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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22권, 명종 12년 5월 7일 기미 2번째기사 1557년 명 가정(嘉靖) 36년

단양 군수 황준량이 올린 민폐 10조의 상소문

단양 군수(丹陽郡守) 황준량(黃俊良)이 상소를 올려 민폐 10조를 진달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천하의 일은 피폐되기 전에 보수할 경우에는 보통 사람도 대처하기가 쉽지만 이미 피폐된 후에 진기시키는 경우에는 지혜로운 자도 을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이루어져 있는 형세를 기반으로 해서 피폐한 정치를 수습하는 것은 수령의 힘만으로도 쉽게 도모할 수 있다 하겠지만 텅 비어버린 허기(虛器)만 가지고서 이미 흩어져 버린 것을 수습하는 경우에는 수령에게 전적으로 책임지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유(懷綏)하는 은전(恩典)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피폐된 것을 진기시키는 어려움은 피폐되기 전에 보수하는 쉬움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 조처에 대한 방략은 결코 수령이 전담하거나 옹졸한 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신은 장구(章句)는 보잘것없는 유자(儒者)로서 경세(經世)하는 재주가 없는데 외람되이 군수의 책임을 맡았으니 잔폐된 고을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책임이 중합니다. 따라서 어찌 정성과 생각을 다하여 조금이나마 걱정을 나누어 갖는다는 중임에 부응하려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돌아 보건대 이 곳과 가까운 곳에서 신이 살았기에 일찍부터 피폐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임함에 있어 그 참상을 목격하고 시기에 맞추어 사무를 보자니 백성이 흩어진 지 오래되었고, 편안히 앉아서 모른 체하자니 온갖 역사(役事)가 모여듭니다. 그래서 가부간에 의심이 되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성스러운 성상(聖上)께서 천리 밖을 환히 살펴보지 않으셨다면 고루한 우신(愚臣)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한 가지인들 조처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신이 삼가 살피건대, 단양 고을은 본디 원주(原州)의 조그마한 고을 가운데 하나였는데 적을 섬멸한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금의 칭호로 올려준 것입니다.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거진 잡초와 험한 바위 사이에 있는 마을 집들은 모두 나무 껍질로 기와를 대신하고 띠풀을 엮어 벽을 삼았으며 전지는 본래 척박해서 수재와 한재가 제일 먼저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항산(恒産)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모아야 연명할 수가 있습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땅이 척박하고 물이 차가와서 오곡(五穀)이 풍요롭지 못하다.’고 한 것은 이곳의 풍토가 본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극도로 피폐해져서 살아갈 길이 날로 옹색해지는 데다가 부역에 나아갈 수 있는 민호가 40호(戶)에 불과하고 산과 들의 경지 면적이 3백 결(結)에도 차지 않으며 창고의 곡식 4천 석 중에는 피가 섞여 있는데 그것도 포부(逋負)081) 가 반이지만 받아 낼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부역의 재촉은 큰 고을보다도 중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다른 고을 백성보다 몇 곱절이나 되어 한 집이 1백 호의 부역을 부담하고 한 장정이 1백 사람의 임무를 감당하게 되어 가난한 자는 이미 곤궁해지고 곤궁한 자는 이미 병들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 새도 남쪽 가지에 둥지를 틀고 이리도 옛 언덕을 향하여 머리를 돌린다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더욱 심한 것입니다. 전지와 마을을 버리고서 돌아오려 하지 않으니 유독 인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살을 에어내고 골수를 우려내듯 참혹한 형벌을 가하여 잠시도 편안히 살 수가 없으므로 마침내 온 고을이 폐허가 되었으니, 성명(聖明)한 시대에 백성이 이렇게 심하게 학정에 시달릴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자는 아 대부(阿大夫)처럼 삶기는 형벌082) 을 면하였으니, 악을 징계하는 법이 너무 허술하지 않습니까? 선한 것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고 어진 마음 그것만으로는 저절로 행해지지 않는 것이니, 반드시 비상한 방도가 있어야 다 끊어져가는 형세를 진작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망령되어 천려일득(千慮一得)으로 주제넘게 세 가지 계책을 진달하겠으니, 삼가 전하께서는 살펴주소서.

조그마한 고을이 완전히 피폐해져 전혀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지금 같은 형편에 전일의 조공을 독책한다면 비록 공(龔)·소(召)083) 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부역을 면제해 주어 그 항목을 모두 없애고 10년 동안을 기한으로 즐거이 살면서 일하게 하여 백성들에게 태평스러운 삶을 누리게 함으로써 인의(仁義)의 은택에 젖어들게 한다면, 원근에 유산되어 있던 백성들이 모두 돌아오기를 원할 것은 물론 거칠어진 1백 리의 땅이 다시 살기 좋은 낙토로 변해서 근본이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상책(上策)입니다. 의논하는 자들은 멀리 10년으로 기한을 정한 것이 매우 오활하다고 하는데, 이는 근본을 는 자의 말이 아닙니다. 옛 사람들이 백성을 휴양시키고 생식(生息)시키는 데는 반드시 10년의 오랜 세월을 기한으로 하여 왔습니다.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국력을 양성한 것과 제갈양(諸葛亮)이 국력을 규합한 것084) 과 같이 해야 합니다. 신은, 10년만 부역을 면해주면 1백 년을 보장할 수 있지만 3∼5년에 그치면 구제하자마자 도로 피폐되어 원대한 계획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땅에 매겨져 있던 조공을 다 면제해 줄 수 없고 조도(調度)가 많아서 10년 동안 늦출 수 없다면 마땅히 군(郡)과 군수(郡守)를 혁파해서 강등시켜 현(縣)으로 만들어 아직 흩어지지 않은 백성을 큰 고을에 들어가게 하여 참혹한 해를 면하게 하는 것이 그 차책(次策)입니다. 피폐된 고을이라 하여 까닭없이 폐지하는 것 또한 큰 일이라 해서 두 가지 가운데 하나도 행할 수가 없다면 마땅히 하책(下策)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 가운데 큰 것만을 뽑은 것으로 폐단의 절반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니, 바로 눈앞의 고식적인 급함을 우선 구제하는 것이요 피폐해진 것을 진기시켜 장구히 유지해 나가는 정사가 아닙니다. 그 항목이 열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재목(材木)에 대한 폐단입니다.

각 관사에 공납해야 될 크고 작은 재목이 연재(椽材)가 4백 개에 이르고 산목(散木)이 거의 수만 개가 되니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숫자입니다. 40호에서 거만(巨萬)의 재목을 가지고 험한 산을 넘고 깊은 골짝을 건너 운반하자면 남녀가 모두 기진 맥진하고 와 말도 따라서 죽게 되어 온 고을의 농가에 수십 마리의 가축도 없으니, 백성의 고생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강을 이용하여 뗏목으로 운반하므로 쉽게 공납할 수가 없는데, 삼사(三司)의 공가(貢價)가 거의 1백 필에 이르므로 2년 동안 공납하지 못하여 장구히 독촉을 받게 된 것은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습니다. 중국 사신을 공궤하는 것도 비록 항공(恒貢)이 아니기는 하지만 채붕(彩棚)085) 을 만들 때 쓰는 큰 재목과 여기에 관계되는 잡물은 지공을 제거함에 있어 마땅히 먼저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삼사의 공납을 오래도록 제해주고 아울러 몇 해 동안 부역도 없애주며 중국 사신의 비용을 부담시키지 말고 겸하여 잡물의 폐단도 제거해 주면 백성들이 혹 여기에서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종이의 공납에 대한 폐단입니다.

종이를 만드는 어려움은 다른 부역보다 배나 심한데 종이를 공납하는 것이 유독 이 고을에만 많아서 백성들이 시달리다가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래입니다. 풍저창(豊儲倉)·장흥고(長興庫)의 경우는 모두 계목(啓目)에 의해 회계(會稽)에 관계된 물품이기 때문에 독책하지만 예조·교서관·관상감에도 모두 공납하게 되어 있어 도합 2백여 권(卷)이나 되는데, 공사(公私)가 함께 바닥이 나서 판출할 길이 없으니 고을이 더욱 고통스럽게 됩니다. 나라에 바치는 공물 가운데 모자라는 것은 종이가 아닙니다. 수백 권의 종이를 아낄 것이 뭐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오래도록 그 공물을 견감하고 아울러 4년간 부세를 면제하여 주신다면 백성들이 여기에서 혹 조금쯤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산행(山行)에 대한 폐단입니다.

봉진(封進)하는 숫자에 대해서는 정해진 법이 있고 사냥하는 사람도 각기 해당자가 있는 것인데, 지금은 짐승의 사냥을 오로지 백성에게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물과 활을 가지고 숲속을 달리는데, 우인(虞人)이 없이 사슴을 쫓는 격이어서086) 새 한마리도 잡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저축해 놓은 곡식을 털어서 몇 곱의 값으로 사들이는데도 오히려 때에 늦은 죄를 면치 못하여 다시 속포(贖布)의 벌을 받게 되니, 한 고을의 민생들이 오래 전에 이미 죽은 상태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1년의 공물에 노루가 70이고 꿩이 2백이 넘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노루와 꿩의 숫자를 줄여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여 주면 남은 백성들이 혹 여기에서 조금이나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야장(冶匠)에 대한 폐단입니다.

병오년087) 에 처음으로 2명을 정했는데 모두 걸인(乞人)들로 그 액수(額數)를 채워 놓고 후일의 폐단을 생각지 않은 것이었으니, 액수는 그대로 있고 사람은 없으므로 아울러 민간에게 책임지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6개월의 입번에 대한 2명의 번가(番價)를 이미 몇 해 동안 궐했으니 이자가 불어나서 가포(價布)가 80필에 이르렀는데 앉아서 침색(侵索)을 당하고 있습니다. 살을 저며내고 피를 말리는 참상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삼가 야장의 폐단을 아주 제거하고 아울러 2년 동안 궐한 가포도 면제해 주신다면 남은 백성이 혹 여기에서 조금은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는 악공(樂工)에 대한 폐단입니다.

외방 고을에서 충원된 자가 아직 재능을 익힌 것도 아닌데 6개월씩 부리므로 다른 역사보다 더 괴롭습니다. 그런데 잔폐한 고을에다가 4명을 충원하게 하였으니 이미 지나친 것입니다. 지금은 노비(奴婢)들이 죽거나 옮겨가서 거의 다 없어졌으므로 악공의 숫자를 지탱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생활해 갈 수가 없으므로 서로 연달아 도망하는데 징수하는 가포는 야장과 같으므로 노비들의 생계가 더욱 위축됩니다. 삼가 우선 역사를 도피한 악공을 감면해주고 길이 이정(移定)된 액수를 없애주신다면 남은 백성이 혹 여기에서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보병(步兵)에 대한 폐단입니다.

본 고을에는 보병이 26명이니 많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겨우 13명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보솔(保率)이 없는 단신입니다. 그 13명은 대체할 자가 없이 빈 문서만 걸어놓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급한 일이 생겨 갑자기 군대를 동원할 일이 있게 되면 누가 원문(轅門)088) 의 진중(陣中)으로 달려갈 것이며 누가 죽령(竹嶺)의 관방(關防)을 지키겠습니까. 더구나 보병의 신역에는 으레 가포(價布)가 있으니 현재 있는 13명은 모두 이웃과 일족의 힘을 빌리고 있는 상황이고 그 나머지 1백 여의 가포는 어떻게 공납할 수가 없어 민간에게 나누어 배정하였으므로 한번 보병의 가포를 겪고 나면 온 고을이 탕진되어 솥이 남아 있는 집이 몇 안 됩니다. 삼가 헛 액수의 보병을 감하거나 혹은 이정(移定)하는 길을 열어놓아 머리를 떨구고 기운이 꺾인 백성들로 하여금 법 밖의 가포를 징수하는 일이 없게 해주신다면 또한 소생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이 될 것입니다.

일곱째는 기인(其人)089) 의 폐단입니다.

아전 50명 중에서 1명을 정하는 것이 나라의 법입니다. 그런데 본 고을은 늙고 쇠약한 아전이 20명도 못 되는데 기인의 액수는 1명 반이 됩니다. 10여 명의 아전이 80명의 역사에 이바지해야 하는데 대포(代布)의 숫자는 1백 필이 넘으니, 잔약한 아전들로서는 척포(尺布)의 저축도 없는데 장차 어디서 판출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재산을 다 기울여도 부족해서 이웃과 일족에게까지 침학이 미치므로 서리(胥吏)와 백성이 모두 곤궁에 시달립니다. 2년 동안 공역(貢役)을 완전히 폐하였으므로 앉아서 대립(代立)하는 침학을 받는데 형부(刑部)에 이문(移文)하여 매양 관리를 추문하고 있어 해가 자심합니다. 삼가 반으로 삭감해서 조금이나마 급박함을 펴게 해주면 또한 소생시킬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될 것입니다.

여덟째는 피물(皮物)에 대한 폐단입니다.

병영(兵營)의 방물(方物)로 소록(小鹿)과 장피(獐皮)의 공납이 있는데 이를 유신현(惟新縣)과 아울러 배정하였고, 또 대록(大鹿)과 황우(黃牛)의 대가(代價)가 있는데 상공(上供)한다는 명목을 핑계로 그 선택을 최고로 하여 소록은 사슴의 중간치로 하고 장피는 사슴 가운데 작은 것으로 합니다. 다른 도(道)도 모두 그러해서 이미 폐습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10여 가지나 되는 잡색(雜色)의 세금을 모두 백성에게 배정하였으므로 점퇴(點退)와 유보(留保)에 대한 비용은 포함시키지 않아도 내야 할 정목(正木)이 1백여에 이르니, 이 또한 큰 폐단입니다. 그리고 유신현은 큰 고을이므로 반드시 폐읍(弊邑)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우록(牛鹿)의 대가인 40필의 포를 유신현에만 배정하고 폐읍에는 독책하지 않는 것이 또한 약한 자를 부지시키는 정치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병영의 피물을 양감(量減)하고 아울러 배정한 우록을 영원히 면제해 줌으로써 가죽이 다하면 털도 없어진다는 폐단을 면하게 해주면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방책이 될 것입니다.

아홉째는 이정(移定)한 데 대한 폐단입니다.

본 고을의 조공도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데 다른 고을의 부세까지 더 이정했으니, 공주(公州)의 사노비(寺奴婢), 해미(海美)의 목탄(木炭), 연풍(延豐)의 연재(椽材), 영춘(永春)의 봉판(蜂板), 황간(黃澗)의 기인(其人) 등 다섯 종목이 그것입니다. 당초 이정(移定)한 것 또한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3백 고을에 이러한 폐단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돌보아 주지 않습니까. 노비의 액수가 빈 문서로 기재는 되어 있지만 현재 복역하는 숫자는 50도 되지 못하는데 액수 외의 것이라 명명하여 이쪽에서 빼앗아 저쪽에 주는 것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역이 3도(道)의 요충에 해당되고 고을에는 1백호의 취락(聚落)도 없는데 사신들의 왕래와 왜인들이 다니는 길목이므로 이들의 공궤에 드는 수요를 모두 이 무리에게 의지하는 것은 물론 복물(卜物)도 모두 이들에게 저나르게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또 수십 명이 도망하여 아직 돌아와 입역(立役)하지 않고 있으므로 두 번이나 해조(該曹)에 보고하였으나 관례에 따라 방계(防啓)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원헌(原憲)의 재산을 빼앗아 계씨(季氏)의 부(富)를 보태주는 것090) 과 같으니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공주는 인민이 많은 큰 고을인데 어찌 우리 고을에서 취해다가 채워야 될 형편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공주로 이정한 노비를 도로 본 고을로 돌려주고 다른 고을에서 이정한 제반 공물도 도로 해당 고을로 돌려 준다면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정사가 될 것입니다.

열째는 약재(藥材)에 대한 폐단입니다.

약이름도 모르는 무지한 촌 백성들에게 생판으로 판출하여 내게 하므로 포목을 가지고 가서 사게 되니 하소연할 데 없는 불쌍한 백성들이 감내할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웅담(熊膽)과 사향(麝香), 백급(白笈)과 인삼(人蔘), 복령(茯苓)과 지황(地黃)입니다. 1백 필의 포목을 가지고도 이 약재 한 가지를 준비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거기에는 모두 인정물(人情物)까지 있으므로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배정된 우황(牛黃)은 백성들이 내게 되니 이는 전적으로 제천(堤川)에만 맡겨서 이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리는 것이 불가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한 고을을 버리지 마시고 갖추기 어려운 약재를 특별히 삭감하여 조금이나마 은혜를 입게 함으로써 태평 성대를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시면 모든 병폐가 저절로 없어져 하늘과 땅에 화기가 감돌 것이니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상 열 가지 폐단은 가장 해가 심한 것으로 전체의 숫자로 계산하여 본다면 겨우 10분의 2쯤 됩니다. 흩어진 백성을 되돌아오게 하려면 마땅히 모든 역사를 감해 주어야 하는데 이 10분의 2에 대해 하나라도 어렵게 여기는 것이 있어서 다 개혁하지 못한다면 소생시키려는 계책은 어긋나고 말 것입니다. 취한다고 꼭 나라에 이로운 것은 아니고 덜어주면 백성에게 덕이 될 수 있는 것은 임금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 열 가지 폐단에 대해 어렵게 여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청밀(淸蜜)의 공납이 2석(石)이 넘는데, 백성은 적고 땅은 거칠어 그 숫자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젓갈용으로 쓸 눌어(訥魚)의 배당도 1백 마리가 넘는데 물이 맑아서 큰 것이 없으므로 먼 지역에 가서 사가지고 오니 또한 폐단이라 하겠습니다. 제원(諸員) 1명이 이에 종사한 지가 이미 오래인데, 역사와 독책의 괴로움이 야장(冶匠)의 폐단과 다를 것이 없고 세공(歲貢)을 위해 한 사람을 배정하여 그것으로 먹고 살게 했으나 역사를 도망하는 폐단이 악공(樂工)과 같습니다. 그 나머지 20개의 각사(各司)에도 모두 공물이 있고 삭선(朔膳)·월령(月令)에 대해서도 각각 도회(都會)091) 가 있는데 크고 작은 폐단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히 낱낱이 거론하여 성총(聖聰)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채택해서 취사하시기만을 바랍니다.

, 영동(嶺東)의 조그만한 고을이 기운이 이미 떨어진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한 역사와 한 부세도 오히려 갖추기 어려운데, 이포(里布)092)지정(地征)093) 까지 끝없이 독책하고 까다로운 법령과 번거로운 조항으로 징색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도망한 자의 일족과 묵은 밭의 이웃에게 책임을 분담시켜 부세를 징수하여 기필코 그 수를 채우려 하니, 10무(畝)의 농사로 어떻게 배를 채우고 몸을 감쌀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물고기를 끓는 솥에다 기르고 새를 불타는 숲에 깃들이게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아무리 자애로운 부모라도 자식을 보호하기 어려운데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보유할 수 있겠습니까. 폐기된 지가 이미 오래인데 이제서야 알았으니, 그 사이의 시름과 고통으로 인한 원망에 대해 어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하여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신이 약 10년 동안 완전히 면제해 주어 길이 고통을 잊게 해주자는 것은 이 때문이며, 강등하여 부곡(部曲)으로 만들어 큰 고을의 그늘에 비호되도록 하자는 것도 이 때문이며, 두 가지 다 할 수 없으면 진달한 바의 폐단만이라도 견감하여 우선 일시적이나마 편안하게 해주자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충(聖衷)으로 결단하고 대신에게도 상의해서 백성을 소생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어 주고 또 감사(監司)와 병사(兵使)에게도 유지를 내려서 포부(逋負)를 감면해 줌으로써 보호하는 계책을 양쪽 다 극진하게 하면 더욱 다행스럽기 그지없겠습니다.

만약 지위도 낮고 말도 경망하여 일일이 들어 줄 수 없다 하여 지난해처럼 관례대로 긴급하지 않은 공물이나 감면해 주고 만다면 비록 감면해 주었다는 말은 있어도 실상은 소생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조정에서 그런 실정을 통찰하였는데도 본 고을이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이는 하늘이 버린 것이지 수령의 죄가 아닙니다. , 서민들이 즐겁게 살지 못한다면 임금이 함께 공업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 고을이 이와 같으면 한 나라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집도 없이 떠도는 백성이 궁벽한 골짝에서 원망에 차서 울부짖는 자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의 원망이 골수에 사무쳤는데도 위로 통할 수가 없으니 하늘의 감시를 소홀히 하면 반드시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자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의 형세가 모두 흙더미와 같아서 허물어지려 하는데, 개미 구멍을 막지 않았다가 이것이 말할 수 없는 화란을 미리 방비하지 않은 것이 될 줄 어찌 알겠습니까. , 띠풀로 지붕을 덮고 궁궐을 낮게 했던 옛날에 어찌 재목으로 인한 폐해가 있었을 것이며, 토기(土器)에 명아주국을 끓여 먹던 때에 어찌 짐승을 사냥하는 괴로움이 있었겠습니까. 후기(后夔)가 전악(典樂)이 되자 신인(神人)이 화락하였으니 악공에게 무슨 괴로움이 있었겠습니까. 공수(工倕)가 공쟁이들을 보살펴 기술을 맡아 간하던 때는 야장들이 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대나무에 글을 쓰고 정사가 간소하였으니 종이 만드는 폐단이 없었을 것이고, 문교(文敎)를 펴서 악한 이를 감화시켰으니 어찌 병혁(兵革)의 일이 많았겠습니까. 백초(百草)를 맛본 것은 기백(岐伯)에서 비롯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니, 그때는 캐어서 바치는 괴로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구주(九州)의 큰 나라로서도 양주(梁州)에만 직피(織皮)를 바치게 했으니 공물의 제도가 이미 간소한데 어찌 가죽을 사서 바치는 원망이 있었겠습니까. 때맞추어 산림(山林)의 나무를 베어 재목을 쓰고도 남았으니 어찌 아전들이 탄목(炭木)을 걱정할 필요가 있었겠으며,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며 이사를 해도 그 고장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백성들이 유리될까 걱정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이래서 태평 성대의 정치는 백성을 부려도 기쁘게 하고 이롭게 해주면서도 누가 해준 것인지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도(世道)가 변하여 한번 격하되자 민생의 피해가 더욱 심해져 색목(色目)이 수도 없이 많아서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고 정령은 범과 같이 사나와서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중택(中澤)의 기러기가 슬피 울고 대동(大東)의 저축(杼柚)이 비어 있고094) 곡퇴(谷蓷)의 부(賦)와 장초(萇楚)의 탄식095) 이 이미 마을에 가득찼으며 천재(天災)와 물괴(物怪)가 잇달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가 잘못되어 백성이 유리됨으로써 장차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임금된 사람이 그 폐단이 발생한 근원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앉아서 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지금대로 하여 풍속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군(聖君)과 양상(良相)이라 하더라도 장차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몸은 요순 시대를 만났지만 눈은 말세의 정치를 보게 되니 이것이, 신이 하늘을 우러르며 가슴 아프게 탄식하고 통곡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 지방을 보아 제로(諸路)를 미루어 살피시고 한 사물을 들어 만 가지를 통찰하소서. 임금 노릇하기가 쉽지 않고 백성 보호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서 어진 정사를 베풀어 백성의 고통을 보살피고 부세를 박하게 하여 민생을 후하게 해주고 사치를 고쳐 백성의 재물을 아끼고 공사(工事)를 감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무거운 부세를 감면해 주고 포흠낸 백성을 독책하지 말고 정도(正道)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는 자를 통쾌히 소탕하라는 전지를 내리시고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하는 계책을 극진히 강구하여 국가의 운명을 편안하게 해서 와해(瓦解)되는 걱정이 없게 하고 나라의 근본을 공고하게 해서 반석같이 튼튼하게 한다면 어찌 한 고을과 한 나라의 경사일 뿐이겠습니까. 실로 만세토록 이어갈 종사(宗社)의 무궁한 복인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미천한 몸으로 아둔한 소견을 두서없이 함부로 진달하였으니 그 죄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은 소원하다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니, 한 고을의 폐단을 진달함에 삼우(三隅)096) 를 아시기 바랍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신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기시어 참람됨을 용서하여 주소서. 신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상소를 받들어 올립니다."

사신은 논한다. 황준량의 상·중·하의 계책과 10개 조항의 폐단은 가히 곡진하고 절실하다고 할 만하다. 백성들의 곤궁한 상황과 수령들의 각박한 정상을 상소 한 장에 극진히 진달하였으니, 조금이라도 어진 마음이 있는 자라면 그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목이 메이게 될 것이다. 한 고을의 폐단을 가지고 3백 60고을을 미루어 보면 그렇지 않은 데가 없을 것이니, , 민생의 목숨이 거의 다하게 된 셈이다. 단양이란 고을이 처음에는 폐기된 고을이 아니었는데 여러 번 탐관 오리의 손을 거치는 동안 백성의 고혈을 다 빨아 먹었기 때문에 열 집에 아홉은 비게 되어 영원히 폐허가 되었으니, 이는 조정이 수령을 가려 보내지 않아서 공도가 없어지고 사욕이 성했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준량이 10년 동안 면세해서 소생시키고자 하였고 조정에서도 허락한다 하더라도 어찌 10년 동안이나 오래도록 법을 시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답하기를,

"이제 상소 내용을 보건대 10개 조항의 폐단을 진달하여 논한 것이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성이 아닌 것이 없으니, 내가 아름답게 여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2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408면
  • 【분류】
    군사-군역(軍役) / 의약(醫藥) / 역사-사학(史學)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공물(貢物) / 재정-진상(進上) / 재정-역(役) / 공업-장인(匠人) / 공업-수공업품(手工業品) / 신분-천인(賤人) / 신분-중인(中人) / 예술-음악(音樂)

  • [註 081]
    포부(逋負) : 갚지 않은 환자곡.
  • [註 082]
    아 대부(阿大夫)처럼 삶기는 형벌 :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이 곤궁에 허덕이는데 윗사람을 잘 섬겨 명예를 얻는 자에게 가하여지는 형벌이란 뜻. 전국 시대 제 위왕(齊威王)이 아(阿) 땅의 대부(大夫)를 불러 "그대가 아를 잘 다스린다고 칭찬하는 말이 날마다 이르므로 사람을 시켜 조사해보니 전야(田野)가 묵어 있고 백성은 굶주리고 있었다. 이는 그대가 뇌물로 나의 좌우(左右)를 섬겨 명예를 구한 것이다." 하고, 아 대부와 그를 칭찬하던 자들을 삶아 죽였다. 《사기(史記)》 권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註 083]
    공(龔)·소(召) : 공수(龔遂)와 소신신(召信臣)을 가리킴. 이들은 모두 한(漢)나라 때에 선정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 《한서(漢書)》 권89 순리전(循吏傳).
  • [註 084]
    월(越)나라구천(句踐)이 국력을 양성한 것과 제갈양(諸葛亮)이 국력을 규합한 것 : 곤경에 처했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국력을 저축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 월의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뒤 20여 년의 각고 끝에 오나라를 격파하였음. 《사기(史記)》 권41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제갈양(諸葛亮)이 위(魏)나라를 쳐서 한실(漢室)을 부흥시키기 위해 상당 기간 국력을 저축해야 한다고 건의한 일이 있음. 《삼국지(三國志)》 권34 제갈양전(諸渴亮傳).
  • [註 085]
    채붕(彩棚) : 임금의 행차나 중국 사신을 맞이할 적에 산디 놀음을 관람하기 위하여 만드는 높은 관람석을 말함.
  • [註 086]
    우인(虞人)이 없이 사슴을 쫓는 격이어서 : 적격자에게 맡기지 않으면 일을 성취할 수 없다는 뜻. 《역경(易經)》 둔괘(屯卦) 육삼(六三)에 "사슴을 쫓되, 우인(虞人)이 없으면 숲 속의 함정에 빠질 뿐이다." 했는데 여기서 온 말.
  • [註 087]
    병오년 : 1546 명종 1년.
  • [註 088]
    원문(轅門) : 군문(軍門).
  • [註 089]
    기인(其人) : 고려 때 향리(鄕吏)의 자제들을 서울에 볼모로 불러다가 그 고장의 일에 관한 고문(顧問)으로 삼은 데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조 때에도 그대로 이어 내려왔다. 그런데 주로 땔나무 등을 바치는 역으로 전락되었으므로 입역(立役)하는 대신 댓가를 바치는 것이 상례였다.
  • [註 090]
    원헌(原憲)의 재산을 빼앗아 계씨(季氏)의 부(富)를 보태주는 것 : 약자의 것을 빼앗아 강자에게 준다는 뜻. 원헌은 공자의 제자인데 가난했고 계씨(季氏)는 노(魯)나라의 대부(大夫)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 [註 091]
    도회(都會) : 공물을 판출하기 위한 계(契).
  • [註 092]
    이포(里布) : 벌포(罰布).
  • [註 093]
    지정(地征) : 농지세.
  • [註 094]
    중택(中澤)의 기러기가 슬피 울고 대동(大東)의 저축(杼柚)이 비어 있고 : 노역(勞役)에 시달린 백성들이 한탄하며 울부짖는다는 뜻. 중택은 못인데, 기러기가 제자리를 얻듯이 백성들도 제곳을 마련하기 위해 노역한다고 한 《시경(詩經)》 소아(小雅) 홍안(鴻雁)에서 따온 말로 여기서는 노역한다는 뜻을 취한 것임. 대동(大東)은 동쪽에 있는 주(周)나라의 부용국을 가리키고 저축(杼柚)은 북과 바디로 길쌈하는 것을 말하는데, 노역에 시달려 길쌈할 틈도 없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
  • [註 095]
    곡퇴(谷蓷)의 부(賦)와 장초(萇楚)의 탄식 : 흉년과 부역의 과중으로 백성들이 탄식한다는 뜻. 곡퇴는 골짜기의 풀이 가뭄으로 말라버린 것으로 흉년이 들어 참담한 정경이 된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왕풍(王風) 중곡유퇴(中谷有蓷). 장초(萇楚)는 소맥(小麥)처럼 생긴 것으로,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이 차라리 소맥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었으면 하고 탄식한 내용이다. 《시경(詩經)》 회풍(檜風) 습유장초(隰有萇楚).
  • [註 096]
    삼우(三隅) :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나머지를 유추해서 안다는 뜻.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하나를 가르쳐 주었는데 나머지 셋을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더 말하지 않는다."한 데서 온 말.

丹陽郡守黃俊良, 上疏陳民弊十條曰:

伏以天下之事, 因其未弊而補之, 則庸夫易爲力, 至於已弊而起之, 則智者難爲功。 蓋席阜成之勢, 而修頹墮之政, 只煩守令之力, 而不過一規畫之間, 若其擁虛棄之器, 而收散亡之勢, 則非專守土之責, 而必待於恩典之懷綏也。 然則起弊之難, 非補弊之易, 而其措處方略, 決非守宰之所顓, 迂拙之所堪也審矣。 臣章句之腐儒, 經世無才, 濫叨郡寄, 責重蘇殘, 豈不欲殫精竭慮, 少副分憂之重乎? 顧以地連臣居, 曾熟其弊, 今此上任, 目擊懷慘。 欲投期應務, 則民散久矣; 欲安坐謝事, 則百役所萃。 可否狐疑, 進退狼狽。 向非聖上之靈, 明見千里之外, 則守株愚臣, 安敢措一手於其間乎? 臣謹按, 丹陽爲郡, 本原州之一小縣也。 殲賊有功, 特陞今號, 三面阻嶺, 一帶長江, 荒茅亂石之間, 名爲村店者, 皆剝樹代瓦, 編茨爲壁, 而田本嶢确, 水旱所先, 人皆漂寓, 一無恒産, 年登而半菽不厭, 遇歉則拾橡爲命。 《輿地》所謂土瘠水寒, 五穀不登者, 其風土然也。 今則凋弊已極, 生事日窄, 而供役疲氓, 戶不盈四十, 山野耕籍, 結不滿三百, 倉穀四千, 皆雜稊稗, 而逋負居半, 責償無憑。 催科索賦, 或重於大府, 誅求征稅, 倍蓰於他氓, 一家而支百戶之役, 單丁而當百夫之任, 貧者已困, 困者已病, 携持婦子, 散之四方。 噫! 巢南有禽, 首丘有獸, 懷土重遷, 最靈爲甚, 而蕩棄田里, 不知悔還者, 獨非人情乎? 剝膚推髓, 刑慘鞭撻, 少無片時之寧居, 卒致一邑之爲墟, 曾謂聖明之下, 民困虐政, 若是其甚乎? 然致此板蕩者, 得逭烹之誅, 則懲惡之典, 不已踈乎? 徒善, 不足以爲政; 仁心, 不能以自行。 必有非常之典, 可振垂絶之勢。 臣妄效一得, 濫陳三策, 伏惟聖覽焉。 夫十室之邑, 一敗塗地, 無一不弊, 而無一可爲, 據今之勢, 責古之貢, 雖有, 斷知其無能爲也。 今若除賦復役, 一掃名目, 期以十年, 樂生興事, 而俾之優游於耕鑿之安, 浸漬乎仁義之澤, 則遠邇流氓, 皆願受廛, 桑麻百里, 變爲樂土, 而根本成矣。 此策之上也。 議者以遠期十年爲迂, 此非知本者也。 古人休養生息之方, 必遲以十年之久, 若 句踐之生聚, 諸葛亮之紏合可也。 臣謂得復十歲, 則可保百年, 止三五年, 則旋救旋弊, 而非經遠之得計也。 若謂任土之貢, 不可盡去, 調度之廣, 未寬十年, 則亦當革郡汰守, 降爲附縣, 使未散餘氓, 得齒於大邑之間, 而姑免乎慘毒之害, 抑其次也。 若謂弊邑, 無罪廢置, 亦大於斯, 二者不得其一, 則當出於下策乎! 然此則僅撮病民之大者, 而未袪一半之弊, 是乃救目前姑息之急, 而非起廢持久之政也。 其目有十。 其一曰, 材木之弊。 小大之材, 所納異司, 材椽至於四百, 散木幾於數萬, 已不勝其多矣。 以四十之戶, 而運巨萬之木, 越險跨壑, 塡阬墜谷, 男女力竭, 牛馬隨斃, 而闔境之家, 無數十之畜, 則生民之困極矣。 況塞江流筏, 不能徒納, 而三司之賈, 幾至百匹, 則二年未貢, 長被督責, 亦無足怪矣。 天使之供, 雖非恒貢, 而結棚大木, 凡干雜物, 支待之除, 宜在所先也。 伏願久蠲三司之貢, 幷除數年之賦, 勿定使之費, 兼去雜物之弊, 則民生或於是而少蘇矣。 其二曰, 紙貢之弊。 造紙之難, 倍於他役, 貢紙之數, 獨優於此, 編戶之民, 病於難支久矣。 如豐儲長興之納, 則皆用啓目, 責以會稽之品, 若禮曹、校書館、觀象監, 皆有所貢, 倂爲二百餘卷, 而公私俱竭, 取辦無地, 官益困矣。 一國之貢, 所乏者非紙也, 數百之紙, 宜何所惜也? 伏願久蠲其貢, 而竝除四年之賦, 則民生或於是而少蘇矣。 其三曰, 山行之弊。 封進之數, 曾有定式, 捕獵之夫, 各有其人, 今則(戈)〔弋〕 獵飛走, 專倚乎民。 負網操弧, 馳騖林莽, 而卽鹿無虞, 不獲一禽, 則傾甁石之儲, 而收數倍之價, 猶未免後時之罪, 而復有贖布之罰, 一方民生, 久已死矣。 謹按一年之貢, 獐用七十, 雉過二百。 伏願量減獐雉之數, 使遂樂利之安, 則餘氓或於是而少蘇矣。 其四曰, 冶匠之弊。 丙午年中, 初定二名, 皆以丐乞之徒, 苟充其額, 而不省厥終之弊, 額存人亡, 幷責民間, 而六朔之番, 二名之價, 已闕數年, 則貸息之在, 至於八十, 而坐受侵索。 其剜肉剝血之慘, 有不忍者矣。 伏願永除冶匠之弊, 幷除二年之闕, 則餘氓或於是而少蘇矣。 其五曰, 樂工之弊。 充選外官者, 未必習藝, 而驅使六朔, 苦於他役。 殘郡之貢, 至於四名, 則亦已濫矣。 今則奴婢之死徙略盡, 而樂工之枝梧尤難。 不能存活, 相繼而亡, 則微債之數, 均於冶匠, 而奴婢之生, 益蹙矣。 伏願姑減逋役之工, 而永除移定之數, 則餘氓或於是而少蘇矣。 其六曰, 步兵之弊。 弊郡之兵, 至於二十六名, 則亦非多也, 今則僅存十三, 而單無保率。 其十三則無一可代, 只掛空籍。 脫有警急之虞, 猝被整旅之擧, 則誰赴轅門之蛇鳥, 誰守竹嶺之關防乎? 況步兵之役, 例有價布, 而時存十三, 皆藉隣族之力, 其餘百餘之布, 無從准納, 而散定民間, 一經兵價, 闔境蕩悉, 家餘鼎鐺者, 亦無幾矣。 伏願量減虛額之兵, 或開移定之路, 使垂首喪氣之民, 得免律外橫布之征, 則亦蘇復之一條也。 其七曰, 其人之弊。 有吏五十, 乃定一名, 國之法也, 而郡則老羸之吏, 不滿二十, 其人之數一名有半, 則以十餘之吏, 供八十之役, 而代布之數, 過於百匹, 則貿貿殘吏, 無尺布之儲者, 將倚辦於何地耶? 傾貲不盈, 侵及隣族, 而吏胥居民, 俱以困矣。 全廢二年之貢, 而坐受代立之侵, 移文刑部, 每推官吏, 而害滋甚矣。 伏願量減一半, 少紓其急, 則亦蘇復之一事也。 其八曰, 皮物之弊。 兵營方物, 有小鹿、獐皮之納, 而竝定惟新, 又有大鹿、黃牛之價, 托名上供, 十分其選, 而小鹿則以鹿之中者, 獐皮則以鹿之小者。 他道皆然, 已爲弊習, 而雜色十餘, 皆定民間, 正木之出, 至於百餘, 而點退留難之費, 不與焉, 斯亦弊之巨者也。 且惟新一邑之大, 不必待弊邑之助, 則牛鹿之價四十之布, 專定於惟新, 勿責於敝邑, 諒亦扶弱之政也。 伏願量減兵營之皮物, 永除幷定之牛鹿, 使免皮盡毛無之弊, 則亦蘇復之一策也。 其九曰, "移定之弊。 本郡之貢, 尙不能堪, 他邑之賦, 又以移加, 如公州之寺奴婢也、海美之木炭也、延豐之材椽也、永春之蜂板也、黃澗之其人, 五也。 當初移定, 亦爲救弊之謀也, 今則三百之邑, 無此之弊, 遑恤我後乎? 奴婢之額, 雖載空簿, 而時役之數, 不能半百, 則名爲數外, 而奪此與彼者, 其亦未之思乎! 地當三道之衝, 官無百戶之聚, 使賓之(交)〔旁〕 午, 夷之織路, 供饋之需, 皆倚此輩, 卜物塡委, 皆令負戴, 而又失數十, 尙未還役, 再報該曹, 依例防啓, (止)〔此〕 猶奪原憲之(資)〔貧〕 , 而增季氏之富, 何其忍也? 以公州人民之夥, 豈須取是郡而足哉? 伏願奴婢之移公州者, 旋給本郡, 諸貢之移他官者, 卽還舊處, 則亦蘇復之一政也。 其十曰, 藥材之弊。 蠢蠢村氓, 不辨藥名, 而俾出童羖, 抱布以貿, 則哀我惸獨, 非所任矣。 其最難者, 熊膽、麝香也, 白芨、人蔘也, 茯苓、地黃也。 百匹之布, 未盡其材, 一草之貢, 皆有人情, 則力有所未及, 固也。 且幷定牛黃, 亦出民間, 則專委堤川, 惠此下民, 何不可之有? 伏願勿有棄捐之地, 特減難備之材, 使蒙一分之惠, 共躋仁壽之域, 則勿藥有喜, 召和穹壤, 而蘇復之一端也。 凡此十弊, 特其爲害之甚者, 而計以元數, 則僅十分之二也。 欲圖懷來之策, 宜蠲凡百之役, 而於十之二者, 一有阻難, 不能盡革, 則欲蘇之計, 亦已左矣。 取之未必利國, 而損之足以裕民者, 人主之所欲爲也, 則顧何有於十弊哉? 若夫淸蜜之貢, 過於二石, 而民小地荒, 未盈於厥數, 訥魚之醢, 過於百尾, 而水淸無大, 轉貿於遠地, 則亦云弊矣。 諸員一名, 業去已久, 而役債之苦, 無異於冶匠, 歲貢一人, 定以傭食, 而亡役之弊, 有同於樂工。 其餘二十各司, 皆有所貢, 朔膳、月令, 各有都會, 大小之弊, 無處無之, 然不敢毛擧, 以溷聖聰。 唯冀採擇而取舍之耳。 嗚呼! 嶺底黑痣之區, 氣息已奄, 一役一賦, 尙恐難備, 而里布、地征, 督出無窮, 苛令煩條, 侵索未已。 躱役之族, 荒田之隣, 分債出稅, 必取盈焉, 則十畝之耕, 何望其實腹而裹身乎? 是猶養魚於沸鼎, 栖鳥於焚林, 雖慈父而不能保子, 君安得而有其民乎? 廢棄已久, 而今始知之, 則其間愁痛之怨, 仁人之所宜想念而惻然者也。 臣之欲全復十年, 而永付相忘之域者, 此也; 欲降爲部曲, 而得庇巨邑之蔭者, 此也; 不得於二, 則又蠲所陳之弊, 而姑爲苟安之計者, 此也。 伏願斷自聖衷, 謀及大臣, 克盡安全之方, 得遂蘇息之望, 而又降旨于監司、兵使, 減去稽負之物, 兩盡調護之策, 尤勝萬幸。 若謂地賤言輕, 不可一聽從, 而例減不緊之物, 將復如前年之爲, 則雖有蠲除之名, 而實無蘇復之路。 朝廷洞知其實, 而敝邑猶不蒙恤, 則是亦天之所廢, 非守宰之罪也。 嗚呼! 匹夫匹婦, 不獲自盡, 民主罔與成厥功, 則一郡如此, 一國可知。 今之靡室流氓叫怨於窮谷之中者, 不知其幾何人也。 衆怨入骨, 鬱未上通, 游衍天監, 必有任其咎者矣。 方今國家之勢, 皆有土崩之形, 而毁自此始。 蟻穴之不救, 安知稽天之未防? 嗚呼! 茅茨卑宮之日, 安有材木之害; 土簋黎羹之時, 寧有獵獸之苦? 后夔典樂, 而神人以和, 則樂工有何勞也; 公倕若工, 而執藝以諫, 則冶匠無所事也。 殺靑事簡, 未有紙楮之弊; 敷文格頑, 何事兵革之多? 百草之嘗, 肇於岐伯, 而敎人伊始, 必無採貢之苦; 九州之大, 梁惟織皮, 則制貢已簡, 何有貿皮之怨? 斧斤時入, 而材不勝用, 則吏何虞於炭木; 出作入息, 而徒不出鄕, 則民何慮乎流亡? 此熙皞之治, 說以使民, 利之不庸, 而莫知其爲者也。 世道之變一降, 生民之害益甚, 色目如蝟, 莫知適從, 政令如虎, 不能堪命。 中澤之鴻雁哀鳴, 大東之杼軸其空, 谷䕌之賦, 萇楚之嘆, 已盈於田里, 而天災物怪, 疊出層現, 政散民流, 將無以爲國, 則爲人上者, 可不知其弊之所自乎? 其將拱手蔽目, 而莫爲之計乎? 由今之道, 無變今之俗, 雖聖君、良相, 亦將如之何哉? 身際〔虞〕 之朝, 目見叔季之政, 此臣所以仰天隕心, 歔欷而痛哭者也。 伏願殿下, 視一方而推諸路, 擧一物而通萬類, 愼爲君之不易, 念保民之惟艱, 施仁政以恤民隱, 薄賦歛以厚民生, 革侈汰以節民貨, 省(與)〔興〕 作以安民居, 量蠲乎租賦之重, 已責於逋負之氓, 痛掃蠧正賊民之敎, 盡講興利除害之策, 使國步安而無瓦解之患, 邦本固而有盤石之泰, 則豈徒一邑一國之慶? 實萬世宗主無疆之休也。 臣至愚極陋, 冒陳狂瞽, 罪當萬死, 然愛君憂國之誠, 不以踈遠而有間, 陳一郡之弊, 望三隅之反。 惟殿下, 憐其愚戇而恕其僭濫。 臣不勝隕越之至, 謹奉疏以聞。

【史臣曰: "黃俊良上、中、下之策, 十條之弊, 可謂曲盡剴切矣。 赤子困頓之狀, 守令剝割之情, 極陳於一疏之內, 少有仁人之心者, 讀不終篇, 咽已塞矣。 以一邑之弊, 而推之三百六十州之中, 則無處不然, 嗚呼! 生民之命, 其殆盡矣。 陽爲郡, 初非廢棄之地, 而屢經老賊之手, 浚盡赤子之血, 十室九空, 永爲丘墟。 此則朝廷不擇守令, 公滅私勝之致也。 俊良雖欲十年蘇復, 而朝廷亦許之, 豈能行法於十年之久哉? 答曰: ‘今觀疏辭, 十條陳弊之論, 無非憂國愛君、爲民之誠, 予用嘉焉。’"】


  • 【태백산사고본】 14책 22권 61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408면
  • 【분류】
    군사-군역(軍役) / 의약(醫藥) / 역사-사학(史學) / 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공물(貢物) / 재정-진상(進上) / 재정-역(役) / 공업-장인(匠人) / 공업-수공업품(手工業品) / 신분-천인(賤人) / 신분-중인(中人)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