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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4월 20일 신사 2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양종 선과의 혁파를 명하다

전교하였다.

"양종 선과는 공론을 따라 혁파하도록 하겠다. 【처음에 중 보우가 문정 왕후를 속여 양종의 선과를 설치하게 하였다가, 문정 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조정과 유생이 잇달아 상소하고 처벌을 주청하여 제주도에 유배(流配)되어, 목사 변협(邊協)에게 주살(誅殺)당하였다. 양종 선과는 지금까지 혁파되지 않고 있다가 이때에 이르러 양사에서 계청하여 혁파되었다. 내수사에는 본래 제조를 설치하여 인신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인신을 사용한 뒤에 이르러서는 환관이 공사(公事)를 빙자하여 사사로움을 이루며 마음대로 위엄과 권세를 부렸다. 이때에 이르러 양사에서 아뢰었기 때문에 그 인신을 없앴다. 대체로 두 가지의 폐단이 혁파되자 중앙과 지방에서 크게 거뻐하였다. ○당시 권간이 이미 제거되고 폐단이 되던 정령이 점점 고쳐지자, 조야에서 태평하게 다스려지기를 생각하며 바랐는데 공론이 행해지고 나라를 좀먹고 정치를 해치는 것 중에 큰 것이 하루아침에 모두 제거되었으니, 상의 말년에 뜻을 단단히 하여 경화(更化)하려는 마음도 볼 수 있다. ○이보다 앞서 옥당에서 차자를 올려 수십년을 내려오면서 새로 과조(科條)를 세운 것이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이며 방안에 쌓으면 천정에 닿을 정도로 많아 중앙과 지방에서 따를 바를 모르고 있다고 하면서 대신으로 하여금 삭제하거나 개정하게 하도록 주청하고 양사에서 서명하여 내보냈다고 하였는데, 폐단이 되는 법 중에 양종 선과를 회복한 것과 내수사가 인신을 사용하는 것이 정사를 해치는 것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여겼었다. 그러다가 문정 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차례로 혁파하여 제거하였으므로 중앙과 지방에서 뛰면서 기뻐하였다.】 그리고 능침(陵寢)의 절이나 유명한 거찰인 경우는 예전대로 방(榜)을 걸어 한가한 사람이나 잡된 사람을 엄격하게 금지시키도록 하라. 또 요즈음에 와서 무리배들이 유생이라고 거짓으로 일컬으면서 난잡한 행동을 멋대로 행하여 유도(儒道)를 더럽히며 허물어뜨려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니 예조에 말하여 성균관 및 각 관사로 하여금 규찰하여 엄히 다스리도록 하라."

사신은 논한다. 내수사와 양종이 서로 순치(唇齒)의 관계가 되어 그 세력이 하늘이라도 태울 듯하였지만 감히 누가 어떻게 하지 못하고 해독을 이루어 민물(民物)에 미쳤으니 나라를 다스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폐법을 고쳐서 조정의 정치가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사림의 의논이 일시에 격발하였으니, 실로 온 나라의 인심에서 기인된 것이다. 처음에 유난히 여긴 까닭은 문정 왕후의 유지이기 때문에 고치기 어려워서였던 것이었으나, 마침내 온 나라의 공론을 인해서 20년간의 깊은 고질의 해독을 혁파하였으니, 타고난 천성이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착한 데로 옮기는 데 용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으로 말을 한다면 지난날에 양종 선과를 설치한 것도 상의 본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87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사학(史學) / 사법-치안(治安) / 사상-불교(佛敎) / 인사-선발(選拔)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재정-상공(上供) / 출판-인쇄(印刷) / 왕실-궁관(宮官)

○傳曰: "兩宗、禪科, 俯從公論, 革罷矣。 【初僧普雨欺罔文定, 設兩宗禪科。 文定賓天之後, 朝廷及儒生, 連疏請罪, 流于濟州, 爲牧使邊協所誅。 兩宗禪科, 尙未革罷, 至是兩司啓請罷之。 內需司, 本不設提調而用印。 及用印之後, 宦者憑公濟私, 擅作威福, 至是以兩司之啓, 去其印。 凡革二弊, 中外大悅。 ○時權奸旣除, 弊政漸釐, 朝野想望治平而公論得行, 蠧國害政之大者, 一朝竝去。 上之末年, 銳意更化之心, 亦可見矣。 ○先是玉堂上箚, 以爲數十年來新立科條, 汗牛充棟, 中外莫知所從, 請令大臣, 刪定兩司署出云。 弊法之中, 復兩宗禪科及內需司用印信, 爲害治之大者, 而文定賓天之後, 次第革去, 中外聳悅。】 陵寢寺及有名巨刹, 則依舊掛榜, 痛禁閑雜之人。 且近年以來, 無賴之徒, 假稱儒生, 雜亂橫行, 汙毁儒道, 風俗不美。 言于禮曹, 其令成均館及各官, 察而嚴治。"

【史臣曰: "內需司、兩宗, 相爲唇齒, 勢焰熏大, 莫敢誰何, 以致害及民物, 不可以爲國。 至於今日, 則易絃改轍, 朝政向新, 士林之議, 一時激發, 實因一國之人心也。 始之所以留難者, 以文定王后之遺旨爲難改也。 終因一國之公論, 革罷二十年深痼之害, 非天資粹美, 而勇於遷善, 能若是乎? 以此言之, 則前日之所以設兩宗、禪科, 非上之本意, 亦可知矣。"】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87면
  • 【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사학(史學) / 사법-치안(治安) / 사상-불교(佛敎) / 인사-선발(選拔)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재정-상공(上供) / 출판-인쇄(印刷) / 왕실-궁관(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