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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22권, 명종 12년 1월 26일 경진 1번째기사 1557년 명 가정(嘉靖) 36년

영의정 심연원이 폐이된 학정을 흥기시킬 것을 아뢰다

영의정 심연원이 의논드리기를,

"별시를 거행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전에 이미 의논해서 아뢰었으니 다시 의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시려면 명년에 중국 사신이 왔다 간 후에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를 위하고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은명(恩命)을 위해서 【세자의 책봉을 주청하면 황제가 사신을 보내어 책봉한다.】 과장(科場)을 열어 인재를 뽑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고명을 동지사에게 주청하게 하자는 일은 상의 분부가 마땅합니다. 거관 유생(居館儒生) 가운데 생원(生員)·진사(進士)에 합격한 자는 상사(上舍)라고 하고 사학(四學)의 승보시(陞補試)에서 취재(取才)된 자를 기재(寄齋)라 하니, 이는 옛날 공(公)·경(卿)·대부(大夫)·원사(元士)의 맏아들과 일반 백성 가운데 준수(俊秀)한 자를 다 태학에 들어가게 하던 유의(遺意)입니다. 옛날 융성하던 때에 그 규모와 절목의 자세함이 이미 이와 같이 구비되어 선비들이 학문에 뜻 두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학교의 정사가 해이해짐으로부터 사장(師長)은 교회(敎誨)에 힘쓰지 않고 학생은 수업(受業)에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기재에 거처하는 자는 모두 외방의 용렬한 사람들이라서 구차스럽게 호구(糊口)나 꾀하고 다른 길이나 엿보니 【하재(下齋)에 있음을 가탁하여 습독(習讀)이나 훈도(訓導)가 되기를 도모하는 것이다.】 국가의 예산만 소비될 뿐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몸을 닦고 교양을 함양하여 뒷날 쓰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예조로 하여금 옛 제도를 신명(申明)하여 절목을 자세히 갖추고 유도 권장하여 부지런히 가르침으로써 유생들로 하여금 학업을 즐거워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문풍(文風)이 다시 진작되고 어진 선비가 배출되어 학교의 융성을 이룩하게 되면 이보다 더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고무 진작시키는 근본은 임금에게 있으나 임금을 보도하고 사문(斯文)을 부식시키는 책임은 재상에 있지 않은가? 심연원이 표칙(表則)이 되는 자리에 있으면서 태만해진 사습(士習)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폐이된 학정(學政)을 흥기시키지도 못한 채 평소 묵묵히 남의 일같이 보았다. 그러다가 상의 하문이 있자 아뢴 말이 다른 사람들도 이미 진달한 말에 불과하였으니 이래가지고서 사람을 진작시킬 수 있겠는가?

사신은 논한다. 사습이 아름답지 못해서 태만하고 투박한 것은 이야말로 선비들의 허물이다. 만약 한 사람의 군자라도 조정에 우뚝하게 서서 위로는 임금의 선을 좋아 하는 덕을 돕고 아래로는 많은 선비들의 감발하는 마음을 진작시킨다면 자연히 흥기되어 문풍이 성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절목만을 상밀하게 신명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이해진 사습을 구제하여 학교를 흥기시킬 수 있겠는가. 그의 ‘어진 선비가 배출되고 문풍이 다시 진작된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니, 전교하기를,

"영상의 의논에 따르겠다. 기재에 대한 일은 대신과 영부사 가운데 수의(收議)하지 못한 곳과도 함께 의논하라는 것으로 예조에 이르라. 고명의 주청은 동지사의 사행에 물려서 정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386면
  • 【분류】
    외교-명(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사학(史學)

    ○庚辰/領議政沈連源議: "不當爲別擧事, 前已議啓, 無容更議, 然必欲爲之, 則明年天使往還後, 一爲我國, 一爲中朝恩命, 【封世子事奏請, 則皇帝遣使冊封。】 開科取人何如? 誥命則於冬至使奏請事, 上敎允當。 居館儒生內, 中生員進士者, 謂之上舍, 自四學取才陞補者, 謂之寄齋。 此古之公、卿、大夫、元士之適子, 與凡民之俊秀, 皆入大學之遺意也。 在昔盛時, 其規模節目之詳, 旣如此之備, 而爲儒者無不向學, 自學校之政廢弛, 爲師長者, 不以敎誨爲意, 爲學生者, 亦不以受業爲心, 凡居寄齋者, 率皆外方庸流, 苟容糊口, 窺占他岐, 【謂托於下齋, 或圖占習讀、訓導之流。】 徒費公廩。 何能藏修儲養, 以收後日之用乎? 宜令禮曹, 申明舊制, 詳具節目, 誘掖勸奬, 勤諄敎訓, 使儒生樂業, 文風復振, 賢士輩出, 以臻學校之盛, 不勝幸甚。"

    【史臣曰: "皷舞振作之本, 在於人君, 而輔迪君上, 扶植斯文之責, 不在於冢宰乎? 連源, 身居表則之地, 而不能變偸惰之士習, 不能興廢弛之學政, 平居默默, 視若楚越, 及其上敎詢咨, 則其所敷奏, 不過他人已陳之常談而已, 此可以作人乎?"】

    【史臣曰: 士習不美, 委靡偸惰, 此固爲士者之罪也, 如有一君子, 特立於朝廷, 上以贊吾君樂善之德, 下以根多士感發之心, 則自然興起, 而文風盛矣。 不然而徒欲申明節目之詳, 其何以救頹靡之士習, 而興已廢之學校哉? 其曰 ‘賢士輩出, 文風復振者, 不幾於誣乎?"】

    傳曰: "從領相議。 寄齋事, 於大臣、領府事, 不爲收議處, 商確同議事, 言于禮曹。 誥命奏請, 退定於冬至使可也。"


    • 【태백산사고본】 14책 2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386면
    • 【분류】
      외교-명(明)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