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원이 교태전 처마 보수를 정지할 것을 아뢰나 윤허하지 않다
간원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개국(開國)한 이래 대대로 검약(儉約)을 지키어 궁궐의 제도도 사치를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순박한 풍속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여염(閭閻)의 사이에 높은 담이나 큰 집이 없었습니다. 이는 모두 조종께서 검소를 숭상한 효험이니 성자 신손(聖子神孫)들이 마땅히 준수해서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교태전(交泰殿)의 처마를 보수하기 위해 재목을 마련해서 기한내에 완성시키려 하는데 신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종들은 1백여 년을 이어오면서도 처마를 보수한 일이 없었는데 오늘에 와서 그 제도를 더 넓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더구나 지금은 궁궐의 선수(繕修)를 겪은 뒤에 이어 방수(防戍)의 일을 일으켜 조도(調度)가 날로 번거로와져서 세금의 징수가 더욱 다급한데 공사(公私)의 저축은 1년을 넘길 것도 없습니다. 위에서는 급하지 않은 일은 제거하고 백성과 함께 휴식해야 할 때인데 어느 겨를에 조종 때 없었던 제도를 증가시켜 선수하는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곧 명하여 정지하게 하소서."
사신은 논한다. 조종의 검소한 덕에 대한 말은 사실이지만 여염의 사이에 과연 높은 담과 큰 집이 없었던가? 집정(執政) 대신들이 과연 《대전(大典)》의 법도에 따라 그 제도에 넘게 하지 않았던가? 높고 화려한 집들이 동(洞)마다 꽉차서 거리가 휘황한 것이 몇 곳인지 알 수 없는 정도인데 높은 담과 큰 집이 없다고 했으니 옛 사람들이 속이지 말라고 한 것과 다르다.
하니, 답하기를,
"교태전의 처마를 보수하는 일은 사치하게 하기 위해 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초 축조할 때에 밝기만을 취해서 처마 서까래를 짧게 했으므로 비바람이 불 때면 사람들이 발을 붙일 수 없어 부득이 보충하는 것이다. 해사(該司)의 관원들이 직접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오래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우순(虞舜)이 칠기(漆器)를 만들자 간한 사람이 열 명이나 되었고 노 희공(魯僖公)이 남문(南門)을 세우자 《춘추(春秋)》에서 이를 풍자했다. 대저 임금이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여 토목 공사를 일으키게 되면 반드시 사치와 욕심이 궁극적인 데까지 이르게 되어 그 해가 끝이 없게 된다. 교태전 처마를 보충하는 역사가 비록 백성의 힘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 것 같으나, 끝내는 보충한 처마도 족하게 여기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그러므로 사치하기 위해 법을 만들면 후손이 무엇을 본받겠는가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2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38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재정-역(役) / 역사-사학(史學)
○諫院啓曰: "我國家自開運以來, 世守儉約, 宮室之制, 不尙侈靡, 釀成敦朴之風, 故閭閻之間, 亦無高墻大屋, 皆由 祖宗崇儉之美。 聖子神孫, 所當遵守而勿失也。 今以交泰殿補簷, 磨鍊材木, 將及期造成。 臣等未知祖宗相承百餘年, 而無補簷, 至於今日, 開拓其制何也? 況今自經繕修以後, 繼興防戌之役, 調度日煩, 賦歛愈急, 公私之儲, 皆無一年之蓄, 自上當除不急之務, 與生民休息。 何暇增祖宗所無之制, 而起營修之役乎? 請卽命停。"
【史臣曰: "祖宗儉素之德則然矣, 閭閻之間, 果無高墻大屋乎? 執政大臣, 果能一遵《大典》之法, 而不踰其制乎? 峻宇華堂, 彌滿一洞, 照耀街衢者, 不知其幾處, 而其曰無高墻大屋者, 異於古人之勿欺矣。"】
答曰: "交泰殿補簷之造, 非欲侈大而然也。 當初造成之時, 徒取明朗而短簷桷, 故風雨之時, 人不得接足, 勢不得已加造也。 該司官員, 入見可知矣。 不允。" 久啓不允。
【史臣曰: "虞舜造漆器, 諫者十人; 魯 僖公作南門, 《春秋》譏之。 大抵人君, 以爲何傷而起土木之後, 則必至於窮奢極欲, 而其害無窮矣。 交泰殿補簷之役, 雖若不費民力, 而其終安知補簷之爲不足乎? 故曰: ‘作法於奢, 後嗣何觀?’"】
- 【태백산사고본】 14책 2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0책 38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건설-건축(建築) / 재정-역(役)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