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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25권, 명종 14년 3월 27일 기해 2번째기사 1559년 명 가정(嘉靖) 38년

개성부 도사를 무신으로 뽑아 보내 도적을 잡을 방도를 논의하다

영의정 상진·좌의정 안현·우의정 이준경·영중추부사 윤원형이 함께 의논하여 【조강 때 김개가 아뢴 것을 인하여 대신에게 의논하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의논하였다.】 아뢰었다.

"개성부 도사(開城府都事)를 무신으로 뽑아 보내라는 상교(上敎)가 지당하나, 비록 무신을 뽑아 보내더라도 별다른 조치 없이 일상적으로만 해나간다면 오히려 이익됨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듣건대, 요사이 많은 강적(强賊)들이 본부(本府)의 성저(城底)에 몰려들어 주민을 살해하는 일이 매우 많은데도,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감히 고발하지 못하고, 관리들은 비록 보고 듣는 바가 있어도 매복을 시켜 포착(捕捉)할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합니다. 지난날 임꺽정(林巨叱正) 【황해도 도적으로 본부 관할지에 살고 있었다.】 추적할 즈음에 패두(牌頭)의 말을 듣지 않고 군사 20여 명만을 주어 초라하고 서툴게 움직이다가 마침내 패두가 살해당하게 되었는가 하면, 【패두 이억근(李億根)은 일찍이 도적 수십 명을 잡은 적이 있었다. 이때 본부가 신계(新溪)의 첩정을 인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적을 포위하였는데, 이억근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새벽을 이용하여 적소(賊所)에 들어갔다가 일곱 대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바로 뒤를 이어 적을 끝까지 추격하지 않았다가 끝내 적들이 멋대로 날뛰게 하였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무신을 보내 포착할 방법을 강구해서, 혹은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하기도 하고 혹은 문견(聞見)을 근거로 추적하기도 하여 반드시 포착할 것을 기하게 해야 합니다. 만일 태만하여 잡지 못하거나 겁이 나서 추적하지 못한다면 군법으로써 죄를 논하겠다는 것을 각별히 일러서 내려보내고, 유수(留守)에게도 이러한 뜻으로 하유(下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사의 직무는, 평시에는 본부를 다스리는 것이 그 소임이나, 병무(兵務) 또한 그의 소관이므로, 이같은 도적의 변이 있을 적에는 군법으로 처리해야만 합니다. 《대전(大典)》에 경내(境內)의 도적을 잡지 못하면 수령 또한 죄가 있다고 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사신은 논한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어 권요(權要)를 섬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과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진실로 조정이 청명하여 재물만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고, 수령을 모두 공(龔)·황(黃)019) 과 같은 사람을 가려 차임한다면, 검(劎)을 잡은 도적이 송아지를 사서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찌 이토록 심하게 기탄없이 살생을 하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추적 포착하기만 하려 한다면 아마 포착하는 대로 또 뒤따라 일어나, 장차 다 포착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25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508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치안(治安) / 역사-사학(史學)

  • [註 019]
    공(龔)·황(黃) : 한(漢)나라의 양리(良吏) 공수(龔遂)와 황패(黃霸).

○領議政尙震、左議政安玹、右議政李浚慶、領中樞府事尹元衡同議 【因朝講金鎧所啓, 命議于大臣, 故同議如此。】 啓曰: "開城府都事, 以武臣擇遣, 上敎至當。 但雖以武臣差遣, 不別措置, 循常爲之, 則猶無其益。 伏聞近來强賊, 多萃本府城底, 戕害人民甚多, 而人畏報復, 不能進告, 官吏雖或見聞, 了無設伏捕捉之計。 頃日林巨叱正 【黃海道賊也, 來家于本府之地。】 根尋之際, 不聽牌頭之言, 只給軍人卄餘名, 孤單齟齬, 以致牌頭見殺, 【牌頭李億根嘗捕賊數十餘人。 至是本府因新溪牒呈, 發軍圍賊, 億根率兵而往, 乘曉入賊所, 身中七箭而死。】 亦不登時窮追, 遂令賊勢鴟張, 至爲駭愕。 今遣武臣, 須令講究捕捉之方, 或率兵趕捕, 或聞見尋捉, 期令必獲。 如或縱逸不捕, 刦懦不追, 則以軍法論罪事, 各別開諭下送, 留守處, 亦以此意下諭何如? 都事之職, 平時則治本府之務, 乃其任也, 而凡兵務之事, 又其所職掌, 如有此等盜賊之變, 則不可不以軍法從事。 《大典》內境內盜賊, 不能捕捉, 守令亦有其罪, 故敢啓。"

【史臣曰: "盜賊之熾發, 由於守令之掊克, 守令之培克, 由於宰相之不廉。 今之宰相, 貪汚成風, 不知紀極。 是以守令剝民膏血, 以事權要, 啖豚咀雞, 無所不至, 而民窮無告, 其勢不爲盜, 則無以資生, 故相率而自投於死亡之地, 以僥倖刦奪爲事。 是豈民之性也哉? 苟朝廷淸明, 而無惟貨其吉之心, 守令皆得如者而任之, 則帶釰者買犢而歸農矣。 安有殺越無忌, 如此之甚者乎? 不然, 徒欲率兵趕捕, 則抑恐隨捕隨起, 將不勝其捕矣。"】


  • 【태백산사고본】 16책 25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508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사법-치안(治安)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