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부와 간원이 보우의 죄를 청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적승(賊僧) 보우(普雨)는 흉패하고 간교한 사람으로 오래도록 승려의 괴수가 되어 죄복(罪福)의 설을 널리 떠벌여서 뭇사람들의 귀를 미혹하여 온 세상이 휩쓸려 몰려 들게 하였는데, 거처와 의복의 참람함이 임금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궁금(宮禁)에 바로 아뢴다 하니, 그 방자하고 음휼(陰譎)한 정상은 낱낱이 들 수 없습니다.
지난번 회암사(檜巖寺)에서 재(齋)를 설행(設行)한 것은 보우가 실로 주장하였는데 불사(佛事)의 성대함은 오랜 옛날에도 못듣던 바였고 비용의 사치함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붉은 비단으로 기를 만들고 황금으로 수레를 꾸미었으며, 기타 의장(儀仗)도 모두 채단을 쓰고 앞뒤로 북을 치고 피리를 불어서 엄연하기가 마치 임금이 친림(親臨)한 것과 같았습니다. 더구나 외간의 전하는 바를 다 믿을 수는 없으나 모두들 ‘대행 대왕 대비의 편치 못하심이 재를 베풀어 소(素)를 행함으로 인하여 망극의 변고에 이르게 하였다.’ 하니, 일국 신민의 아픔이 이에 이르러 더욱 극심한데, 어찌 이같은 죄인을 하루인들 천지 사이에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보우를 의금부에 내려 율대로 죄를 정하소서."
하고, 간원도 아뢰니, 답하기를,
"대행 대비께서 비록 조종조의 유풍(遺風)을 따라 회암에서 재를 베풀기는 하였으나, 재를 설행하기 전에 이미 편치 못하셨으니 오랫동안 소를 들 리가 만무하다. 다만 지난달 마침 선비(先妃)의 기신(忌辰)을 만나 비록 편치 못하신 중에 계시면서도 소(素)를 들기를 폐하지 않으셨는데, 마침내 밖에 뜬말이 퍼지게 된 것뿐이다. 무릇 고례(古例)의 일을 따르는 것은 모두 성단(聖斷)에서 나온 것이니, 한 산승(山僧)이 어찌 궁금(宮禁)에 바로 아뢸 리가 있겠는가. 만약 없는 일을 가지고 보우를 다스리면 하늘에 계시는 영혼이 또한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은 지금 번거롭게 논할 수 없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몇 달을 두고 오래도록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고, 오직 승직(僧職)만 삭제하여 서울 근처의 사찰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할 것을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5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辛卯/憲府啓曰: "賊僧普雨, 以凶悖奸猾之人, 久爲緇髡之魁, 廣張罪福之說, 惑亂群聽, 使擧世靡然趨走, 而非徒居處衣服, 僭偪於人君, 至於凡有所爲, 自謂直達於宮禁。 其縱恣陰譎之狀, 難以枚擧。 頃者設齋於檜巖, 雨實主之, 佛事之盛, 曠古未聞。 糜費之奢, 有不可言。 至以紅叚爲旗, 黃金飾輦。 其他儀仗, 竝用彩叚。 皷吹前後, 儼若君上之親臨。 況外間所傳, 雖不可盡信, 皆曰: ‘大行大王大妃之未寧, 因設齋行素, 以致罔極之變。’ 一國臣民之痛, 至此而尤極。 豈可以如此之罪, 而一日容貸於天地間哉? 請普雨命下禁府, 依律定罪。" 諫院亦啓。 答曰: "大行大妃, 雖遵祖宗朝遺風, 設齋於檜巖, 而未行之前, 已始未寧, 萬無久進素之事。 但前月適値先妃(忌晨)〔忌辰〕 , 雖在未寧, 而不廢進素, 遂播浮言於外而已。 凡遵古例之事, 皆出於聖斷, 一山僧有何直達於官禁之理乎? 若以虛事治普雨, 則在天之靈, 亦豈安心乎? 已往之事, 今不可煩論, 故不允。" 經月久啓, 不允。 命削僧職, 使不接跡於近京寺刹。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15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