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 1천여 명이 조보의 일로 상소하다
성균관 유생 유희림(柳希霖) 등 1천여 명이 상소하기를,
"신들은 모두 초야(草野)에 있는 사람으로 외람되게 성균관에 들어와 조석으로 늠록(澟祿)만 축내고 있습니다. 비록 학술(學術)의 밝음은 없으나 사(邪)와 정(正)에 대하여는 일찍이 분별하고 있고 오도(吾道)는 날로 쇠하여지고 이단은 날로 성하고 있으니 매우 걱정이 되어 눈물을 흘린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들으니, 임천군 보광사의 중이 그 군수 조보(趙溥)를 고소하였는데, 전하께서 파직을 명하시었다 합니다. 신들은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 울분이 북받쳐 올라 교문(橋門)에 모여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감히 충정(衷情)을 아뢰어 천청(天聽)을 돌리려고 합니다.
조보가 중들과 혐의를 일으킨 꼬투리는 신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상께 이 말을 계달한 것은 어느 길이며 전하께서 안핵(按覈)하라고 보내신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짐(朕)의 명을 출납하되 믿음이 있게 하라.’ 하였으니 임금의 명을 출납하는 승지가 어찌 삼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전하의 승지는 정원에 있을 뿐인데 정원이 아뢰지 않은 것을 전하께서 알고 계시고 전하가 보내신 사신을 정원에서 모르고 있으니, 아! 이것은 간사한 거짓이 나오게 되는 까닭이요 부정하고 편벽된 일이 행해지는 까닭입니다.
성명(聖明)하신 전하께서 어찌 이와 같은 잘못이 있겠습니까. 이는 대개 자전이 명하신 것인데 효성이 지극하신 전하께서 뜻을 받들어 거역하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특한 말이 들어와도 금하지 못하시고 중사(中使)가 달려가도 막지 못하신 것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정사에 어찌 두 문(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출척(黜陟)하는 법도를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자전은 수렴 청정(垂簾聽政)을 하고 계신 때가 아닌데도 중사를 밖으로 보냈으니 이것은 정사에 두 문이 있는 것이고 수령은 감사의 고과(考課)가 있는 것인데 중들의 고소에 의해 폐출되었으니 이것은 출척하는 법도가 어지러운 것입니다. 신들이 어찌 조보에게 사정(私情)을 두어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성치(聖治)에 흠이 될까 걱정되어 그러는 것입니다.
중들은 천지(天地)간에 사특한 종자이고 환관은 인류(人類)중에 음흉한 물건입니다. 음흉하고 간사한 것이 서로 만나서 서로 부추키며 정인(正人)·군자(君子)를 적이나 원수로 여겨 반드시 모함해서 해하고야 말려는 것은 바로 그들의 실정인데 가령 조보가 1백 번 잘하고 중에게 1천 번 잘못함이 있다 하여도 중사가 어찌 자기 동류(同類)를 놓아두고 전하에게 조보의 정직함을 펴보이려 하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 중사의 아룀만 믿으시고 조보를 죄주셨으니 이는 중들로 하여금 요행을 틈타서 활개치는 기세를 더욱 부채질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자라도록 그대로 두면 장차 후일에 내수사를 통하고 중사에게 빌붙어서 모함하여 해를 입힐 자가 수령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게 될까 두렵습니다. 중외(中外)와 체결하고 임금에 가까운 것을 믿고 가만히 위복(威福)의 권한을 옮겨 여우나 쥐처럼 간사한 짓을 자행하고 선비들을 배척하여 편한 날이 없는 것이 오늘보다 심하게 될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양종(兩宗)을 다시 세울 적에 신들은 참으로 그 파급이 반드시 이에 이를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충성을 다하여 항소(抗疏)하고 오랫동안 관학(館學)을 비우기까지 하였으나 정성은 성상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했고 힘은 성상의 뜻을 돌이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병폐가 자라서 도모할 수 없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니 신들의 죄는 만 번 죽어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중들로 하여금 기탄하는 바가 없이 제멋대로 방자한 짓을 하게 하고 조그만 혐의가 생길 적마다 대궐에 호소하여 서생(書生)이 이 때문에 형을 받아 【배천(白川)의 유생(儒生)이 중과 서로 다투었는데 자전이 유생을 장형(杖刑)에 처하게 했다.】 사림(士林)의 기맥(氣脈)이 꺾이었으며 춘관(春官)031) 도 따라서 욕을 당하였으니, 【선종 판사(禪宗判事) 일추(一椎)가 예조(禮曹)에 첩정(牒呈)하면서 서명(署名)을 크게 하고 거만스럽고 무례하여 양사가 집요하게 논핵하였으나 상이 끝까지 치죄하지 않았다.】 조정의 체통과 위세가 무너졌습니다. 심지어는 내찰(內札)을 위조하여 【중 성청(性淸)이 자전의 언문 서찰을 위조하여 경상도 관찰사 이감(李戡)에게 보내어 자기가 거주하던 절을 돌봐주고자 하였으나 일이 발각되어 마침내 처형당했다.】 방백(方伯)에게 보내기까지 하였으니 상을 모욕함이 구중(九重)에까지 미쳤습니다. 지금의 변괴가 어찌 이리 심합니까. 위로는 구중과 아래로는 조정도 이와 같이 놀랍고 괴이한 일을 당하고 있으니 수령 하나가 모함을 받은 것이야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아, 사람은 국가의 명맥(命脈)인데 이처럼 꺾이었고 조정은 정사의 근본인데 이 지경으로 허물어졌으며 구중은 존엄하신 체모를 잃었고 수령은 능욕을 받았습니다. 중들의 교만하고 방자한 형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시고 도리어 비호(庇護)하고 계시니 전하는 국사를 장차 어떻게 하시려는 것인지 신들은 모르겠습니다. 근년에 오면서 흉년이 거듭 들어 백성들은 처소를 잃었고 천재(天災)와 물변(物變)이 거듭거듭 나타나니 전하께서는 걱정이 되시어 다른 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들의 고소에만 급급(汲汲)하시어 조정에 묻지도 않고 유사(有司)에게 돌리지도 않으시고서 곧바로 수령을 파직하시되 조금도 관용을 베풀지 않으셨으니 전하께서 중들에게는 후하게 하셨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국정에 크게 손상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불교를 숭상하려는 것이 아니다.’란 말씀은 전하께서 이미 지난날에 하교하셨고 신들은 들어서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요즘 중들을 이처럼 지극하게 애호하시니 전하께서 지난날 하신 분부는 어느 곳에서 징험할 수 있습니까. 은감(殷鑑)이 멀지 아니하여 소상하게 방책(方策)에 실려 있으며 불교 때문에 국가가 망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입니다. 전하는 어찌하여 이것을 경계하지 않으십니까? 경계를 하셔야 하는데 도리어 그 도를 숭상하시니 전하의 마음은 끝내 알 수가 없습니다.
아, 중 하나가 화를 빚어 많은 선비가 목을 졸리니 팔을 걷고 비분해 하나 손을 맞잡은 채 계책이 없어 우리 도가 비색(否塞)해 지는 것을 앉아서 구경만 할 뿐입니다. 전하께서 지금 두려워하지 않으시면 화복(禍福)과 존망(存亡)의 계기가 결정될 것이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멀리 퍼지기 전에 악을 제거하시고 금방 닥쳐올 화란을 염려하시어 양종이 고해바치는 풍토를 개혁하시고 내수사의 사사로이 통하는 길을 막으소서. 그리하여 명령이 정원을 통해서 나오고 복역 아뢰는 것도 정원을 통하게 하시며 우리 도를 배양하고 이교(異敎)를 억제하시면, 중들은 스스로 움츠러들어 간교한 술책을 부릴 수가 없게 될 것이고 물정은 통쾌하게 여겨 서로 기뻐하고 경사스럽게 여기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니, 국가와 종사에 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조보의 일은, 예로부터 자전이 중사를 절에 보냈고 내수사가 절의 공사(公事)를 보살핀 것도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내 어찌 중 하나를 위하여 수령을 다스렸겠는가? 요즈음 신하들은 상을 능멸하는 습관이 없지 않고 또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풍습도 있으므로 이런 폐단을 바로 잡으려고 하였을 뿐이다. 내뜻은 요즈음 대간과 시종에게 모두 효유했는데 제생(諸生)들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소(疏)는 오도(吾道)를 붙들려는 데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일이 후일의 폐단에 관계되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자전이 중사를 보낸 것과 내수사가 절을 살핀 것은 모두 광명 정대(光明正大)한 정사가 아닌데 어찌하여 억지로 말을 둘러대어 대간과 시종의 의논을 거절하고 또 유생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가? 이처럼 억지로 변론하여 잘못을 얼버무리니 매우 통탄스럽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26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547면
- 【분류】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司法) / 인사-임면(任免) / 사상-불교(佛敎) / 재정(財政) / 역사-사학(史學)
- [註 031]춘관(春官) : 예조(禮曹)의 별칭.
○戊申/成均館儒生柳希霖等千餘人上疏曰:
臣等俱以草茅, 濫巾國庠, 竊廩朝夕。 雖無學術之明, 其於邪正之間, 辨別素矣。 吾道日衰, 異端日盛, 慨然痛憫, 至於垂泣者, 亦有日矣。 今者又聞林川郡 普光寺僧, 訴其守趙溥, 而殿下命罷之。 臣等言及於耳, 憤激于中, 聚首橋門, 不能自噤, 敢達微衷, 糞回天聽。 趙溥之與僧徒, 其所起嫌之端, 臣等未嘗知也, 第未知冕旒之下, 達此言者何路, 殿下之馳遣按覈者, 亦何使耶? 《書》曰: "出納朕命惟允。" 人君出納之喉舌, 豈可以不謹乎? 然則殿下之喉舌, 只在於政院, 而政院之所未啓, 殿下知之, 殿下之所遣使, 政院不知。 嗚呼! 此姦僞之所以進, 邪僻之所以行也。 以殿下聖明, 豈有如此之失乎? 是蓋慈殿之命, 而殿下誠孝出天, 奉順無違, 故邪說入而莫之禁, 中使馳而莫之禦者也。 雖然, 政豈有二門乎? 黜陟之典, 不可亂也。 慈殿非垂簾之日, 而遣中使於外, 是政有二門也。 守令在監司之考, 而黜廢出於緇徒之訴, 是黜陟之典亂也。 臣等豈私趙溥而言哉? 爲聖治疪累而悶之也。 緇徒, 天地間邪種; 宦寺, 人類中陰物。 陰邪相遇, 互爲聲勢, 其與正人、君子, 爲敵爲仇, 必欲陷害而後巳者, 乃其情也, 則假令百直在溥, 千曲在僧, 中使豈肯捨其同類, 而伸溥之直於殿下哉? 殿下秪信中使之奏, 而罪溥, 是使僧徒乘幸, 而益煽其鴟張之勢者也。 長此不已, 則將恐後日之通內需附中使, 得售其陷周者, 非特守令而已。 安知締結中外, 根據肘腋, 潛移威福之柄, 恣行狐鼠之奸, 排擯士類, 殆無虛日者, 有甚於今日耶? 殿下其不念及此耶? 嗚呼! 方兩宗之復立也, 臣等固知其漸之所及者, 必至於此, 故抗疏致忠, 久空館學, 誠不足以格天, 力不足以回天, 蔓不可圖, 至於今日, 則臣等之罪, 萬死何逭? 致令僧徒, 無所忌憚, 橫肆不已, 小有嫌隙, 輒訴宮闈, 書生因此而被刑, 【白川儒生與僧相詰, 慈殿命杖儒生。】 士林之氣脈摧折矣, 春官又從而見凌, 【禪宗判事一椎, 於禮曹牒呈, 大着名署, 倨傲不恭, 兩司論執, 上竟不治罪。】 朝廷之體勢頹靡矣。 甚至矯成內札, 【僧性淸, 僞誥慈殿諺書, 投慶尙道觀察使李戡, 欲其護恤所住之寺, 事覺竟處斬。】 以扺方伯, 則侵上之辱, 亦及於九重矣。 今玆之變, 胡爲極矣? 上而九重, 下而朝廷, 尙有如此駭異之事, 則一守令之被陷, 無足怪也。 嗚呼! 士林, 國家之命脈, 而摧折如是, 朝廷, 政事之根柢, 而頹靡至此, 九重失尊嚴之體, 守令受凌制之辱。 驕恣之狀, 一至於此, 而殿下猶不覺悟, 反加庇覆, 臣等未知殿下之國事, 將稅駕於何地耶? 近年以來, 飢饉荐臻, 生民失所, 天災疊見, 物變層出, 殿下之軫念, 宜不遑他事, 而汲汲於僧徒之所訴, 不咨於朝廷,不歸於有司, 直罷守令, 少無寬假, 殿下之於僧徒, 可謂厚矣, 獨不念國政之大傷者乎? "予非崇佛之言。" 殿下已敎於前日矣, 臣等聞之尙盈乎耳。 今者愛護僧徒, 若此其至, 則殿下前日之敎, 何地可驗? 殷鑑不遠, 昭載方策。 以佛而亡國者, 古今一轍。 豈殿下之念, 不警於此乎? 警之而反崇其道, 殿下之心, 終未敢知。 嗚呼! 一僧媒孽, 多士縮頸, 扼腕悲憤, 束手何爲? 坐見吾道晦盲無餘。 殿下於此, 不及惕念, 則禍福存亡之幾決矣。 豈不寒心? 除惡於未遠, 慮患於方來, 革兩宗告訐之風, 杜內需私通之路, 使命令出於政院, 復逆由於政院, 培植吾道, 沮抑異敎, 僧徒自戢, 不得售其奸術, 物情解快, 有歡欣相慶之樂, 則宗社幸甚, 國家幸甚。
答曰: "趙溥事, 自古慈殿, 遣中使于寺, 而內需司之察桑門公事, 亦非今始也。 予豈爲一僧而治守令乎? 近來人臣不無凌上之習, 亦有枉殺無辜之風, 故欲矯此弊而已。 予意近日盡諭于臺諫、侍從, 諸生亦豈不知哉? 疏雖出於扶吾道, 事有關於後弊, 故不允。"
【史臣曰: "慈殿之遺中使, 內需之察桑門, 皆非光明正大之行政, 則何必曲爲遁辭, 以拒臺諫、侍從之論, 而又不納儒生之疏乎? 其强辨飾非也如此, 可勝痛哉?"】
- 【태백산사고본】 16책 26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5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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