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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25권, 명종 14년 3월 8일 경진 2번째기사 1559년 명 가정(嘉靖) 38년

오상·경혼·강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상(吳祥)을 승정원 우승지로, 경혼(慶渾)을 좌부승지로, 강욱(姜昱)을 우부승지로, 【강욱은 재간은 있었으나 품성이 더러웠다. 일찍이 수령으로 있을 때 여러 가지로 수를 써서 명예를 낚았는데 가자(加資)까지 받게 되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비웃었다.】 남응운(南應雲)을 함경남도 절도사로, 이우민(李友閔)을 공조 참의로, 【특지(特旨)에 의하여 직제학에서 본직으로 제수되었다.】 이중경(李重慶)을 홍문관 직제학으로, 이문형(李文馨)을 전한으로, 이양(李樑)을 응교로, 유순선(柳順善)을 부응교로, 황서(黃瑞)박근원(朴謹元)을 교리로, 장사중(張士重)을 부교리로, 유홍(兪泓)을 수찬으로, 이양원(李陽元)을 박사(博士)로, 【이중경 이하는 순차대로 전직(轉職)되었다.】 정준(鄭浚)을 행 충무위 상호군(行忠武衛上護軍)으로 삼았다. 【정준은 일찍이 부제학으로서 강원도 감사가 되어 나가면서 어버이를 위한 것이라 청탁했는데 원주(原州)가 곧 그의 고향이었다. 방면(方面)을 맡은 위세를 빙자하여 백성의 전토(田土)를 탈취하고 영동(嶺東)의 세염(稅鹽)을 역마(驛馬)로 수송하여 그 집에 쌓아 놓았으며 남의 장획(臧獲)을 받고 남의 희첩(姬妾)을 빼앗는 등 못하는 짓이 없었다. 그 뒤 함경도 병사로 재직 중에 상처(喪妻)하였는데, 시신이 실린 교자(轎子)에 녹비(鹿皮)를 채워 보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기롱하기를 "살아서 왔던 부인(夫人)이 죽어 녹비가 되어 돌아가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2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50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以吳祥爲承政院右承旨, 慶渾爲左副承旨, 姜昱爲右副承旨, 【昱有幹能而性麤鄙。 嘗爲守令, 多行詭術, 粉飾釣名, 至受賞加, 時人笑之。】 南應雲咸鏡南道節度使, 李友閔爲工曹參議, 【以特旨, 由直提學拜是職。】 李重慶爲弘文館直提學, 李文馨爲典翰, 李樑爲應敎, 柳順善爲副應敎, 黃瑞朴謹元爲校理, 張士重爲副校理, 兪泓爲修撰, 李陽元爲博士, 【重慶以下, 次次遷轉也。】 鄭浚爲行忠武衛上護軍。 【浚嘗以副提學, 出爲江原監司。 托以爲親, 而原州乃其家鄕也。 憑藉方面之威, 刦奪民田, 驛輸嶺東之稅鹽, 充積其家, 受人臧獲, 奪人姬妾, 無所紀極。 及爲咸鏡兵使, 在營喪妻, 所乘轎子, 充鹿皮擔送, 時人譏之曰: "生來夫人, 死爲鹿皮而去。"】


  • 【태백산사고본】 16책 25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50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