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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29권, 명종 18년 9월 12일 정해 2번째기사 1563년 명 가정(嘉靖) 42년

한성부에서 관무재 장소의 도로 정비에 관하여 아뢰다

한성부가 아뢰기를,

"16일에 칠덕정에서 관무재하실 일을 판하(判下)하셨는데 그 곳의 도로는 닦지 않은 지가 몇 해가 된 지도 모릅니다. 잔약한 방리군(防里軍)만으로는 비록 10여 일을 두고 부역을 하더라도 안될 것인데 수삼일 내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마도 큰 일이 생길까 두려워 지극히 민망합니다. 그러니 향도(香徒) 【마을 사람으로 향약(鄕約)을 맺은 사람을 세속에서 향도라 이른다.】 중에 부릴 만한 사람과 유위군(留衛軍)을 많이 뽑아서 기간을 정하여 부역케 해서 모두 고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상의 이 행차가 과연 때로 관유(觀遊)하는 본래의 뜻에 맞고 그만 둘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천재와 시변이 연달아 나타나고 그치지 않으니 지금은 바로 공구 수성할 때요, 참으로 이런 거둥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성부가 와서 아뢴 것을 보면 민폐가 적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끝내 말리지 못하였으니 천변과 민사(民事)가 모두 상의 근심거리가 못된다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그러니 재앙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칠 것이며 백성은 어느 곳에 의탁할 것인가? 또 한성부 관직에 있는 자는 다만 그 폐단만 진달하면 되는 것인데 또 향도와 유위군을 뽑아서 쓰자고 하였으니 임금의 뜻에 영합(迎合)한 죄가 크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29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66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 향촌(鄕村) / 역사-사학(史學)

    漢城府啓曰: "十六日, 七德亭觀武才事判下, 而其處道路, 不爲修治, 不知其幾年。 只以殘弱防里軍, 雖十餘日之役, 勢不能修治, 則當此數三日之內, 決不能修治。 恐生大事, 至爲憫慮。 令香徒 【里巷人, 結爲鄕約者, 俗謂之香徒。】 應役人及留衛軍多抄, 刻期赴役, 畢治何如?" 答曰: "如啓。"

    【史臣曰: "上之此行, 果合於時觀遊之意, 而不可以廢者乎? 天災時變, 疊見而不已, 則此正恐懼修省之時也, 固不當爲此擧動也。 及漢城府來啓, 則民弊之不貲, 亦可知也, 而終不能止之, 則不幾於天變民事, 皆不爲上憂者乎? 災何由弭, 而民安所措乎? 且職居漢城者, 但當陳其弊可也, 而又欲抄香徒留衛, 則其逢君之罪大矣。"】


    • 【태백산사고본】 18책 29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66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재정-역(役) / 건설-토목(土木) / 향촌(鄕村)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