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생원 김덕붕 등이 양종을 폐지할 것을 상소하다
성균관 생원 김덕붕(金德鵬) 등이 상소하기를,
"주상 전하께서는 예지의 자질로 전환시킬 기회를 잡으셨습니다. 오늘 한 가지 폐단이 되는 일을 혁파하고 내일 한 가지 더럽혀진 풍속을 바꾸게 하여 모든 정치가 한결같이 새로운 데서 나오게 하려면 저 양종(兩宗) 선과(禪科)도 조석(朝夕)간에 혁파해야 될 것이므로 조야의 신민(臣民)들이 머리를 들고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신조(新條)를 혁파하는 즈음에 응당 혁파해야 할 열(列)에서 제외되었으므로 대신이 논하였으나 윤허하지 않고 대간이 간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 전하께서 불교를 신봉하는 것이 어떻게 이와 같이 심하십니까? 지난 경술년092) 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국가에서 부처를 받드는 데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으니, 부처가 만약 사람에게 복을 준다면 남몰래 보답하는 것이 응당 많을 터인데 천재지변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타나, 심지어 전성(前星)093) 의 빛이 어두워졌으며 동조(東朝)의 명수(命數)가 길지 못했으니, 부처는 사람에게 복을 줄 수는 없으나 남의 국가에 화를 끼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척연(惕然)하게 깨달아야 하며 확연(廓然)하게 물리쳐야 하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시고 오히려 지난날의 전철(前轍)을 따르시니, 신들은 실로 전하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전하의 의도는 ‘국전(國典)에 기재되어 있으니 마땅히 준수해야 하며 자전(慈殿)의 유교(遺敎)를 감히 어길 수 없다.’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선왕(先王)의 법(法)도 당연히 시행해야 할 것이 있으며 당연히 시행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이 잘 다스려지려면 훌륭한 법이 수립되고 세상이 어지러워지려면 결함이 있는 정치가 시행되는 것이니, 전하께서는 조종의 훌륭한 법만 시행하면 충분한데 하필이면 결함이 있는 정치를 따라서 아직도 한때의 실책을 답습하려 하십니까. 그리고 부모의 명령도 따라야 할 것이 있으며 따르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 명이 올바른 도(道)일 것 같으면 종신(終身)토록 변경시키지 않아도 되겠지만, 올바른 도가 아닐 것 같으면 구차스럽게 명만을 따르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따를 만한 것을 가려서 따르면 충분한데 하필이면 따라서는 안 될 것을 따르면서 거듭 만세(萬世)에 깊은 해를 물려 주려 하십니까. 신들이 삼가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살펴 보니 우리 태종께서는 천복(薦福)하는 자리를 금지하게 하셨고, 세조께서도 말년에는 승국(僧國)이란 말에 뉘우치고 깨달으셨으니 이것은 전하의 가법(家法)입니다. 전하께서 처음에는 태종의 뜻을 어겼다 하더라도 지금은 세조의 뉘우침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더구나 우리 중종 대왕께서는 불교를 엄히 배척하셔서 사우를 모두 태워 버리셨으니 참으로 한 세대에서 쾌하게 볼 수 있었던 성대한 일이었고, 40년간의 청명하고 고대했던 법은 반드시 이 거사에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종을 세우는 것이 문정 왕후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양종을 폐지하는 것은 실로 중종의 뜻인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아버지 섬기는 것을 자뢰(資賴)하여 어머니를 섬긴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하늘이 땅보다 우선인 것은 천도의 떳떳함이며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우선인 것은 인륜의 차례입니다. 한 가정을 시험삼아 말한다면 아버지는 임금이 되며 어머니는 삼종(三從)하는 의(義)가 있으니, 그 자식된 자가 어버이를 섬기는 효도에 있어서는 진실로 간격이 없겠지만 가계(家系)의 전통을 이어가는 길은 아버지를 본받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성인(聖人)의 제도에 왕후의 교령(敎令)은 국중(國中)에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은 중종에게 있으며 문정 왕후에게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가령 양종이 중종조에 회복이 되고 문정 왕후가 그것을 따르고 지켰다 하더라도 전하께서 어버이를 드러나게 하는 도리에 있어서는 진실로 오늘날에 혁파하여야 당연합니다. 더구나 중종께서 회복하지 않으시고 문정 왕후가 회복한 것이겠습니까. 아, 요즈음 음험하고 사특한 기운은 바야흐로 사라지고 밝고 맑은 기운이 점점 자라고 있는데 전하께서 만약 쾌히 결단하기를 아끼신다면 바야흐로 사라진 것이 변하여 성대(盛大)하게 되고 점점 자라나던 것이 도리어 쇠약해질 것이니, 그 화와 해가 됨이 도리어 지난날보다 더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에 신들에게 하교(下敎)하시기를 ‘나는 당연히 이단(異端)을 물리칠 것이다.’ 하셨으니, 성교(聖敎)가 양양(洋洋)하게 아직도 신들의 귀에 남아 있는데, 전하께서 어찌 신들을 속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혁파하라는 명령을 내리셔서 신민들의 소망에 응답하시면 오도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가 이단을 숭상하고 받들기 때문에 혁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문정 왕후의 유교가 또렷하여 신자의 도리로서 경솔하게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8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인사-선발(選拔)
○成均館生員金德鵬等上疏曰:
主上殿下, 以睿智之資, 操轉移之機, 今日革一弊事, 明日易一汚俗, 而庶政一出於維新, 則彼兩宗禪科, 亦當朝夕將罷, 朝野臣民, 莫不翹首以待。 頃者罷新條之際, 不置應罷之列, 大臣論之, 而不許; 臺諫爭之, 而不兪。 嗚呼! 殿下之信乎釋敎, 何若是之甚耶! 往自庚戌, 于今十七年, 國家之奉佛, 無所不至。 佛若福人, 甚報宜多, 而天災、地怪, 層現疊出。 至於前星之耀旣晦, 東朝之算不永, 則佛之不能福人, 而能禍人國家審矣。 宜殿下之惕然而悟, 廓而闢之者, 而尙未覺悟, 猶踵前轍, 臣等實未知殿下之意也。 殿下之意不過曰: ‘載在國典, 所當遵守; 慈殿遺敎, 不敢違越。’ 是則不然也。 先王之法, 有所當行者, 有所不當行者。 是以世之將治也, 良法立焉; 世之將亂也, 疵政行焉。 殿下但行祖宗之良法足矣。 何必循其疵政, 而尙襲一時之過擧乎? 且父母之命, 有所當從者, 有所不當從者。 是以如其道, 雖終身無改可也。 如其非道, 苟焉以從命, 非孝也。 殿下擇其可從, 而從之足矣。 何必從其不可從, 而重貽萬世之深害乎? 臣等謹按《國朝寶鑑》, 惟我太宗命禁薦福之席, 世祖末年, 亦悔悟於僧國之言。 此殿下之家法也。 殿下始雖失太宗之意, 今可萌世祖之悔。 況我中宗大王深排釋敎, 燒盡寺宇,誠一代快覩之盛事, 而四十年淸明高大之法, 未必不由於此擧也。 然則立兩宗, 雖文定之意, 而廢兩宗實中宗之意也。 《禮》曰; 資於事父, 以事母。’ 夫天先乎地, 天道之常; 父先乎母, 人倫之序也。 試以一家言之, 父則爲君, 而母有三從之義。 爲其子者, 事親之孝, 固無間矣。 幹蠱之道, 唯父是視。 是以聖人之制, 王后之敎令, 不施於國中。 然則殿下之所當率由者, 其在中廟, 而不在文定也明矣。 設使兩宗, 復於中廟, 而文定遵而守之, 在殿下顯親之道, 固當革之於今日也。 而況中廟不復, 而文定之所復者乎? 嗚呼! 今者陰匿方消, 陽淑漸長, 而殿下若靳於快斷, 則方消者轉盛, 漸長者還衰, 其爲禍害, 反有甚於曩時矣。 殿下前日敎臣等曰: ‘予則當闢異端。’ 聖敎洋洋, 猶在臣等之耳。 殿下豈欺臣等哉? 伏願, 殿下亟下革罷之命, 以答臣民之望, 則吾道幸甚。
答曰: "予非崇奉異端, 而不革也。 只以文定王后遺敎丁寧, 在臣子之道, 不可輕改故也。"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5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8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