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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4월 28일 기축 2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오상·강사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상(吳祥)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강사필(姜士弼)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인(李訒)을 사헌부 집의로, 민시중(閔時中)을 사간원 사간으로, 이기(李墍)·이충작(李忠綽)을 사헌부 장령으로, 유전(柳㙉)을 홍문관 부응교로, 김명원(金命元)·정철(鄭澈)을 사헌부 지평으로, 민덕봉(閔德鳳)을 사간원 헌납으로, 이제민(李齊閔)을 홍문관 교리로, 이해수(李海壽)·이이(李珥)를 사간원 정언으로, 황정욱을 홍문관 수찬으로, 신여종(申汝悰) 【성질이 나약(懦弱)하여 관직에 있으면서 아전들을 잘 제어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일찍이 수원 부사(水原府使)가 되었을 적에 백성들이 그가 자애(慈愛)로운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전들의 피해를 감당하지 못했었다. 수원부에 윤원형의 사나운 종이 있었는데, 신여종이 데려다 당(黨)에 오르게 하고 선비를 대하는 예로 대우하자, 그 종이 스스로 위세를 나타내며 더욱 흉악하고 패려한 짓을 하였다. 심지어는 감옥(監獄) 문을 밀치고 들어가 죄수를 살해하는데도, 아무 대책없이 두려워하고만 있었으므로 시론이 용렬하게 여겼다. 자신이 수령의 반열에 끼이게 된 것도 심통원에게 청탁하여 벼슬을 구한 것이니, 다른 것은 또 무엇을 논하겠는가.】 ·이문형(李文馨) 【몸가짐이 대범하고 결백하며 자질이 뛰어나게 총명하였으므로, 선비들의 공론이 그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남의 과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언어(言語)가 경솔하였다. 그리하여 충후(忠厚)하고 함원(涵遠)한 도량이 적었는데 이것이 그의 부족한 점이었다.】 ·박영준을 동지중추부사로, 한홍제(韓弘濟)를 경상우도 수군 절도사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89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以吳祥爲司憲府大司憲, 姜士弼爲司諫院大司諫, 李訒爲司憲府執義, 閔時中爲司諫院司諫, 李墍李忠綽爲司憲府掌令, 柳㙉爲弘文館副應敎金命元鄭澈爲司憲府持平, 閔德鳳爲司諫院獻納, 李齊閔爲弘文館校理, 李海壽李珥爲司諫院正言, 黃廷彧爲弘文館修撰, 申汝悰 【性懦弱, 仕官不能制吏。 故曾爲水原府使時, 民雖知有慈心, 而不勝吏緣之害。 府有尹元衡悍奴, 汝悰引以陞堂, 遇以士禮, 其奴自見威勢, 益肆兇悖。 至於排獄殺囚, 而拱手畏縮, 大爲時論所劣。 身在宰列, 捧簡於沈通源, 而求官。 他又何論?】 李文馨 【持身簡潔, 資性穎悟, 士論許之。 然不忘人過, 言語傷易, 少忠厚涵遠之量, 是其短也。】 朴永俊爲同知中樞府事, 韓弘濟慶尙右道水軍節度使。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67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89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