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부가 갓 제도의 폐단에 대해서 아뢰다
헌부가 아뢰기를,
"남부 여인을 잔인하게 해친 일은 극히 참혹스럽습니다. 전에는 이같은 일을 반드시 의금부에 내려 추국한 것은 그 일을 중대히 여긴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형조에 내린 것은 매우 온편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의금부에 추국하라 명하소서.
왕자(王者)가 제도를 세워 백성에게 범하지 못하도록[防民]하는 것은, 요컨대 부족을 보태어 주고 넉넉함을 덜어내어 중정(中正)한 데 돌아가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덜어내는 것이 너무 지나쳐 중정에 미치지 못하게 될 경우 그 폐해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갓 제도[笠制]는 챙 끝이 너무 넓어서 승립(僧笠)과 비슷하여 사람들이 보기에 해괴한 점이 있기 때문에 제도를 고치자는 의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제(新制)는 또 머리 위가 너무 높고 챙 끝은 지나치게 좁아 결국 잘못을 고치려다 정도를 넘어버린 폐단이 있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번 새로 만든 갓의 제도를 보기만 하면 사람들이 다투어 웃습니다. 물정이 이와 같으니 사세로 보아 실행은 실로 난감합니다. 더구나 근래 흉년으로 온갖 물가가 치솟아 갓 하나 값이 쌀 한 석에 이릅니다. 따라서 봉록을 받는 가정에서도 오히려 끼니 때우기가 어렵다는 탄식이 있는데 하물며 아침에 저녁 일을 꾀할 수 없는[朝不謀夕] 사서인(士庶人)들이야 말할 게 있겠습니까. 이런 형편에 창졸히 그들에게 갓을 마련하게 한다면 어떻게 갖출 수가 있겠습니까.
대저 한번 새 갓을 갖추면 3∼4년을 착용하는데 하루 아침에 구제(舊制) 갓을 버리고 신제 갓을 구비하게 한다면, 끼니 때우기도 힘든 형편 때문에 즐겁지 않은 마음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비록 기한을 재촉하고 영(令)을 엄히 하더라도 이를 어기는 자가 많을 것인데 이미 이를 어기게 하고 또 죄를 준다면 백성을 법망에 걸리도록[罔民]하는 것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사(絲)와 면(綿)을 섞어서 짠 옷은 사대부 가정에서 마련하기가 매우 쉬워 그 때문에 착용해 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만, 그 사(絲)가 너무 가늘어 짠 것이 지나치게 얇으므로 사람들이 사치스러운 데 가깝다고 하여 금지하였는데, 사가 굵고 조직이 두꺼운 것까지 아울러 금지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물며 금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새로 준비한 사람들은 법이 두려워 착용하지 못해 도리어 무용한 물건이 될 것이고, 또한 세목(細木)의 가격이 너무 높아 형편상 급작스럽게 갖추기가 어려운 자는 법을 무릅쓰고 그대로 착용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하나는 유용한 물건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이고 하나는 가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법망에 빠뜨리는 것이니, 되겠습니까. 만일 이를 금지하고자 한다면 1∼2년을 한정하여 옛것을 죄다 없어지게 하고 새것은 만들지 못하게 하여 한편으로 망민(罔民)한다는 비방을 없게 하고 한편으로는 방민(防民)의 법금을 엄히 한다면, 인심은 기뻐할 것이요 법은 시행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옛 제도의 갓과 옛날에 사면(絲綿)을 섞어 짠 곱고 얇은 천으로 만든 옷의 착용은 내년 연말을 한정하여 일체 금지하고, 새로 만들어 쓴 갓인데도 새 제도에 어긋난 것과 새로 만들어 입은 옷인데도 곱고 얇은 것은 금년 8월 1일을 한정하여 일체 금지하소서. 그리고 새 갓의 제도를 예조로 하여금 널리 물정(物情)을 물러 가지고 알맞게 마련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남부 여인이 잔혹하게 피살된 사건을 금부에 내려 조처하는 것은 합당하다. 위에서도 역시 조옥(詔獄)에서 추문하려고 하여 형조(刑曹)로 하여금 그 사건의 대개를 살펴 가지고 입계하게 한 뒤에 금부에 이첩하려고 생각했다. 속히 금부로 하여금 끝까지 추문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옛 제도의 갓과 의복의 착용 정한(定限)에 대한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0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346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사법-치안(治安) / 사법-재판(裁判) / 의약-의학(醫學) / 의생활(衣生活) / 물가(物價)
○憲府啓曰: "南部女人殘傷之事, 極爲慘酷。 在前如此事, 必下義禁府而推鞫者, 所以重其事也。 今下刑曹, 極爲未便。 請命義禁府推鞫王者立制而防民, 要之補不足而損有餘, 歸於中正而已。 若其損之太過, 歸於不及, 則其爲弊也一也。 今之笠制, 簷端太廣, 近於僧笠, 有駭人見, 故改制之議, 不得不發。 然其新制盔上太高, 簷端太狹, 未免有矯枉過正之弊。 一見新笠之制, 人爭笑之。 物情若此, 勢所難行。 況近因凶荒, 百物踴貴, 故一笠之價, 至於米石。 受祿之家, 尙有艱食之歎, 矧乎士庶之人, 朝不謀夕者乎? 卒令備笠, 何以能備? 大抵一備新笠, 可着三四年, 一朝棄其舊備其新, 則以艱食之力, 挾不悅之心。 雖促限嚴令, 而犯之者衆, 旣犯之而又罪之, 則不幾於罔民乎? 至於緣絲雜織之衣, 士大夫之家, 備之甚易, 故着之已久, 但其絲太細, 其織太薄, 故人以爲近於侈靡而禁之, 幷與絲麤織厚者而一禁可乎況法前新備者畏禁而不着反爲無用之物而且細木之價甚高, 故勢難卒備者, 則冒法而仍着, 一則以有用之物, 歸於無用, 一則以家窮之人, 陷於法網可乎? 如欲禁之, 以一二年爲限, 使舊者歸於盡, 新者不得造, 一以絶罔民之謗, 一以嚴方民之禁, 則人心悅而法可行矣。 請着其舊笠子及舊雜織絲綿細薄者, 限明年歲末一禁。 而着其新笠, 而違新制新衣而細薄者, 限今年八月初一日一禁。 且新笠制, 令禮曹, 廣詢物情, 適中磨鍊。" 答曰: "南部女人殘傷之事, 下禁府當矣。 自上亦欲詔獄推之, 而令刑曹, 察其大槪而入啓後, 移禁府計料耳。 速令禁府窮推可也。 笠子衣服定限事, 如啓。"
- 【태백산사고본】 13책 20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20책 346면
- 【분류】사법-법제(法制) / 사법-치안(治安) / 사법-재판(裁判) / 의약-의학(醫學) / 의생활(衣生活) / 물가(物價)