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겸·이문형·민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겸(吳謙)을 의정부 우찬성으로, 이문형(李文馨)을 예조 참판으로, 민기(閔箕)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기는 본디 학문으로 이름이 났다. 세상과 함께 부침(浮沈)하였으나 바른 도리를 지키고 아첨하지 않았으므로 남들이 중하게 여기었다. 이양이 자기에게 붙지 않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자, 채세영(蔡世英)이 그 비위를 맞추어 시녀(侍女)인 박씨(朴氏)를 연줄로 하여 ‘기가 언젠가, 이양은 쓰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고자질하였다. 이 때문에 상이 미워하여 오랫동안 한산한 관직에 있었다. 기가 나라에 세자(世子)가 없는데도 조정에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음을 깊이 걱정하여, 종학(宗學)을 거듭 밝혀 종실(宗室)을 교양(敎養)할 것을 청하여 상의 뜻을 감동시킬 것을 바라니, 세자를 세우는 일에 관한 의논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이양원(李陽元)을 병조 참지로, 성의국(成義國)을 승정원 도승지로, 박응남(朴應男)을 좌승지로, 강사필(姜士弼)을 우승지로, 박계현(朴啓賢)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유홍(兪泓)을 사복시 정으로, 안방경(安方慶)을 사헌부 집의로, 이식(李栻)을 사간원 사간으로, 이인(李遴) 【이양과 결탁하여 추향(趨向)이 올바르지 않았다.】 과 이헌국(李憲國)을 사헌부 장령으로, 홍인경(洪仁慶)을 홍문관 부응교로, 윤지형(尹之亨)을 사간원 헌납으로, 이인(李訒)을 홍문관 교리로, 심의겸(沈義謙)을 사헌부 지평으로, 정엄(鄭淹) 【몸가짐이 공손하고 조심스러웠다.】 과 한효우(韓孝友)를 사간원 정언으로, 김귀영(金貴榮)을 용양위 상호군으로, 강사상(姜士尙) 【청렴하고 까다롭지 않으며 조심하고 삼가 집안의 검소함이 한사(寒士)와 같다고 이름났다. 전에 이양 등의 미움을 받아 화를 입을 뻔하였다.】 을 호분위 부호군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8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以吳謙爲議政府右贊成, 李文馨爲禮曹參判, 閔箕爲司憲府大司憲,【箕素以(改) 〔文〕學著名。 雖與世浮沈, 而守正不阿, 以是人重之, 李樑恨其不附己。 蔡世英希其志, 夤緣侍女朴氏而訴曰: "箕嘗言樑不可用。" 以是上惡之, 久處散職。 箕深憫國無儲副而朝廷不爲計, 請申明宗學, 敎養宗室, 庶幾感動上意。 建儲之議始作焉。】 李陽元爲兵曹參知, 成義國爲承政院都承旨, 朴應男爲左承旨, 姜士弼爲右承旨, 朴啓賢爲司諫院大司諫, 兪泓爲司僕寺正, 安方慶爲司憲府執義, 李栻爲司諫院司諫, 李遴、 【交結李樑, 趨向不正。】 李憲國爲司憲府掌令, 洪仁慶爲弘文館副應敎, 尹之亨爲司諫院獻納, 李訒爲弘文館校理, 沈義謙爲司憲府持平, 鄭淹、 【持身恭謹。】 韓孝友爲司諫院正言, 金貴榮爲龍驤衛上護軍, 姜士尙 【廉簡謹愼, 居家儉素如寒士。 頃爲李樑等所忤, 幾被禍。】 爲虎賁衛副護軍。
- 【태백산사고본】 18책 30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89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