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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29권, 명종 18년 7월 15일 신묘 1번째기사 1563년 명 가정(嘉靖) 42년

설리, 종친의 입번, 각도의 진상 등에 관한 홍천 부수 이섭의 상소

홍천 부수(洪川副守) 이섭(李𤫙) 【순천 정(順川正) 이관(李琯)의 아우인데 관이 이신호(李伸虎)를 스승으로 섬겨 《가례(家禮)》·《소학(小學)》 등을 이해하였고 중묘(中廟)·인묘(仁廟) 두 대왕을 위하여 심상(心喪) 3년을 지냈는데 경석에서 어질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승직하도록 특명하였다. 섭도 그의 교화를 받아 조금 지식이 있었다.】 이 상소하기를,

"종실의 후예로서 은혜를 받고 감격하여 항상 강개한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직 우돈의 장[遇遯之章]029) 을 올리지 못하였는데 금번 연은전(延恩殿) 입번(入番)으로 인하여 삼가 미세한 충정을 아룁니다. 문소전(文昭殿)·연은전을 처음 세울 적에는 종친이 대신하여 전을 올리고 설리(薛里) 【환시(宦寺)를 이른다.】 가 제사를 맡고 참봉이 규찰 관장하매, 예가 이미 융숭하고 제관도 갖추어졌습니다. 주(周)나라 때와 같이 융성한 시대에도 미처 제작할 겨를이 없었는데 우리 주상 전하께서 효도를 생각하여 선조를 받듦에 있어서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였으니 요속(僚屬)을 갖추고 직책을 봉행케 하시어 어긋나거나 지나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근년 이래로 어찌된 영문인지 사정과 거짓이 점점 심해져서 예법이 무너져가고 있는데도 봉행하는 자들은 보통으로 보아 넘겨, 공물(供物)을 훔치는 자가 있어도 묻지 않고, 퇴선(退膳)030) 을 다시 올리는데도 규찰하지 아니하여 향사(享祀)가 청결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조종의 영혼께서 이 제사답지 않은 제사를 흠향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를 신은 통곡하고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로써 종친에게 허물을 돌린다면 종친 중에 누가 그 허물에 승복하겠으며, 그 죄를 설리에게 돌린다면 설리는 전적으로 자기 죄라 하지 않을 것이니, 폐단이 쌓여 풍습을 이룬 것이지 본디 하루 아침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나라의 큰 일이 제사에 있다는 뜻이 어디 있으며 제사지낼 때 미덥게 하고 우러른다는 실상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입번(入番)하는 종친을 학식있고 품계가 높은 자를 가려 시킨다면 필시 먼 조상을 추모하시는 전하의 마음을 몸받고 아랫사람들은 두려워 그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설리를 삼가고 조심하는 자를 가려 시킨다면 필시 생존해 계신 것처럼 받드는 전하의 정성을 몸받아서 공경하지 않는다는 탄식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행할 수 있다면 참봉(參奉)은 설리에게 겁먹지 않고 자기 직분상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진력할 것입니다. 각도의 진상에 있어서도 봉상시 관원과 전(殿)의 참봉이 입회하여 대감(臺監)031) 을 청해서 받아들인 뒤에 다른 관원이 그것을 개봉(開封)하여 쓸 때 덜어낸 물건을 직접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고자(庫子)에게 맡기기 때문에 고자가 자기 사용(私用)으로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각도 진상의 출입의 숫자를 중기 해유(重記解由) 【문서의 이름으로서 교대할 때에 주고받은 물건들을 갖추 기록하여 후일 상고할 때 증빙으로 삼는다.】 를 만들어 둔다면 지공(支供)도 여유가 있게 되고 제사지내는 것도 청결하게 될 것입니다. 각사(各司)의 공상(供上)을 관원이 직접 가지고 오지 않고 간혹 몸소 바치는 자가 있다 해도 자기 집에서 곧바로 오기 때문에 중간에서 간사한 서리들이 술책을 쓸 염려도 없지 않으니, 각사의 공상도 한결같이 수교(受敎) 【친히 진배(進排)하라 하였다.】 의 뜻에 의한다면 진배도 질서를 얻고 제사도 청결하게 될 것입니다. 《논어(論語)》에 ‘정성이 있으면 귀신이 있고 없으면 귀신이 없다.’고 하였으니,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이 소 가운데의 뜻을 보니 나라를 위하는 정성이 가상하다. 설리는 대내에서 으레 가려서 차출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다시 가려서 정해야겠다. 종친은 자주 입번해야만 대궐 안의 일을 익숙하게 알아서 쌓인 폐단을 규찰할 수 있을 것인데 만약 원래 정해진 30원(員)으로 나누어 입번한다면 한두 달 사이에 한두 번 입번할 것이므로 매우 드물어서 온당치 않다. 이제 비망기(備忘記) 【입번한 종친을 쭉 써서 내렸다.】 를 내리니 실차(實差) 20원과 예차(預差) 10원을 상고하여, 실차가 연고가 있은 연후에 예차로 보충하고 실차가 연고가 없을 때에는 예차는 입번하지 말게 하며 실차·예차가 모두 비면 으레 취품할 일로 종부시에 말하라. 다른 나머지 건(件)은 해조와 해전(該殿)의 제조로 하여금 함께 의논하여 회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29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5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사(宗社) / 재정-진상(進上)

  • [註 029]
    우돈의 장[遇遯之章] : 올리려고 써 놓았던 상소문.
  • [註 030]
    퇴선(退膳) : 제사를 지내고 물러낸 음식.
  • [註 031]
    대감(臺監) : 사헌부 감찰.

○辛卯/洪川副守 𤫙 【順川正 琯之弟。 琯, 師事李仲虎, 解《家禮》、《小學》等書, 爲中廟、仁廟兩大(正) 〔王〕, 心喪三年, 經席之上, 有言其賢, 故特命陞職。 𤫙亦賴其薰陶, 稍有知識】 上疏曰:

伏以, 宗室末裔, 受恩感激, 常懷慨然之志, 未上遇遯之章, 今因延恩殿入番, 謹達微衷。 竊惟文昭殿延恩殿之始立也, 宗親代奠, 薛里 【宦寺之稱。】 典祀, 參奉糾掌, 禮旣殷矣, 官旣備矣。 雖以周家之盛時, 未遑於制作, 而恭惟我主上殿下, 奉先思孝, 克盡誠敬, 宜乎具僚率職, 罔有違越。 奈何邇年以來, 私僞轉甚, 禮法以毁, 奉行之者視爲尋常, 或有攘竊供物而不問, 或有再進退膳而不察, 致令享祀不潔淸, 臣恐祖宗在天之靈, 不卽饗於如不祭之祭也。 此臣之所以痛哭而流涕者也。 今欲以此歸咎於宗親, 則宗親誰敢執其咎, 歸罪於薛里, 則薛里不全有其罪, 積弊成習, 固非一朝夕之故也。 國之大事, 在祀之意安在, 而亦可謂有有孚顒若之實乎? 臣之意以謂, 入番宗親, 擇其有識秩高者以爲之, 則必能體殿下追遠之心, 而下人有所畏戢矣, 薛里擇其謹愼者以爲之, 則必能體殿下如在之誠, 而無是謂不欽之嘆矣。 能行此二者, 則參奉不爲薛里之所刦, 有以盡其職分之當爲矣。 至如各道進上, 奉常寺官員、殿參奉眼同, 請臺監捧納之後, 他官員開封用之之時, 所除之物, 不爲詳錄, 而委諸庫子, 故庫子有以爲己之私。 臣請各道進上出入之數, 爲重記解由, 【文書之名, 乃於交代之際, 備載其受授之物, 以憑後日之考。】 則支供有裕, 而享祀潔淸矣。 各司供上官員等, 不爲齎持, 雖或有躬進者, 亦自其家直來, 中間姦吏之輩, 不無用術之患。 請各司供上, 一依受敎 【躬親進排也。】 之意, 則進排得體, 而享祀潔淸矣。 《語》云: "有其誠則有其神, 無其誠則無其神。" 伏願殿下留意焉。

傳曰: "觀此疏中之意, 予嘉爲國之誠。 薛里則自內例爲擇差, 今當更加擇定也。 宗親頻數入番, 然後慣識殿中之事, 可能糾察積弊, 而若以元定三十員分番, 則一二朔間, 必一二度入番, 太稀未便。 今下備忘記 【入番宗親列書以下。】 相考, 實差二十員、預差十員, 實差有故, 然後預差充補, 實差無故時, 則預差勿爲入番, 而實、預差有闕, 則例爲取稟事, 言于宗簿寺。 他餘件, 亦令該曹、殿提調, 同議回啓。"


  • 【태백산사고본】 18책 29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654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 왕실-종사(宗社) / 재정-진상(進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