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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30권, 명종 19년 10월 6일 을해 1번째기사 1564년 명 가정(嘉靖) 43년

삼공 등이 청홍도 음성 남면 웅암산 아래 사는 학생 정수기의 동철 제련을 아뢰다

삼공·영평 부원군·영부사가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청홍도(淸洪道) 음성(陰城) 남면(南面)웅암산(熊巖山) 아래 사는 학생(學生) 정수기(鄭壽麒)가, 자기가 제련한 동철(銅鐵) 및 동철을 제련한 토석(土石)을 가지고 비변사에 와서 아뢰기를 ‘사는 근처 산기슭의 토석에 구리나 주석 빛깔을 띤 것들이 많아 그것을 파 담아 가지고 상경하여 사위인 중부 참봉(中部參奉) 정남경(鄭男慶)과 함께 의논하여 제련하였더니 토석(土石) 4량(兩)에서 대략 2전(錢) 정도의 동철을 제련 할 수 있었다. 또 지나는 연도에 자세히 살펴보니 동철을 제련할 만한 토석이 곳곳마다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나는 구리를 캐어 쓰지 않고서 왜노(倭奴)에게 무역하거나 중국에서 사들이는데 오히려 용도에 충분치 못하여 매우 불편합니다. 만일 캐내어 제련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전수하여 익히게 한다면 공사(公私)의 쓰임에 충분할 것입니다. 공조(工曹)로 하여금 장인(匠人)을 정하여서 수기 등으로 하여금 제련을 전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44장 c 면【국편영인본】 20책 705면
  • 【분류】
    농업(農業)

○乙亥/三公、鈴平府院君、領府事, 同議啓曰: "洪淸道陰城南面熊巖山底居學生鄭壽麒, 持其所吹鍊銅鐵, 及銅鐵吹鍊之土石, 來告于備邊司曰: ‘所居近處山麓土石, 多有銅鍚之色, 採取上京, 與其壻中部參奉鄭男慶, 同議吹鍊, 則土石四兩, 鍊出銅鐵約可二錢。 且所過沿途審視之, 則銅鐵吹鍊之土石, 無處不在’ 云。 我國多産之銅, 不得採用, 或貿於倭奴, 或貿諸上國, 猶未足用, 深爲未便。 若採得吹鍊, 使之傳習, 則公私所用, 可以取足。 請令工曹, 定匠人, 使壽麒等, 專掌吹鍊何如?" 傳曰: "如啓。"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44장 c 면【국편영인본】 20책 705면
  • 【분류】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