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 박순에게 전교하여 인심의 강퍅 문제를 해명하다
대사헌 박순에게 전교하였다.
"경이 전에 경연에서, 위에서 말한 ‘인심이 강퍅하다.’는 것을 논계하였는데, 그날은 내가 약간 불안한 기가 있었고 또한 빗소리 때문에 다 하답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내 뜻을 유시하는 것이다. 위에서는 다른 뜻은 없었다. 인심이 화평하면 천지의 기운도 화평하여서 연풍 민안(年豊民安)을 바랄 수 있으리라고 늘 생각하였는데, 근래 왕손(王孫)들이 무식하여 중죄를 범하기까지 하고 소민(小民)은 무지하여 역시 법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것은 모두 강퍅한 것이다. 또한 연소한 문관이 처사를 적중하게 하지 못함을 두려워해서 범연히 이 말을 한 것일 뿐이요, 오로지 조정의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은 아니다. 신하들이 황공해 한다 하는데 이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니 나의 마음 역시 어찌 편하겠는가. 경은 이 뜻을 알라." 【전에 약방(藥房)에 전교하기를 ‘어제 오후에 심기가 번열한 듯하여 정신없이 누워서 곤하게 잠을 잤다. 먼저 청심원(淸心元)을 먹고 그 다음 성심산(醒心散)을 마시고 나서 얼마 후에 기운이 소생하였다. 그러나 상열(上熱)이 더욱 심하여 일신이 차기도 하고 덥기도 하며 심기도 울체(鬱滯)하는데 내 생각에는 가을이 되었으니 소생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내가 박덕(薄德)으로 외람되이 왕위를 지키며 자전(慈殿)을 받들어 모셨는데 일조에 망극한 변을 당하여 깊이 종천지통(終天之痛)을 품었다. 전에 저부(儲副)를 잃은 뒤로는 국세가 더욱 외로와졌으므로 내가 늘 걱정하였다. 그런데 또 안에는 더러 망행(妄行)하는 환관이 있어 비록 황문(黃門)의 벌을 입었으나 어찌 족히 징계될 것이며 밖으로는 권간(權姦)을 몰아내어 조정이 청명해지고 서정이 일신되었는데 공경 대부 중에 혹 강퍅한 사람이 없지 않으니 화기(和氣)가 어찌 천지간에 행해질 수 있겠는가. 인심이 화평하면 천심이 화평하여 한황(旱蝗)이나 풍수(風水)의 재변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없을 것이니, 나 역시 항시 이 점을 탄식하고 있다. 어제 의관(醫官)이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날 것을 아뢰었는데, 이것이 비록 병 조리하는 방법에는 적합할 것 같으나 나의 뜻은 그렇지 않다. 임금이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면 「첫닭 울면 일어난다.」는 도리에 어긋남이 있고 연안(宴安)의 조짐 또한 반드시 이와 같은 습관에서 연유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몹시 추울 때는 추위가 무서우므로 형편상 늦게 일어나게 되지만, 다른 때는 어떻게 감히 늦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많은 일들이 적체되어 해결 방안이 생각나지 않아서 밤에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하니 이것 역시 병 조리에 방해된다.……’ 하였다. 박순이 전일 아뢴 것은 이 전교가 있었기 때문에 아뢴 것이다. 이때 약방이 아뢰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바로 상에게 주달하고 상도 곧바로 약방에 전교하였으며, 승지와 사관은 모두 참여하여 알지 못하였다. 이는 후일의 무궁한 걱정거린데, 습관이 된 지 이미 오래여서 그대로 따르고 고치질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군신간은 정리가 부자와 같아서 조금도 의기(疑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의기하는 마음이 한번 드러나면 참간(讒間)의 말이 그 틈을 타서 반드시 욕망을 성취하고야 만다. 끝내는 사(邪)와 정(正)이 전도되게 하여 국가에 화를 심을 것이니, 이런 때문에 군신은 서로 믿는 것이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강퍅하다고 꾸짖어 의기의 단서를 보이니, 이 한 생각이 족히 다른 날의 화를 심는 것이니, 또한 처참하지 않은가. 또 약방의 임무는 오직 의약에 관한 일을 맡고 있을 뿐이다. ‘내가 박덕으로’ 이하의 말은 이 어찌 약방이 알 수 있는 것인가. 공경을 믿지 않고 약방을 믿으니 이 또한 의혹스런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10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윤리(倫理) / 역사-사학(史學)
○乙(亥)〔酉〕 /傳于大司憲朴淳曰: "卿前於經席之上論啓, 自上所言人心强愎之事, 而其日予微有不安之氣, 亦因雨聲, 未盡下答, 故今日更諭予意也, 自上無他意也。 常念, 人心和, 則天地之氣亦和。 庶望歲豐民安, 而近來王孫無識, 至犯重罪, 小民無知, 亦不畏法, 俱是剛愎, 而亦恐有年少文官處事不中之弊, 偶發此言而已, 非專指朝廷之事也。 至於群臣惶恐, 則非予本意, 予心亦豈寧乎? 卿識此意。" 【頃者, 傳于藥房曰: "昨日午後, 氣似煩熱, 昏臥困睡。 先服淸心元, 次飮醒心散, 良久然後氣蘇。 然上熱彌滿一身, 或涼或熱, 心氣亦似鬱滯。 予冀秋 〔涼〕則庶可蘇也。 予以薄德, 叨守丕基, 奉侍慈殿, 而一朝盈國極之變, 長抱終天之慟。 而前喪儲副之後, 國勢益孤, 予常悚憫也。 且內則或有妄行之宦, 雖被黃門之罰, 有何足懲乎? 外則屛斥權姦, 朝廷淸明, 庶政惟新, 而但公卿士大夫, 或不無剛愎之人, 則和氣何能行於天地間乎? 人心和則天心和, 庶無召旱蝗風水之災矣。 予亦常歎者也。 昨者醫官, 以早臥晩起啓之, 雖似合於調病之道, 予意則不然。 人君早臥晩起, 則已有乖於雞鳴而起之之道, 而宴安之漸, 亦未有不由於如此之習也。 隆寒則是寒, 勢至於晩起, 而他時則何敢晩起乎? 萬幾積滯, 計慮未解, 則夜不安寢, 亦妨於調病也。" 云云。 淳之前日之啓, 爲此而發也。 是時藥房欲有所啓, 則直達於上。 上亦直敎於藥房, 而承旨、史官, 皆不與焉。 此他日無窮之患, 而成習已久, 因循不革焉。】
【史臣曰: "君臣之間, 情猶父子, 不可少有疑忌之心也。 疑忌之心一形, 則讒間之言, 得以乘之, 必售其欲而後已。 終使邪正易位, 基禍邦家, 此君臣所以貴乎相信也。 今以剛愎責之, 以示疑忌之端。 此一念, 足以基他日之禍, 不亦慘乎? 且藥房之任, 惟醫藥而已。 予以薄德以下, 此豈藥房之所可知哉? 不信公卿, 而信藥房, 此亦惑矣。"】
- 【태백산사고본】 20책 3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1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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