신독(愼獨)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성상께서는 깊이 체험하소서.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자품(資品)이 영민하여 요순의 자질을 가지셨습니다. 근년 이래로 모든 정사를 걱정하시어 자주 간절한 교지를 내려 충직(忠直)한 말을 들어서 경천 근민(敬天勤民)하는 도리를 다하려고 하십니다. 성상의 생각이 이처럼 근면하신데 어찌 태만할 리가 있겠으며, 또 어찌 순간이나마 간단이 있을 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심은 보전하기 어렵고 기질은 바뀌기 쉬운 것입니다. 한 생각을 잘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에 국가의 치란이 매여 있기 때문에 비록 큰 성인의 자질로서도 경계함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익(益)이 순(舜)에게 경계하기를 ‘안일하게 놀지 말고 연락에 빠지지 말라.’ 하고, 우(禹)는 또 ‘단주(丹朱)처럼 만유(慢遊)와 오학(傲虐)을 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대저 순(舜) 같은 성인이 음일(淫逸)·만유·오학을 하지 않을 것임은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는 일인데 어찌 우(禹)·익(益) 같은 현인이 모를 리가 있었겠습니까. 대개 숭고한 자리에 처해 있으면 경계하는 도리를 이처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때문에 선유(先儒)인 정자(程子)는 ‘임금은 항상 싹트지 않은 욕심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더욱 간절하니 성상께서는 유념하소서.
그 네째는 전대의 성인을 본받는 일입니다.
제왕의 학문은 전대의 성인을 계승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성인의 도는 매우 높고 넓어서 따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심법(心法)을 구한다면 정일(精一)일 뿐이며 그 덕행을 구한다면 인효(仁孝)일 뿐이니, 이는 매우 간략하고 번잡하지 않으며 몹시 가깝고 고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후대의 임금들은 모두 성왕의 도를 고원한 것으로 여겨서 지극히 간략하고 가까운 곳에서 구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 때문에 수천년 이래로 태평의 정치를 다시 볼 수 없으니, 탄식스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신이 삼가 보건대, 성상께서는 총명과 지혜가 옛사람을 능가하고 효도와 공경이 지극하시어 자전(慈殿)을 섬김에 삼조(三朝)176) 의 예를 다하고 대비(大妃)를 받듦에 온청(溫凊)177) 의 성의를 극진히 하시며, 상제(喪祭)의 시종(始終)에 예절을 다하고 구족(九族)의 친소(親疎)에 은혜를 입히시어, 인효(仁孝)의 덕(德)이 상하에 나타나니 조야(朝野)에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실로 이치를 궁구하는 노력을 더욱 가하여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공부를 극진히 하되, 항시 나의 한 마음에 시험해서 인욕(人欲)의 위험한 것을 막고 천리의 은미한 것을 보존하여 천리와 인욕의 사이를 정밀하게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며, 본심의 바름을 전일하게 지켜서 떠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조금도 간단이 없이 여기에 종사하여 반드시 공정한 천리가 항상 한몸의 주인이 되고 사사로운 인욕이 스스로 방사하지 못하게 한다면 위험한 것은 평탄해지고 은미한 것은 나타나서 언어와 동작이 모두 중도에 합치될 것입니다. 옛 제왕의 심법의 핵심은 이와 같음에 불과하였으니, 어찌 고원해서 하기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성인의 도는 인(仁)에 근본하고 인을 함은 반드시 효(孝)에서 비롯하니,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요 만화(萬化)의 근원입니다. 대체로 하늘에는 사덕(四德)178) 이 있는데 원(元)이 그중 우두머리가 되며 사람이 그 원(元)의 이치를 부여받는데 이것을 본심의 완전한 덕(德)이라 말합니다. 어느 누군들 이 마음이 없지 않은데 이것을 제대로 보존하는 자가 적습니다. 오직 성인만이 능히 그 본심을 온전히 간직하고 효의 도리를 다하여, 어버이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백성에게 미쳐가서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을 육성하여 환과 고독(鰥寡孤獨)으로 하여금 각각 생양(生養)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또 그 마음을 미루어 사물에 미쳐가서 초봄에는 벌목(伐木)을 금하고 새들의 보금자리를 파괴하지 않고 어린 벌레를 죽이지 않으며, 수달이 제어(祭魚)한 뒤에야 택량(澤梁)에 들어가고 초목의 잎이 진 뒤에 산림에 들어가며, 곤충이 칩복(蟄伏)하지 않을 때에는 화전(火田)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문에 조수 어별(鳥獸魚鼈)이 다 잘살고 산천 귀신(山川鬼神)도 모두 편안하여 화기(和氣)가 가득차고 서경(瑞慶)이 이르렀으니, 무릇 이는 인(仁)의 일이요 효(孝)를 넓힌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거나 짐승 한 마리를 죽이는 일도 제때에 하지 않는다면 효가 아니다.’고 하였는데, 대개 나의 측은한 마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구석구석 파급되어 그 은택을 입지 않는 사물이 없다면 자신의 본성을 다하고 타인과 사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니, 성인이 천지(天地)에 참여하여 화육(化育)을 돕는 공은 모두 지성(至誠)된 인애(仁愛)의 마음에 근본한 것입니다. 대개 제왕의 학문은 체(體)가 있고 용(用)이 있으니 정일(精一)에 마음을 둘 경우에 체가 서고 인효(仁孝)에 도리를 다할 경우에는 용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체와 용이 온전하고 따라서 왕도(王道)가 완성될 것입니다. 맹자는 ‘나는 요순의 도가 아니면 감히 왕의 앞에 아뢰지 않는다.’ 하였는데, 신이 아뢴 바도 요순의 도가 아닌 것이 없으니, 성상께서는 깊이 힘쓰소서.
그 다섯째는 총명(聰明)의 범위를 넓히는 일입니다.
신은 들으니, 정치를 하는 방법은 총명의 범위를 넓히는 일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임금은 작은 몸으로 하늘과 백성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사의 빠뜨리는 점이나 인물의 착하고 나쁜 점이나 하늘이 예고해 주는 일이나 민의(民意)의 불만같은 일들에 대해서 총명이 미치지 못하여 조감(照鑑)이 혹 가린 바가 있다면 어떻게 그 기미를 살피고 어둡고 먼 곳을 비춰서 모두 도리에 맞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경사(經史)를 상고하건대, 정치를 잘한 임금은 언로(言路)를 열고 총명의 범위를 넓히는 일로 급무를 삼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순(舜)은 묻기를 좋아하고 천근한 말을 살피기 좋아하였으므로 제왕의 지위를 물려받은 초기에 다른 정무는 보살필 겨를도 없이 사목(四目)을 밝히고 사총(四聰)을 넓히는 일에 급급하였으며, 우(禹)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고 종(鍾)·북[鼓]·경쇠[磬]·목탁[鐸]·땡땡이[鞀]를 매달아서 사방의 선비들을 기다리면서 ‘과인에게 도(道)를 가르치려는 이는 북을 두드리고, 의(義)로써 깨우쳐 주려고 하는 이는 종을 두드리고, 사무를 가지고 알리려는 사람은 목탁을 두드리고, 걱정스런 일을 말하려는 자는 경쇠를 두드리며, 소송(訴訟)에 관계된 일이 있는 사람은 땡땡이를 흔들어라.’ 하였습니다. 한 차례 식사를 하는 동안에 열 번씩이나 일어나 나가고 한 번 머리 감던 사이에도 세 차례나 감던 머리털을 감아 쥐었으니, 이는 모두 총명을 넓혀서 세상의 막히고 가려진 것을 없애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성인의 마음은 맑게 갠 하늘과 같아서 조그만한 더러움이나 결함이 없는데도 또 능히 총명의 범위를 넓혀서 속이거나 가리운 바가 없었으니, 비록 아홉 겹의 깊숙한 궁중에 들어 앉아 있다 하더라도 전 지역의 치란(治亂)이나 백성들의 즐거움과 슬픔이나 관리들의 옳고 나쁜점에 대해서 일목 요연하게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체로 임금의 시청(視聽)은 한계가 있으므로 반드시 여러 사람의 시청을 종합하여 자기의 총명으로 삼아야 할 것인데, 진실로 그 마음을 치우치거나 얽매임이 없이 공정하게 가지고 정직한 말을 듣기 좋아하여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이가 아니라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의 말에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은 낫게 하는 점에는 이로우며 충언(忠言)은 귀에는 거슬려도 행실에는 이롭다.’ 하였으며,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정직하게 간하는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라가 번영하였고,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무조건 순종하는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하였던 것입니다. 육지(陸贄)의 말에 ‘매우 지혜로운 자가 아니고선 정직하게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성덕(聖德)을 가진 자가 아니고선 잘못된 행실을 찾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강직하게 간하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그 지혜가 더욱 커지게 되고 잘못된 행실을 찾아내면 그 덕이 더욱 빛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천고의 격언이니 임금된 자는 여러 번 반복하여 완미하고 자신을 경계해야 될 것입니다.
대체로 충언이나 정론은 신하 개인의 이익이 아니요 바로 국가의 복인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심과 의리심을 분발하여 목숨을 바쳐서라도 국가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능히 위엄을 지닌 임금 앞에서 할말을 다하는 자가 적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철한 임금은 이러한 사리에 매우 밝아서 정직한 말을 구하되 행여 미치지 못할 듯이 하고 착한 말을 받아들이되 마치 둥그런 고리가 구르는 것처럼 순조롭게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한 이를 가상히 여기고 마구 대드는 이를 의롭게 여기며, 어리석고 미천한 자를 용납하면서도 오히려 교만한 기색이 있어서 충성스럽고 성실한 말을 듣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였습니다. 이에 감간고(敢諫鼓)179) 를 놓아두고 고선정(告善旌)180) 을 세우고 계신도(戒愼鞀)181) 를 매달고 사과사(司過士)182) 를 설치하여 부지런히 직언(直言)을 받아들여 오직 옳은 것만 구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심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한 사건이라도 옳은 도리를 얻지 못할게 될까 항시 염려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비방하는 말까지 구하고 중론(衆論)을 듣기까지 하였는데, 봉비(葑菲)를 캘 때 뿌리가 나쁘다고 해서 채택치 않음이 없고183) , 꼴 베고 땔나무하는 사람이 천하다해서 묻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때에는 안으로는 모든 신하에서부터 밖으로는 초야에 있는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소회를 피력하여 정치 교화를 돕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때문에 아름다운 말이 묻혀 있지 않아 군덕(君德)이 그로써 밝아지고 조정(朝政)이 그로써 수행되었으며, 백성들의 사정이 모두 알려져 간악하고 사특한 무리들이 막거나 가리우는 폐단이 없게 되었습니다. 임금의 마음이 만약 조금이라도 치우치거나 사사로운 점이 있어서 충성스럽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고 바른 말을 듣기 싫어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아부하여 임금의 뜻만 따를 것입니다. 그러면 비록 나라가 망할 위험스런 화란이 조석간에 닥쳐 있고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속이는 요사스런 일184) 이 임금의 앞에서 일어난다 하더라도 누가 감히 말 한마디 하겠습니까.
자고로 임금이 위에 고립되어 총명이 막혀서 하늘이 성을 내도 듣지 못하고 백성들이 원망을 해도 알지 못하며 날이 갈수록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으로 치달아도 깨닫지 못한 경우는 대개 이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성상께서는 위에 계시면서 남의 의견 취하기를 좋아하고 바른 논의 듣기를 기뻐하시어 먼저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언로를 열어놓아 한 시대의 정치를 새롭게 할 생각으로 애절하게 곧은 말을 구하는 교지를 누차 중외(中外)에 내렸는데, 예사로운 폐단은 때로 장소(章疏)에 진언(陳言)을 하지만 아름다운 말과 훌륭한 논의는 초야(草野)에서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찌 임금은 비록 좋은 말 듣기를 갈망하나 백성들은 오히려 임금의 마음을 건드릴까 두려워하여 모두 입을 다물고서 몸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적의 성왕(聖王)이 인심을 감동시키고 세상의 의사를 소통시킨 방법은 성(誠)·신(信)뿐이었습니다. 성은 정치를 하는 근본이고 신은 임금의 중요한 보배입니다. 성과 신의 지극함은 귀신과 천지도 감동시킬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삼가 성상께서는 강건(剛健)함으로 하늘의 운행을 본받고 겸허한 자세로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중화(中和)의 표준을 세우고 포용하는 도량을 확대시키며, 선(善)을 즐기고 덕(德)을 좋아하시되 한 생각의 성실치 못함도 없게 하고, 명령을 내려서 시행하되 한마디 말의 신실치 못함도 없게 한다면 자연 백성들의 마음이 감동되고 좋은 말과 올바른 논의가 모두 임금의 앞에 진달되어 태평한 정치를 도와 이룰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유념하소서.
그 여섯째는 인정(仁政)을 베푸는 일입니다.
신이 살피건대, 《역경(易經)》에 ‘크도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리하여 시초로 삼는다.’ 하고 ‘지극하도다 곤원(坤元)이여! 만물이 자리하여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천지 사이에 사람의 위치가 이루어졌으면 천지와 나란히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元)을 체행하는 것은 임금의 직책이요, 원(元)을 섭리(燮理)하는 것은 재상의 임무입니다. 원이라 하는 것은 인(仁)이요, 인은 인심(人心)입니다. 사람이 날 적에 천지가 만물을 내는 마음을 얻어 마음으로 삼기 때문에 사람마다 모두 측은한 마음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인(仁)의 단서입니다. 임금은 이 마음을 미루어 정치에 실시하여 전지역의 생명체로 하여금 모두 그 은혜를 입게 하니 이를 일러 원을 체행하는 것이라 하며, 재상은 이 마음을 가지고 선정(善政)을 도와서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구제하는 뜻을 베풀고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는 마음을 순종하니, 이를 일러 원을 섭리하는 것이라 합니다. 임금과 재상이 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함께 해서 도리에 맞고 정사가 다스려져서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고 인현(仁賢)이 모든 관직에 나열해서 혜택을 민물(民物)에 입히면 마음과 기운이 화평해지고 천지의 화평도 이에 응하여서 음양이 조화되어 바람과 비가 제때에 오고 여러 생물들이 생육되어 만물이 번식하며, 복(福)이 되는 모든 물체와 이를 만한 상서는 모두 이르러 왕도 정치가 완성될 것입니다.
자고로 임금이 인정을 베풀려고 하나 인(仁)을 해치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으니, 형벌이 번거로우면 원망이 많아서 인을 해치고 백성에게 거두어 들이는 부세가 무거우면 백성이 고택(膏澤)이 다하므로 인을 해칩니다. 그런 때문에 맹자는 형벌을 감면하고 부세를 경감하는 것으로 인정을 베푸는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대개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자한 마음과 인자하다는 소문이 있더라도 백성은 그 은택을 입지 못할 것입니다. 제왕의 정치는 인의 예악(仁義禮樂)에 근본하나 백성들 중에 정교(政敎)를 따르지 않는 이가 있을 경우는 형벌로 다스렸는데, 이는 다만 정치를 보조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런 때문에 형정(刑政)은 비록 베풀기는 하였지만 신중하고 애긍(哀矜)하는 뜻을 그 사이에 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고요(皐陶)가 순(舜)의 덕을 칭찬하여 ‘임금의 덕이 하자가 없어서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간단한 절차로 대하고 대중을 거느리는 데는 관대하게 거느렸으며, 의심스런 죄는 가벼운 쪽으로 처벌을 하고 의심스런 공(功)은 중(重)한 방향으로 상을 주며, 무죄한 인명을 죽이느니보다는 차라리 법을 어기는 것이 낫다 하여 살려주기를 좋아한 덕이 백성들의 마음에 젖었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순의 덕정은 관대하고 간이(簡易)함에 근본하고 형벌은 궁극적으로 형벌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의도하여 백성들이 마음으로 협조했기 때문에 사방의 백성들이 교화되었으니, 이것은 후세에서 응당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공자는 이르기를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일을 공경하고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으며 비용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고 하였고, 유약(有若)은 ‘백성들이 넉넉하면 임금이 어찌 넉넉하지 않겠으며 백성들이 넉넉하게 살지 못한다면 임금이 어찌 넉넉하게 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용도가 헤프고 사치스러우면 재물을 낭비하여 반드시 백성들의 생활에 대해 해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반드시 임금과 백성이 한 몸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서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백성들이 걱정하는 점을 걱정하며 검소하고 용도를 절약하며 자신을 검박하게 하고 아랫사람에 대해서는 후하게 하여, 마치 한 문제(漢文帝)가 백금(百金)의 비용을 아꼈던 것과 송 인종(宋仁宗)이 하루 저녁의 배고픔을 견딘 것처럼 해야만 능히 폐습을 혁파하고 너그러운 정치를 시행하여 백성들이 침해당하는 것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대학(大學)》에서 《시경(詩經)》의 말을 인용하여 ‘「화락한 군자는 백성의 부모이다.」한 것은 백성이 좋아하는 점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점을 싫어하는 사람을 백성의 부모라 한다.’고 하였으며, 또 ‘은(殷)나라가 아직 망하기 전에는 그 덕(德)이 상제(上帝)에게 필적하였으니,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늘의 명(命)은 보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였으니 민심을 얻으면 나라를 얻게 되고 민심을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된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으며, 선유(先儒)인 주희(朱熹)는 이에 이어 ‘천하를 소유한 이가 능히 이 마음을 보존하고 잃지 않는다면 내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짐작하여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하는 바를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정성스럽고 자애스런 마음입니다. 대개 이 마음이 있어야만 인정을 행할 수 있고 진실로 이 마음이 없다면 법도만 가지고선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옛적에 당 태종(唐太宗)은 죄를 처단함에 있어서 불쌍해 하고 가슴아프게 여겨 ‘살을 베어 먹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다.’는 경계를 하였으며, 송(宋) 태조(太祖)는 온당치 못하게 죄에 걸려드는 일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제후들에게 백성을 구하는 도리를 알려 주었으니, 인애(仁愛)스런 마음만이 국맥을 연장하고 역년을 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지극히 정성스럽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역경》에 ‘천지의 대덕(大德)은 생(生)이고 성인의 대보(大寶)는 위(位)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키는가 하면 인(仁)으로 할 것이다.’ 하였으며, 맹자는 ‘선왕(先王)이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져 이에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政事)를 베풀었다.’고 하였습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성인의 말씀을 깊이 체득하여 언제나 이 마음을 보존하고 계시면 종묘 사직이 매우 다행하고 신민(臣民)도 매우 다행할 것입니다.
신은 삼가 듣건대, 성상께서 인성(仁聖)의 마음이 있어서 사람을 사랑하며 만물을 불쌍하게 여김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가련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고 형벌을 신중히 시행하고 부세를 경감하려는 생각을 밤낮없이 하시며, 성상의 덕이 하늘과 같아 생육의 은혜가 입혀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죽이는 것을 싫어하고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수렴 청정(垂簾聽政)하는 속에 간절하다고 합니다. 조야가 이것을 듣고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비록 순임금의 살리기를 좋아하던 것이나 우(禹)임금의 죄인을 보고 울었다는 것이나 또는 주 문왕(周文王)이 백성을 보기를 마치 질환이 있는 자를 대하듯 하였다는 것들도 이보다 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대간(臺諫)이 음양(陰陽)이 다 갖춰진 사람 【한 간사한 사람이 거짓 여무(女巫)가 되어 사족(士族)의 집을 드나든 일이 있어 꽤 추문이 떠돌았다.】 을 죽여서 상서롭지 못한 일을 제거하자고 청하니, 성교(聖敎)에서 곧 ‘하찮은 금수(禽獸)도 경솔하게 죽여서는 안 될 터인데 하물며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귀양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였으니, 훌륭하신 왕의 말씀이여, 진실로 천지의 부모된 도량입니다. 이 마음을 미루어 백성과 만물에게 미친다면 임금의 은택을 입지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이러하시니, 신하들은 마땅히 전하의 뜻을 받들어 정치를 이루어야 될 것인데,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는 신하나 형벌을 담당한 관리가 능히 전하의 뜻을 분명하게 체득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형벌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정해진 법 이상으로 마구 멋대로 시행하기도 하고 부세를 거두는 데 있어서 정해진 분량 이상으로 이것저것 다른 명목으로 과중하게 거둬들이고 있으니, 이러한 점이 전하의 은택이 막히고 저지되어 백성들이 실제로 은택을 입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이 두 가지 폐해를 없애고 교화를 베푼다면 태평의 정치를 다시 오늘날에 보게 될 것이니, 삼가 성상께서는 유념하소서.
그 일곱째는 천심(天心)에 순응하는 일입니다.
신은 살피건대,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훈계하기를 ‘하늘은 일정하게 친하는 이가 없고 능히 공경하는 이를 친하게 되며, 백성은 일정하게 흠앙하는 것이 없고 어진 사람을 흠앙한다.’고 하였으며, 부열(傅說)은 고종(高宗)에게 아뢰기를 ‘하늘이 총명하니 성인이 이것을 본받으면 신하가 공경히 순종하고 백성이 따라서 다스려질 것이다.’고 하였으며, 소공(召公)은 성왕(成王)에게 주의를 시키면서 ‘황천 상제(皇天上帝)께서 그 원자(元子)와 이 대국(大國)인 은나라의 명(命)을 개혁하였으니 지금 왕께서 명을 받음이 무궁한 아름다움이 있으나 또한 무궁한 걱정이 있다. 아,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오.’라고 하였으니, 옛적의 성현들이 임금에게 주의시킨 것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이 덕을 닦고 자리를 보전하는 도리가 하늘을 공경하는 것보다 큰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대체로 하늘은 모든 이치가 존재하여 있는 곳으로서 느껴서 호응하는 신기함이 그림자나 메아리 보다도 더 빠르니, 임금이 진실로 그 덕을 힘껏 공경하여 항시 하늘에 필적하기를 생각하고 마음을 쓰고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한결같이 천리에 순응하고 인심에 일치되게 한다면 하늘이 온갖 상서를 내려서 길이 천록(天祿)을 보존할 것입니다. 그러나 혹 능히 공경치 아니하여 마음과 행사가 일호라도 천리를 거스르고 인심에 일치되지 못함이 있을 것 같으면 하늘은 필경 그를 싫어하여 재앙을 즉시 내릴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분명한 것이어서 지나간 일을 갖고서도 경험할 수 있으니, 이래서 옛적의 제왕들은 이른 새벽에 그 덕을 크게 밝혀서 상제에게 엄숙하게 대하고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잠깐 동안이라도 속이거나 게을리하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옛적에 탕(湯) 임금은 몹시 가물었던 재앙을 만나서 육사(六事)185) 로써 자신을 꾸짖었으니 지금의 상황에서 본다면 임금으로서 경계하고 살펴야만 할 일이 이것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대체로 성인은 항상 정성스럽고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극진히 하여 모자라는 점이 없었으나, 오직 여섯 가지 일만이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여 하늘의 견책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여섯 가지 일을 내리 말하면서 자신을 반성하였던 것입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이 순일하지 못하고 재앙을 만나서 자신을 닦아 반성하는 일도 극진하지 못한 점이 있으니, 어찌 능히 남모르는 가운데서 하늘을 감격시킬 수 있겠습니까.
신은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고 덕을 순일하게 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걱정하며 밤낮으로 조심하여 잠시도 안일하거나 태만함이 없는데도 오히려 하늘이 견책을 그치지 않으며 재앙과 요사스런 기운이 사라지지 않으니, 천심(天心)이 전하를 아끼고 사랑하여 안전하도록 도와주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같은 이치이며 드러난 것과 은미한 것이 간격이 없으니, 임금이 하늘을 받들고 만물을 다스려서 한마음으로 하늘의 의사에 부합되도록 한다면 하늘이 호응해 주지 않는 일이 있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성탕(成湯)의 마음을 체득하여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이르기까지 상제(上帝)의 법칙에 순응하고 육사(六事) 이외에도 또 경계할 만한 일이 있는가를 생각하여, 한 생각을 내거나 한 명령을 실시하거나 한 형정(刑政)을 판결하는 것을 반드시 천리에 부합되기를 구하고 천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버리기를 생각하신다면, 천심이 좋아하여 화기(和氣)가 호응하고 재변이 없어져서 아름다운 상서(祥瑞)가 이를 것이니 종묘 사직과 백성들이 만세토록 누릴 수 있는 복(福)이 실로 여기에서 기인될 것입니다.
대체로 임금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에 합치되는지 안 되는지를 무엇으로 징험하겠습니까. 백성들의 마음에서 징험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공명 정대하여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과 취하고 버리는 것이 의리에 합당하고 백성들의 마음에 합치되면 반드시 하늘의 마음에 합당할 것이요, 만약 그렇지 못하고 도리에 어긋남이 있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거스르게 되는데 어떻게 하늘의 뜻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마음은 즉 사람의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하늘의 뜻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서경》에 ‘하늘의 바라봄이 백성의 바라봄으로부터 하며 하늘의 들음이 백성의 들음으로부터 한다.’고 하였으며, 《시경》에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전한다.’고 하였으니, 삼가 성상께서는 이 이치를 분명하게 살피셔서 언제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이며 백성의 마음을 거슬러서 하늘의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소서.
그 여덟째는 중화(中和)를 극진히 하는 일입니다.
신은 살피건대 ‘중화를 극진히 하면 천지가 제 위치를 정하며 만물이 길러진다.’고 하였으며, 또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 등 칠정(七情)이 발하지 않는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발해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中)이란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화(和)라는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이다.’ 하였습니다. 대개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은 순수하고 매우 착하며 사람의 마음에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그것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적엔 흔연히 마음속에 있어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중(中)이라 하고, 그것이 발하여 품절(品節)이 틀리지 않고 어긋나거나 거슬림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화(和)라고 합니다. 고요하여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은 성(性)이 중(中)이 되는 소이로서 천하의 이치가 모두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천하의 대본이라 하고, 동하여 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는 것은 정(情)이 발하여 그 정도를 얻은 것으로 천하 고금에 누구나 다함께 말미암아 행하는 길이기 때문에 천하의 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사람 마음의 자연적으로 고요하고 감동하는 이치로서 체용(體用)의 온전함이 본래 이와 같아서 성인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간에 가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고요할 적에 보존할 줄을 알지 못한다면 천리가 혼매하여 대본이 서지 못하게 될 것이고, 움직일 적에 절제할 줄을 모른다면 인욕이 방사하여 달도가 행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덕있는 군자처럼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상황에서도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서 그 혼연한 본체를 보존하여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으면서 굳게 지키어 잃지 않는다면 대본의 수립이 날이 갈수록 더욱 튼튼하게 될 것이고, 또 은미(隱微)하고 유독(幽獨)한 곳에서 기미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사물을 응접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잘못된 점이 없고 가는 곳마다 그렇게 한다면 달도의 행함이 날이 갈수록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중화를 극진히 하매 천지가 제 위치를 정하고 만물이 생육되는 결과입니다. 선유인 주희(朱熹)의 말에 ‘고요할 적에 잠깐 동안이라도 중(中)치 않음이 없으면 내 마음이 바르고 천지의 마음도 바르게 되므로 음양 동정(陰陽動靜)이 각각 제 자리에 안정되어서 천지가 이에 제 위치를 정하게 될 것이며, 움직일 적에 한 가지 일이라도 화(和)치 않음이 없으면 내 기운이 화순하고 천지의 기운도 화순하게 되므로 화순한 기운이 빈틈없이 꽉차 즐거움이 서로 통하여서 만물이 이에 그 생육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만화의 본원이며 이 마음의 묘용(妙用)이며 성신(聖神)의 능사(能事)이며 학문의 극공(極功)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천지 가운데에 처하여 이기(理氣)가 관통하여 빈틈없이 합치하기 때문에 사람의 심기(心氣)가 천지를 감격시킬 수 있는데, 하물며 임금은 천지의 가운데에 사람의 위에 위치하여 민물(民物)의 주인이 되었으니, 마음이 그 속에서 숙연하여 지극히 허령(虛靈)하고 지극히 공명(公明)하여서 덕화가 위아래에 충만한다면 천지가 어찌 제 위치를 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 등 칠정이 발함이 모두 도리에 합치하여 한 사람을 상주면 천만 사람이 권장되고 한 사람에게 성을 내매 천 사람 만 사람이 징계되며, 백성의 궁핍함을 불쌍히 여기어 환과 고독(鰥寡孤獨)이 모두 안정된 터전을 얻게 되고 백성의 즐겨 하는 일을 즐겨 하여서 백성과 만물이 모두 그 은택을 입게 된다면 만물이 어찌 생육이 안 될 수 있겠습니까. 음양이 조화되어 바람과 비가 적시에 오고 재변이 사라지고 상서가 이르며 천지의 사이에 있는 생명체를 가진 종류들이 각기 그 품성을 이루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중화를 극진히 하는 극공(極功)으로 선유(先儒)의 이른바 ‘마음이 화평하고 기(氣)가 화평하여 천지의 화기가 호응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후세의 명철한 임금으로서 훌륭한 정치에 뜻을 둔 자가 진실로 많았지만 이 일에 힘을 쓴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천지가 호응하지 않아 상서가 이르지 않았으며 삼진(三辰)186) 이 행로를 잃고 육기(六氣)187) 가 화평치 못하며 땅이 진동하고 산이 무너지며 수재(水災)·한재(旱災)·기근(饑饉) 등으로 재변이 계속 발생하여 중생(衆生)이 성장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찌 이 일이 초래된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임금은 천위(天位)에 앉아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 구중 궁궐의 깊숙한 곳에서 마음의 본체가 맑고 고요할 때에 일호라도 치우거나 기울어진 흠이 있으면 그 중(中)을 잃어서 천지가 제 위치를 정하지 못할 것이며, 생각을 표현하거나 형정(刑政)을 실시할 때에 한 가지 일이라도 의리에 어긋남이 있으면 그 화평을 잃어서 만물이 생육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한 마음은 만화의 근원이니, 잠시라도 보존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소한 것이라도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지난날 시종(侍從)의 반열에 참여하였을 때 일찍이 이 말을 중묘(中廟)에게 드리고 지금 또 이것을 전하께 드리오니, 신이 전하에게 바라는 마음 매우 간절합니다. 삼가 성상께서는 깊이 면려하소서.
이상 말씀드린 팔규(八規)는 모두 성경(聖經)·현전(賢傳)의 뜻을 기본으로 한 것으로 진덕(進德)·수업(修業)하는 요령이 아닌 게 없습니다. 단, 성학(聖學)의 보도(輔導)에만 주력을 하고 치도(治道)의 절목(節目)에 대해서는 미처 갖출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치하는 강령은 이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며 이것으로 표준이 되는 중도(中道)를 세우며 이로써 기강을 세우고 조정을 바로잡으며 사방의 언로(言路)를 열어 이목의 시청을 넓히며 훌륭한 사람을 임용하여 여러 직위에 포진시키며 성도(聖道)를 밝혀 인심을 바로잡으며 교화를 숭상하여 풍속을 변혁시킨다면, 이제(二帝)·삼왕(三王)의 정치도 이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하는 방법이 비록 갈래가 많으나 그 본원(本源)을 찾으면 임금의 마음에 있고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는 방법은 또한 학문을 힘쓰는 데 있습니다.
신은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타고난 훌륭한 자질에 덕업(德業)은 날로 진취하며, 게다가 경연(經筵)의 보필과 여러 신하의 보좌 또한 지극치 않음이 없으니, 간단없이 찬란한 성공(聖功)에 어찌 흠결된 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옛날의 성왕(聖王)은 천근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고 남의 의견을 취하기를 좋아하였으니, 이런 때문에 덕(德)이 더욱 밝아지고 업(業)이 더욱 광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신의 말을 오활스럽게 여기지 말고 유념하소서.
그 아홉째는 세자(世子)를 배양(培養)하는 일입니다.
신은 삼가 살피건대, 《시경》 대아(大雅)에 ‘문왕(文王)은 조심하고 공손하여 상제(上帝)를 밝게 섬겨서 많은 복을 오게 하였다.’ 하고, 또 ‘근면한 문왕의 착한 소문이 그치지 않으니 상제가 주(周)나라에 베풀어 주시되 문왕의 손자(孫子)에까지 미치었다.’고 하였으니, 대개 문왕은 경건한 마음과 근면한 성의를 가지고 능히 하늘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였기 때문에 상제가 내리는 경사가 있어 은택이 백세에 흘렀던 것입니다.
신은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에 성(誠)·경(敬)을 가지고 하늘을 받들고 백성을 사랑할 도리를 늘 생각하여 안일하고 태만한 때가 없었기 때문에 하늘이 그 덕을 보살펴 세자를 탄생시켰으니, 종사(宗社)와 신민(臣民)의 무궁한 경사입니다. 옛날 태임(太妊)이 문왕을 임신했을 때 태교(胎敎)의 법188) 을 지켰기 때문에 문왕이 나면서부터 명철하였던 것입니다. 옛날 성인은 아들을 가르치는 법을 태중에 있을 적부터 시작하였는데, 하물며 이미 탄생하여 철이 든 데이겠습니까.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원자(元子)가 지금 비록 포대기에 싸여 있다 하더라도 특출한 자질을 타고 나서 기골이 준수하고 숙성하여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니, 교양하고 보도하는 방법을 미리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삼가 《예경(禮經)》을 상고하니, 삼왕(三王)이 세자(世子)를 교육할 적에는 반드시 예(禮)·악(樂)을 가지고 가르치고 태부(太傅)와 소부(少傅)를 세워 교양시켰으니, 태부는 앞에 있고 소부는 뒤에 있었으며, 들어오면 보(保)가 있고 나가면 사(師)가 있었으므로 가르침을 깨닫고 덕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보부편(保傅篇)에는 ‘옛적의 임금은 태자가 탄생하면 예를 거행하였으니, 유사(有司)가 목욕 재계하고 엄숙하게 예복을 갖추고서 태자를 남교(南郊)에 보이는 것은 하늘에 보이기 위한 것이고 대궐을 지날 적에는 수레에서 내리고 종묘를 지날 적에는 조심스런 걸음으로 지나간 것은 효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갓난아이 때부터 교육이 벌써 행해졌다.’ 하였습니다. 주 성왕(周成王)이 어려서 포대기 속에 있을 때 소공(召公)은 태보(太保)가 되고 주공(周公)은 태부(太傅)가 되고 태공(太公)은 태사(太師)가 되었는데, 보(保)는 태자의 몸을 보호하고 부(傅)는 덕의(德義)로 보좌하고 사(師)는 교훈으로 계도(啓導)하였으니, 이것은 삼공(三公)의 직책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또 소보(少保)·소부(少傅)·소사(少師)를 두었으니 이들은 태자와 더불어 기거를 함께 하는 벼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애가 철들면 삼공(三公)과 삼소(三少)는 효인 예의(孝仁禮義)를 밝혀서 계도하여 익히게 하고 또한 간사한 사람을 쫓아버려 나쁜 행실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천하의 올바른 학자와 견문이 넓고 도학이 있는 자들을 뽑아서 태자를 보위케 하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태자와 더불어 거처와 출입을 함께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때문에 태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올바른 일만 보고 올바른 말만 듣고 올바른 도리만 행하였으니, 전후 좌우에 있는 자들이 모두 올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올바른 사람과 지내면 올바르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은 제(齊)나라에서 생장하면 제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며, 올바르지 않은 사람과 지내게 되면 올바르지 않음이 없을 수 없으니, 이것은 초(楚)나라에서 생장하면 초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공자가 ‘어릴 때의 성취는 천성(天性)처럼 되고 습관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삼대(三代)의 국운이 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태자를 보익(輔翼)함에 이러한 구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삼대 성왕(三代聖王)의 제도를 모두 후세에 회복하여야 되는데, 하물며 태자를 보익하는 법은 종묘 사직과 생민의 휴척(休戚)에 더욱 관계가 있는 데 이겠습니까. 성상께서 위에 계시니 이 법을 거행하신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진(秦)·한(漢) 이후로 태자를 교양함이 몹시 소략하여 도리가 아닌 것을 가르치고 법도가 없게 교육을 시켜서 화패(禍敗)를 당한 자가 많았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옛적에 문왕(文王)이 태공(太公)으로 하여금 태자를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태자가 절인 생선을 즐겨 먹으려 하자, 태공은 못 먹게 하면서 ‘예에 절인 생선은 조두(俎豆)에 오르지 않는데 어찌 비례(非禮)한 것으로 태자를 양육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옛사람이 태자를 가르침에 있어 그 엄격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비례의 음식으로 태자를 양육할 수 없다면 부정한 사람 부정한 여색 부정한 소리 또한 태자의 이목에 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자가 착한 사람이 되는 길은 일찍 교육시키는 일과 그와 같이 있는 사람을 잘 선발하여서 가르치게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좌우에 있는 사람이 올바르면 태자도 따라서 올바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를 올바르게 기르는 방법입니다.
신은 어리석고 고루함을 헤아리지 않고 감히 선왕의 법으로서 오늘날에 시행할 만한 것을 취하여 조정을 위하여 아뢰니, 성상께서 유념하시고 다시 전편(全篇)을 취해서 참고하여 시행하소서.
대체로 태자를 보양(保養)하고 교유(敎諭)하는 방법은 한결같이 삼대의 법과 동일하게 하여 시강원(侍講院)의 설치를 기다릴 것 없이 일찍 사(師)·부(傅)·보(保)를 세워서 보호하는 직무를 맡겨야 할 것입니다. ‘남교에 보인다.’는 것은, 대개 옛적 천자의 예법이니, 지금 비록 거행할 수는 없으나 ‘대궐을 지날 적에는 수레에서 내리고 종묘를 지날 적에는 조심스런 걸음으로 지나간다.’는 등의 예법은 바로 신자(臣子)의 도리를 보이기 위한 것이니, 지금도 거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모(保母)와 시봉(侍奉)하는 사람도 아울러 온량(溫良)하고 공경(恭敬)하고 관유(寬裕)하고 자혜(慈惠)하고 덕행(德行)이 있는 자를 선택하여 구비할 것이며, 만약 음사하고 부정한 사람이 있으면 내쫓아서 가까이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용(器用)·의복(衣服)·완구(玩具) 등은 모름지기 질박한 것을 쓸 것이며, 사치스런 물건이 눈에 접하지 않고 저질스러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게 한다면 교화가 마음과 더불어 이루어지고 도리에 합치되는 것이 천성처럼 되어 성인의 바탕이 이미 어릴 때에 갖추어질 것입니다. 조금 자랄 때에 가서는 아름다운 말과 올바른 논의를 날마다 그의 앞에 베풀어서 순수한 자질을 양성하고 총명한 천성을 개발한다면 습관이 지혜와 더불어 자라나고 한 가지를 들어 백 가지를 알게 되어서 문왕(文王) 같은 성인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종묘 사직과 신민의 복이 실로 여기에 근원할 것입니다. 신은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오늘날 종묘 사직과 생민을 위한 영구적인 계책은 오직 성학(聖學)을 보도하는 데 있으며 또한 세자를 교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성상의 학문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해서 규계(規戒)하는 말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세자가 지금 포대기 속에 있다고 해서 보익하는 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무릇 성인으로는 순(舜) 임금보다 더 훌륭한 성인이 없었지만 우(禹)와 고요(皐陶)는 규계하는 일을 잊지 않았으며, 소공(召公)은 ‘아이가 태어난 처음에 어떻게 교육을 시키느냐에 따라 하늘로부터 철명(哲命)을 부여받는 것이다.’ 하였으니, 대개 아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교양이 그 옳은 방법을 얻으면 명철하게 되고 그 옳은 방법을 잃으면 어리석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도 다 삼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 하물며 세자의 탄생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보익하는 규칙과 교육하는 방법은 대충 9조 내에 갖추어졌습니다.
노신(老臣)은 구구한 충애(忠愛)의 성심이 죽을 때까지 민멸되지 않으므로 심혈을 기울여서 성상께서 한번 을람(乙覽)189) 해 주시기를 비오니, 혹 성상께서 유념하여 열람해 주심을 받는다면 그 일신(日新)하는 공부와 양정(養正)하는 방법에 필시 약간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이름이 죄적(罪籍)에 올라 있어 함부로 충정을 바쳐 성상의 위엄을 범하는 것은 마땅치 않은 일입니다. 다만 신은 삼조(三朝)를 거친 노신으로서 은혜를 후중하게 받음이 다른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고 늙은 몸이 먼 곳에 있노라니 일편 단심이 더욱 간절하여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 없어, 소견없고 비루한 미치광이 말을 바치오니 다행히 성상의 열람을 거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효과가 있다면 신은 구렁텅이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성심이 속에서 복받치므로 말을 제재할 줄 모르오니, 성상께서는 애긍히 여겨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펴 주소서. 신 이언적은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 팔규는 가정(嘉靖) 33년(1554)에 지은 것이다.】
하였는데, 정원에 전교하기를,
"초야에 있는 몸이 부친의 뜻을 잊지 않고 이 팔규를 올렸으니, 내가 그 성의를 가상히 여긴다. 이 뜻을 경상도 감사로 하여금 이전인(李全仁)에게 전유하게 하라."
하였다.【이언적은 중종조의 진유(眞儒)로서 학문에 잠심하여 조예가 깊고 실천이 독실하였으니, 동방의 도학자(道學者)로 조광조(趙光祖) 이후에는 오직 이 사람이 있었다. 정미년 가을에 이기(李芑) 등의 무함을 입어 강계(江界)로 귀양갔다. 귀양 중에 있을 때의 곤궁함은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는 여유 만만하게 지냈으며, 애군 우국(愛君憂國)의 성심은 시종 여일하였다. ○ 이언적은 소시에 성현의 뜻을 가지고 진덕 수업(進德修業)에 힘을 써 깊은 소득이 있었다. 그가 일찍이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있을 때 상소를 올려 십조(十條)를 진언하니, 중종이 ‘과인의 진덕수(眞德秀)이다.’라고 칭찬하였다. 인종이 승하하자 윤인경(尹仁鏡)이 ‘어느 분이 정사를 보살펴야 되는가?’ 물었으니, 이는 중종·인종의 두 대비(大妃)를 가리켜 말한 것이었다. 이언적이 ‘송조(宋朝)의 고사(故事)가 있으니,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였는데, 이는 선인 황후(宣仁皇后)190) 를 가리킨 것이었다. 윤인경이 충순당(忠順堂)에 입대(入對)할 적에는 도리어 ‘이언적과 권벌(權橃)이 대왕 대비의 수렴 청정하는 일을 막으려 한다.’고 하였다. 이언적이 멀리서 희미하게 그 말을 듣고 물러난 뒤에 해명을 하였으나 끝내는 이 때문에 죄를 얻어 강계부(江界府)로 귀양가게 되었다. 근 20년 동안 강계부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일찍이 부관(府官)이 없는 틈을 타서 한 차례 인풍루(仁風樓)에 올라갔었다. 인풍루는 부성(府城) 위에 위치하여 독로강(禿魯江)에 임해 있으므로 경치가 퍽 좋았다. 부리(府吏)가 그 고을 원에게 달려가 고발하였는데, 이언적이 이미 그의 집으로 돌아온 뒤였다. 이에 그는 다시는 나가지 않고 서사(書史)를 즐기며 소일하였다. 저술에는 《구인록(求仁錄)》·《구경연의(九經衍義)》 등이 있는데, 모두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그를 추존하여 근래 이학(理學)의 순유(醇儒)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3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10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註 167]오변(於變) : 백성이 변악 위선(變惡爲善)함을 말함.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백성들이 변하여 이에 화순하니라."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임.
- [註 168]
소의 한식(宵衣旰食) : 날이 새기 전에 옷을 입고 해가 기울어서 저녁밥을 먹는 등 임금이 정사(政事)에 진력함을 말한다.- [註 169]
헌근(獻芹) : 옛날 어떤 농부가 미나리를 임금에게 바치고 싶어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로 곧 미세한 충정을 말함.- [註 170]
진덕수(眞德秀) : 송(宋)나라 포성(浦城) 사람으로 자는 경원(景元)이고 호는 서산(西山)이며 벼슬은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는데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 올린 주소(奏疏)의 수십만 언(數十萬言)은 모두 절실한 것이었다. 그의 학문은 주희(朱熹)를 주종으로 하였다. 저서에는 《대학연의(大學衍義)》·《당서고의(唐書考疑)》·《독서기(讀書記)》·《문장정종(文章正宗)》 등이 있다. 《송사(宋史)》 권437, 《송원학안(宋元學案)》 81.- [註 171]
정호(鼎湖) : 임금의 승하를 뜻함. 옛날 황제(黃帝)가 정호의 산에서 용을 타고 승천(昇天)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 [註 172]
주일 무적(主一無適) : 정주 학파(程朱學派)에서 경(敬)을 설명하는 철학 용어(哲學用語). 곧 마음에 잡념이 없음을 말함.- [註 173]
삼왕(三王) : 하(夏)의 우왕(禹王), 은(殷)의 탕왕(湯王), 주(周)의 문왕(文王)·무왕(武王)을 가리킴.- [註 174]
걸주(桀紂)·유려(幽厲) : 하(夏)의 걸왕(桀王)과 은(殷)의 주왕(紂王), 그리고 주(周)의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을 가리킴. 이들은 모두 중국 역사상 포악한 군주의 표본으로 지칭되고 있다.- [註 175]
노침(路寢) : 노(路)는 대(大)의 뜻이고 침(寢)은 실(室)의 뜻이니, 곧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정사를 듣는 정전(正殿)을 가리킨다.- [註 176]
삼조(三朝) : 여기서는 하루 세 번씩 조현(朝見)하는 것을 말함.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문왕(文王)이 세자(世子)로 있을 때 왕계(王季)에게 매일 세 번씩 조현했다." 하였다.- [註 177]
온청(溫凊) : 부모의 거처를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는 일. 《예기(禮記)》 곡례(曲禮) 상(上).- [註 178]
사덕(四德) : 여기서는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괘사(卦辭)에서 춘(春)·하(夏)·추(秋)·동(冬)을 나타내는 원(元)·형(亨)·이(利)·정(貞)을 가리킨다.- [註 179]
감간고(敢諫鼓) : 요(堯)임금이 북을 매달아 놓고 간언(諫言)을 하려는 자는 이 북을 두드리게 했다.- [註 180]
고선정(告善旌) : 순(舜)임금이 간언(諫言)을 듣기 위하여 기(旗)를 세웠다 한다. 《관자(管子)》 환공문(桓公問).- [註 181]
계신도(戒愼鞀) : 주 무왕(周武王)이 소고(小鼓)를 설치하여 간언을 하려는 신하가 있으면 그 소고를 두드리게 했다 한다.- [註 182]
사과사(司過士) : 은 탕왕(殷湯王)이 임금의 허물을 바르게 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맡는 벼슬아치를 두었다 한다. 《여람(呂覽)》 자지(自知).- [註 183]
봉비(葑菲)를 캘 때 뿌리가 나쁘다고 해서 채택치 않음이 없고 : 《시경(詩經)》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배추를 캐고 순무우를 캐는 것은 뿌리를 먹기 위함이 아니다."라는 귀절이 있는데 이를 인용하여 사람의 못난 점으로 해서 언론의 좋은 점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註 184]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속이는 요사스런 일 : 진(秦)나라의 간신(奸臣)인 조고(趙高)가 난을 일으키기에 앞서 여러 신하들이 자기의 지시를 따라줄는지 시험하기 위하여 임금인 이세(二世) 앞에서 짐짓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였더니, 당황한 이세의 물음에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신하도 있고 정말 말이라고 해서 조고에게 아부하는 신하도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이야기 《사기(史記)》 권6 진 시황 본기(秦始皇本記).- [註 185]
육사(六事) : 정사에 절도가 없는 것. 백성이 직업을 잃는 것, 궁실이 사치스러운 것, 여알(女謁)이 많은 것, 뇌물이 성행하는 것, 참소하는 사람이 날뛰는 것 등 여섯 가지의 일이다.- [註 186]
삼진(三辰) : 해·달·별임.- [註 187]
육기(六氣) : 음(陰)·양(陽)·풍(風)·우(雨)·회(晦)·명(明)을 가리킴.- [註 188]
태교(胎敎)의 법 : 임부(姙婦)가 일체의 시청 언동(視聽言動)을 예절에 맞게 하면 태아(胎兒)가 저절로 그 감화를 받는 데, 이것을 태교라 한다.- [註 189]
을람(乙覽) : 임금이 글을 보는 일 등을 가리킨다.- [註 190]
선인 황후(宣仁皇后) : 송 영종(宋英宗)의 후비(后妃). 성은 고씨(高氏)며 박주(亳州) 사람. 철종(哲宗)이 왕위에 오르자 태황태후(太皇太后)로 높여진 그는 섭정(攝政)을 하면서 왕안석(王安石) 등의 신당(新黨)을 몰아내고 사마광(司馬光) 등을 등용하여 태평 정치를 이룩하였다. 《송사(宋史)》 권242.○故贊成李彦迪 【中廟朝名臣, 仁宗尤加眷遇。 孝友學行, 表準一時。 晩爲權奸構陷, 謫卒江界, 國人哀之。】 子全仁 【彦迪妾子, 其母妓也。 旣娠, 而爲曹閏孫所畜, 故久冒曺氏。 閏孫死, 其母始言之。 乃盡棄閏孫之財産, 尋彦迪 江界, 遂爲父子, 奉養有誠。 且以閏孫有養育之恩, 故心喪以報之云。】 進彦迪所撰《進修八規》, 乃上疏曰:
臣聞, 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承而上行。 蓋天尊地卑, 高下懸絶, 而其氣上下相交而後, 能成化育之功, 而萬物得遂其通泰也。 古之聖王, 體天德、順天心, 雖處崇高之位, 常存恤民之志, 猶恐下情壅遏而不通, 德澤有所不施, 故邇言必察, 芻蕘必採, 能通天下之情, 終成於變之治也。 臣猥以微賤, 濫陳所懷, 仰干宸嚴, 敢冒逾分之罪, 難逃僭妄之誅. 秪念, 君臣之義, 實猶父子之親。 忠孝之心, 同得於天, 初無欠缺, 故古之懷忠抱義之士, 憂時向國之念, 雖處草澤之中, 如在帷幄之側, 時有感慨之情, 或至涕泣, 而不收者, 非有所爲而然也。 至誠惻怛之心, 發於天性之眞, 而不能自已也。 臣之所陳, 亦出於懇迫誠悃之至, 伏惟, 聖明憐其情, 而少加恕察焉。 伏聞, 殿下以上聖之資, 承列聖之緖, 宵衣旰食, 勵精圖治, 褒淸白, 擧遺逸, 賑窮民, 哀煢獨, 遇災異之譴, 盡修省之道。 每下懇惻之旨, 欲聞忠讜之論。 敬天勤民之意, 無所不至, 環海之間, 含生之類, 霑被聖澤, 莫不歡欣。 治效日久, 儒風復振, 野無遺賢, 嘉言罔伏。 士之潛光遁迹, 蘊櫝而懷寶者, 皆願輸忠獻謨, 以贊聖政之毫末。 臣雖愚賤, 亦有秉彝之性, 幸在聖代, 豈獨無獻芹之微誠乎? 但以學術鹵莽, 見聞寡陋, 終無以一陳肝肺, 以新聖聽。 秪念, 臣父彦迪所撰進修之規, 疑亦有裨於聖功之萬一, 今乃冒萬死獻進, 惟殿下採擇焉。 臣父平生愛君忠國之念, 歷變履險, 無時間斷。 遭遇, 中廟, 罄竭心懷, 知無不言, 嘗獻之以一綱十目之疏, 中廟稱之曰: "言論剛正, 雖古之眞德秀, 亦無以加此。" 卽命傳寫三道, 以示東宮及外朝, 賜書褒美, 眷遇益重, 恩數非常。 臣父未效絲毫之報, 遽迫鼎湖之慟, 攀號莫及, 常懷罔極之痛。 及殿下嗣服, 臣父首參講席, 伏覩聖質英明, 天音明朗, 不覺喜淚交頤, 思欲竭忠貞之節, 盡輔翼之道。 不幸病母年垂八十, 遠在南涯, 【慶州。】 丙午春, 臣父受暇歸省, 奄奄氣息, 朝不保夕, 切迫之情, 不忍遠離。 具狀陳情, 願乞留養, 三被溫旨, 未蒙允許。 其年秋, 母病稍蘇, 將詣闕謝恩, 而反有物議, 遞罷其職。 明年秋, 再承恩譴, 投竄西鄙。 白首窮涯, 丹心彌切, 每値求言之旨, 伏見罪己之敎, 臣父自嘆: "聖明如此, 千載一會, 負罪嬰釁, 假息遐荒, 展包陳悃, 終不得一徹於君父耶?" 於是乃取進德修業之義, 衍爲八條, 名之曰《進修八規》。 別有一條者, 臣父追聞, 聖上誕生元嗣, 又撰養國本之條, 以係於後。 繕寫已具, 將欲進獻, 而天門阻隔, 展達無由。 【彦迪撰此八規, 欲隨疏上進。 洪暹時爲監司, 止之, 遂不果。】 齎志殞歿, 而其書獨存, 言簡而志遠, 辭的而理備。 帝王存心出治之要, 蓋亦不外於此矣。 萬幾之暇, 幸賜省覽, 深玩而體察焉。 其於日新之功, 未必無涓埃之補矣。 白首舊臣, 其爲報國之志, 濱死益切。 及其臨死, 言不及家事, 惟曰: "余受三朝厚恩, 寵渥如山, 稱效寂然, 投棄絶徼, 理固宜然。 特賴聖慈寬仁明恕, 七載邊荒, 永保天年。 聖恩莫量, 粉骨難酬, 第念所撰進修之規, 庶幾有助於聖學。 若能進獻, 儻蒙採取, 吾死無憾。 古人亦有臨死而遺表者, 卽此意也。" 緖言纔終, 神魂已閉, 臣日夜悲號, 扶櫬千里, 寢藉氷雪, 素嬰偏枯之疾, 難轉寸步之地。 遠伏海陬, 天路邈邈, 叫號無門, 迄未陳獻, 上負明主渴聞讜論之誠, 下負亡父臨死補袞之志, 恐使泉壤之下, 永抱無窮之恨, 常瞻北辰, 懷痛窮天。 今者伏聞, 聖德日博恢廓之道, 與天同大, 懼刑政之或差, 憐鱞寡之無告, 原赦罪累, 咸得自新, 滌垢磨瑕, 與之更始, 生恩遍洽, 和氣遠溢, 神人俱歡, 率土同慶, 聖明盛時, 千歲難逢。 臣由是力疾匍匐於官途, 獻此臣父所撰之辭, 不避斧鑕之誅, 庶冀乙夜之覽。 伏惟, 殿下哀矜而垂察焉。
其《進修八規》曰:
臣謹按, 孔子贊易於乾之九二, 發明爲學之道曰: "君子進德修業。" 忠信, 所以進德也; 脩辭立其誠, 所以修業也。 蓋德是道之得於心者, 業是功之見於事者。 《大學》之誠意、正心、修身, 德也; 齊家、治國、平天下, 業也。 君子志於學, 日乾夕惕, 無時間斷, 故德之進者, 日益崇; 業之修者, 日益廣。 臣不侫,又取進德修業之義, 衍爲八規, 以爲聖學之助, 淸閒之燕, 儻賜少覽, 深味而力行之, 則帝王之存心出治之要, 繼天立極之道, 具於此矣。 臣不勝惓惓之至。 其一曰: "明道理。" 臣聞, 道者日用事物當行之理, 皆性之德, 而具於心, 無物不有, 無時不然, 所謂不可須臾離者也。 以日用之最近者言之, 則爲君臣者有君臣之理, 爲父子者有父子之理, 爲夫婦、爲長幼、爲朋友, 以至於出入起居應事接物之際, 亦莫不各有理焉。 夫人稟天賦之性, 而萬物皆備於身, 明其理而盡其性, 則皆可以爲堯舜, 而參天地贊化育矣。 若夫帝王修齊治平之要, 古今理亂興亡之變, 人材道術邪正是非之辨, 天命人心去就離合之幾, 皆有至著至微之理, 具於經訓史策之中。 苟不講而明之, 有所眩惑, 則又何以明大道而定取舍, 于以建中於民乎? 是故帝王之學, 莫先於窮理。 理無不窮, 則於天下事物, 莫不知其所以然, 與其所當然, 而無纖芥之疑。 善則從之, 惡則去之, 而無毫髮之累, 可以達乎一貫之妙, 而御萬幾應萬務矣。 蓋窮理之要, 必在於讀書; 讀書之法, 又在於循序而致精。 至於致精之本, 則在於心, 心之爲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爲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而馳驚飛揚, 以徇物欲於軀殼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視之而不見, 聽之而不聞。 又安能硏窮聖賢之訓, 講究義理之歸, 察倫明物, 極其所止乎? 孟子曰: ‘學問之道無他焉, 求其放心而已矣’ 者, 正謂此也。 誠能嚴恭寅畏, 常存此心, 使其終日儼然, 如鏡之明, 如水之止, 不爲物欲之所侵亂, 則以之讀書, 以之觀理, 將無所往而不通; 以之應事, 以之接物, 將無所處而不當矣。 故曰: ‘居敬者, 聖學之成始而成終者也。’ 伏願殿下, 日親賢德之士, 講劘道義之源, 而必以敬爲主。 敬者主一無適之謂, 聰明睿智, 皆由是出, 聖人窮理盡性之功, 在於是矣。惟聖明留神焉。 其二曰: "立大本。" 臣按, 先儒朱熹, 以人主之心, 爲天下之大本。 其言曰: "天下之事, 千變萬化, 其端無窮, 而無一不本於人主之心者。" 故人主之心正, 則天下之事無有不正; 人主之心不正, 則天下之事無有不邪。 此自然之理也。 蓋人君位億兆之上, 理萬幾之政, 其心廓然大公, 儼然至正, 如日中天, 照臨萬物, 無所偏蔽, 然後發號施令, 任賢退邪, 皆合於理而朝廷以正, 百官萬民, 皆得正矣。 如或有一毫私邪之蔽,而所存所發, 少有差失, 則大本已不正矣。 又何以正朝廷, 正百官, 以及萬民乎? 譬如表端而影直, 源濁而流汚, 其理有必然者。 古之聖帝明王傳授之際, 丁寧告戒, 未嘗不以心法爲先者, 正爲是也。 夫心之本體, 廣大虛明, 萬理咸備, 善養而無害, 則與天地同其大, 與日月合其明。 大可以容萬物, 而覆載之中, 群黎品彙, 咸被其澤; 明足以照萬變, 而事物之間, 是非邪正, 皆不遁其形。 此紀綱之所由立, 風化之所由行, 而天下國家之所由治也。 心之德, 其盛矣乎! 存此心, 而致熙皞之治者。 堯舜三王之所以爲聖也。 亡此心, 而速危亡之禍者, 桀紂幽厲之所以爲狂也。 其操存捨亡之機, 決於一念敬肆之間, 而治亂以判, 可不戒哉? 蓋人主之心, 虛明公正, 純一無雜, 則外物不能惑之。 如或不然, 則攻之者甚衆, 或以謟諛, 或以姦僞, 或以奇披, 或以邪說, 或以嗜欲 輻輳攻之, 各求自售。 人主少懈而受其一, 則亂亡(碩)〔傾〕 之。 凡此數者, 皆迷心之鴆毒, 不可不防之於微, 而杜之於漸。 伏願, 殿下靜觀萬物之原, 常存戒懼之念, 痛絶外誘之蔽, 以全一心之德, 于以施于政治, 則其功效之妙, 自微至著, 由內及外, 光明洞澈, 無小瑕翳, 而萬事循其則, 萬物得其所, 唐、虞於變之治, 可以馴致矣。 昔舜告禹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宋 太祖曰: "洞開重門, 正如我心, 少有邪曲, 人皆見之。" 千古聖人心法之要, 端在於此。 伏惟, 聖明留意焉。 臣伏見近歲求言之旨, 首言君心出治之原, 而心有所不正歟? 又言誠意之未孚, 而深嘆實封起警之無人。 嗚呼! 殿下之言及此, 宗社臣民之福也。 堯、舜三王之治, 皆本於一心, 而萬化行矣。 漢、唐以來, 明君賢輔, 講求治道, 專在於法度刑政之細務, 而不知本源之所在。 故雖粗致一世之少康, 而終不能復古之治, 甚可嘆也。 臣伏見, 殿下睿思高遠, 洞見萬化之源, 思所以正之, 此近古所未聞也。 聖明如此, 千載一會, 有志致君澤民者, 寧無一言以裨贊盛心乎? 臣去丙午年, 受暇歸省病母時, 曾以正心之說, 略陳於闕下, 而又以講學、明理、親賢、遠姦, 爲正心之要。 但以迫於省母, 匆匆去國, 未竟其說。 不知, 殿下記念與否? 今復展達區區之心, 有望於聖明深矣; 惟殿下省念焉。 其三曰: "體天德。" 《易》曰: "天行健, 君子以, 自疆不息。" 又曰: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 蓋天之德, 剛健無息而已。 君子法之, 勉疆於進德修業, 惟日孜孜, 無少怠慢。 其曰日乾夕惕者, 乃所以自疆不息之事也。 古之人君, 日出視朝, 朝退而路寢聽政。 及其萬幾之暇, 燕閑之時, 則講習聖賢之訓, 尋究治亂之迹, 法其善而戒其惡。 講讀旣罷, 未與物接心體寂然之時, 益加澄治之力, 戒懼於不覩不聞, 涵養於無思無爲, 必使此心虛明公正, 無所偏倚, 以爲酬酢萬變之主。 迨其念慮之發,又致省察之功, 審其理欲之幾。 果天理也, 則敬而擴之, 而不使其少有壅閼; 果人欲也, 則敬而克之, 不使小有凝滯。 夫如是, 則無一息間斷, 無一念差謬, 大本以立, 而達道以行, 可以達天德而致中和矣。 夫所謂天德者, 一而無二, 純而不雜, 合而言之, 則誠也。 動靜無違, 表理交正, 而終始惟一, 然後乃可以庶幾焉。 如或外爲警戒之言, 而內有怠荒之漸, 外爲敬善之貌, 而內無親賢之心, 恭己於大庭廣衆之中, 而肆意於深宮燕閑之時, 心存於經幄講論之際, 而志移於屋漏幽隱之地, 此非誠也。 敬畏未幾, 而慢忽繼之, 儉約未幾, 而侈泰隨之, 勤惰之靡常, 而曝寒之不一, 凡若此者, 皆非誠也。 《中庸》曰: "惟天之命, 於穆不已。" 蓋曰: "天之所以爲天也,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蓋曰: "文王之所以爲文也, 純亦不已。" 夫文王之德, 純一無雜, 故能合於於穆不已之天。 程子曰: "有天德, 便可語王道。 其要只在愼獨。" 惟聖明深體焉。 臣伏見, 殿下聖質明睿, 有堯、舜之資, 近年以來, 憂勤庶政, 屢下哀痛之旨, 欲聞忠讜之言, 以盡敬天勤民之道。 聖念孜孜, 豈有怠荒之漸? 又豈有一息間斷之時? 然人心難保, 氣質易移, 一念存亡, 治亂所係, 故雖以大聖之資, 而不可忘規戒。 益戒于舜曰: "罔遊于逸, 罔淫于樂。" 禹又戒之以無若丹朱, 好慢遊作傲虐。 夫以舜之聖, 不爲淫逸, 慢遊傲虐, 雖愚夫知之, 豈以禹、益之賢, 而不知哉? 蓋處崇高之位, 儆戒之道, 不得不如是也。 故先儒程子言: "人主常防未萌之欲。" 此言尤要切, 伏惟聖慈留念焉。 其四曰: "法往聖。" 帝王之學, 當志於繼往聖聖人之道, 巍巍蕩蕩, 若不可跂及, 然求其心法, 則精一而已矣。 求其德行, 則仁孝而已。 是非至簡而不煩, 至近而非遠乎? 後世人主, 皆以聖王之道爲高遠, 而不知求之至簡至近之地, 故數千載以來, 不復見熙皞之治, 可勝歎哉? 臣伏見, 殿下明睿冠古, 孝敬兼至, 事慈殿, 盡三朝之禮, 奉大妃, 致溫(淸)〔凊〕 之誠。 盡禮於喪祭之始終, 推恩於九族之親踈, 仁孝之德, 昭于上下, 朝野莫不感歎。 誠能益加窮理之力, 以致誠正之功, 常驗之吾之一心, 遏人欲之危, 存天理之微, 精以察二者之間而不雜, 一以守本心之正而不離, 從事於斯, 少無間斷, 必使天理之公常爲一身之主, 而人欲之私, 無自肆焉, 則危者安, 微者著, 而動靜云爲, 皆合於中矣。
古昔帝王心法之要, 不過如是, 豈高遠而難能乎? 聖人之道, 本於仁, 而爲仁必始於孝, 孝者百行之本, 而萬化之原也。 蓋天有四德, 而爲元之長, 人稟其理, 是謂本心之全德, 人莫不有心, 而存之者鮮矣。 惟聖人, 能全其本心, 而盡孝之道。 推愛親之心, 以及於民, 發政施仁, 撫育蒸黎, 使鱞寡孤獨, 各遂其生養之樂。 又推其心, 以及於物, 孟春之月, 禁止伐木, 毋覆巢毋殺孩蟲。 獺祭魚然後入澤梁; 草木零落然後入山林; 昆蟲未蟄, 不以火田。 此所以鳥獸魚鼈咸若, 而山川鬼神亦莫不寧, 和氣充浹, 而瑞慶至焉。 凡此無非仁之事, 而孝之推也。 故孔子曰: "斷一枝、殺一獸, 不以時, 非孝也。" 蓋以害吾惻隱之心也。 此心流通普徧, 無物不被, 則可以盡己之性, 而盡人物之性, 聖人參天地、贊化育之功, 皆本於至誠仁愛之心矣。 蓋帝王之道, 有體有用, 存心於精一者, 體之所以立也。 盡道於仁孝者, 用之所以行也。 夫如是, 則體用全, 而王道畢矣。 孟子言: "我非堯、舜之道, 不敢陳於王前。" 臣之所陳, 無非堯、舜之道也。 伏惟聖明, 深勉焉; 其五曰: "廣聰明。" 臣聞爲治之道, 莫先於廣聰明。 人君以一身之眇, 位天人之間, 庶政之闕遺, 人才之吉凶, 天意之譴告, 民情之愁怨, 聰明有所不逮, 而照鑑或有所廢, 則何以審其幾微, 燭其幽遠而處之, 皆合於道乎? 稽諸經史, 善治之主, 莫不以開言路、廣聰明爲急。 虞舜好問而好察邇言, 受終之初, 不遑他務, 而汲汲於明四目、達四聰。 夏禹聞善言, 則拜。 縣鍾皷磬鐸鞀, 以待四方之士曰: ‘敎寡人以道者, 擊皷; 諭以義者, 擊鍾; 告以事者, 振鐸; 語以憂者, 擊磬; 有獄訟者, 搖鞀。’ 一饋而十起, 一沐三握髮, 皆所以廣其聽覽, 以決天下之壅蔽也。 聖人之心, 如靑天白日, 無少瑕翳, 而又能廣聰明, 無所欺蔽, 則雖在九重之邃, 海內理亂, 生民休戚, 臣僚邪正, 瞭然於目中矣。 蓋人主之視聽有限, 故必合衆人之視聽, 以爲聰明。 苟非大公其心, 無所偏繫, 樂聞直言, 虛懷聽受者, 何能及此? 孔子之言曰: "良藥苦口, 而利於病; 忠言逆耳, 而利於行。" 湯、武以諤諤而昌, 桀、紂以唯唯而亡。 陸贄之言曰: "非明智, 不能招直言。 非聖德, 不能求過行。 招直言, 則其智彌大; 求過行, 則其德彌光。" 此眞前古格言, 人主所宜三復而警省也。 夫忠言讜論, 非人臣之利, 乃國家之福也。 自非忠激義奮捐身循國者, 其能盡言於雷霆之下者鮮矣。 是以哲后興王, 深明是理, 求言如不及, 納善如轉圜。 諒直者嘉之, 訐犯者義之, 愚淺者容之, 猶慮驕察之易滋, 而忠實之不聞也。 於是, 置敢諫之鼓, 植告善之旌, 懸戒愼之鞀, 立司過之士, 孜孜訪納, 唯善是求。 恒恐一夫之不盡其情「 一事之不得其理。 乃至求謗言、聽輿誦, 葑菲不以下體而不擇, 芻蕘不以賤品而不詢。 當是時, 內自臣工, 外至草野韋布之士, 莫不罄竭陳懷, 披瀝獻言, 以裨治化。 此所以嘉言罔攸伏, 而君德以明, 朝政以修, 群情畢達, 而無姦邪壅蔽之禍矣。 人主之心, 如或有一毫偏非之蔽, 而踈遠忠直, 厭聞讜言, 則人皆括囊緘口, 阿諛順旨, 雖有宗社之禍迫於朝夕, 指鹿之奸, 發於殿陛, 誰敢建一言、開一說哉? 自古人主孤立於上, 而聰明蔽塞, 天怒而不聞, 民怨而不知, 日趨於危亡, 而不悟者, 蓋以此也。 方今聖明在上, 樂取諸人, 喜聞讜議, 首開不諱之路, 思新一代之治, 惻怛求言之旨, 屢降於中外, 而尋常弊瘼, 時陳於章疏, 嘉言格論, 未聞於草澤 , 豈非德音雖渴於聞善, 而群情猶畏其觸諱, 咸欲循默, 而自保耶? 古之聖王, 感人心而通天下之志者, 誠信而已矣。 誠者爲治之本, 而信者人君之大寶也。 誠信之至, 可以感鬼神、格天地, 而況於人乎? 伏願, 殿下剛以法天, 虛以受人, 建中和之極, 廓包容之量, 樂善好德, 而無一念之不誠, 發號施令, 而無一言之不信, 則自然群情感動, 昌言正論, 畢陳於前, 而有以贊成光明, 泰和之治矣。 惟聖明留念焉。
其六曰: "施仁政。" 臣按《易》曰: "大哉乾元, 萬物資始, 至哉坤元, 萬物資生。" 成位乎其中, 則與天地參, 故體元者, 人君之職, 調元者, 宰相之事。 元者仁也, 仁, 人心也。 惟人之生, 得天地生物之心, 以爲心, 故人皆有惻隱之心, 是乃仁之端也。 人君推是心, 而施之于政, 使四域之內, 含生之類, 咸被其澤, 是之謂體元。 宰相存此心, 而贊襄美政, 施愛人濟物之志, 順天地生育之心, 是之謂調元。 君相協心同德, 道洽政治, 保合太和, 仁賢列于庶位, 惠澤浹于民物, 則心和氣和, 而天地之和, 應之, 陰陽調而風雨時, 群生遂而萬物殖, 諸福之物, 可致之祥, 莫不畢至, 而王道終矣。 自古人君欲施仁政, 而害于人者有二。 刑罰煩, 則怨痛多; 而害于仁矣。 賦斂重, 則民竭其膏澤; 而害于仁矣。 故孟子以省刑罰、薄稅斂, 爲施仁政之本。 蓋不能如是, 雖有仁心仁聞, 而民不被其澤矣。 帝王之治, 本於仁義禮樂, 而民有不率敎者, 有刑而齊之。 是特補治之具爾, 故刑政雖設, 而欽恤之意, 未嘗不行於其間。 皋陶稱舜之德曰: "帝德罔愆, 臨下以簡。 御衆以寬, 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經。 好生之德, 洽于民心。" 蓋舜之德, 本於寬簡, 而刑期無刑, 民協于中, 故有四方風動之效, 此後世之所宜法者也。 孔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有若曰: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蓋侈用則傷財, 傷財, 必至於害民, 故人君深明君民一體之理, 樂民之樂, 憂民之憂, 恭儉節用, 約己厚下。 如文帝之惜百金之費, 宋 仁宗之忍一夕之飢, 然後乃可以革弊習、施寬政, 而民免於割剝矣。 《大學》引詩之言曰: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 好之, 民之所惡, 惡之, 此之謂民之父母。" 又曰: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衆則得國, 失衆則失國。" 先儒朱熹繼之曰: "有天下者, 能存此心而不失, 則所以絜矩, 而與民同欲者, 自不能已矣。" 夫所謂此心者, 至誠慈愛之心也。 蓋有是心, 然後可以行仁政; 苟無是心, 徒法不能以自行矣。 昔唐 太宗哀傷於斷獄, 而有割肌腹飽之戒。 宋 太祖感泣於橫罹, 而諭諸侯撫養之道, 仁愛一念, 足以壽國脈而綿歷年, 苟非有至誠惻怛之心, 何能至此? 《易》曰: "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 何以守位, 曰仁。" 孟子曰: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 伏願, 殿下深體聖言, 常存是心, 宗社幸甚, 臣民幸甚。 臣伏聞, 殿下有仁聖之心, 愛人恤物, 發於至誠惻怛, 愼刑薄斂之意, 每軫於宵旰。 聖德如天, 生育之恩, 無所不被, 惡殺不忍之意, 懇懇於垂簾之內, 朝野聞之, 莫不感激隕涕。 雖舜之好生, 禹之泣罪人, 文王之視民如傷, 亦無以過矣。 頃者, 臺諫請誅陰陽俱備之人, 【有一邪人, 佯爲女巫, 出入士族之家, 頗有醜聲。】 以除不祥, 聖敎乃曰: "禽獸, 亦不可輕殺, 況於人類乎? 投之絶域可也。" 大哉! 王言。 眞天地父母之爲量也。 推此心, 以及民物, 其有不被聖澤者乎? 嗚呼! 聖明如此, 群臣固宜將順, 以成至治, 而親民之官, 犴獄之吏, 或有不能深體聖意, 箠楚有律外之濫, 徵斂有稅外之煩, 此聖澤之所以壅遏, 而民未蒙實惠也。 誠去此二害, 而施之以敎化, 則於變之治, 可復見於今日矣。 伏惟, 聖明留念焉。 其七曰: "順天心。" 臣按伊尹訓, 《太甲》曰: "惟天無親, 克敬惟親, 民罔常懷, 懷于有仁。" 傅說告高宗曰: "惟天聰明, 惟聖是憲, 惟臣欽若, 惟民從。" 又召公戒成王曰: "皇天上帝, 改厥元子, 玆大國殷之命, 惟王受命, 無疆惟休, 亦無疆惟恤。" 嗚呼! 曷其奈何不敬? 古之聖賢, 告戒其君者, 莫切於此。 然則人君修德保位之道, 孰有大於敬天者乎? 夫天者, 理之所在, 而感應之妙, 捷於影響。 人主誠能懋敬厥德, 常思所以配天處心, 行事一順于天理, 而合於人心, 天降百祥, 而永保天祿。 如或有不能敬, 而所存所行, 有一毫悖於天理, 而不合於天心, 則天必厭惡, 而災咎輒應。 是理昭然, 往軌可徵。 此古之帝王所以昧爽丕顯, 對越上帝, 兢業祗慄, 無敢有一息欺慢者也。 昔成湯遇大旱之災, 以六事自責, 以今觀之, 人君所當警省者, 不止於此。 蓋聖人心存誠敬, 常盡事天之道, 而無所欠闕, 惟有六事, 有所慊於心, 而可以致天譴, 故歷言而自省。 後世人君, 敬天之心不能純一, 而遇災修省, 亦有所未盡, 安能格天於冥冥乎? 臣伏見, 殿下淸心一德, 敬天憂民, 宵旰兢惕, 無時豫怠, 而天譴猶未弭, 災沴猶未消, 可見天心之仁愛殿下, 欲扶持全安之也。
天人一理, 顯微無間, 人君奉天理物, 一心合天, 天有不應者乎? 伏願, 殿下體成湯之心, 而盡事天之道, 一言一動, 順帝之則。 而六事之外, 又思其所可戒者, 一念慮之發, 一號令之施, 一刑政之斷, 必求所以合於天理, 而思夫其不合於天者, 則天心底豫, 而和氣應之, 災變消, 而休祥至。 廟社生靈, 萬世之福, 實基於此矣。 夫人君心事之合天與否, 何以驗之, 驗之於人心, 而可知矣。 君心大公至正, 好惡取舍, 當於義理, 而協于群情, 則必合於天心矣。 如或不爾, 而有違於道, 則拂人之心矣。 何以答天意乎? 天之心, 卽人之心, 人心得, 則天意得矣。 書曰: "天視, 自我民視; 天聽, 自我民聽。" 《詩》曰: "畏天之威, 于時保之。" 伏惟, 聖明深燭是理, 常存祗懼, 罔咈百姓, 以違天意。 其八曰: "致中和。" 《中庸》曰: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又曰: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蓋天命之性, 純粹至善, 而具於人心, 方其未發, 渾然在中, 而無所偏倚, 故謂之中。 及其發而品節不差, 無所乖戾, 故謂之和。 靜而無不該者, 性之所以爲中也。 天下之理, 皆由是出, 故曰天下之大本。 動而無不中者, 情之發而得其正也。 天下古今之所共由, 故曰天下之達道。 此乃人心寂感, 自然之理, 體用之全, 本皆如此, 不以聖愚, 而有加損也。 然靜而不知所以存之, 則天理昧, 而大本有所不立矣。 動而不知所以節之, 則人欲肆, 而達道有所不行矣。 惟君子, 常存戒懼於不覩不聞之地, 欲以存其渾然之體無所偏倚, 而其守不失, 則大本之立, 日以益固。 又察幾微於隱微幽獨之際,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 而無適不然, 則達道之行, 日以益廣, 此乃致中和, 而有位育之効也。 先儒朱熹之說曰: "靜而無一息之不中, 則吾心正, 而天地之心亦正, 故陰陽動靜, 各止其所, 而天地於是乎位矣。 動而無一事之不和, 則吾氣順, 而天地之氣亦順, 故充塞無間, 歡欣交通, 而萬物於是乎位矣。" 此萬化之本源, 此心之妙用, 聖神之能事, 學問之極功也。 臣謂, 人處天地之中, 理氣貫通, 參合無間, 故人之心氣, 可以致感於天地, 況人君成位乎其中, 爲民物之主, 一心肅然於中, 至虛至公, 而格于上下, 則天地安得以不位乎? 喜怒哀樂之發, 皆合於理, 賞一人而千萬人勸, 怒一人而千萬人懲, 哀民之窮, 而鱞寡孤獨皆得其所, 樂民之樂, 而群黎品彙咸被其澤, 則萬物安得以不位乎? 陰陽調而風雨時; 災變消而休祥至。 覆載之中, 含生之類, 莫不各遂其性, 此致中和之極功也。 先儒所謂, 心和氣和, 而天地之和應者, 此也。 後世明哲之主, 有志於善治者固多矣, 而未有用力於此, 故天地不應而美祥莫至。 三辰失行, 六氣不和, 地震山崩, 水旱飢饉, 災變荐仍, 而群生莫遂, 烏可不思其所以致此之由乎? 蓋人君居天位、理萬物, 九重深邃, 本體澄寂之時, 有一毫偏倚之累, 則失其中矣, 而天地爲之不位矣。 至於念慮之發, 刑政之施, 有一事違於義理, 則失其和, 而萬物爲之不育矣。 故曰: "人主一心, 萬化之源。" 其可頃刻, 而不存乎? 其可絲毫, 而不察乎? 臣昔忝備侍從之班, 曾以此說, 獻于中廟。 今又以此, 獻于殿下, 臣之有望於聖明, 深矣。 伏惟, 殿下深勉焉。 右八規, 皆本聖經賢傳之旨, 無非進德修業之要。 但以主於輔導聖學, 而未暇備治道之節目。
然其爲治之綱領, 則具於此矣。 以之修身齊家, 以之建中建極, 以之而立紀綱、正朝廷、闢四門、廣視聽、任賢才、布衆職、明聖道、正人心、崇敎化、變風俗, 二帝三王之治, 不踰於此矣。 治道雖曰多端, 求其本源之地, 在於人主之心。 端本淸源之道, 又在於務學。 臣伏見, 殿下睿質天成, 德業日就, 經幄之啓沃, 庶明之勵翼, 蓋亦無所不至。 緝熙聖功, 豈有所欠闕 然古之聖王, 好察邇言, 樂取諸人, 此所以德益明而業益大也。 惟殿下, 勿以臣言爲迂而留神焉。 其九曰: "養國本。" 臣謹按, 《詩》之《大雅》曰: "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聿懷多福。" 又曰: "舋舋文王, 令聞不已, 陳錫哉周候, 文王孫子。" 蓋文王有翼翼之敬、舋舋之誠, 而能盡事天之道, 故有敷錫之慶, 而澤流於百世。 臣伏見, 殿下心存誠敬, 常思所以奉天仁民之道, 而無時豫怠, 故天鑑厥德, 篤生聖嗣, 宗社臣民億萬年無疆之休也。 昔者太任娠文王, 有胎敎之法, 故文王生而明聖。 古之聖人敎子之法, 始於在胎之時, 而況旣生而孩提有識乎? 臣竊思, 元子今雖在於襁褓, 生稟異資, 岐嶷夙成, 必有異於凡人者, 敎養輔翼之道, 不可不預爲之備。 臣謹稽禮經, 凡三王敎世子, 必以禮樂, 立太傅、少傅, 以養之。 太傅在前, 少傅在後, 入則有保, 出則有師, 是以敎諭而德成也。 保傅篇曰: "古之王者, 太子乃生, 固擧以禮, 有司齋肅端冕, 見之南郊, 見于天也。 過闕則下, 過廟則趨, 孝子之道也。 故自爲赤子, 而敎固已行矣。" 周成王幼在襁褓之中, 召公爲太保, 周公爲大傅, 太公爲太師, 保保其身體, 傅傅之德義, 師導之敎訓, 此三公之職也。 於是爲置少保、少傅、少師, 是與太子宴者也。 故孩提有識, 三公三少, 固明孝仁禮義, 以導習之, 逐去邪人, 不使見惡行。 於是皆選天下之端士, 博聞有道術者, 以衛翊之, 使與太子居處出入, 故太子廼生而見正事、 聞正言、行正道, 左右前後, 皆正人也。 夫習與正人居之, 不能無正, 猶生長於齊, 不能不齊言也。 習與不正人居之, 不能無不正, 猶生長於楚, 不能不楚言也。 孔子曰: "少成若天性, 習慣如自然。" 三代之所以長久者, 以其輔翼太子, 有此具也。 臣謂三代聖王之制, 皆可復於後世, 況此輔翼太子之法, 尤有關於宗社生民之休戚, 聖明在上, 擧而行之, 有何難焉? 秦、漢以來, 敎養國儲, 甚爲苟簡, 諭之非道, 敎之無法, 而被禍敗者多矣, 不可不戒。 昔文王使太公傅太子。 及嗜鮑魚, 而太公不與曰: "禮, 鮑魚不登於俎, 豈可以非禮養太子?" 古人之敎太子, 其嚴如是。 非禮之味, 不可以養太子, 則不正之人, 不正之色, 不正之聲, 亦不可接於耳目矣。 故曰太子之善, 在於早諭敎與選左右敎, 得而左右正則, 太子正矣。 此乃蒙以養正之道也。 臣不揆愚陋, 敢取先王之法, 可以施於今日者, 爲朝廷獻焉。 惟聖明留意焉。 更取全篇, 參考而施行。 凡保養敎諭之方, 一如三代之法, 不待侍講之設, 早立師傅, 保以領其調護之職, 見之南郊。 蓋古天子之禮, 今雖不可擧行, 過闕則下, 過廟則趨之禮, 乃所以示臣子之道也, 今亦可以行之。 至於保母及侍奉之人, 竝選溫良恭敬寬裕慈惠, 有德行之人以備之。 如有陰邪不正之人, 則斥去不近。 器用服玩, 皆須質朴, 侈靡之物, 不接於目, 淺俗之言, 不入於耳, 則化與心成, 中道若性, 聖質已具於孩提之時矣。 及其少長, 嘉言格論, 日陳 於前, 有以養成純粹之質, 開發聰明之性, 則習與智長, 以一知百, 無異於文王之聖, 而宗社臣民之福, 實源於此矣。 臣不勝惓惓, 臣竊惟, 方今爲宗社生民萬世之計, 惟在於輔導聖學, 而尤莫大於敎養儲宮, 不可以聖學已成, 而無規戒之益, 不可以方在襁(襁)〔褓〕 , 而忽其輔翼之道也。 夫聖, 莫聖於舜, 而禹、皋陶未嘗忘規戒。 召公又曰: ‘若生子, 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蓋言子之初生, 敎養之得其道則哲; 失其道則愚。 凡人皆不可以不謹, 而況儲貳之生乎? 輔導之規, 敎諭之方, 粗備於九條。 老臣區區忠愛之誠, 抵死不泯, 瀝血刳心, 以祈乙夜之一覺, 儻蒙 聖慈留心潛玩, 其於日新之功, 養正之方, 未必無涓埃之報。 臣名在罪籍, 不宜冒貢微衷, 仰干宸嚴, 第念臣以三朝老臣, 受恩深重, 非他人比。 白首窮遐, 丹心彌切, 不能自已。 狂瞽鄙說, 幸紆宸鑑, 有一毫裨贊之效, 則臣雖死於溝壑, 亦無所恨。 誠激於衷, 言不知裁, 伏惟, 聖慈哀矜恕察焉。 臣李彦迪, 惶懼惶懼, 稽首稽首。 【此規作於嘉靖三十三年。】
傳于政院曰: "身在草野, 不忘, 父志, 爲進此規, 予嘉其誠。 此意令慶尙道監司, 傳諭李全仁" 【彦迪, 中廟朝眞儒。 潛心學問, 造詣深奧, 踐履篤實, 東方道學, 趙光祖後有此人。 丁未秋, 爲李芑等所構陷, 謫江界。 在謫中困窶, 人所不堪, 而處之裕如, 愛君愛國之誠, 終始如一。 ○彦迪少有聖賢之志, 勇於進修, 深有所得。 嘗尹全州府, 上疏陳十條。 中廟朝嘉奬曰: "寡人之眞德秀也。" 仁廟之薨, 尹仁鏡問曰: "誰當同聽政乎?" 指中廟、仁廟兩大妃而言也。 彦迪曰: "自有宋朝故事, 不須問也。" 指宣仁皇后也。 仁鏡之入對忠順堂也, 反以李彦迪、權橃爲欲沮大王大妃垂簾之事。 彦迪微聞其語, 及退頗自解說, 而卒以此得罪, 竄于江界府。 垂二十年, 府人未嘗得見其面。 嘗乘府官之不在, 一至一仁風樓, 樓在府城上, 臨禿魯江, 頗有勝致。 府吏奔告其倅, 而彦迪已返其舍, 終不復出, 以書史自娛。 所著有《求仁錄》、《九經衍義》等書, 皆未及成而卒。 退溪 李滉推尊以爲近代理學之醇儒。】
- 【태백산사고본】 20책 33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10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註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