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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25권, 명종 14년 5월 27일 무술 1번째기사 1559년 명 가정(嘉靖) 38년

옥당의 제술을 평가하다

대제학 홍섬(洪暹) 【성품이 명백하고 까다롭지 않으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상밀(詳密)하였다. 그러나 조금 편협한 병통이 있었다.】 에게 전교하기를,

"용렬한 내가 외람되게 큰 왕업을 이어받았는데, 본디 지식이 없고 또 학문의 공이 모자라 시가(詩家)는 전혀 알지 못하고 다만 글줄이나 볼 뿐이다. 평소의 출제는 오로지 문형(文衡)에게 맡겨야 되는 것인데, 다만 예부터 혹 글제를 명한 일이 있어 지금 완전히 폐할 수가 없겠기에 당치 않은 일을 헤아리지도 않고 감히 자주 출제하여 전부터 여러 번 남들의 의논을 불러일으켰으니, 내 마음에도 미안한 점이 있다. 지난번 ‘은대에 쇠한 노인을 쓰지 말라.’는 글제는 진실로 잘못 생각하고 망령되이 낸 것이니, 공론이 일어난 것은 바로 임금을 바루는 도리에 맞는다. 내가 어찌 즐겁게 듣지 않겠는가. 내가 옥당의 제술을 보니, 과차(科次)의 고하가 모두 문의(文意)에 맞았다. 나처럼 시가를 모르는 임금이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제술은 문아(文雅)를 권장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신하된 자의 글에서 충후(忠厚)·사정(邪正)과 신밀(愼密)·경박(輕薄)한 뜻을 보기 위한 것이다.

15명이 지은 것 중에서 유승선(柳承善)의,

나이 따라 근력이 감하는 게 걱정스럽지

소리개 어깨만 좋아하고 늙은 사람 싫어함은 아니네

박근원(朴謹元)의,

책임이 무거우니 사람을 잘 가려야지

장사중(張士重)의,

예부터 출납은 중한 임무라

어찌 명기를 걸맞지 않은 사람에게 주랴

이양원(李陽元)의,

재주 없는 사람을 가볍게 주의하지 말라

이희검(李希儉)의,

어렵고 신중한 건 후설의 자리가 제일이다

등의 싯구가 나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제목에 맞는 듯하다. 최옹(崔顒)의,

나이와 덕이 모두 높은데 버릴 수 있나

이지신(李之信)의,

임금에게는 포용하는 덕이 최고이네

이중량(李仲樑)의,

좋은 시대에 어찌 이 사람을 버릴까

윤인서(尹仁恕)의,

밝으신 임금 어찌하여 노성인을 버릴까

유순선(柳順善)의,

성군은 노성인을 박대하지 않으리

등의 싯구는, 내 생각에는 온당치 않은 듯하다.

예부터 노성인이라 이르는 이는, 나이가 많고 덕이 높으며 노숙하여 인망이 무거운 공경(公卿)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떻게 한 쇠한 늙은이에게 합당하겠는가. 이는 곧 쇠한 늙은이를 감싸주며 글제를 기롱하는 뜻이다. 또 나를 성명(聖明)이라느니 성군(聖君)이라느니 한 데 대하여 나는 진심으로 부끄럽다. 성스럽고 밝은 임금은 옛날에도 역시 드물었는데 더욱이 말세(末世)이겠는가. 나 같은 임금은 허물이 매우 많아서 위로는 하늘의 노여움을 불렀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거스렸다. 생각해 보건대, 후세에서 나를 어떤 임금이라 할지 모르겠다. 역시 중간 정도의 임금에도 미치지 못함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같은 임금을 가지고 감히 성스럽고 밝다 일컬으니, 부끄러움이 적지 않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밝은 판단이 있다면 당연히 인물을 통쾌히 진퇴시켰을 것이다. 어찌 꼭 일곱 글자 사이에 약간 비쳤겠는가. 나의 밝지 못함은 경도 잘 알 것이다. 이 뜻을 경연에서 경을 보고 자세히 하유하려 하였는데, 바야흐로 성하(盛夏)이기 때문에 시사(視事)를 정지한 때라서 오늘 바로 하유한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진정을 통하여 숨기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며, 또한 임금은 우대하고 신하는 경외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나의 뜻을 알라."

하였다. 홍섬이 회계하기를,

"상의 전교를 보니 송구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문직(文職)에서 대죄(待罪)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매양 보건대, 상께서는 문교(文敎)로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마음을 두시어 자주 내리는 글의 서두가 보통 사람의 헤아림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바가 아닌 것이 없으니, 조정의 대소 신료가 누군들 받들어 읽고 심복하지 않겠습니까. 또 때로 어제를 내는 것은, 역대의 글 좋아하는 임금들만 그랬을 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선왕(先王)들도 그렇게 한 예가 많습니다. 이것이 어찌 정치의 근본에 말미암지 않고 그저 싯구나 주고받기를 일삼는 임금에 비교되겠습니까. 신의 얕은 소견으로는 진실로 불가함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임금은 하늘의 두루 덮어주는 의(義)를 체득하여, 허물을 감싸주어 고운 것과 추한 것을 아울러 용납해야 하는 것인데, ‘쇠한 노인을 쓰지 말라.[勿用老殘人]’는 다섯 글자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논사(論思)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잠규(箴規)를 바쳐서 성상의 널리 포용하는 도량을 넓히려고 한 것입니다. 글을 지음에 있어서 말 뜻이 원만하지 못하여 온당치 못한 말이 좀 있으나 어찌 글제를 기롱하는 뜻이 있겠습니까. 만일 참으로 기롱하였다면 신하된 자의 불경함이 막대한 것입니다. 더욱이 유신(儒臣)을 아껴 조석으로 함께 논사하다가 갑자기 기롱하였다는 명목을 씌운다면 저들이 앞으로 어느 곳에 몸을 두겠습니까. 신은 이로부터 발언하기를 어렵게 여겨 끝내 입을 다물고 묵묵히 지내는 풍습이 자라날까 걱정됩니다. 성상께서는 이것을 확 풀어서 말을 가려서 하는 풍습이 있지 않도록 하소서.

또 이른 바 ‘노성’이란 곧 나이와 덕이 모두 높고 노숙하여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어찌 승지를 감히 비교하겠습니까. 이는 다만 말의 가볍고 무거운 것을 알지 못하여 ‘노성’ 두 글자를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저들이 상교를 들으면 어찌 부끄럽고 두렵지 않겠습니까. 또 상교에, ‘성명’ 등의 글자를 해당시키지 않으려고 한 것은, 곧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신하에게 ‘신성(神聖)’이라 일컫지 못하게 한 훌륭한 뜻입니다. 그러나 신하가 임금에게 진언(進言)함에 있어서 저절로 이런 등속의 말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도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저들이 만일 ‘본디 지식이 없고 그저 글줄이나 본다.’는 등의 전교를 들으면 모두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를 것입니다. 실로 이 상교를 듣고는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신이 평소에 품은 하찮은 생각은 이렇습니다. 임금이 신하의 과오를 보고도 다만 포용하기를 일삼아,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에 노여움을 묵혀 두었다가 허물이 쌓이고 노여움이 깊어진 뒤에 죄책(罪責)을 가한다면, 어찌 위아래가 일체가 되어 정의(情意)가 막힘이 없는 뜻이겠습니까. 그릇된 점을 보면 곧 말하되, 만일 그릇되지 않음을 알고 나면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예전처럼 해야 됩니다. 만일 참으로 옳지 않았다면 신하는 임금의 말을 듣고 두려워할 줄 알고 잘못을 고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신하는 앞으로 상에게 죄를 얻지 않고 보전할 의논을 알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경의 아뢴 말을 보니, 임금의 마음을 바루고 임금을 사랑하는 성의가 아닌 것이 없다. 가상하다. 내가 어찌 마음을 풀지 않겠는가."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서경》에 ‘말이 네 마음에 거슬리거든 반드시 도(道)인가 살펴 보고 말이 네 뜻에 맞거든 반드시 도가 아닌가 살펴 보라.’ 하였다. 임금이 신하의 말에 대해서 뜻에 맞는 것만을 좋아하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을 그르게 여기면, 끝내 임금이 말하면 어기지 않는 데까지 이를 것이니, 신하들이 순종하기만을 생각하여 충성스런 말을 하지 않게 되면 허물이 있어도 듣지 못하게 되어 나라가 따라서 위태롭게 될 것이다. 지금 ‘쇠한 노인을 쓰지 말라.’는 제목에는, 노쇠(老衰)함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뜻이 있어서 예로써 아랫사람을 대접하는 공손함이 없다. 때문에 옥당의 신하들이 응제(應製)할 때 경계하고 풍자하는 말을 쓴 것이다. 당연히 뉘우치고 가상히 여겨 받아들여야 되는데도, 도리어 뜻에 맞지 않는다고 그릇되게 여겨 안으로는 불평하는 기운이 있고 밖으로는 자책하는 말을 하였다. 이와 같이 하면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입을 다물고 묵묵히 지내는 풍습이 이루어져서 발언할 적에 모두 걱정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누가 할말을 다하여 부월(斧鉞)의 위엄을 저촉하려 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6책 25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516면
  • 【분류】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인사-관리(管理)

    ○戊戌/傳于大提學洪暹 【性明白簡切, 處事詳密。 然頗有偏狹之病。】 曰: "予以庸暗, 叨承丕緖, 素無知識, 又乏學問之功, 詩家則專不得解, 只見墨行而已。 常時出題, 所當專付文衡之任, 而但自古或有命題, 今不可頓廢, 故不量不當之事, 乃敢頻數出題, 自前累招人議, 予心尙有未安。 頃者 ‘銀臺勿用老殘人’ 之題, 則實是錯料妄出, 而發於公論, 正合格君之道。 予豈不樂聞哉? 予觀玉堂製述, 科次高下, 俱合於文意。 如予不解詩家之君, 則有何言哉? 然凡製述, 非特欲爲勸奬文雅, 亦欲觀人臣造詞, 忠厚、邪正、愼密、輕薄之意也。 十五人所製之中, 柳承善之直憂筋力隨年減, 非喜鳶肩厭舊人; 朴謹元之任重端宜務得人; 張士重之出納從來爲任重, 那將名器付非人; 李陽元之莫把非才輕注擬; 李希儉之難愼最先喉舌地等句, 予之愚見, 則似合於題。 崔顒之年德俱尊那可捨, 李之信之包容德最係君人, 李仲樑之盛際寧聞棄此人, 尹仁恕之聖明那棄老成人, 柳順善之聖君非薄老成人等句, 則予意恐未穩當。 自古老成人云者, 指年高德劭耆舊望重公卿之臣也。 豈合於一老殘之人乎? 此乃曲護老殘, 譏侮命題之意也。 且稱予聖明, 或稱聖君, 予實愧焉。 聖明之君, 在古亦罕。 況於末世? 如予之君, 則疵累頗多, 上致天怒, 下拂人情。 予竊每念, 未知後世, 比予何如主, 而亦豈不知尙不及於中主乎? 將如此之君, 敢稱聖明, 羞惡不淺。 予少有明斷, 則當痛快進退人物。 何必微露於七字間乎? 予之不明, 卿亦想矣。 此意欲於經席, 見卿詳諭, 而方當盛夏, 停視事之時, 故今日卽諭也。 君臣之間, 莫如通情不諱, 而亦莫如君優待而臣敬畏也。 予意知悉。" 洪暹回啓曰: "伏覩上敎, 不勝悚懼。 臣雖無狀, 待罪文職已久。 每見上銳意文治, 屢下詞頭, 無非常情所未及料者。 在朝大小, 孰不奉覽而心服? 且時出御題, 不但歷代好文之主爲然, 我朝先王, 亦多是例。 此豈不端治本, 徒事酬唱詩句之君之比哉? 微臣淺見, 實未知其不可也。 但含垢匿瑕, 姸蚩幷容, 人主所以體天覆燾之義, ‘勿用老殘人’ 五字, 不無圭角之露, 故職在論思之地者, 欲獻規以廣聖上包荒之量。 作句之際, 語意不圓, 辭多未穩, 然豈有譏侮命題之意? 若果譏侮, 則人臣之不敬, 莫大焉。 況當愛惜儒臣, 朝夕與之論思, 而遽加以譏侮之名, 則彼將措身於何地? 臣恐自此難於發言, 遂長含默之風。 伏望聖上, 於此釋然, 勿使有擇言之習。 且所謂 ‘老成’, 卽是年德俱邁耆舊尊顯之人, 豈承旨之敢擬哉? 此特不知措語輕重, 而誤用 ‘老成’ 二字。 彼聞上敎, 寧不愧懼? 且上敎, 不欲當 ‘聖明’ 等字, 此卽 光武令臣下不得稱 ‘神聖’ 之盛意也。 然臣進言於君, 自不得無此等語也。 爲是語者, 亦豈有他意? 彼等如見 ‘素無知識, 只見墨行’ 等之敎, 則皆欲隕越于地。 臣亦聞此上敎, 不覺汗出沾背。 微臣平日區區之心, 以謂人君雖見臣下過誤, 但事包含, 不肯發言, 內實宿怒, 直待過積怒深, 然後加以罪譴, 則夫豈上下一體, 情意無阻之意? 見非輒言, 如知其不非, 則坦懷如舊。 若果不是, 則人臣因此知懼改過。 夫如是, 則人臣將不獲戾於上, 而知保全之議矣。" 答曰: "觀卿啓辭, 無非格君心而愛君誠意。 予用嘉焉。 予盍釋然哉?"

    【史臣曰: "《書》曰: ‘有言逆于汝心, 必求諸道, 有言遜于汝志, 必求諸非道。’ 蓋人主於臣下之言, 以遜志爲悅, 而以逆于心者爲非, 則終至於惟其言而莫予違, 群臣爭懷唯諾, 忠言不至於耳, 有過不聞, 而國隨以危矣。 今 ‘勿用老殘, 之題, 有譏侮衰老之意, 而無以禮接下之恭, 故玉堂之臣,應製之際, 寓其規諷之辭。 所當悔悟嘉納, 而反以不合於意者爲非, 內有不平之氣, 外示自責之語。 夫如是, 則君臣之間, 含默成風, 發言之際, 皆有顧慮之心。 孰肯盡其辭說, 以觸斧鉞之威乎?"】


    • 【태백산사고본】 16책 25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516면
    • 【분류】
      정론(政論) / 역사-사학(史學)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