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기풍을 진작시키는 일에 관해 의논하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헌납(獻納) 김계(金啓)가 아뢰기를,
"사기(士氣)를 배양(培養)함은 곧 국가의 혈맥(血脈)을 붙잡아 세우는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격렬(激烈)해지면 억제하고 유약(柔弱)해지면 부지(扶持)시켜 온 것입니다. 지금 배양하는 방법이 지극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정 안에는 충직(忠直)한 기풍이 없고, 천시(天時)나 인사(人事)로 보면 쇠퇴하여 어지러워진 세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동한(東漢)의 초기에는 오로지 절의(節義)만을 숭상했기 때문에 말기(末期)에 이르러서도 위언(危言)이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간웅(奸雄)들이 둘러 서서 보고만 있고 감히 차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한(西漢) 때에는 충후(忠厚)한 풍속이 변하여 유약해져서 마침내는 역적 왕망(王莽)이 찬탈(簒奪)하기에 이르렀어도 감히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던 것이니, 이는 지난 시대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지금은 성세라 비록 절의를 배양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마는, 반드시 미리 평소에 배양해 놓은 다음에야 훗날에 공효를 책임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더욱 더하게 되는 법이니, 성상께서 좋아하고 숭상하기를 어떻게 하시느냐에 달렸습니다. 사(邪)와 정(正)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니 정을 알아 붙잡아 세우고 사를 가려내어 억제하면, 자연히 보고서 감동하여 모두가 정한 데로 나아갈 것입니다.
지금 사기가 무너져 떨치지 못함은 교양하는 방법을 도리어 맞게 하지 않아서인 듯합니다. 학교에 사장(師長)을 두는 것은 교회(敎誨)하기 위해서인데 지금의 훈도(訓導)나 교수(敎授)들은 모두가 용렬한 사람들로 인원만 채우고 있을 뿐이니 교회에 무슨 도움이 있겠습니까?
또 《소학(小學)》은 충성하고 효도하는 방법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이니, 만일 어렸을 때 배우게 한다면 사람들이 향방(向方)을 알게 되어, 충직(忠直)한 기풍이 이로 인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여사(餘事)로 여겨 부형(父兄)들이 자제(子弟)를 가르칠 적에 과거 보는 글만을 시급하게 여기고 있으니, 사습(士習)이 아름답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중용》과 《대학》을 초시(初試) 이전에 강(講)하고 《소학》을 회시(會試) 때에 강하는데, 이것은 학문하는 순서가 문란한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먼저 《소학》을 강하고 다음에 《중용》과 《대학》을 강한다면 학문이 순서가 있게 된다고 여겨집니다.
대저 선비들을 가르치는 근본은 임금이 학문에 어떠한가에 달린 것입니다. 요즘 한 달 동안에 경연(經筵)에 나아가시는 날이 적으니, 강습(講習)하시는 방법이 허술한 듯합니다. 그러나 만일 경연만을 학문하는 데로 여기고 한가한 사이라 하여 학문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는 마치 하루 동안 볕을 쪼이고 10일 동안 식히는 것과 같아서 학문하는 방법이 못되니, 한가로이 계실 적에도 중지하지 않으신 다음에야 성학(聖學)이 날로 고명해질 것입니다."
하고, 영경연사 윤개가 아뢰기를,
"김계가 아뢴 바 학문에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과연 지당한 말입니다. 신의 뜻도 이와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위에서 불민하여 배양하는 방법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습이 아름답지 못하고 풍속이 퇴폐한 것이다. 아뢴 뜻이 지당하다. 과거의 사목(事目)은 비록 자주 고쳐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단지 선후(先後)만을 바꾸는 것이니, 예조가 대신들과 함께 의논하여 하라."
하였다. 김계가 또 아뢰기를,
"중국 일로(一路)에는 바야흐로 도적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사명(使命)을 맡은 신하들이 제 몸만 알고 국가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가려고 하겠습니까? 방호지(方好智)는 부득이 잡아다가 추고(推考)한 다음에 그의 죄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잡아다가 추고하여 엄중하게 다스려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24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48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정론(政論)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 / 외교-명(明) / 사법-탄핵(彈劾)
○癸卯/上御朝講。 獻納金啓曰: "培養士氣者, 乃扶植國脈之本也。 故激則裁之, 弱則扶之。 今者培養之道, 非不至矣, 而朝廷之上, 無忠直之風。 以天時、人事觀之, 與衰亂之世無異矣。 東漢之初, 專尙節義, 故及其末世, 危言不絶, 奸雄環視, 而莫敢取。 西漢則忠厚變爲柔懦, 終至莾賊簒竊, 莫敢誰何。 此往昔之明驗也。 方今聖世, 節義雖非急務, 必須預養於平時, 然後可以責效於他日。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 自上好尙之如何耳。 邪正相反。 知其正而扶之, 辨其邪而抑之, 則自然觀感, 皆趨於正矣。 今之士氣, 頹靡不振, 恐敎養之方, 不以其道也。 學校之有師長, 所以爲敎誨也, 今之爲訓導、敎授者, 皆冗雜之人, 只備員而已, 於敎誨何益? 且《小學》一書, 忠孝全備。 若幼而學之, 則人知向方, 而忠直之風, 因此可興也。 今者視爲餘事, 父兄之敎子弟, 但以科擧之文是急, 士習之不美, 無足怪也。 今者講《庸》、《學》於初試之前, 講《小學》於會試, 爲學次第紊亂。 臣意先講《小學》, 後講《庸》、《學》, 則爲學有序矣。 大抵敎士之本, 係於人君學問之如何耳。 今者一月之內, 御經筵之日少焉。 講習之方, 似爲踈闊矣。 然若但以經筵爲學問之地, 而燕閒之間, 有所間斷, 則是猶一日曝之, 十日寒之, 非所以爲學也。 不以燕居而有作輟, 然後聖學日就於高明矣。" 領經筵事尹漑曰: "金啓學有次序之言, 果爲至當。 臣意亦如是。" 上曰: "自上不敏, 不盡培養之方, 故士習不美, 風俗傷敗, 啓意當矣。 科擧事目, 雖不可數改, 然只換先後而已。 禮曹與大臣同議爲之。" 金啓又曰: "中原一路, 胡寇方熾。 奉使之臣, 知有身而不知有國, 則誰肯冒危險而樂赴乎? 方好智不得已拿推, 然後罰當其罪矣。" 上曰: "拿推嚴治可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24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48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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